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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병사 반세주-112화 (112/206)

#  112

112. 개자식 호

연기가 걷힌다.

세주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긴장한다.

비트레이어 급 부대를 다루는 지휘관.

최소 조두 이상의 강력함이다.

가르간만큼 강하다면 여기서 넷 중 누군가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이었다.

세주는 놈을 찾았다.

인준은 레이저 포를 언제든 발사할 수 있도록 사출 버튼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유진은 배리어를 유지한 채 집중했다.

치용도 도끼를 양손에 쥐고 언제라도 튀어나갈 준비를 하는 중이다.

그렇게 3분을 대치했다.

공격도, 비명도, 목소리도 없다.

“배리어 풀어 봐.”

세주가 말했다.

유진이 순순히 배리어를 해제했다.

치용이 앞으로 걸어 주변을 둘러 봤다.

처음에 봤던 놈이 온데 간데 보이지 않는다.

치용이 입을 열었다.

“…쨌네?”

설마,

튀었을 라고.

세주는 믿을 수 없었다.

이제까지 어떤 외계인 놈과 싸우면서도 도망가는 놈을 본 적이 없다.

“방심은 금물이다.”

이럴 때 부대원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것이야말로 참된 지휘관이다.

“진짜 없는데.”

“와, 정말 튀었나 봐요.”

인준과 유진이 번갈아 말한다.

‘진짜야?’

프로비던스에게 물었다.

퓨슝!

그 순간, 뚫린 구멍 바깥으로 소형 비행체 하나가 날아간다.

-응. 진짜네. 저기에 아까 그놈 타고 있어.

“…어이가 없네.”

황당했다.

튀었다.

처음 겪는 일에 세주도 잠시 뇌가 제 할 일을 하지 못했다.

맥없이 도망가는 놈을 놓친 순간이다.

벼락을 들고 격추할 생각도 하지 못 했다.

우우웅.

비행체가 날아가고 다들 그걸 멍하니 본 순간, 함선이 기우뚱 옆으로 기울어진다.

-수평, 부유 시스템 손상.

손 빠른 프로비던스가 어느새 함선 중앙 위로 올라갔다.

‘무슨 소리야?’

세주가 되묻자, 프로비던스가 심플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추락 중.

쿠우우우.

그리고 함선이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순간 발이 붕 뜰 정도다.

내장과 몸이 분리되는 감각과 함께 무게가 한쪽으로 쏠렸다.

원반 형태의 함선이 옆으로 누워버렸는지 죽인 시신들도 한쪽으로 쏠린다.

“아무거나 잡아!”

세주가 외쳤다.

치용이 벽에 손가락을 박는다.

그걸 본 둘도 따라하며 버텼다.

세주는 공중에서 밸런스를 잡고 떨어지는 비행기의 바닥을 찼다.

그리고 위로 치솟았다.

‘어떻게 좀 해 봐.’

-내 손을 떠났어.

빌어먹을 기계 새끼가 포기도 빠르다.

소형 아파트 크기의 함선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이대로 떨어진다면 재앙이나 다름없다.

퉁! 퉁!

발로 벽을 박차고 위를 향했다.

프로비던스가 있는 곳이다.

드드드드드!

함선 전체가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탈출하자!”

밑에서 인준이 외쳤다.

셋은 미리 내보낼까?

“먼저 가!”

“형님은요?”

유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답도 하기 전에 치용이 외친다.

“의리하면 치용입니다!”

같이 가지 않으면 안 가겠다는 소리다.

미련한 놈들.

프로비던스가 있는 곳에 오른 세주가 한 손으로 삐죽 솟은 파이프를 잡았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을 안 해. 탈출해야 될 것 같은데?

‘이게 저 위로 떨어지면 쉘터고 뭐고 반경 안에 있는 사람은 다 죽어.’

-나도 억울하긴 한데, 이대로 이거 함선 꿀꺽 할 수 있을 줄 알았단 말이지.

태평하게 말하는 프로비던스의 멱살을 쥐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있어야 하는 거다.

세주는 몸을 바로 세우고 조종간이라고 생각되는 곳을 봤다.

당연히, 하나도 알 수 없다.

수백 개의 패널이 깜빡인다.

패널 위쪽 화면에 바깥 풍경이 보였다.

