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115. 저격
둥.
벼락의 방아쇠를 당길 땐 역시 쾅하는 소리가 어울렸다.
둥둥거리니까 북이라도 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싫지만은 않다.
비무장지대 전투 이후, 세주는 단 한 번도 저격수로 싸운 적이 없다.
그는 지휘관이었고, 때로는 척후병이었으며.
때로는 의무병이었다.
거세게 치던 파도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스나이퍼 모드에는 집중 스킬이 있다.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세상에 목표물과 자신만 남은 기분을 들게 만들어준다.
집중 스킬은 훌륭하지만, 지금만큼은 아니다.
첫 발을 쏘고 난 후, 이상하게 주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생각이 멈춘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과 호흡, 적만 남는다.
에임모드만 켜고, 트레이싱 스킬을 쓴다.
타겟을 계산하는 건 전부 자신의 몫이다.
하지만 계산을 안 해도 자연스럽게 쏴야 할 곳.
타이밍을 알 것 같다.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둥.
벼락의 방아쇠를 당기면 적이 날린 레이저 포의 각도가 변한다.
두둥!
허공에서 비껴 맞은 레이저 포가 적기를 맞췄다.
펑!
배리어가 약한 놈은 누구지?
자연스레 눈이 쫓아가며 다음 타겟을 찾는다.
촤악!
배리어를 펼치지 않았다.
그 사이 물살이 몸을 흠뻑 적셨다.
아머 사이로 스며든 바닷물이 속옷까지 적신다.
그래도 괜찮았다.
불쾌한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둥.
지금 세주의 전 신경은 오로지 하나.
몸을 함선에 고정한 채, 쏘는 것에 맞춰져 있다.
오롯이 세상에 적과 자신만 있는 기분이다.
둥! 두두둥!
적의 공격에 맞춰, 방아쇠를 당기다보니 서로 합을 맞춰 춤이라도 추는 것 같다.
두두두두두둥!
연사로 바꾼 벼락이 9연발, 레이저 포를 쏜다.
티디디디디딩!
허공에서 날아오는 레이저 포의 각도가 바뀐다.
일부는 바다로, 일부는 적 전투기를.
그리고 일부는 세주를 향해 날아온다.
애초에 자신의 뒤로 한 발의 도탄도 만들 생각이 없었다.
더는 사람이 죽는 게 싫다.
이미 해일과 습격으로 죽은 이들이 많다.
사망자 숫자를 뉴스에서 세차게 떠들 거다.
그 숫자가 늘어나는 걸 끝낼 거다.
팟.
순간적으로 만든 배리어가 전신을 감싼다.
파바방!
레이저가 배리어에 맞고 튕겨 나간다.
아머에 내장된 에너지를 쓰는 배리어는 유한하다.
하지만 프로비던스가 있다.
세주는 총을 쏘고 배리어를 만들고 거두는 묘기 외에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지금 한 자루 총이자 총알이다.
그 외, 일은 전부 일임했다.
프로비던스가 적절하게 아머에 에너지를 충전할 거다.
그러려고 함선 위에 앉아 있는 거다.
그리고 카트리지도 알아서 옆에 꽂아 둘 거다.
슈우욱.
벼락에 꽂힌 카트리지에서 푸른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에너지를 전부 썼다는 표시다.
팅.
세주는 공장에 돌아가는 기계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였다.
카트리지를 빼고, 옆으로 손을 뻗어 바닥에 꽂힌 카트리지를 뽑고, 다시 벼락에 끼운다.
그리고 다시 방아쇠를 당긴다.
둥.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 주어진 일은 지금 하나였다.
저격수로서 반세주다.
세상에 적과 자신만 남은 거다.
한 발, 한 발 쏠 때마다 목숨을 걸고 쏘는 것.
그게 저격이었다.
완벽한 집중, 마치 트랜스 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눈은 목표물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그의 귀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숨소리조차 잊은 채, 묵묵히 방아쇠를 당길 뿐이었다.
*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이건 환상도 꿈도 아니었다.
