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110. 지겹지도 않나
[가르간]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가르간은 고개를 돌렸다.
전면, 홀로그램이 어두운 로브를 뒤집어 쓴 놈을 보여줬다.
[무슨 생각이냐?]
가르간의 물음에 화면 너머의 놈이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한다.
인간 식으로 치면 상대를 비웃고 있는 거다.
[지구, 내가 먹으마]
가르간은 상대를 비웃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가르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 봐라]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다.
홀로그램 너머의 상대는 당황한 기색을 비추는 대신 한 마디만을 남겼다.
[물리기 없다]
퓻.
그리고 화면이 꺼진다.
가르간은 양손을 쥐었다 폈다.
인간 식으로 하면 크게 웃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안 그래도 어떻게 해야 저 지구의 인간들에게 노블 에너지를 많이 축적시키고 전력을 키울까 고민하던 중이다.
식민지 행성에 압박을 넣을까 고민하던 참에 나서주는 놈이 있으니.
꿩 먹고 알 먹기다.
*
웨에엥!
하늘을 뒤덮는 놈들이다.
날개가 달린 놈들이라, 움직임이 입체적이다.
세주는 놈들을 보자마자 풀업을 했다.
웅!
그와 동시다.
벌레의 얼굴까지 보이지는 않지만, 벌레 떼들이 삼일 밤낮을 굶은 강아지처럼 달려든다.
퉁.
바닥을 박찬 세주를 향해 곡예 비행하듯 놈들이 따라 붙었다.
바로 옆, 건물 벽을 박차고 다른 건물 위로 올라간다.
-에너지에 반응한다.
프로비던스가 바로 현상을 파악해 결과를 내놓는다.
유인이 너무 쉬울 정도다.
퍼버벅!
놈들이 한 뭉치가 돼서 세주가 있던 자리를 친다.
하지만 이미 피한 뒤다.
밑에서 치용과 인준, 유진이 달려오려는 걸 보고 귀 밑에 붙여 둔 통신기를 눌렀다.
“전부 빠져. 특히 풀업은 절대 하지 마.”
유인이 가능한 놈들이라면.
쉽다.
팍.
바닥에 내려선 세주가 힘을 끌어올린다.
화륵.
번업이다.
바닥의 검은 얼룩처럼 보이던 놈들도 세주를 쫓는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놈들도 함께다.
‘놈들 노블 에너지에 반응하는 거지?’
-응.
번 업 상태다.
놈들이 달려든다 해도, 상관없다.
가까이 다가온 바닥을 기는 검은 얼룩, 놈들을 발로 찍었다.
쾅!
바닥이 부서지며 놈들이 바스라져 죽는다.
그 사이 몇 놈이 타오르는 푸른빛에 달려든다.
그리고 몇 초 이내에 몸이 쑥쑥 커진다.
손톱보다 작았던 놈이 단숨에 손가락만 해진다.
‘이것 봐라?’
-피해. 놈들 에너지를 먹는다.
게걸스럽게도 처먹는다.
작은 주체에 레이퍼 만큼이나 단단하고 에너지를 먹는 놈들이다.
금세 손가락 만해진 놈을 향해 손가락을 튕겨 때렸다.
퍽!
그대로 터져 죽는다.
붙은 놈들을 떨구고 밟아 죽인 뒤다.
세주의 바로 뒤, 날개달린 놈들이 달려든다.
훅.
순간 세주의 모습이 사라졌다.
오버페이스 모드다.
잔상이 남은 곳을 놈들이 맥없이 스쳐갔다.
‘배리어 구슬 대용량.’
손을 들어 말하자 프로비던스가 손에 커다란 구슬을 만든다.
세주가 그걸 들어 하늘 높이 던졌다.
우웅!
곧 세주와 벌레 놈들을 감싼, 배리어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안에 접착 폭탄을 꺼내 바닥에 던진다.
터지라고 던지는 게 아니다.
만드는 족족 바닥에 쌓는 거다.
웽!