어떻게 만든 건지 마치 깨끗한 유리창 너머를 보는 것 같다.

그 깨끗한 유리창 너머, 이 사태를 하나도 모르는 도심지가 보인다.

서울 외곽이라고 해도 이게 떨어지면, 피해는 상상도 하기 싫어진다.

죽는 사람은 몇 일까?

천? 만?

‘흉몽 모드로 밖에서 떠받치자.’

슈퍼맨 영화에서 봤다.

떨어지는 여객기를 양손으로 떠받치는 타이즈 입은 남자의 괴력을.

세주도 얼추 가능할 것 같았다.

-불가. 영화 좀 그만 봐. 그냥 같이 납작 쿵이 될 뿐이야.

프로비던스도 노는 건 아니었다.

나름 기계 이곳저곳을 건드리고 있었다.

점점 속도가 붙고 있었다.

세주도 급한 마음에 패널 중 아무거나 손을 갖다 댔다.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이 갖다 버리려고 해도 재활용도 안 되는 기계야! 해결책을 내 놓으라고!’

세주가 할 일은 하나 밖에 없었다.

프로비던스를 열심히 쪼는 수뿐이다.

-…손 놓고 도망가 버릴까보다. 탈출 할 생각 없어?

‘없어!’

-내 명령이 안 먹혀. 노블 에너지는 각자 고유 파장을 가지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 파장이 맞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라고 봐.

긴 설명을 들을 여유는 없다.

쿠우우우우!

몸이 점점 밀려 올라간다.

그만큼 추락하는 속도도 빨라진다는 소리다.

아니, 이런 기술력을 갖고 있으면 가만히 놔둬도 하늘에 둥둥 떠다니게 만들어야 되는 거 아냐?

-동력원을 바꾸자.

동력?

이게 뭐로 움직일까?

적어도 휘발유나 등유는 아닐 것 같다.

-에너지를 갖다 부어서 명령 체계를 재수립하는 거야. 내가 설명한다고 들을 거 아니지?

‘간단명료하게 내가 할 일이나 말해!’

프로비던스도 언젠가 군대에 입대 시킬 거다.

육하원칙에 맞춰서 빠르게 말을 전달하는 법을 익히게 만들고야 말 것이다.

-동력, 그건 즉 에너지. 갖다 부어.

위잉.

프로비던스의 말과 함께다.

퉁!

앞에 둥근 원통이 튀어 나온다.

딱 손을 넣기 좋게 생겼다.

고민할 겨를도 없다.

파이프를 쥐던 손을 놓고 양손을 밀어 넣었다.

밑에서 유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 이제 나가야 될 것 같은데요!”

구멍을 보며 유진이 외친다.

인준과 치용도 같은 생각일 거다.

탈출하면 안전하겠지만.

그 대신 죽인 사람 숫자가 양손, 발가락을 다 합쳐도 못 셀 만큼 생길 거다.

더구나, 이게 추락하는 이유는.

-다 형 업보야. 내가 그 레이퍼 포 작작 쏘랬지.

여기서 전투를 벌인 탓이다.

젠장이다.

그러니까, 자기 집 앞마당에서 싸우는 건 별로다.

피해가 그 앞마당에 남으니까.

손을 원통에 집어넣었다.

차자작!

피부 위로 부드러운 천 같은 게 감싼다.

질겼고, 탄탄한 느낌이 들었다.

-에너지 주입해.

세주는 눈을 감고 집중했다.

프로비던스와 했던 훈련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우우웅!

동시에 노블 패스를 타고 도도하게 흐르는 에너지가 기계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

“이대로 죽는다는 생각은 안 해요?”

“글쎄다.”

인준의 대답에 유진이 웃음이 나올 뻔 했다.

“의리하면 김치용! 절대 혼자 두고는 못 간다.”

치용이 위에 달라붙어 입을 연다.

“그래도 명령이라면 가야겠죠?”

“남자에게 명령이란 건, 따를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는 거다.”

인준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아까 로프에 매달려 올라갈 때도 그렇고, 인준의 표정이 좋진 않다.

“형, 혹시 높은 곳 싫어해요?”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

고소공포증이 있구나.

“허약한 놈.”

“닥쳐라. 뇌에 근육 밖에 없는 놈.”

