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104. 맛있게 먹겠습니다
-인류의 평화를 위해 지금 형이 해야 할 일을 말해줄까?
갑자기?
바로 복귀하지 않았다.
휴식이 필요했다.
흉몽 모드는 전신 근육에 과부하를 준다.
노블 패스, 근육, 신경, 모두 저릿저릿하게 만든다.
전기에라도 감전된 것 같은 상태가 만 하루는 지속된다고 했으니.
물론, 그건 ‘병원’을 열기 전 일이다.
그 덕분에 몇 시간이면 몸을 회복할 수 있다.
그래도 하루는 이곳에서 보낸다.
“떠나는 건 내일이다. 모두 쉬워 둬.”
간단한 추모식이 열렸다.
아군의 시체를 모아서 태웠다.
데려갈 수 있을 정도로 멀쩡한 시체는 없었다.
그런 하루를 보낸 다음 날이었다.
대뜸 프로비던스의 말을 듣고 세주는 답했다.
‘아니, 안 들을래.’
별로 듣고 싶진 않다.
-이런 기회가 흔한 줄 알아? 내 모든 지능을 동원해서 만든 결론이야.
‘그러니까 안 듣는다니까.’
프로비던스를 놀리는 일은 참 즐겁다.
‘그럼 이대로 복귀해볼까나.’
-형. 왜 그래? 우리 여기 할 일 남았잖아.
‘으으으으응?’
-못돼 처먹은 새끼.
‘뭐라고?’
-이 전쟁을 끝낸 영웅께 부탁드리옵니다.
렌즈 빛이 홀로그램 영상을 만든다.
오랜만에 보는 소년 형태의 프로비던스가 나와 무릎을 꿇는다.
보기가 참 좋다.
-나의 영웅이시자, 하늘 위에 뜬 태양보다 밝고 빛나는 분께, 부탁드리옵니다.
간질간질하다.
장난은 이쯤에서 그쳐야겠다.
“보러 가자.”
-유후!
기술 덕후인 프로비던스에게 적의 우주선을 보고도 그냥 지나간다는 건.
참새에게 방앗간을 지키라는 것과 같았다.
사박사박.
정글 안쪽, 우주선의 위치는 기억해뒀다.
이미 싸움이 끝난 직후,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는 보고도 받았다.
그 앞을 지키는 부대가 세주를 보고 경례를 했다.
“필승!”
“어이.”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이봐, 코리안, 아직 누구 소유라고 할 수 없는 물건인데.”
처음 보는 얼굴이다.
금발의 남자, 모유 대신 식용유를 마시면서 자란 것과 같은 느끼함이 전신에서 흐른다.
“이탈리아에서 온 드마유다.”
새로 나온 기름인 줄 알았다.
“아아. 그래. 만나서 반갑다.”
그리고 안으로 걸음을 옮기자.
“이봐!”
그가 외쳤다.
“들어오면 쏴 버려.”
그리고 세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현재 우주선 주변을 지키는 건 전부 한국에서 온 지원군이다.
그러니까 세주의 명령이라면 칼 같이 따르는 이들이었다.
세주는 연합군을 이끌면서 알았다.
타국의 병력은 한국군에 비하면 약하다.
특수 무력 부대의 수준은 비슷할지 몰라도, 일반 사병의 수준이 너무 다르다.
타국의 군대는 풀 업 조차 제대로 못 하는 이들이 태반이다.
“정지.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시면 쏩니다.”
드마유를 향해 한국군 장교가 말했다.
말 뿐 아니다.
실제로 총구를 겨눈다.
드마유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그러자.
우우웅!
그의 앞쪽 열두 명의 병사가 풀 업을 한다.
전신에 도는 푸른빛이다.
미안한데, 풀 업 상태 병사 열둘이면 어지간한 외계인 괴물도 씹어 먹는 전력이라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프로비던스가 어깨에서 떨어져 날아오른다.
