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16화 (116/206)

#  116

116. 압축

근육은 여전히 굳건하다.

특별히 과도하게 에너지를 쓰지도 않았다.

방아쇠만 당길 뿐이었다.

비무장지대 전투 때처럼 며칠을 쉬지 않고 연속으로 한 것도 아니다.

에너지를 광선으로 치환하는 기술 즉, 광선포를 쏠 수 있게 된 후부터는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었다.

커버링 탄환과 스파이럴 등을 쓰지 않고, 카트리지만 비웠다.

그런데 왜 이렇게.

‘배가 고프냐?’

-점심 걸렀어?

오후 4시.

점심이 한참 지났다.

그러고 보니, 급하게 움직인다고 뭘 먹지를 못 했다.

-군코바라도 줄까?

한 끼 정도 굶는다고 사람은 죽지 않으니, 저녁을 너끈히 먹어야겠다.

500기.

벼락이 떨어뜨린 전투기의 숫자다.

텅.

빈 카트리지를 꺼내자 푸른 증기가 올라왔다.

다시 새 카트리지를 끼운다.

-적 함선 출현.

말 안 해도 보여.

해수면 위로 둥근 기체가 떠오른다.

세주가 탈취한 것과 꼭 닮은 함선이다.

끼리릭.

일단 인사부터.

둥.

전투기를 떨군 벼락의 레이저 탄환이 허공에 푸른 선을 그렸다.

텅!

-뭐해?

‘인사.’

육각형 패널이 허공에 떠, 벼락의 탄환을 막았다.

세주는 방금 한 번 탄환을 쏜 것으로, 적이 가진 방어력을 계산하려고 애썼다.

어느 정도의 힘이면 뚫릴까?

애비탄 정도라면 되려나?

그리고 곧 깨달았다.

계산은 무슨.

백날 머리를 굴려도 모른다.

애초에 머리 써서 한 일은 하나도 없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며 적을 맞추는 술도 전부 감각의 영역이다.

-방어력은 이제까지 봤던 어떤 것보다 뛰어나. 배리어 기술 자체도 젤라틴 형태로 투사체를 반감시키는 역할도 겸하는 거야.

대신, 세주보다 계산을 잘 하는 애완 기계는 있다.

-애비탄을 쏜다고 해도 관통한다고 확답할 수 없어.

칼큐레이팅 모드를 켠 프로비던스가 홀로그램 문자를 띄운다.

에임 모드 커버링 탄환을 쏠 경우.

스나이퍼의 탄환을 쏠 경우.

뇌전 성질의 압축 애비탄을 쏠 경우.

적을 부술 수 있는 확률이다.

50%를 넘어가는 게 없다.

벼락을 들고 조준점을 맞춘다.

-모드도 안 켜고 뭐해?

아직 이 ‘기술’은 모드까지 적용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미완성이다.

개자식 호의 동력원을 바꾼 기술과 일맥상통한다.

압축.

커버링 기예 중 전이를 넘어 양도로 만든 거다.

그 첫 번째가 스파이럴.

나선의 드릴을 탄환 앞에 달아두는 것.

두 번째는 커브, 탄환을 꺾어 쏘는 거다.

그리고 지금 세 번째.

압축이다.

끼이이이이이잉.

벼락의 총열이 떨렸다.

기묘한 소음이 미친 듯이 흔들린다.

기본은 애비탄이다.

‘모드 온 불릿 마스터.’

화르륵.

모드를 켜고, 전신에 노블 에너지를 채워 번 업 상태로 변환.

드드드드드.

전신이 떨린다.

그리고 압축이다.

티디디딕.

전신에 타오르던 불길이 잦아든다.

그리고 색이 짙어진다.

압축, 작게 더 작게 뭉친다.

옅은 푸른빛이 점점 짙어진다.

그리고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옅은 푸른빛에서 새파란 색으로 그리고 짙은 파랑을 넘어 남색으로 변한다.

끼이이이이잉!

-벼락이 못 버텨.

손상률 17%.

홀로그램 문자가 보였다.

9번의 압축, 고농축 애비탄이다.

손상률이 30%에 도달하자, 팅하고 총열 위를 덮는 덮개가 튕겨 나간다.

드드드드드드.

총기가 미친 듯 요동친다.

콰우우우!

금세 해수면 위로 떠 오른 적 함선 옆으로 무지개가 생겼다.

반짝반짝 빛나는 햇볕이 물살 옆으로 쏟아진다.

멋진 위용이다.

-저 함선 나포하기는 글렀네.

‘성질 부여 폭탄.’

지금 그런 사정 하나하나 따질 때냐?

이 함선과 같다면, 저 함선에도 그게 있다는 거다.

오형포다.

바다에 떨어져 해일을 만들고, 적의 대형 괴수를 한 번에 사살하는 괴물 같은 무기다.

아니나 다를까, 놈의 머리 위로 긴 포신이 나타난다.