“칭찬이냐?”

아뇨. 치용이 형.

그거 욕입니다.

둘의 말싸움은 길지 않았다.

상황이 한가롭게 입이 털만큼 여유롭지는 않으니까.

콰우우우!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했던가?

점점 몸이 밀린다.

벽에 박은 손가락에 힘을 줬다.

이대로 죽으면 얼마나 우스울까?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마지막 순간이 되면 탈출 할 거다. 맥없이 죽을 생각은 없어.”

가끔 인준의 말투는 면도날보다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든다.

마치 마음을 읽은 것처럼 행동하는 그다.

“네. 당연히 그래야죠.”

여기서 개죽음이라니.

완전 사양이다.

팟.

그 순간이다.

갑자기 우주선 전체에 분위기가 변했다.

아니, 주변이 어두워지더니 벽과 바닥 할 것 없이 바깥 풍경을 비춘다.

동시에 벽에 박은 손가락이 늪에 빠진 것처럼 천천히 벽을 파고 들어간다.

눈을 깜빡이지 않아도 헛것이 아닌 걸 알 수 있었다.

‘부술까?’

고민하는 사이다.

“크히힛. 간지러!”

치용은 반항하지 않았다.

저 본능만 남은 곰탱이이자, 형님으로 모시는 사람은 위험을 감지하는 감각은 탁월하니, 지금 상황에 위기감을 못 느낀다는 소리다.

괜찮다는 건가?

그래도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는 건 인간이 가진 감정 중 하나다.

밀어내고 손을 뽑으려 했다.

“괜찮아.”

세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크게 들린 건 아니었다.

마치 바로 귀 옆에 대고 말하는 것 같다.

위를 올려다봤다.

세주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기체는 아직도 드드드드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추락 중이다.

귀신에 홀린 것처럼 위를 보자 인준이 묻는다.

“너도 들었냐?”

“…네.”

그렇다면 진짜 세주가 말했다는 거다.

둘의 손과 반신이 그대로 쑥하고 벽에 빨려 들어간다.

치용은 아예 적극적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끔찍한 느낌이 들 것 같았지만 의외로 포근했다.

동시에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더니 감각이 돌아왔다.

“흡!”

높은 곳을 싫어한다는 인준의 목소리다.

그가 밑을 보고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이상한 감각이다.

추락하고 있고 바로 밑에 도심 풍경이 보이는 데 전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우웅.

유진은 금세 깨달았다.

추락이 멈췄다.

그리고 우주선이 평행을 이루며 도도하게 떠오른다.

눈으로 볼 수 없는데도 주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감각 공유라는 거다.”

그들의 앞.

세주가 둥실 떠오르며 나타났다.

“휴. 진땀 뺏네.”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감각 공유?

놀랍도록 센스가 좋은 유진은 곧 바로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 깨달았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찾는 것.

이게 유진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일지도 몰랐다.

이 우주선, 세주를 필두로 넷이 조종할 수 있었다.

“…에에?”

그 사실에 놀란 유진이 이상한 소리를 뱉으며 세주를 봤다.

세주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센스 좋네. 우리 하이재킹 성공했다.”

하이재킹은 비행기 강탈이고.

지금은 우주선을 뺏었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마땅한 단어 따위는 생각나지 않았다.

*

에너지를 갖다 붓는 걸로 해결이 안 된다.

세주는 전심전력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추락하는 비행기는 멈추지 않았다.

-이대로는 실패야. 3분, 남은 시간 안에 탈출해.

프로비던스가 사형 선고를 내렸다.

3분, 세주는 선택해야 했다.

주도권을 뺏기 위해 동력을 갈아치우는 일이다.

그렇다면 더 짙고 농도가 진한 걸 선물해야 하는 거다.

우우우웅.

노블 패스가 요동쳤다.

-…지금 뭐해?

뭐하긴,

반세주 스페셜이다.

왜 자신의 노블 에너지는 옅은 푸른빛인가?

풀 업이든, 번 업이든.

전부 옅은 푸른빛을 보일 뿐이다.

노블 에너지의 농도를 진하게 해야 가르간을 상대할 수 있다.

그래서 낸 해결책이다.

중첩.

흐르는 에너지 위에 다시 에너지를 덧씌운다.

