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114. 묘기
촤아악!
높게 솟은 해일이 보인다.
놔두면 도시를 예쁘게 집어삼키게 생겼다.
이전보다 더 크게 솟은 물결이다.
콰우우우.
부글부글 하얀 포말이 들끓는 용암보다 무서워 보였다.
‘음.’
-오형포 화력 덕분이지.
말 안 해도 안다.
오형포에 감탄한 것도 잠깐이다.
그 여파가 꽤 크다.
세주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막을 방법은?
물리적인 배리어가 필요하다.
그리고 마침 이 우주선에는 그런 기능이 있다.
해일이 도시를 덮치기 전에 배리어로 막는다.
그대로 움직이려는 순간이다.
쾅!
빛이 번쩍인다 싶더니 함선 우측에서 폭음이 들렸다.
-이형포네.
일형포 형태에 연사율을 높인 형태다.
인간의 총기로 치자면 기관총 같은 거다.
두두두두둥!
눈앞이다.
빛살이 함선 전체를 뒤덮었다.
“배리어 발동!”
세주의 명령에 유진이 손을 위로 들었다.
함선 조작은 전부 ‘행동’으로 이뤄진다.
우웅!
동그란 함선을 감싸는 배리어 위로 레이저 포의 소나기가 쏟아졌다.
터더더덩.
바글바글 하늘을 채우며 놈들의 전투기가 나타났다.
타원형에 앞쪽이 뾰족하고 그 앞으로 포신이 삐죽 나와 있다.
그나저나 많기도 하다.
‘곤란한데.’
-이제 알았어?
해일을 막아야 하는데 방해꾼이 나타났다.
-조종간 넘겨.
부함장의 쿠데타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더구나 함선 조종은 세주보다 프로비던스가 수십 배는 나을 거다.
거기에 프로비던스가 함선을 조종해준다면 세주도 자유로워진다.
‘가져라.’
쿠우.
잠깐 함선이 비틀댄다 싶은 순간이다.
-회피 기동.
티디디딩.
원반 날개가 흔들린다.
그리고 밑으로 뚝하고 추락했다.
그 위로 ‘두두둥’ 하고 레이저포가 지나갔다.
밑으로 추락하던 함선의 바닥에서 불꽃이 치솟았다.
콰우우우!
‘해일 먼저 막자.’
고도를 낮춘 함선이 그대로 앞으로 쏘아진다.
그리고 다가오는 물결 앞, 자리를 잡고 배리어를 펼친다.
콰아아아!
아슬아슬하게 배리어가 도시 전면, 덮쳐오는 해일을 막아섰다.
육각형 패널 앞, 거대한 물결이 요동치듯 덮쳤다.
“이대로 물에 빠져 죽으면 웃기겠죠?”
유진이 긴장한 기색으로 입을 연다.
세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독한 블랙 코미디겠지.”
대자연의 힘은 무섭다.
물결이 덮치는 모습은 방금 오형포 만큼이나 막강해 보였다.
퀴이이잉!
그 사이 놈들의 이형포도 미친 듯이 배리어를 때렸다.
-음. 못 버티겠는데?
‘뭐?’
-이대로 두드려 맞으면 배리어도 도시도 둘 다 못 지켜. 밑에 인간들 포기하고 부상해야겠어.
‘야!’
이 자식이 자신만만하게 조종간 넘기라고 할 때는 언제고.
-30초. 딱 그만큼 버티면 끝장이야. 저 레이저 포라도 없다면 모르겠지만 무리야.
책임감 없는 새끼 같으니라고.
욕할 시간도 부족하다.
‘내가 위로 올라간다.’
-자살하러?
‘아니, 이 미친 기계 새끼야!’
그리고 세주의 모습이 사라졌다.
“형님?”
덩그러니 남은 셋이 사라진 세주를 보고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그의 몸이 배리어 바깥쪽에 쑥하고 올라온 걸 봤다.
“미친 놈.”
“와.”
인준이 욕설을 섞어 감탄사를 뱉고, 치용은 그저 감탄할 뿐이다.
