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06화 (106/206)

#  106

106. 결렬

[접근하지 마라]

“뭐라는 거야?”

착, 탁! 찹!

테이블 위로 손 그림자가 생겨난다.

망토를 잡아 벗기려는 손과 그걸 막는 손이다.

[협상은 결렬인가?]

점점 말을 잘한다.

말 못 하는 척하더니.

강대총 대장과의 대화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보고 받았다.

그때는 분명 어눌한 말투였다.

즉 저 새끼, 지금 놀리고 있는 거다.

펑!

발로 테이블을 걷어찼다.

그러자 사절단이 모습을 감춘다.

“옷 벗으라고.”

[싫다]

이 자식, 놀부 고집이다.

쿵. 우지직.

날아간 테이블이 바닥에 떨어져 부서진다.

테이블이었던 나무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틈이다.

차차차착!

호위와 경계를 겸한 이들의 총구가 놈을 향한다.

“아무도 끼어들지 마.”

세주가 말했다.

나호필이 손을 들어 뒤로 물러나라고 신호를 보낸다.

당연한 일이다.

어차피 반세주가 상대가 안 되면 여기 모인 병력은 다 죽는다.

치용과 인준, 유진이 안으로 들어와 어느새 나호필의 곁에 섰다.

“흐음. 특이한 놈이네요.”

유진이 외계인을 향한 한 줄 평을 남겼다.

“쓸데없는 소리. 그냥 다 죽이면 되는 거야.”

인준이다.

얼굴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통 알 수 없다.

치용은 옆에서 콧김만 뿜고 있다.

“내 호위로 온 거면 나나 잘 지켜.”

“물론이죠.”

배시시 웃으며 유진이 답했다.

넷의 시선이 다시 세주와 외계인에게 향했다.

세주는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나빴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 때문인지도 몰랐다.

“벗어.”

[싫다]

눈앞에 있는 놈이 세상 뵈기 싫었다.

“그러다 맞아.”

[누가?]

하하하하하하.

넌 죽었다.

‘모드 온 인파이터.’

프로비던스가 없어도 모드는 쓸 수 있다.

에너지가 노블 패스를 타고 달려 전신으로 퍼진다.

훅, 화르륵!

단숨에 번 업 상태다.

퉁!

주먹이 허공을 가른다.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빗맞았다.

외계인 놈이 몸을 훌쩍 띄운다.

‘바보냐?’

몸을 허공에 띄우면 피할 수 없다.

놈이 떨어지는 곳으로 몸을 날린다.

그리고 그대로 오른발을 위로 쭉 올려 찼다.

텅!

어쭈?

놈은 타격을 입고도 아무렇지 않은지 옆으로 날아가 바닥에 내려섰다.

[죽고 싶나?]

“누가?”

세주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파바박!

다시 둘의 공방이 시작됐다.

주먹 두 방이 클린 히트로 들어갔지만, 놈에게 충격은 없어 보였다.

세주도 세 번의 위기가 있었다.

주먹인지 발인지 갑자기 허리쯤에서 치솟는 푸른빛이었다.

첫 번째 공격은 피하지 못해 오른쪽 광대를 얻어맞았다.

하지만 번 업과 인파이터 모드의 중갑 스킬 덕에 충격은 크지 않았다.

모공으로 뿜어져 나온 노블 에너지가 은은한 방어막을 만드는 스킬인 중갑은 근접전에서 꽤 유용했다.

그리고 두 번은 육감 스킬로 피했다.

초근접전에서 인파이터 모드의 스킬 두 개는 사기에 가까웠다.

팍! 팍!

다시 놈과 두어 번 부딪친 세주가 뒤로 물러났다.

[가르간]

“뭐?”

[이름이다]

세주가 픽 웃고 답했다.

“반세주.”

[죽게 된다면 가르간이 죽였다고 해라]

“응. 니 똥이다.”

둘 사이에 불꽃이 튀는 것 같은 기세가 올라온다.

다시 달려들려는 참이다.

-형은 무슨 싸우지 못해서 안달 났어?

‘응?’

-눈만 떴다 하면 싸우고 있냐.

“잠깐 타임.”

세주가 손을 들었다.

그리고 속으로 숫자를 셌다.

너무 흥분하면 안 된다.

차분하게 기다린 티를 내지 않고 답을 하자.

‘이런 염병할 기계 새끼, 고물상에 가져가도 쇠 값도 못 받을 쓰레기 같은 로봇. 고장 난 전자레인지보다 못한 새끼.’

잘 참았다. 숨이 찰 정도로 욕을 해주고 싶을 정돈데 이쯤에서 멈췄다.

대단하다. 반세주!

장하다. 반세주!

-…반갑다는 인사를 이렇게 하는 인간은 정말 70억 인구 중에 형이 유일할 거야.

욕은 나중에 해도 된다.

‘저거 외계인 사절단이다.’

-응. 그렇구나.

‘근데 저 자식 속이 시커메 보이지 않냐?’

-그렇게 보여.