달려드는 놈들을 피하면서 묘기 같은 움직임이다.
그걸 지켜보는 박민우다.
교관이었던 셋에게 달려갔다.
“괜찮은 겁니까?”
배리어를 저렇게 만들면 스스로를 가두는 꼴이다.
“누굴 걱정하는 거냐?”
인준이 핀잔을 줬다.
“괜찮아.”
유진이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저 정도로 죽을 리가 없지.”
치용이 말하는 걸 본 민우도 걱정을 접었다.
생각해보니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냐?
꽈과광!
곧 배리어에서 엄청난 폭음이 터졌다.
“…정말 괜찮은 겁니까?”
아무리 반세주라지만, 저런 폭발에서 괜찮을까?
“아마.”
“킁.”
인준과 치용이 번갈아가며 답한다.
이 둘 보다는 유진의 답이 듣고 싶은 박민우다.
“죽진 않았을 거야.”
배리에 막혀서 폭발의 여파가 없었다.
찌지직.
배리어가 천천히 찢어지더니 훅하고 연기가 밀려 나왔다.
“야, 가자.”
세주가 멀쩡하게 걸어 나온다.
역시 괜한 걱정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돌아설 참이었다.
하지만 세주의 뒤 검은 그림자가 일렁였다.
빠각.
이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뭔가 퍽하고 튀어 나온다.
텅!
그 순간 치용이 앞으로 달리고, 인준이 옆으로 움직이며 기관총을 든다.
유진은 정면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형! 뒤!”
짧은 순간이었다.
검은 그림자에서 뭔가 날아오고 세주가 뒤로 몸을 돌려 그 공격을 받아냈다.
펑!
폭음이 들리고 세주의 몸이 날아온다.
유진이 세주의 몸을 받고 뒤로 몸을 던졌다.
날아오는 힘에 둘이 바닥을 둘렀다.
그 틈에 바닥에 펑하고 무언가 날아와 박혔다.
‘저게 뭐야?’
박민우는 버릇처럼 엄폐한 곳을 찾고 바닥을 살폈다.
바닥에 기이하게 휘어 진 이상한 칼이 꽂혀 있다.
‘아니, 칼이라고 해야 되나?’
무언가 찌르고 베는 용도로 보이니 칼이 맞을 거다.
쓸데없는 생각도 잠시다.
꽝!
치용이 도끼로 검은 그림자를 내리 찍는다.
펑!
그리고 다시 폭음이 들리고 날아간 것만큼이나 빠르게 치용이 뒤로 물러났다.
휘릭.
하지만 세주처럼 나가떨어진 게 아니다.
공중에서 균형을 잡더니 텅하고 바닥에 착지 한다.
“크흐.”
신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흘린 치용이다.
그가 양손에 도끼를 쥔다.
붉고 푸른빛이 확하고 치솟는다.
박민우는 스캐너를 들어 검은 그림자를 향했다.
연기 속에서 나온 놈이 남은 배리어를 후려친다.
뻐버벙.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던 배리어가 부서져 흩어진다.
그리고 마침, 스캐너가 놈을 확인하고 등급을 표시한다.
붉은빛이 깜빡인다.
‘1급.’
비트레이어 급 이상의 괴물이다.
발견 즉시, 반세주 휘하 연합군에게 지원요청 후 민간인 대피 문제가 아니라면 즉각 후퇴다.
그리고 지원요청을 해야 할 세주가 옆에 널브러져 있다.
“아프네.”
바닥에 쓰러졌던 세주가 유진의 손을 잡고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그가 목을 우둑우둑 꺾더니 입을 열어 말했다.
“8점이다.”
*
“덤벼.”
세주의 말에 치용은 달려들었다.
그리고 사정없이 몰아쳤다.
때로는 도끼로, 때로는 주먹으로.
그 모든 공격을 막아낸 세주는 평가를 내렸다.
“3점.”
“4점.”
“2점.”
“빵점!”
뻑!