절로 눈을 비빌 만큼 비이상적인 광경이었다.
“격추하죠.”
그 상황에서 유진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
“적기 격추해야 되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셋 앞에 홀로그램으로 조준점이 떠오른다.
오형포는 충전에 시간이 필요하다.
필요한 건 정확한 사격과 요격이다.
인준이 유진의 말을 듣고 입을 연다.
“일형포 준비.”
단발사격 밖에 안 되지만 위력은 훌륭하다.
그들의 눈에 해일 너머 파리 떼 같은 것들이 보였다.
이 함선보다는 작지만 작은 기체 오백 개가 넘는다.
그들에게 이형포를 날리는 놈들이었다.
*
인간의 말은 재밌다.
호랑이도 토끼를 잡을 때 최선을 다한다고 했던가?
울트라는 그 말에 충실했다.
소형 전투기 오백 척.
그가 준비한 카드다.
갑자기 맞은 오형포에 놀랐다.
하지만 기절할 정도로 놀라지는 않았다.
마스이라는 멍청한 상관이 함선을 놓고 온 순간부터 이 일도 예상 범위 안이다.
‘어떻게 탈취했을까?’
함선의 주인을 바꾸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하나는 시스템을 조작해서 함장을 변경하는 것.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어느 정도 함선에 숙달됐다면, 그리고 특별히 락이 걸려 있지 않다면 손쉽다.
우주 해적들이 돌아다니며 함선을 탈취하는 방법의 하나기도 하고.
두 번째 방법이라면, 엔지니어의 존재다.
함선을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가능하다.
시스템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다.
구조를 바꿔서 해킹한다.
하지만 지구라는 곳의 인간은 우주 전체를 통틀어 기술력이 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미비하다.
최근 우주 해적 습격에 살아남으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고 해도.
‘함선 엔지니어는 무리지.’
그렇다면?
세 번째 방법도 있다.
동력 자체를 변경해서 함선을 힘으로 찍어 눌러 자신의 것으로 하는 것.
‘은하 먼지가 비웃을 소리다.’
그런 게 가능한 놈이라면 왜 여기서 이렇게 미적대고 있을까?
나서서 싸우면 끝나는걸.
동력원을 갈아치우려면, 적어도 5계급 전투원은 된다는 소리다.
자신과 같은 8계급 전투원 오십이 덤벼도 못 이기는 강력한 무력을 갖췄다는 소린데.
울트라는 손을 빠르게 쥐었다 폈다.
혼자 실소를 흘리는 거다.
자신이 생각해도 웃기는 소리다.
울트라는 바다 깊은 곳, 꿈틀거리는 자신의 ‘몸’에 명령을 내렸다.
전투기 오백 척과 자신의 본신 능력까지 선보일 참이다.
가르간이 노리든 말든, 자신은 명령을 이행할 뿐이다.
오늘로 지구는 끝이다.
인간은 전부 노예로 삼고, 드넓게 펼쳐진 바닷물은 에너지로 바꿀 것이다.
사는 생물 하나하나를 개조해 전투 종으로 바꾸는 건 덤이다.
지금 눈앞에 함선이 적에게 나포된 건, 지루함을 달래 줄 이레귤러 정도다.
울트라는 날카롭게 손톱을 들어 목을 긁었다.
드드득. 드드득.
두꺼운 섬유 줄기로 이뤄진 목이다.
이전 개조에서 뭘 실수했는지 툭하면 목을 긁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여기를 팔아서 다시 개조해야겠다.’
고 순도의 노블 에너지를 가진 유기체를 팔면 꽤 높은 급의 포인트를 얻을 수 있을 거다.
그걸로 몸을 다시 개조한다.
그럼.
“트레이.”
옆에서 자신의 함선을 뺏기고 망연자실하게 렌즈 네 개를 깜빡이는 마스이 놈보다 급수가 높아질지도 모른다.
그러면 인간에게 배운 위계질서란 것을 제대로 써볼 참이다.
“트레.”