웅!
-하아, 현기증 나. 나 좀 둘러보고 온다.
허락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훙, 하고 사라진다.
동그란 공간에 전면에 검은 화면, 가운데 긴 막대가 위로 솟아 있다.
생각보다는 넓다.
벽은 얇고 내부는 넓은 구조다.
바닥은 단단했으나, 어떤 광물인지는 짐작도 안 갔다.
프로비던스가 여기저기 푸른 광선을 뿌린다.
그나저나 이거 전등 스위치가 어디 있는지 어둡다.
‘불이나 켜고 놀아.’
-기다려.
확하고 갑자기 주변이 밝아진다.
우주선 중앙 위, 커다란 광원이 떠 있다.
놀라운 기술이다.
확실히 외계의 기술력은 인간보다 우위에 있다.
통통.
벽을 두드려봤다.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다.
아시아 3호라는 이름의 최초침공선이 더 단단하다.
그 침공선도 언젠가 박물관에 멋들어지게 장식되어 놓이겠지.
“후.”
병원 기능으로 몸의 회복이 빨라진다 해도.
피로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세주는 바닥을 툭툭 두드리다 부드럽게 눌리는 부분을 찾았다.
그리고 그 위로 몸을 던졌다.
푹하고 몸이 파묻힌다.
“음?”
바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그대로 몸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쑥하고 사라지는 세주다.
허공 위에 둥둥 뜬 프로비던스가 그걸 보고 렌즈의 빛을 깜빡였다.
-하아, 저 미친 형님 새끼가.
아무것도 건들지 말고 있을 것을, 괜한 짓을 한다.
윙!
그대로 프로비던스가 밑으로 날아와, 세주가 사라진 곳으로 푹하고 몸을 던졌다.
늪에 빠진 것처럼 사라진 세주와 마찬가지로, 프로비던스의 몸도 쭉하고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
“트레에에에에!”
귀를 찢는 소음에 눈을 떴다.
여긴 어디지?
고개를 돌리자.
마치 거인 같은, 엄청난 몸집의 괴물이 앞으로 향해 손을 내리친다.
꽝!
폭음이 터졌다.
그리고 사방에서 돌이 날아온다.
퍼버버벙!
돌이라고 생각했지만, 폭발하는 걸 보니 폭탄인가 보다.
깜짝 놀랐던 세주는 곧 차분해졌다.
‘꿈이구나.’
-꿈은 무슨, 기술이지.
프로비던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꿈까지 따라오다니, 지긋지긋한 새끼.
-꿈 아니라고.
‘아냐?’
-아냐!
‘아, 그렇구나.’
그래도 되게 신기하긴 하다.
꽝!
바로 옆에서 폭발이 일어나는데 아무 피해도 없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혀를 내밀어 날름 돌을 핥았다.
까슬까슬하다.
손을 내밀어 돌을 쥐어 본다.
잡을 수 있다.
다섯 개의 감각이 전부 충실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폭발이나 공격에 영향을 받진 않는다.
-가만히 있지, 왜 아무거나 만지고 그래?
‘안 만졌다.’
부드러운 게 있기에 누운 거지.
-하아. 이 모자란 인간 자식.
‘입 더러운 기계야. 말조심해라.’
말싸움해봤자 불리하다는 걸 깨달았는지.
프로비던스가 사방을 살폈다.
근데 아까 이게 기술이라고 하지 않았나?
기다렸다는 듯 설명하는 프로비던스다.
-다중영상재생, 아니, 더 적절하게 이름 붙이자면, ‘꿈으로 경험하기’ 정도가 되겠다.
어쩐지 멋이 하나도 없는 이름이다.
-의식이 없을 때, 그 안에 꿈을 통해서 정보를 주입하는 거야.
“트레에!”
바로 옆에서 긴 랜스 같은 걸 쥔 뾰족하게 생긴 놈이 달린다.
‘오호, 돌격 기마병인가?’