세주의 하이킥에 머리를 얻어맞은 치용이 휙 하고 벽으로 날아간다.
펑! 텅!
등을 제대로 부딪친 치용이 쿨럭하고 기침을 뱉었다.
“그게 왜 빵점입니까?”
“너, 말했지? 대가리 쓰라고.”
사납게 몰아치며 세주가 말했었다.
유진도 그 훈련을 경험했다.
그러니까 세주의 입에서 8점이 나왔다는 소리는.
맞으면 치명적인 일격이었다는 거다.
물론, ‘맞으면’ 이다.
“저거 비트레이어 급이다.”
말하며 일어나는 세주의 등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어떻게 막았어요?”
유진이 신기해서 물었다.
“이렇게.”
그러자 세주가 등 뒤를 보여준다.
웅.
등 부분에 푸른 원반이 생겼다.
평소에 보던 것보다 훨씬 짙은 푸른빛의 방패다.
“신기하네요.”
박민우가 말을 나누는 둘을 보고 급히 달려왔다.
“저거, 저거, 안 치웁니까?”
“아, 저거.”
치용이 미친 듯이 달려들며 싸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세주가 그 장면을 빤히 보다 답했다.
“괜찮아.”
1급, 비트레이어 급.
적어도 한 도시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급수.
그래서 나타나면 즉각 후퇴하라고 했던 게 바로 이 사람이다.
그런데 너무 태평하다.
“괜찮다고, 원래 이렇게 잔걱정 많은 타입이었어?”
절대로 아니다.
박민우는 대범한 남자다.
그는 과감한 작전을 즐기고 단숨에 점령하는 걸 좋아한다.
“겨우 이 정도에 꺾이게 키운 적 없다.”
세주가 말한다.
누가 누굴 키웠다는 건가?
싸우는 치용이 보였다.
퓻!
그의 어깨에 무언가 스치고 잔 상처가 생겼다.
적의 모습이 이제 명확히 보였다.
가재를 닮은 모습이다.
주먹 대신 날카로운 칼을 쏘아내는 팔과 더듬이 두 개가 달려 있었다.
치용이 막 도끼로 놈의 등을 내려쳤다.
쩡!
하지만 노블 에너지로 만든 무기로 흠집만 남고 끝이다.
“…도와야 할 것 같습니다.”
아슬아슬하다.
그래 보였다.
“이 자식이. 구경이나 해.”
세주가 그렇게 말하고 민우를 뒤로 잡아 당겼다.
콰우!
더듬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나온 레이저 포다.
그게 그가 있던 자리에 주먹보다 큰 구멍을 만들었다.
그걸 용케 피한 치용이 외쳤다.
“아파! 새끼야!”
진지함이라고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는 태도였다.
그리고 그 순간 치용이 공격 형태를 바꾼다.
그걸 본 순간 세주가 눈을 빛내며 읊조렸다.
“10점이다.”
*
훅.
속으로 호흡을 뱉고, 몸을 움직인다.
‘본능.’
왼쪽 볼이 따끔하다 싶은 순간 몸을 날렸다.
훙!
놈의 집게 같은 손이 허공을 찌른다.
아머를 입고 있으니 단숨에 꼬치처럼 꿰이진 않겠지만, 맞으면 그냥 아프다 정도는 아니겠다.
몸을 숙였다가 도끼를 위로 올려쳤다.
쩡! 카가가각!
놈은 그냥 맞았다.
일격에 자르려면 꽤 집중할 시간이 필요하다.
다시 자리를 옮긴다.
쾅!
근거리에서 레이저 포를 쏜다.
바닥에 큼직 막한 구멍이 뚫렸지만, 볼 겨를도 없다.
치용은 반대쪽 손의 도끼를 휘둘렀다.
쩡!
다시 놈이 등을 돌려 막는다.
더듬이를 잘라버리고 싶었다.
귀찮게 레이저 포를 쏴댄다.
휙휙.
다시 몸을 움직인다.
풀업 상태에서 어느새 번업 상태까지 왔다.