‘그렇지?’

-망토를 두르고 있으니까 안이 검게 보이네. 거기에 내 스캐닝 시스템이 안 먹히고.

‘…업그레이드된 거 아니냐?’

어째 전보다 못난 놈이 돼서 온 것 같다.

-됐지.

[겁먹었나?]

다른 건 모르겠지만, 도발은 확실히 할 줄 아는 놈이다.

“응. 아주 네가 무서워 죽겠다.”

‘스캐닝 해.’

팡!

다시 어울리는 둘이다.

-으흠.

그리고 둘의 싸움을 그 위에서 지켜보는 프로비던스다.

세주는 주먹을 휘두르며 전과 다르게 기분이 상쾌함을 느꼈다.

역시 사람은 운동을 해야 한다.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니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

절대 프로비던스가 돌아와 안심한 게 아니었다.

‘절대 아냐.’

-또 뭐가?

‘…그런 게 있어.’

퉁!

거리를 벌린 세주가 손을 저었다.

“관두자.”

애초에 서로 죽일 생각도 없다.

어디까지나 실력을 알아보는 정도다.

덕분에 세주는 기준을 정확히 세울 수 있었다.

‘비트레이어 급 이상이다.’

거기에 원하는 것도 얻어냈고.

스아악.

망토의 가운데다.

육각 패널 모양의 배리어가 쩌적 깨진다.

동시에 망토가 중간부터 잘렸다.

놈이 찢어진 망토를 벗었다.

-음.

프로비던스가 신음을 흘린다.

세주는 놀랐지만, 표정은 그대로다.

익숙한 모습이다.

회백색의 주름진 피부.

그리고 푸른 타원형의 눈이다.

코와 입은 보이지 않았다.

개구리 앞발을 닮은 손가락과 손등 위로 두툼한 장치가 달려 있다.

안에 입은 건, 흰빛의 천위로 황금빛 자수가 새겨진 옷이다.

여름 햇빛에 옷의 자수가 반짝였다.

[만족하나?]

“어느 정도는.”

-…형. 덤비면 안 돼.

스캐닝이 끝난 프로비던스가 말했다.

‘응.’

아주 살벌한 놈이다.

세주의 인파이터 모드를 상대로 장난치듯 움직인 거다.

망토도 일부러 찢겨준 거고.

-덤비면 죽는다.

둘 사이로 싸늘한 공기가 흘렀다.

싸움은 끝이다.

시비 거는 것도, 끝.

세주는 주먹을 쥐었다가 편 뒤 물었다.

“귤 먹을래?”

본래 강아지와도 먹을 걸 주며 친해지는 법이다.

제주도에 왔으니, 특산물로 상대를 유혹 했다.

[인간의 음식은 먹을 수 없다]

아차, 주둥이도 없는 놈한테 실수다.

나호필이 옆에서 자신의 이마를 치는 게 보였다.

옆에서 보기에도 좀 바보 같아 보이나 보다.

-…하아. 형, 이러지 말자. 다른 종에게 인간이란 종이 무슨 취급을 받겠어?

[우리 목적은 인간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거다]

나호필이 보고 있다가 나섰다.

“우리라는 게 누굽니까?”

[종의 이름을 묻는 거라면 콴. 인간의 발음으로 콴이라고 부를 수 있다]

“기술을 전수하면 그 콴에게는 무슨 이득이 있는 겁니까?”

[이득? 이전에 인간은 우주 해적에게 멸종할 뻔했다. 가엾다. 돕는 거다]

그놈들을 보낸 게 이들이 아니라고?

세주가 타원형 모양의 푸른 눈을 노려봤다.

봐도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기세도 없고, 생각이나 성격을 읽는 건 무리다.

잠자리 눈을 닮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순수한 호의라는 겁니까?”

[물론]

아닐 것 같은데.

그 우주선에서 본 죽은 인간이 떠올랐다.

갈색 머리칼의 그 인간을 밟아 죽인 건 눈앞의 가르간이란 놈이다.

모습만 똑같은 놈일까?

아니다.

그 기세까지 흉내 낼 순 없다.

분명 저놈이다.

[조건은 하나뿐이다]

“그 조건이란 걸 들어봅시다.”

나호필은 하나도 다급하지 않은 기색으로 입을 연다.

저게 올바른 합의의 자세인 건가?

상대가 인간보다 몇 배는 우월한 기술을 가졌다.

그런 기술을 전수해준다는데, 놀라지도 기뻐하지도 않는다.

훌륭한 포커페이스다.

가르간이 허공에 손을 들자, 그 아래로 책이 떨어진다.

그걸 쥔 가르간이 앞을 보였다.

심청전, 그렇게 쓰여 있다.

[재밌는 책이다]

갑자기 심청전은 왜?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간 심청이. 같은 걸 원한다]

“이 새끼가.”

세주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지금 처녀를 원한다고 하는 거냐?”

[틀렸다]

가르간의 눈이 세주와 마주쳤다.