오늘 하루는 길었다.
자신의 손에서 죽어가는 이가 있었고.
물살에 휩쓸려 구하지 못한 여자도 있었다.
그래도 뼈가 부서져라 뛰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으니까.
지원군이 없기에 전투는 무리였다.
장광안은 자신의 분수를 잘 알았고, 할 일을 잘 택했다.
그는 해일에 휩쓸린 도시 안을 헤집었다.
그리고 사람을 구했다.
그게 그의 할 일이었다.
박태희도 합류했다.
알파와 베타는 그렇게 사람을 구하는 데 전념했다.
그리고 조금 전.
절망을 봤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바다의 분노가 그들을 휩쓸기 직전이었다.
그 앞을 적의 함선으로 보이는 게 막아서서, 배리어로 물결을 막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나, 아군의 편에 서서 싸우던 그 함선이다.
파아아앗! 콰아아아아!
절망을 일으키는 물살이 막힌 순간.
“모두 뛰어!”
광안은 외쳤다.
목에서 피가 나와도 좋았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곳곳에 들리길 바랐다.
저 배리어가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간이야말로 목숨을 구할 골든타임이다.
뒤를 향해 발을 떼고 달린다.
“아아악!”
누군가 넘어져 비명을 질렀다.
채 열 살이 되지 않은 아이다.
붕!
넘어진 아이의 몸이 공중에 뜬다.
염동력이다.
“뛰어!”
부대원들은 알아서 민간인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아이가 울먹거리며 앞으로 걷는다.
“엄마. 엄마.”
울음 섞인 목소리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 순간이다.
슈슈슈슈슈슝!
하나, 둘 도망가기 바쁜 그들의 뒤로, 공기를 가르는 소음이 들렸다.
“허허.”
광안이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까맣게 하늘을 채운 놈들의 전투기다.
후두두두둑.
거대한 담이 된 배리어 사이로 떨어진 바닷물이 빗물처럼 떨어진다.
그리고 하늘에는 날 파리 떼처럼 모인 적의 전투기가 보였다.
아군의 전투기는 보이지도 않았으며, 반항할 수단은 조악했다.
소총을 한 번 흔들어 물기를 털어 낸 광안은 몸을 돌렸다.
대피하는 쪽이 아니다.
“전원 반전!”
대피가 문제가 아니다.
물살에 휩쓸려 죽든, 아니면 저놈들이 쏘는 레이저 포에 죽든.
둘 중 하나라면.
남은 길이 없다면 광안이 할 일은 하나였다.
발악이었다.
두두두두둥!
파바바바바방!
배리어 위로 레이저 포 무더기가 쏟아진다.
쩌저적!
육각 패널 형태의 배리어가 깨진다.
콰콰콰콰!
폭포처럼 바닷물이 넘어와 바닥을 적셨다.
광안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이대로라면 못 피한다.
배리어는 깨질 거고, 이 도시에 있는 사람은 다 죽을 거다.
쉘터도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결사 항전, 목숨을 걸어라!”
광안이 외치며 달렸다.
“베타 팀! 전원!”
박태희의 목소리다.
저 여자라도 돌아갔으면 좋으련만.
“목숨을 걸어라!”
그녀도 돌격한다.
하긴 여기에서 꼬리를 마는 여자라면 자신이 반하지도 않을 거다.
‘앞트임 하자.’
살아남으면 성형의 힘을 빌려서라도 저 여자를 꼬셔보자.
최선을 다해서!
“으아아아아!”
레이저 포 앞에 자신의 육신은 종잇장처럼 찢길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궁지에 몰린 쥐가 돼서 고양이를 물어야 했다.
마이티 마우스가 되어야 할 순간이다.
깨진 배리어 틈으로 빛이 번쩍인다.
‘이런 염병.’
운도 더럽게 없었다.
마침 자신이 달리는 곳, 정면으로 광선포가 날아든다.
빛이 보인 순간 죽은 목숨이다.
전신에 노블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죽음의 순간이 다가왔다고 가만히 당할 수는 없으니까!