그게 아니면 피할 엄두도 내지 못 한다.
지금까지 본능으로 싸웠다.
세주의 채점대로라면 5점짜리 공격이 태반일 거다.
본능으로 안 되면 그 다음 필요한 건 이성이다.
놈을 함정에 빠뜨릴 단순한 패턴의 공격을 이었으니까.
콰웅!
어깨를 노린 레이저 포를 피했다.
그게 저 뒤, 세주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스친 레이저 포에 아머가 타고 안쪽까지 충격이 전해졌다.
꽤 아프다.
“아파! 새끼야!”
그리고 외침과 동시다.
철컥.
언제 꺼내들었는지, 샷건이 손에 들렸다.
놈은 얼마나 단단할까?
세주는 광탄의 위력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었다.
이게 만약, 비무장지대 전투에서 있었다면 우리는 비트레이어 놈을 만난 순간 놈을 죽였을 거라고.
꽝!
샷건의 방아쇠를 당긴다.
푸른 입자가 허공에 뿜어져 나와 놈을 덮쳤다.
퍼버버벅!
“끄에엑!”
놈이 기괴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죽진 않았다.
더듬이 두 개를 모아 치용을 향해 움직인다.
‘쳇.’
여기서 끝났으면 참 좋은 그림이었을 거다.
그게 아니라서 아쉽다.
두두두두두!
아까부터 타이밍만 재고 있던 원수 덩어리가 방아쇠를 당겼다.
퍼버버버벅!
놈의 전신에 구멍이 생긴다.
치용은 어느새 화력이 미치는 범위 밖으로 피했다.
인준이다.
1:1 대결이라니.
가장 멍청한 짓이라고 세주는 수없이 말했다.
우리는 전쟁 중이지 전쟁놀이를 하는 게 아니다.
인정하고 수긍했다.
그래서 틈을 만들었다.
숨긴 한 수다.
샷건을 들어서 놈에게 충격을 주고, 거리를 벌리고, 인준이 쏴 죽인다.
이미 손발을 몇 번 맞춰 본 둘이었다.
“후.”
숨을 내쉬고 놈을 보자, 파지직하며 더듬이 앞쪽에 스파크가 튄다.
전신에 뚫린 구멍을 샐 수도 없겠다.
그리고 놈의 몸이 앞으로 기운다.
쿵.
쓰러진 놈을 향해 머리를 걷어찼다.
“약해 빠진 자식이.”
치용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갑자기 위를 가리는 그림자에 고개를 들었다.
“지겹지도 않나.”
넓은 원반 형태의 비행체다.
그걸 본 세주가 어느새 다가와 중얼거린다.
철컥.
그리고 자신의 벼락을 든다.
꽝!
방아쇠를 당기자, 푸른 탄환이 허공을 가른다.
꽝!
폭음이 터지고, 비행체에 구멍이 뚫린다.
“크흐흐.”
언제 봐도 시원한 장면이다.
“온다.”
세주가 중얼거렸다.
머리 위, 더듬이 달린 놈들과 새로운 놈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이제 몸 풀렸슴다.”
치용이 중얼거리고 양손에 도끼를 든다.
“아머 중량 해제 해.”
“벌써 말입니까?”
“많잖아.”
세주가 말하자, 치용이 빙그레 웃었다.
“시원섭섭하네.”
그리고 아머를 조작한다.
전신에 무게를 가중하는 프로그램이 되어 있었다.
넷의 아머에는.
그리고 그 아머의 중량을 막 풀자.
몸이 절로 떠오르는 감각이 느껴졌다.
신이 난 치용이 함성을 질렀다.
“어흥!”
그걸 본 세주가 한숨을 내쉰다.
‘저거, 이제 반은 짐승이 된 것 같아.’
-아냐.
‘응?’
어쩐 일로 프로비던스가 세주 편을 든다.
-저건 원래 저랬어. 처음부터 똥개 같은 새끼였지. 사람 말을 하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지.
‘…말을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