전 함선 공격이란 뜻의 말을 남긴 울트라다.
그리고 여유 있게 함선에서 밖을 지켜봤다.
그들의 함선은 구형이지만 물이 곧 에너지로 치환되는 종류의 함선이기에 지구 침공에는 적격이었다.
울트라의 함선과 달리 에너지 플랜트가 있어, 에너지를 자체 생산하는 신형 우주선은 뺏겼다.
마스이가 뺏긴 거다.
저걸 다시 뺏으면 그럼 자신의 것이라고 우길 수도 있지 않을까?
별의별 생각이 오가는 가운데, 그 신형 우주선 위로 삐죽 솟은 인간이 보인다.
‘음?’
우주선 위 철퍼덕 주저앉는 인간이다.
무슨 짓인지.
해일과 레이저 포 소나기 속, 인간의 육신은 너무도 허약해 보였다.
울트라는 적의 이상 행동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자살을 기도하는 놈이다.
신경 쓸 가치가 없었다.
*
촤악!
육각형 패널 막이 높게 솟는다.
그게 담이 되어 바다의 신이 분노라도 한 것 같은 해일을 막는다.
촤아악! 콰아아아아아!
완벽하게 막으면 압력 덕에 터진다.
그래서 중간 중간 틈을 만든 곳으로 물살이 넘어왔다.
소금물을 흠뻑 뒤집어 쓴 세주는 머리를 털었다.
‘샴푸 광고 모델 같지 않았냐?’
-아니, 비에 젖은 개새, 강아지 같은 걸?
쌍놈의 기계 새끼.
입에 들어간 물이 짜다.
요리가 서툰 과거 애인이 떠올랐다.
그녀가 해준 된장국이 떠오를 정도로 짜다.
멀티 테스킹 능력이야말로 자신의 특기라는 듯, 함선을 조종하면서도 프로비던스는 세주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자살할 건 아니지?
‘넌 아직 형을 모르냐?’
-응.
숨도 쉬지 않고 답을 하는 놈을 보니, 얄미운 걸 넘어서 밉다.
철컥.
벼락의 부품 일부는 강철이다.
바닷물에 부식될 것 같다.
나중에 손수 기름도 바르고 수리도 해줄 거다.
프로비던스가.
이런 잡일을 하려고 몸에 기생하는 놈을 놔두는 거다.
본래 남의 집에 살면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법이니.
궁둥이를 함선에 붙이고 발목 부근 근처, 함선 겉면을 손으로 잡고 당겼다.
쭈욱.
놀랍게도 함선 외벽이 엿가락처럼 늘어났다.
실제로 함선 외벽이 움직인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외계인의 탈 것에는 ‘섬유 배리어’ 라는 기술이 도입되어 있다.
배리어의 힘이 깃든 실로 짠 옷감 같은 거다.
그걸 토대로 세주와 부대원도 아머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 함선의 배리어 형태도 비슷한 종류다.
이번 형태는 젤리라는 것일 뿐.
그걸 늘려 발목을 묶은 거다.
그리고 다시 쭈욱 잡아당겨서 허벅지와 허리를 감아서 몸을 고정했다.
몸을 흔들어봤다.
턱!
흔들리지 않도록 확실하게 잡아준다.
파도가 치고 머리 위로 광선이 춤을 추는 곳이지만, 여유가 넘친다.
-뭔 짓을 하려는지 전혀 모르겠다.
‘구경이나 해.’
후.
촤악!
다시 물살이 쏟아진다.
하지만 어느새 펼친 배리어에 물살이 막혔다.
둥근 원처럼 세주를 감싼 배리어다.
벼락을 들고 왼손을 펼친 세주다.
그 위로 프로비던스는 광탄 카트리지를 쏟아냈다.
인벤토리에 가득 싣고 온 것 중 하나, 벼락 전용 탄창이다.
쿡! 쿡! 쿡!
총 스물다섯 개.
함선 외벽, 젤라틴 성질이 된 곳에 억지로 꽂아둔다.
그리고 세주는 벼락을 들었다.
