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03화 (103/206)

#  103

103. 외교의 시대

검둥이 아머는 내의다.

이 모드를 위한 준비물일 뿐이었다.

프로비던스가 해체되어 몸에 달라붙는다.

다리, 팔, 가슴, 전신에 푸른빛이 어리고 푸른색과 흰색이 가미된 갑주가 씌워진다.

아머 형태로 변한 프로비던스와 세주의 합체다.

후웅.

전신에 푸른빛이 번쩍인다 싶더니, 만들어진 아머다.

번쩍.

그리고 이마 밑에 뚫린 구멍, 두 눈에 푸른빛이 번쩍인다.

안나는 세주가 변하는 걸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정면의 적을 향해 눈을 뗄 수 없었다.

빈틈이 없다.

그녀는 그래도 앞으로 내달렸다.

“하압!”

황금빛을 뿌리며 주먹을 휘두르고, 발로 걷어찬다.

헬로우 놈은 안나의 주먹은 고개를 옆으로 꺾어 피하고, 킥은 팔뚝으로 막았다.

쩡!

그리고 손을 들어 내리친다.

맞으면 아야 하는 수준으로 끝나지 않을 힘이다.

‘못 피해.’

안나는 순간 전심전력으로 목을 뒤로 당겼다가 앞으로 뻗었다.

박치기다.

무식할 정도의 공격이다.

상대의 힘을 얕보진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최선의 수를 던진 거다.

안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그래서 볼 수 있었다.

이마와 놈의 주먹 사이로 끼어든  손을.

텅!

멈추지 못해 이마로 그 손을 들이 받았다.

하지만 예상했던 충격은 없었다.

그 대신 다른 이의 주먹이 자신의 이마를 가로막았다.

옆을 돌아보자,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아머가 보인다.

헬로우 놈의 손을 잡아챈 아머다.

그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이 새끼가, 레이디한테 손댈 때는 허락을 먼저 구하는 거다.”

그리고 오른 주먹을 옆으로 밀친다.

헬로우 놈이 막는다고 팔을 안으로 당겼다.

펑!

그리고 놈이 훨훨 날아가며 우직하고 나무를 부러뜨리고 정글 안으로 사라진다.

얼마나 멀리 날아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안나가 멍하니 그걸 보다 아머를 돌아봤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녀가 물었다.

“반세주?”

아머가 그녀의 이마를 부드럽게 민다.

그리고 손바닥을 위로 향하며 내민다.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뭐해?”

다시 들리는 목소리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더니, 손바닥을 짝 소리 나게 때린다.

“바톤 터치다.”

쾅!

폭음과 함께, 놈이 저 멀리서부터 유성처럼 달려온다.

“H.E.L.L.O!”

거, 고함 한 번 개성 있게 지르는 놈이네.

단숨에 거리를 좁히는 놈을 향해 세주도 마주 달렸다.

훅.

달려오는 놈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자, 놈이 머리를 숙여 피한다.

그걸 본 세주가 무릎을 세웠다.

뻑!

간단한 콤비네이션 공격이다.

이마를 얻어맞은 놈의 턱이 들린다.

쩍! 쩍!

세주의 양 주먹이 놈의 얼굴을 좌우로 후려친다.

그리고 마지막은 뒤돌려 차기.

뻥! 훙!

놈이 다시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간다.

펑! 꾸지직!

방금과 같은 결과다.

다시 모습도 보이지 않을 만큼 날아갔다.

“트레에에에에에!”

놈이 날아 간 곳에서 괴성이 터졌다.

저 새끼 봐라. 헬로우라고 말할 땐 언제고, 열 받으니까 트레트레하네.

-전군 공격 지시야.

놈의 외침에 적의 대군이 몰려온다.

정글 안에서 꾸역꾸역 몰려온다.

세주가 손을 앞으로 내민다.

텅.

손등에서 푸른 렌즈가 튀어나온다.

‘한 방 먼저 가자.’

우웅!

푸른 입자가 모인다.

“샷!”

세주의 외침과 함께, 푸른 레이저가 앞으로 뻗어 나간다.

콰우우우우우!

꽈아아앙!

폭음과 함께 땅이 뒤집히고 사방에 적의 시신이 흩날렸다.

악몽 모드에도 쓰던 레이저 포다.

티디디딕.

허공에 파란 불똥이 튄다.

“뭐해?”

안나를 향해 세주가 나무라듯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너무 놀라 멈췄던 정신 회로가 돌아온다.

멍하니 내밀고 있던 손을 앞으로 내밀며 그녀가 외쳤다.

“공격!”

적이 몰려온다.

세주 혼자서 전부 처리할 순 없다.