[너희들이 노블 에너지라 부르는 걸 다룰 줄 아는 사람 50명. 인간 날짜 기준으로 30일에 50명을 요구한다]

처녀는 아니구나.

그래, 인간을 주면 기술을 주겠다.

단순한 얘기다.

매달 50이면 1년에 600명.

70억 인구로 따지면 많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과거, 조선시대 때 명나라에 공물을 바치듯 그렇게 하라는 말인데.

“거절하면?”

나호필이 물었다.

[이유는?]

“이해할 수 없을 거다.”

나호필은 이 콴이라는 종과 인류는 완벽하게 가치관과 생각이 다르다고 결론지었다.

쓸데없는 설명은 필요 없었다.

[그럼 우린 돌아간다]

“돌아가?”

쿠우우우우.

가르간의 뒤다.

바다 쪽이다. 육중한 소리가 나더니, 촤아악하고 비행선이 올라온다.

나호필은 등 뒤로 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가르간은 나호필이 아니라 세주를 바라봤다.

어느새 세주의 뒤로 그의 부대원 셋이 섰다.

“눈깔이 마음에 안 들게 생겼슴다. 뽑아도 되겠습니까?”

“안 돼.”

치용의 말을 단박에 자른다.

“그냥 죽여 버리자.”

“안 돼.”

인준의 의견도 거절이다.

“전 아무 말도 안 할 겁니다.”

“응.”

그나마 유진이 있어서 다행이다.

“트레이.”

통역기를 껐는지 놈의 목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필요 없는 제안, 이라고 말했어.

프로비던스가 오랜만에 자기 역할을 했다.

세주는 그런 가르간을 향해서 입을 열었다.

“알면 꺼져.”

나호필이 다급하게 세주를 바라본다.

“잠깐.”

하지만 나호필이 만류하기도 전이다.

동그란 형태의 양옆, 얇은 날개가 달린 우주선이 가르간의 뒤에서 공중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전면에서 광선이 뿜어지더니, 가르간을 향했다.

그 빛에 휩싸인 채다.

가르간이 세주를 보고 입을 연다.

“트트레레이.”

-그렇게 덤비다가는 제 명에 못 살 거라고 하네.

그리고 세 손가락 중 중앙에 있는 손가락을 들고 세주를 향했다.

“…저 새끼가.”

그 우주선에서 봤던 영상과 같다.

가르간이란 놈, 웃는 것 같았다.

“이런 제길.”

나호필이 중얼거렸다.

주먹을 쥔 그가 위를 올려다봤다.

슝 소리와 함께 놈을 태운 비행체가 날아갔다.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금세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다.

놀라운 기술력이라며 감탄하는 것도 잠시였다.

혼자서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상대가 떠나 버렸다.

“젠장!”

나호필이 신경질적으로 외치고 세주를 노려봤다.

“…왜?”

“다 너 때문이다!”

-맞는 말이지.

‘뭐가?’

-형이 덤빈 탓이잖아.

세주가 나호필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남 탓하지 말고.”

“뭐? 남 탓?”

보고할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린 나호필은 세주를 보고 이를 갈았다.

그렇다고 덤빌 수도 없다.

덤볐다가는 저 양심 없는 놈은 자신을 그대로 후려칠 거다.

거기에 저 뒤에 선 셋까지.

“미친놈들.”

그렇게 말하고 몸을 팩 돌린다.

*

[다녀왔다]

비행체가 사라지고 나타난 건, 지구 대기권 밖이다.

우주 그 광활한 검은 배경을 등진 가르간이 도착한 건, 한 행성이다.

아니, 동그란 행성 모양의 우주선이다.

[제안을 왜 밀어붙이지 않았나? 그게 아니라면 식민지라도 만들어야지]

인간이 들으면 트레트레만 잔뜩 들리겠지만, 둘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가르간의 앞, 주름이 얼굴을 뒤덮어 눈까지 축 늘어진 이가 보인다.

그는 비슷한 옷을 입었으나, 황금빛 자수가 더 많았다.

[익지 않은 열매는 먹는 게 아니야]

가르간이 답하고 안으로 향했다.

훙!

복도 옆에서 바람이 불어 살균을 한다.

필요 없는 균을 없앤 그가 안으로 향했다.

[이미 해적을 보내 에너지를 깨우치게 한 건 너다. 그런데 아직도 익지 않았다고?]

[응. 아직 안 익었다. 더 빨갛고 노랗게 익을 때까지 기다려]

그렇게 말하고 가르간은 대전으로 향했다.

그가 향한 곳, 천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곳이다.

무릎을 꿇은 가르간이 위를 올려다봤다.

가르간의 위, 삐죽삐죽한 의자가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위, 순백의 옷에 붉은 색과 황금색이 섞인 옷을 입은 이가 있었다.

타원형의 눈이 붉은빛으로 빛났고, 배가 여왕개미처럼 두툼하고 컸다.

가르간이 양 손바닥을 위로 하고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그가 입을 열었다.

[여왕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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