펑!
아니다.
랜스 끝이 발사되더니, 꽝하고 허공에서 터진다.
이름 붙이자면 건랜스 정도가 되겠다.
-그나저나 나가는 길을 모르겠다.
‘천천히 찾아.’
인간의 기술이 발전해서 이렇게 영화를 찍으면 정말 재밌겠다.
배경은 우주다.
그리고 행성 두 개를 중심으로 우주선이 서로 마주 보는 형태다.
한쪽은 빛깔이 다양한 알 수 없는 금속으로 껍질을 쓴 이들이다.
뾰족한 놈도 있고, 둥근 놈도 있다.
레이퍼랑 비슷한 것도 보이고, 아마존에서 싸운 놈들과 비슷한 것들도 보인다.
전쟁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치열한.
“트레!”
“레에에에!”
함성이 대기를 울리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후웅!
레이저 포가 세주의 이마를 뚫고 지나갔다.
뒤쪽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손에 소총을 든 부대가 보인다.
“트레!”
선두에 선 흰 빛깔의 아머를 입은 놈이 외친다.
투구 위로 붉은 선이 길게 그어져 있다.
그 뒤로 비슷한 모양의 놈들이 수백이 넘는다.
“레!”
그들 모두가 합창하듯 외친다.
그리고 그들이 앞으로 총구를 들이밀고 달렸다.
레이저 포를 쏴대는 총이다.
쾅! 쾅! 쾅!
‘신기하네.’
무중력 상태에서 쏘다닐 수 있도록 발과 손, 등에서 불꽃이 분사된다.
놀라운 기술이다.
어째 지금까지 싸웠던 놈들과 비슷하다.
꾸에에엑!
괴성을 지르는 괴물도 처음 보는 종류지만.
‘레이퍼랑 닮았어.’
그리고 허공을 나는 서퍼 보드도 보인다.
세주를 중심으로 왼쪽, 흰둥이가 있는 쪽의 주 무기는 광학병기光學兵器다.
그리고 반대쪽.
커다란 함선이 보인다.
그 앞에 있는 놈들은 고대의 제사복 같은 걸 입고 있다.
나풀거리는 천 사이로 푸른빛이 번쩍인다.
‘노블 에너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고순도의 노블 에너지다.
세주는 그걸 보는 순간, 이제까지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힘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저렇게도 쓸 수 있었나?’
서로 비견 되는 병력이라고 생각하던 싸움이다.
대규모 혈전이었다.
하지만 우측 상대편에서 두 개체가 나온 순간, 전장의 판도가 변한다.
한 놈은 쭈글쭈글한 피부를 지닌 놈이다.
눈은 타원형처럼 생겼고, 보랏빛을 뿜었다.
푸른 에너지로 뭉친 칼날 두 개가 짧은 칼처럼 손등 위로 솟아 있다.
파락.
그런 소리가 들린 기분이 들었다.
놈은 한순간 모습이 사라졌다.
‘빠른 건가?’
아니다.
아무리 빨라도 지금 세주의 동체 시력으로 모습을 놓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놈은 사라진 거다.
레이저 소총을 쏘던 부대 중간쯤에 나타난 놈이 부대를 헤집는다.
퍽! 퍽!
일격에 하나씩 급하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손놀림이다.
“트레!”
“레에!”
부대원이 외치며 즉시 진형을 부수고 뿔뿔이 흩어진다.
산개라는 명령이었나 보다.
그리고 놈을 향해 대장이 달려간다.
허리춤에서 막대기를 꺼낸다.
‘오, 빔소드.’
적이 가진 무기와 비슷하다.
하지만 순수 노블 에너지로 만든 것과는 다르다.
마치 치용이 쓰던 무기랑 비슷했다.
일반 에너지와 개인 노블 에너지를 섞어 만든 칼날이다.
반투명한 붉은 칼날을 만든 부대 대장이 그걸 휘두른다.