무엇보다, 세주는 헬로우란 놈을 맡아 싸워야 하는 입장이다.

끼에엑!

놈들이 달려들고, 다시 지독한 싸움이 시작됐다.

퍽!

달려들던 땅콩 놈이 휘두른 팔에 맞아 펑 하고 터졌다.

녹색 체액이 아머 위로 튀었다.

세주는 눈을 깜빡였다.

주변 정보가 머릿속으로 파고든다.

왼발을 앞으로 내밀고 주먹을 앞으로 뻗는다.

퍼버버벅!

세 마리가 주먹에 걸린다.

시야와 감각을 프로비던스와 공유한다.

주변 움직임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진다.

이상한 고양감이 전신을 감쌌다.

쩍! 펑! 꽝!

달려들던 놈들을 향해 총구를 들 필요도 없다.

손발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할 수 있다.

“트레에에!”

놈이 다시 달려온다.

어디에서 어떻게 공격할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오른 주먹을 내리칠 확률 12%.

무지막지하게 달려들 확률 8%.

다리를 걸 확률 15%.

그리고 무기를 쓸 확률 65%.

헬로우 놈, 머리 위다.

허공에 노란빛이 번쩍이며 바주카포 같은 게 만들어진다.

프로비던스가 인벤토리에서 물건을 꺼낼 때와 같은 형태다.

달려드는 건 페인팅이다.

놈이 바주카포를 어깨에 올린 채 조준한다.

아아, 이상한 기분이네.

프로비던스는 언제나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걸까?

주변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다.

다음 행동을 예측하고, 그를 이어 합리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단순하다.

적이 달려들면 피하고, 약점을 노려 공격한다.

포 앞에 에너지가 우웅하고 모일 때, 이미 세주의 모습은 그곳에 없었다.

놈이 무기를 드는 짧은 순간, 몸을 숙인다.

시선의 사각으로 돌아가 달린다.

땅을 밟을 때는 부드럽게, 소리는 죽이고 속도는 빠르게 그대로 땅을 박찬다.

목표는 놈의 바로 밑이다.

몸을 수그린 채 달린 세주가 고개를 들자.

헬로우 놈 투구 안에 노란빛의 안광이 보였다.

세주는 어느새 왼 팔뚝 위로 솟은 총구를 놈에게 겨눴다.

익숙한 형태, 벼락의 총구다.

“GOOD BYE.”

쾅!

근거리에서 쏜 스파이럴 커버링 탄환이 놈의 투구에 직격한다.

배리어를 찢고 대가리를 터트린다.

후두두둑!

녹색 핏물이 사방에 흩뿌려졌다.

기우뚱하고 놈의 몸이 뒤로 넘어진다.

몸을 일으킨 세주가 뒤를 돌아봤다.

어느새 싸움도 한풀 꺾여 있다.

“후아.”

안나가 호흡을 다듬으며 다가왔다.

“죽였나?”

세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퉁.

흉몽 모드가 풀린다.

푸른빛이 번쩍이며 아머가 벗겨지고 프로비던스가 허공에 생겨난다.

놀라운 위력이다.

안나가 죽은 헬로우를 보고 세주를 바라보더니 성큼 다가온다.

이 여자가.

키스라도 한다면 어쩐다.

솔직히 방금 안나를 막았을 때, 누가 봐도 멋있을 거다.

대사도 괜찮았던 것 같다.

-에효.

‘한숨 쉬지 마라.’

안나가 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델, 복수는 했다.”

델 크로이츠, 이미 프로비던스에게 들었다.

안나를 구하기 위해 죽은 이라는 것도, 알버트 크로이츠의 아들이란 것도.

죽은 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부대원이라고 같이 구른 52명의 목숨도 저기에 묻었다.

그뿐이랴.

죽은 사람 숫자는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세주는 잠시 묵념을 위해 고개를 숙였다.

죽은 이를 위해 산 사람이 해줄 수 있는 건, 추모뿐이니까.

쾅!

그들 뒤로 폭음이 일며 불꽃이 솟아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싸움의 끝을 알리는 신호였다.

“우아아아아!”

“아아아아!”

긴 싸움의 끝에 살아남은 이들이 환호가 아닌 괴성을 질렀다.

아마존 전투.

전사자 추정, 9080명.

투입된 부대원 중 반수 사망.

추모비에 올릴 이름이 늘어난 날이다.

*

강대총은 신중하게 허리춤에 찬 권총을 확인했다.

비무장지대의 싸움을 겪었고, 아마존에서 전투도 전해 들었다.

‘권총에 죽을 놈들이면 이 고생을 할 필요가 없지.’

“제가 호위로 붙을 겁니다.”