둥!
눈을 깜빡인 광안은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소나기와 하늘을 수놓는 광선 때문에 헛것이 보였다.
환상도 꿈이 아닌 일이 펼쳐지고 있다.
긴 하루의 끝에서 광안은 환각과도 같은 현상을 보고야 말았다.
날아드는 광선포의 옆, 다른 광선포가 그걸 때린다.
그러니까, 중간쯤을 맞춰서 포격의 각도를 바꾼다.
날아가는 총알을 맞추는 것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짓이다.
“….”
말문이 막혔다.
입을 쩍 하고 벌리고 그걸 바라보다 바닷물이 입안에 들이찼다.
“퉤.”
짜다.
엉겁결에 삼켰다.
코끝이 찡했다.
소금 덩어리를 입에 문 것 같았다.
다시 위를 올려다봤다.
여전히 같은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
광선포가 꺾인다.
날아드는 푸른 빛줄기가 적의 흰 광선포를 무력화한다.
이런 일이 가능한 놈은 하나뿐이다.
‘반세주!’
저 함선, 그들이 가져온 거다.
반세주와 부대원.
보이진 않아도 확신할 수 있었다.
“후퇴하자.”
어느새 다가온 박태희다.
“그래야지.”
세주가 직접 통신을 한 것도 아니고, 말도 하지 않았지만.
느껴졌다.
뒤를 맡을 테니, 빨리 피하라는 말이 환청처럼 들렸다.
두두두두!
저 먼 곳, 헬기의 로터음이 들린다.
눈을 가늘게 뜨고 보자, 소방 헬기, 방송사 헬기 가릴 것 없이 날아온다.
‘됐다.’
저거면 살 수 있다.
대피하는 인원 중 뛸 수 없는 인원을 헬기에 태우고 달아나면 된다.
바닥은 바닷물로 엉망이라 차가 제대로 달릴 수 없었다.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배리어 사이로 떨어지는 차가운 바닷물이 몸에 닿는데도, 열기가 식지 않았다.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에 차오른다.
살았다는 기쁨보다 더한 것이다.
광안은 그제야 비무장지대에서 반세주 개자식을 부르짖던 이들의 심정이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라도 그 이름을 부르짖었을 것이다.
그 상황이었다면.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 상황을 파악하는 건 자신과 박태희 정도.
나머지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도 모르고 뛰었다.
둘을 제외한 이들은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몰랐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알았다.
두두두.
높게 솟은 헬기 한 대.
그 안에 자리 잡은 카메라맨이 목숨을 걸고 찍는 중이었다.
그에게 이건 최고의 특종이었다.
*
지지직.
네비게이션 화면에 노이즈가 생기다가 화면을 비춘다.
부모님이 동해에 살고 계신다.
그곳이 습격 받았다는 사실에 정신이 나가려는 걸 붙잡았다.
그는 곧바로 운전대를 잡았다.
하등 소용없다 하더라도.
고작 사망자에 숫자를 늘리는 역할일지라도.
강원도를 향해 엑셀을 밟았다.
도로가 엉망이었다.
침공에 이리저리 움직이는 이들이 교통을 마비시킨다.
그는 울분을 토하는 대신 네비게이션의 위성 TV를 틀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투가 일어나는 곳을 볼 수 있었다.
부모님이 계신 곳.
동해다.
“아!”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터트렸다.
배리어가 해일을 막고 레이저 포가 배리어를 두드린다.
절망이 감싸는 도시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부모님은 살아계실까?
다른 이들은?
그 순간, 푸른 광선이 배리어에 쏟아지는 흰 광선을 맞춘다.
TV 화면에는 그냥 빛이 번쩍이는 것만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보였다.
배리어가 갑자기 바닷물을 밀어낸다.
그리고 빛이 번쩍이며 갑자기 적기가 부서지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긴 시간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단숨에 수십 기가 끈 떨어진 연처럼 바다에 추락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푸른빛이 허공을 가르고 적기를 관통했다.