적도 머리가 있다면, 전력으로 부딪쳐야 할 때라는 것을 아는 거다.

끼이이이잉!

오형포 포신 앞으로 빛의 입자가 모인다.

세주가 가진 어떤 배리어도 저건 못 막는다.

오형포는 땅에 직격하면 도시 하나쯤은 날릴 화력이다.

그러니까.

선수 필승, 놈이 치기 전에 격추한다.

딱.

방아쇠를 강하게 당겼다.

반동에 몸이 뒤로 밀린다.

젤라틴 아머로 고정해 둔 곳이 찢겼다.

쩍! 텅!

뒤로 구르며 머리를 바닥에 찐 세주가 그대로 대자로 드러누웠다.

벼락이 산산조각이 되어 떨어지는 게 보였다.

목을 들어 앞을 보자.

꽈과과과과과과광!

폭음이 일며 놈들의 함선 앞쪽이 터진다.

아니, 그걸로 끝이 아니다.

우지직, 일그러지며 포신이 옆으로 꺾여 떨어지고, 함선이 기우뚱하고 옆으로 휜다.

-대단한 내구도야.

지금 감탄할 때냐?

분명 이 한 방에 추락 내지는, 굿 게임이라는 항복 선언을 받고 싶었단 말이다.

하지만 적은 그럴 생각은 없어 보였다.

팍!

함선 밑, 검은 그림자가 솟구친다.

머리가 콘헤드란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트레에에에!”

놈이 솟구치며 괴성을 지른다.

세주가 그걸 보며 우주선 외벽을 내려쳤다.

꽝!

“야, 니들은 놀래?”

아니, 자기 부대장이 이렇게 개고생을 하는데 구경만 하는 부대원이 어디 있냐고.

불쑥, 하고 치용을 선두로 셋이 올라온다.

“끼어들 엄두가 나야죠.”

유진이 배시시 웃는다.

아머를 걸친 셋이 앞을 본다.

기괴한 괴물이 세주의 눈에만 보이는 건 아닐 거다.

신장은 15m 정도.

머리는 콘헤드에 겨드랑이에는 물갈퀴 같은 게 달려 있다.

-심해에서 파도를 일으키던 놈이야.

“후.”

피곤하고 배가 고팠다.

세주가 앞을 보며 입을 열었다.

“조져.”

빨리 끝내고 소고기나 구워 먹고 싶었다.

***

‘적에게 위험한 무기가 있다.’

메카니모스에도 혼자서 저런 에너지를 방출하는 이는 손에 꼽는다.

콴의 함정일 수도 있다.

마스이가 말한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기술력을 넘어서는 무기.

그게 바로 증거였다.

함선이 폭발하자마자 앞으로 내달렸다.

인간이란 종은 흔하다.

아홉 개의 은하로 나뉘는 드넓은 우주에서 열 곳의 행성 중 세 곳은 인간과 비슷한 종족이 있다.

그래서 울트라는 인간이 얼마나 약한 종인지 알았다.

발로 차면 몸이 터지고 손으로 찍으면 그대로 토마토처럼 으깨진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달려들어서 죽인다.’

무기는 회수하고, 이걸 증거로 콴에게 항의한다.

그는 전투원이다.

가장 합리적이고 확률 높은 루트를 택했다고 할 수 있었다.

함선 위에 덩그러니 앉아 팔을 주무르는 인간의 무기만 조심하면 된다.

그는 판단했고, 달렸다.

방심 아닌 방심이다.

그래서 자신의 팔에 걸리는 단단한 와이어를 늦게 발견했고.

그게 걸린 순간 반응도 늦었다.

‘함정!’

팽팽히 당겨진 와이어에 팔 하나가 걸린다.

그는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겨우 인간이 만든 물건이다.

무시하고 앞으로 팔을 앞으로 당긴 순간.

싹둑!

“트레에!”

고통에 비명을 지른 그의 눈에 잘린 팔이 보인다.

“너 바보냐?”

그리고 그 밑으로 붉고, 푸른 도끼를 든 놈이 보였다.

어떻게 인간이 자신의 육체에 손상을 입힐 수 있지?

의문은 뒤로 미뤄야 했다.

반사적으로 도끼를 든 인간을 향해 발을 휘둘렀다.

발끝에서 에너지가 송곳처럼 솟았다.

그는 전신 어디에서도 에너지 블레이드를 만들 수 있었다.

“이거 진짜 빡대가리네.”

쩡!

도끼를 교차해서 막은 인간이 말했다.

훙!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어깨에 앉은 인간이 보인다.

놈은 서슴없이 짧은 칼 두 자루를 자신의 렌즈에 쑤셨다.

퍽! 퍽!

고통이 밀려들었지만, 그는 비명을 삼켰다.

전투 중이다.

적은 강하다. 방심은 금물이다.

물론, 너무 늦게 깨달았다.