‘가진 건 전부 에너지 스위처로 돌려.’

일반 에너지를 전부 노블 에너지로 치환하고 다시 때려 붓는다.

양도는 프로그래밍이다.

미리 입력한 대로 에너지를 컨트롤 할 수 있다.

프로비던스조차 감탄을 토하게 만드는 에너지 컨트롤 능력과 더불어 세주는 양도를 사용했다.

흩어지지 말고 겹쳐라.

단순한 명령에 노블 에너지가 뭉치고 또 뭉친다.

옅은 푸른빛이 점점 짙어진다.

끼이이이잉.

손에 넣은 원통이 에너지를 받아들이며 기음을 토했다.

프로비던스만큼이나 시끄러운 놈이다.

푸른빛이 점점 짙어진다.

-남은 시간 1분 40초.

남은 에너지를 폭발 시키듯 부었다.

손에 깃든 빛이 남색으로 빛났다.

쑤욱.

모인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듦과 동시다.

-제어권 확보, 평행 시스템 확보, 부상 시스템 조정.

프로비던스가 할 일을 한다.

동시에 이 함선을 움직이는 법을 알 수 있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당연한 일이다.

조종간을 잡고 배우는 형태가 아니다.

이건 몸과 함선이 동화되는 거다.

쿠우우.

동시에 벽에 손을 박은 셋의 모습이 떠올랐다.

홀로그램 형태의 셋 옆에 문자가 떠오른다.

프로비던스가 물었다.

-저 셋, 함선의 승무원으로 받아들일 거냐고 묻는데?

물어 뭐하냐?

셋의 몸이 벽에 빨려들고 세주는 함선을 띄웠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습득’한 방법으로 셋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자, 다루는 법은 안 알려줘도 알지?”

승무원이 된 셋도 마찬가지였다.

유진이 예민해서 가장 먼저 깨달았지만.

둘도 마찬가지다.

“끄으으.”

치용이 신음을 흘리더니 세주를 바라본다.

“짜릿합니다요.”

그리고 입을 열어 말했다.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이름 추천 받는다.”

매일 프로비던스에게 작명 센스로 욕을 먹은 나날들이 스쳐간다.

마침 우주선이 생긴, 참 멋들어진 이름은 필수다.

“강도 호.”

인준이 말했다.

그를 쳐다보다 어깨를 으쓱한다.

“뺏은 거니까. 강도 호.”

단순 무식한 새끼! 작명 센스라고는 쥐뿔도 없는 놈!

“엔터프라이즈.”

유진이 눈을 빛내며 말한다.

이런 미친 녀석이.

“그건 안 돼!”

“아, 왜요?”

안 돼. 임마. 하고 싶어도 못 쓰는 마법의 단어야.

“형님.”

치용이 신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개자식 호 어떻습니까?”

이 새끼, 진짜 날 잡아서 신나게 한 번 매타작을 할까?

“오, 반세주 개자식의 개자식?”

“괜찮은데요.”

역시 안 돼.

‘봐라? 그나마 내가 제일 낫지.’

-어련하시겠어.

“다 탈락.”

좌중을 둘러보고 세주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지금부터 복수를 하러가는 길이니까, 복수 호다.”

우우.

인준까지 포함해서 셋이 전부 야유를 퍼부었다.

“이것들이.”

“다수결로 하자.”

인준이 입을 연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세주가 급히 그를 말렸지만 치용이 옆에서 번쩍 손을 들며 말했다.

“개자식 호 손!”

하, 나 참.

셋 옆에 프로비던스가 만든 작은 소년 형상의 홀로그램이 손을 들고 있다.

-그나마 제일 나아.

이런 어처구니없는 자식들이.

“개자식 호 출발!”

말릴 겨를도 없었다.

움직이는 요령을 안 유진이 함선 엔진에 발동을 건다.

“야!”

“형님, 지금 동해 쪽은 사람이 죽어나갑니다. 여기서 왈가왈부 할 시간이 없습니다.”

김치용, 이럴 때만 진지하게 말하지 마라.

그래. 시간이 없다.

어쩔 수 없지.

“휴, 개자식 호, 출발.”

힘이 쪽 빠진 목소리와 함께다.

슈우우웅.

함선이 무서운 속도로 허공을 가로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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