놀라운 걸 보는 그의 입이 벌어졌다.
아니, 그만이 아니었다.
지금 TV를 보는 이들 모두 볼 수 있었다.
지지직!
생중계 화면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올 킬 중령을 기억하십니까?”
묵직한 저음의 남자다.
얼굴도 나오지 않는 남자가 계속 입을 연다.
“여의도 침공 때 엄지를 들어 싸우던 남자입니다. 이름은 반세주, 군에서 그는 소장의 지위에 있으며.”
콰우우우.
그 사이 바람이 거세게 부는지, 잠깐 말이 끊겼다.
“방송이 고르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이럴 때 프로정신을 발휘한다고 박수를 쳐 줘야 하나?
아니면 빨리 본론이나 말하라고 멱살을 잡아야 하나?
적어도 차에 몸을 실은 남자의 심정은 후자였다.
“제길.”
그 심정을 담은 욕설 뒤로 다시 방송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가 지금 동해를 침공한 적을 맞아 싸우고 있습니다. 정보에 의하면 적의 우주선을 나포해 적의 무기로 싸우며, 목숨을 걸고 맞서고 있습니다.”
꿀꺽.
음성에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저 장면을 찍기 위해 이 사람도 목숨을 걸고 있는 거다.
“동해에 가족을 가지고 계신 많은 시청자 분들. 더 이상의 피해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웅이 있습니다.”
낯간지러운 말을 잘도 뱉는다.
하지만 그 말에 운전대를 잡은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휘둘렀다.
‘좋아!’
사망자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평소에 대피 훈련이 잘 된 탓인가?
아니면 운이 좋았을까?
덕분이다.
세 자리 수.
중계 된 화면 우측상단에 뜬 피해 예상 숫자다.
참혹한 현장에 나타난 영웅은 그 숫자를 멈췄다.
‘제발.’
부모님이 살아계시기를 바라며 그는 엑셀을 밟았다.
같은 시각.
집에서 이 영상을 본 비무장지대 출신 병사는.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반세주 개자식!”
도시 곳곳에서 간간이 반세주 개자식이란 소리가 울렸다.
*
나호필은 영상 송출 화면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다.
인류는 공격을 당하고 있다.
이 순간에 필요한 건 구심점이다.
죽은 이의 얼굴을 잊지 않고 나아가 적에게 반격할 기초, 그게 영웅의 존재다.
나호필은 그걸 노렸고, 적중했다.
세주가 함선을 탈취했고, 그 연락을 받은 시점에서 결정한 일이다.
목숨을 건 카메라맨, 방송을 종용한 것도 그였고, 그들을 말리지 않은 것도 그다.
“지원군은?”
이미 한참 전에 동해로 떠난 이들이 갑자기 통신이 뚝 끊겼다.
“통신 들어왔습니다!”
부관이 급하게 들어왔다.
급하다는 건, 위기라는 소리다.
나호필은 차분하게 그를 바라봤다.
그는 지휘관, 흔들려서는 안 되는 위치다.
“습격입니다. 반수 이상이 전사하고 운송하던 무기는 전부 뺏겼습니다.”
적의 우주선을 나포했는데, 반대로 적에게 아군의 무기를 뺏겼다.
공격적인 한 수는 성공했고, 수비적인 수는 실패다.
나호필은 침묵하지 않았다.
“적의 위치는?”
“파악 불가입니다.”
머리가 팽팽 돌아간다.
적은 세 방향으로 왔다.
창동, 동해.
그리고 지원군을 끊었다.
그럼 지금 필요한 건?
“발해 팀과 크롬 팀에 지원 요청해!”
“넵!”
발해, 크롬 중 일부 인원이 이미 지원군으로 나섰다 당했지만.
두 부대 모두 전력은 아니다.
세주가 적이 날린 두 개의 창을 꺾었으니, 하나는 이쪽에서 맞아야 했다.
“자, 해보자고.”
부관이 떠난 자리, 나호필이 눈을 빛내며 혼잣말을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