“체크 메이트.”

바로 뒤.

뒤통수에 포신이 닿는다.

퀴이이! 꽈앙!

퍼버버벅!

머리가 터지며 허공에 부산물을 뿌렸다.

렌즈 일곱 개가 터지고, 몸이 허무하게 바닥으로 쓰러졌다.

“쳇.”

한 번도 힘차게 도끼를 휘두르지 못한 치용이 혀를 찼다.

불만이 가득한 거다.

그래도 표정을 풀었다.

치용이 생각하기에 반세주는 제대로 미친놈이다.

그에게 괜히 반항하는 건,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다.

옛날 비리비리할 때도 이상한 박력이 있었지만.

요즘은 힘도 좋다.

“음. 어디 갔을까요?”

유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주가 있던 자리가 이미 비어 있었다.

***

마스이는 탈출을 감행했다.

‘함선은 하나 더 있다.’

이곳을 침공한 건 총 셋.

마스이와 울트라.

그리고 다른 하나는, 7급 전투원.

그가 타고 온 함선으로 도망가면 된다.

생각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그는 탈출로를 향해 뛰었다.

파바바박!

전투원은 아니지만, 그도 신체 개조를 받은 메카니모스의 일원이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서 구조정이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무너져 쓰러진 함선이었다.

인간들이 바다 위에 동동 뜬 이 함선을 차지하고 함성을 지를 때쯤.

자신은 우주 밖으로 나가 있을 거다.

그리고 다시 함대를 이끌고 오리라.

그 후, 지구라는 행성 자체를 지워 버릴 거다.

“트레.”

중얼거린 그가 구조정이 비치된 해치를 열었다.

퓨슉!

증기가 빠지며 동그란 우주선이 보였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을 열자.

“안녕?”

그 안에서 기다리는 인간이 보였다.

그놈이다.

가르간의 함정!

함선을 부순 인간!

“이 새끼가, 인사성이 없네.”

렌즈 8개가 깜빡였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인간으로 치자면, 딸꾹질하는 것과 매한가지다.

인간은 그런 마스이를 보다 입을 다시 열었다.

“야, 안녕이라고. 인사 안 하냐?”

통역기가 고장 났을까?

지금 인간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린 마스이는 경계심을 보였다.

렌즈의 빛이 더 현란하게 번쩍였다.

“너 나이트클럽 아재들이 좋아하겠다.”

사이킥 조명보다 더 신나게 깜빡이는 렌즈다.

“트레!”

놀란 가슴을 진정 시킨 그는 렌즈에 에너지를 모았다.

일형포 한 방이지만, 불시의 기습이다.

한 방 먹이고 도주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순간, 놈의 팔이 채찍처럼 늘어났다.

아니, 채찍이 아니다.

에너지 블레이드를 길게 뻗어 목을 휘감는다.

“조명 끄지?”

이대로 레이저 포를 쏘면 어떻게 될까?

치지지직.

섬유 다발로 이뤄진 목에 블레이드가 감긴다.

아프다.

“트레.”

[항복]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

백색과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조명.

책상도 의자도 없는 공간이다.

오로지 출구인 문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강철로 된 방.

그게 감옥이었다.

세주가 그를 마주 보고 섰다.

“자, 우리 통성명부터 해볼까?”

마스이는 침묵했다.

푹.

뭔가 팔에 꽂힌다.

“트레에에!”

놀란 마스이가 비명을 질렀다.

팔에 꽂힌 에너지 블레이드를 보고 그가 세주를 보고 외쳤다.

통역기가 작동했다.

[9은하 법전에 의거, 포로의 목숨을 위협하면 안 된다! 우리는 전쟁 중이 아니다!]

전쟁이라니, 메카니모스는 9은하를 삼등분 하는 종족이다.

그리고 이들은 식민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이들이고.

침공해서 잡힌 일은 치욕이나, 그렇다고 얌전히 당할 생각은 없었다.

쑥!

그 말에 세주가 에너지 블레이드를 뽑았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마스이는 불길함을 느꼈다.

이 인간, 어딘가 고장 났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건가?]

불안함에 묻자.

그 인간이 더 해맑게 웃는다.

“너 착각이 심하네.”

그가 말을 잇는다.

“첫째, 그 9은하인지 법전인지 난 모르고.”

서걱!

세주가 말을 끊으며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트레에에!”

비명이 절로 나왔다.

마스이는 잘린 팔을 보고 다시 세주를 바라봤다.

팔뚝에선 녹색 체액이 분수처럼 흘렀다.

에너지를 컨트롤 해 간신히 지혈하자, 세주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전쟁은 너희가 먼저 시작했어. 시파 새끼들아.”

그리고 블레이드가 반대쪽 팔을 꿰뚫는다.

“트레!”

“그러니까.”

이마를 들이댄 인간, 반세주가 다시 입을 연다.

“아는 거 다 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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