두두둥!
레이저 포가 축포처럼 하늘을 가르고, 그 아래로 물결이 친다.
이걸 보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
신이라는 존재가 정말 화가 나서 화풀이를 한다면 이렇게 될까?
예를 들어, 일주일을 기다려서 받은 택배가 사실 빈 상자였다거나.
‘아, 정말 성질나겠다.’
-무슨 소리야?
‘아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것보다 더 화가 날 일이 있을까?
갑자기 인터넷이 끊기고 데이터 통신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 된 채, 원룸에 갇혀 있는 것?
그것도 지옥이다.
가끔 글을 쓰는 사람들이 ‘통조림’이라고 해서 그런 상황을 만든다고 하지만.
‘딱 질색이지.’
인간은 즐기기 위해 사는 거다.
-아까부터 왜 이래? 미쳤어?
‘미치긴 진즉에 미쳤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이런 세상에서 멀쩡한 정신을 가진 놈이 어디 있을까?
농담 따먹기로 그 긴장감을 숨기고, 아픔을 숨긴다고 해도.
죽은 이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시발, 개 같은 새끼들.
그래서 저 자식들이 밉다.
왜 자꾸 가만히 있는데 쳐들어와서 난장을 피우는 건지 모르겠다.
철컥.
광탄 탄창, 푸른빛이 번쩍이는 카트리지를 벼락에 끼운다.
그리고 앉은 자세 그대로, 총구를 들었다.
팟.
그리고 배리어를 해제한다.
둥.
한 발.
두두두둥!
그리고 연사다.
벼락의 총구가 미친 듯이 광선포를 뿜어낸다.
그리고 세주가 한 짓을 본 프로비던스는 말을 잃었다.
-…미친 짓이야.
하지만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프로비던스는 생각했다.
자신의 인공지능은 인간의 한계를 명확하게 규정한다.
그러므로 반세주는 자신이 생각하는 범위 내에서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세주는 프로비던스가 상정한 인간의 한계라는 선을 무너뜨린다.
처음이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사격 실력, 거기에 에너지 컨트롤 능력까지.
그리고 지금, 이 인간은 또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다.
둥!
그의 벼락에서 뿜어져 나간 레이저 포는 적기를 격추하지 않았다.
그들이 쏘는 레이저 포, 같은 광자포다.
그걸 중간에 맞춰서 궤도를 틀어버린다.
그게 끝이 아니다.
다연발 이형포가 꺾여서 적의 레이저포가 적의 전투기를 격추한다.
펑!
눈앞에 한 놈이 구멍이 나서 떨어진다.
배리어가 깨진 놈이다.
“후우.”
팟.
광선포를 맞추면서 배리어를 다시 켜고 끈다.
고작 콤마 몇 초 단위로 하는 묘기다.
두둥!
세주를 향한 적의 레이저 포가 무력하게 배리어에 맞고 소멸된다.
배리어를 순식간에 거두고 다시 생성하는 것도 인간의 영역은 넘어서는 묘기지만.
레이저 포를 맞춰서 궤도를 비트는 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어떻게 해서 그게 가능한 것인가?
프로비던스 자신이라면 가능하다.
모든 걸 계산해내는 자신의 지능이라면 이런 일 따위야.
그래, 세주가 흉몽 모드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모드 형태는 고작 에임 모드다.
프로비던스는 생각을 포기했다.
-잘 싸우네.
결과만 보기로 했다.
원인을 따지면 답이 없다.
대신 이 기회를 잡는 거다.
프로비던스가 함선을 조작한다.
-배리어 전면 발사.
에너지를 꾸역꾸역 모은다.
일형포를 쏘려던 이들의 에너지도 몽땅 가져온다.
그리고 배리어를 앞으로 밀어낸다.
해일이라도 없애야 한다.
이 악조건을 없애는 게, 지금 프로비던스가 할 일이었다.
전투는 반세주 혼자서 다 맡는다.
그와 벼락 한 자루가 적 함선과 전투기를 감당할 수 있는 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