김동원 중령이다.

두툼한 볼과 말랑말랑하게 생긴 것과 다르게 꽤 강한 사이키커다.

그 외에도 알파 팀의 나기주도 붙었다.

“저도 동행합니다.”

총 셋.

이들은 조용히 제주도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호텔에서 1박을 머물렀다.

‘나호필 이 새끼.’

그가 있었다면 강대총이 여기에 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호필을 선두로 반세주 호위가 되었을 거다.

강대총도 사람이다.

죽고 싶을 리 없다는 거다.

거기에 여기서 죽으면 아무리 봐도 개죽음이다.

그래도 나설 사람이 없었다.

외계인과 전투에 경험이 있고, 유사시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이 적격이다.

“가자.”

둘을 데리고 움직였다.

물론 호위가 달랑 둘이 아니다.

많은 인원이 보이지 않게 셋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들은 서귀포시로 넘어갔다.

차에서 내려 한참을 걸었다.

펜스를 세워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한 통제구역이다.

군사 지역이란 말에 사람들이 근처에도 오지 못 했다.

철썩!

파도가 절벽 밑을 때린다.

각이 진 바위들이 보였다.

그 앞에 강대총이 기다리던 자가 있었다.

커다란 천을 뒤집어써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고, 방문을 약속한 이들이다.

[만나서 반갑다.]

딱딱한 목소리가 망토 안에서 들린다.

“음.”

강대총은 얕은 신음을 흘렸다.

망토 안에서 손이 나왔다.

끝이 동그란 개구리 발바닥같이 생긴 손이다.

사실 망토를 벗기면 개구리 왕눈이가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손을 맞잡았다.

미끌미끌할 줄 알았지만, 전혀 아니었다.

맞잡은 손에서 힘이 느껴졌고, 촉감은 단단한 쇳덩이를 잡은 것 같았다.

차가웠고 단단했다.

“강대총이오.”

[얘기한다. 인간과.]

망토 괴인이 입을 연다.

대통령에게 온 연락은 하나였다.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다.

인류를 인정한다.

사절단을 보낼 테니 협의를 하자.

장난 전화라고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증거를 보냈다.

전화 온 날, 망토를 뒤집어쓴 이가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왔다.

그리고 똑같은 말을 한 뒤 사라졌다.

[인간. 놀란다. 그래서 기다린다.]

통역기를 쓰는지, 목소리가 투박하고 딱딱하다.

“왜 우리지?”

강대총이 대뜸 물었다.

[너희에게 있다.]

뭐가 있다는 걸까.

[살육자.]

강대총은 이런 종류의 대화에 어울리지 않는 남자다.

뒤에서 나기주가 조용히 읊조린다.

“자신들을 많이 죽였다는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모르겠다.

강대총은 진짜 이들과 대화를 하러 온 게 아니다.

정말 이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찔러보러 온 거다.

[난 혼자다. 믿어라.]

믿기는.

강대총은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 싸움 싫다. 동맹 한다.]

“이제까지 싸움을 뒤로하고 동맹을 맺자는 건가?”

[Exactly.]

아무래도 저 통역기는 만들다 만 물건 같다.

강대총이 손가락을 까닥이며 팔을 톡톡 두드렸다.

머리 굴릴 때의 버릇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떠나기 전 대통령과의 1:1 면담이 떠오른다.

“계속 싸운다면 누가 이익일 것 같소?”

“상대 쪽입니다.”

똥개도 제 집 앞마당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지만, 그 앞마당이 전장이 될 때 피해도 오롯이 자신의 터전이 입는 법이다.

계속된 싸움에 대한 피해는 누적될 거고, 그걸 인류가 감당할 수 없을 때 이 전쟁은 끝난다.

승리가 아닌 패배로.

전쟁은 아무것도 낳지 못한다.

그저, 황폐하게 할 뿐이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싸우지 않을 수 있다면 싸우지 않겠습니다.”

강대총이 입을 열어 말하자, 대통령이 그의 눈을 바라본다.

“지금까지 죽은 이들은?”

그들은 인류를 지키기 위해 죽었다.

“앞으로 죽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대통령이 의자를 뒤로 젖혀 등을 기댄다.

“전쟁을 끝내야 합니다.”

강대총이 힘 있게 말했다.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알고 있었다.

사절단이 온 순간, 인류에게 선택지는 없다.

“합의, 한 번에 할 수 없다.”

[합의하고 싶다면 이곳으로.]

그가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강대총이 뒤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는 직감했다.

전쟁은 끝났다.

그를 믿을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놈은 대통령도 죽일 수 있었고, 자신도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믿을 수 있는 건가?’

강대총은 확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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