석!
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칼등 위로 솟은 고작 30cm의 칼날이 그대로 붉은 칼도 베고 부대 대장도 죽였다.
몸이 반으로 동강 난 채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놈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다른 한 놈.
몸집이 처음 나타난 놈의 2배 정도 된다.
생긴 것도 달랐다.
주름이 없었다.
그리고 놈은 주먹과 전신에 푸른빛을 뿜어내더니, 그대로 달려들었다.
풀 업과 비슷하지만, 농도와 위력이 다르다.
퍼버버버버벙!
함선의 중간을 뚫고 나가는 놈이다.
“휘이익.”
자기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게 만드는 시원한 한 방이다.
어마어마한 놈들이다.
그런데 자신을 습격한 놈들과 비슷한 것들이 패배한 영상이 왜 여기에 저장되어 있는 걸까?
전쟁은 그 둘의 존재로 금세 마무리되어 갔다.
“트레이.”
양손에 칼날을 뿜는 순간이동 하는 놈이다.
그가 세주를 바라보고 입을 연다.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트레.”
세주 쪽이 아니었다.
그 바로 뒤다.
전신에 샛노란 아머를 입은 자가 그 말을 받는다.
‘항복.’
말하지 않아도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종전이다.
그가 무릎을 꿇는다.
-형.
그 사이 프로비던스가 돌아왔다.
-나가는 법 알아냈어.
‘잠시만.’
-…재밌냐? 난 일하고 있는데 영화 감상이나 하고.
닥쳐 봐라. 이 기계 새끼야.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노란 아머를 입은 놈 발밑으로 흰 바닥이 펼쳐진다.
배경이 우주에서 흰색의 땅으로 변한다.
그 위에서 샛노란 아머를 입은 이가 투구를 벗는다.
사라락.
갈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이런 미친.”
세주가 그 앞으로 다가갔다.
노란빛의 동공과 흰 피부.
-…인간?
프로비던스가 투구를 벗은 이의 종을 말했다.
인간과 똑같이 생겼다.
아니, 조금은 달랐다.
가까이서 보니, 동그란 원 세 개가 동공 안에 잠겨 있다.
다르다.
인간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과 엄청나게 유사한 종족이란 건 알겠다.
그 남자는 손바닥을 위로 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자신 앞에 있는 이의 발등에 키스했다.
그놈이다.
양팔 위로 칼날이 달린 놈.
그는 키스를 하는 이를 보고 발을 들었다.
그리고 머리를 밟았다.
퍽하고 머리가 터져 죽었다.
웃는다.
분명 웃고 있다.
주름진 푸르스름한 피부의 괴물, 표정을 읽을 순 없다.
외계인의 표정을 읽는 재주는 없지만, 웃고 있는 거였다.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팟.
영상이 끝난다.
세주는 진즉에 이 공간이 어떤 것과 닮았는지 알 수 있었다.
테크룸이다.
그러니까 프로비던스가 아니더라도 빠져나가는 방법은 쉬웠다.
테크룸에서 나가는 것과 같다.
가위눌렸을 때 깨어나길 바라는 것처럼 현실을 인지하고 눈을 뜨는 것.
푸슈슈슉!
증기가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세주의 몸이 다시 푹신한 땅 위로 솟았다.
몸을 일으켰다.
세주는 그들의 싸움을 보며 여러 가지를 봤다.
가운데 솟은 막대기에 손을 갖다 댔다.
-형, 배우는 게 빨라.
물론 프로비던스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우직.
막대기를 분지르자, 그 위에서 훙하고 뭔가 떨어진다.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던 것이 세주의 코앞에서 멈췄다.
‘먹고 가자.’
주먹만 한 구슬이다.
흰둥이가 여의도를 침범한 사건 때와 같다.
프로비던스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시스템이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그러니까 이 우주선 기술의 정화.
프로비던스가 두 번째 업그레이드를 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