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00화 (100/206)

#  100

100. 나 줘

꾸욱.

한쪽 다리를 펴고 쭉 늘린다.

근육 한 줄기마다 부하를 주고 몸을 편다.

두 다리로 서고 손을 밑으로 내린다.

손바닥을 땅에 붙인 채, 그대로 머리를 밑으로 내린다.

정성 들여 스트레칭을 했다.

땀이 뚝뚝 바닥에 떨어져 막사에 깔아 둔 모포에 동그란 모양을 만들었다.

“후우.”

땅이 줄줄 흐를 정도다.

습한 날씨도 날씨지만, 그만큼 전신에 부하를 줄 정도로 강하게 근육을 비틀어 쥐어짰다.

회복에 4시간 30분.

그리고 일어난 뒤 스트레칭만 한 시간 째다.

물론 세주만 하는 건 아니었다.

치용도, 인준도, 유진도 조용히 몸을 풀었다.

“후아!”

스트레칭이 끝난 치용이 외쳤다.

저 기합만큼이나 세주도 몸이 가뿐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꽉.

근육 한 줄기, 세포 하나하나가 새로 깨어나는 기분이다.

‘노블 패스가 늘어났어.’

-과하게 쓸수록 에너지를 통과하는 통로는 늘어나는 법이야. 거기에 ‘병원’은 치료를 완벽하게 해주니까.

쓸 만하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750만 에너지 대가를 톡톡하게 한다.

꽈드득.

마지막으로 주먹을 쥐고, 허공에 섀도 복싱을 시작했다.

팍!

공기가 터진다.

투둥!

스텝에 따라 바닥에 발자국이 생겼다.

짝!

가볍게 몸을 흔든 세주가 손뼉을 마주쳤다.

“준비 완료!”

“나도.”

인준이 답한다.

어울리지 않는 미소와 함께다.

안 웃는 게 낫겠다.

유진이야 웃어도 찌푸려도 그만이지만.

김치용에 버금가는 저 사나운 인상은 적응하기 어려운 얼굴이다.

“왜 똥 씹은 표정이지? 형님?”

아, 포커페이스.

“아냐.”

그를 외면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을 뻔했다고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다.

“후아. 형님. 근데 그 레이저 포는 뭐였어요?”

세주가 유진을 바라봤다.

-대단한데.

프로비던스도 감탄했다.

물을 줄 몰랐다.

당최 관심이 없는 놈들이라, 그냥 그러려니 넘어갈 줄 알았다.

“…프로비던스.”

“아, 프로비던스구나.”

유진이 고개를 끄덕인다.

저기? 그게 끝이야?

어떻게 허공에 나타나고 레이저 포를 쏘는지 그런 건 안 궁금하니?

“호기심은 나중에 해결해. 지금은 다른 거에 집중할 때니까.”

인준이 입을 열어 말한다.

저기, 유진이 방금 말한 게 호기심 축에는 속하는 거냐?

“후아. 형님.”

그 사이 치용이 다가온다.

“왜?”

“저 죽습니까?”

밑도 끝도 없이 하는 말이다.

이 자식한테 훈민정음을 다시 가르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 얼토당토않은 말을 알아듣는 자신이 신기했다.

그놈, 치용을 죽일 뻔했던 정글의 그 괴물을 말하는 거다.

다시 싸우면 자신이 죽는 것이냐 묻는 거다.

본능만큼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남자다.

“응.”

세주는 솔직담백하게 답했다.

-가끔 보면 형은 잔인해.

“큭. 그건 싫습니다.”

…죽는 걸 좋아하는 새끼도 있을까?

“알아.”

“어쩝니까?”

왜 자신한테 이걸 물을까?

-빨리 알려줘. 꿀 발라놨어? 뭘 아껴?

긁적.

머리를 한 번 긁고 치용을 바라봤다.

방법은 자신이 안다.

“아머 입어. 김치용.”

놈들이 무슨 일로 지금 쳐들어오지 않는지 모르지만.

덕분에 시간이 남는다.

땀을 흥건하게 흘렸다.

치용이 아머를 갖춰 입고 나왔다.

어느새 주변에 구경하는 이들이 달라붙는다.

“코리안!”

“몬스터!”

왜 응원이 갈리냐?

하긴, 이들에게 지금 이런 쇼야말로 가장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잠깐의 소강상태.

덕분에 살아남은 이들.

그리고 다시 싸워야 할 이들이다.

불안하고 두렵지 않다면 사람이 아니라 김치용이다.

“덤벼.”

“아무리 형님이라도, 저 아머 입었습니다.”

“시끄럽다.”

인파이터 모드를 켜고 손을 까닥하자.

치용이 훅하고 콧김을 뿜고 달려든다.

그리고 세주는 몸을 낮추고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동시에 발을 걸었다.

치용이 그걸 피하고 팔꿈치로 세주의 머리를 노린다.

봐주는 것 하나 없이, 제대로 뻗는 공격이다.

맞으면 머리가 터지겠다.

세주가 몸을 반 바퀴 돌리며 팔꿈치를 피했다.

그리고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리고 급히 외쳤다.

“타임!”

-쯧쯧, 맨몸으로 덤비는 건 무슨 자신감?

‘아, 막 몸이 풀려서 뭐라도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단 말이다.’

김치용을 너무 얕봤다.

“우우우우!”

저 새끼들이.

탄성을 지르던 놈들이 야유를 퍼붓는다.

아비 크헨도 어느새 나와 보고 있다.

아니, 그뿐 아니다.

안나와 맥폴도 보인다.

몸매가 겁나게 멋진 갈색 피부의 여자도 보였다.

주변에 거친 남성을 거느린 채, 여왕 포스를 풍긴다.

그리고 수염을 기른 안나의 곁에 선 남자.

알버트 크로이츠, 연합군의 수장일 거다.

이거, 구경꾼이 많아졌네.

“자, 코리안에 걸 사람? 넌 몬스터에 걸 거냐?”

그 와중에 내기 판까지 벌인다.

힐끗 보니까 머리를 덥수룩하게 기른 서양인이다.

“나 코리안에 건다!”

세주가 세차게 외치자, 그가 세주를 보고 빙그레 웃으며 읊조린다.

“귀도 밝네.”

‘꺼내.’

그리고 멈춘 치용을 앞에 두고 프로비던스에게 말한다.

우웅.

홀로그램이 빛나며 세주의 아머를 꺼낸다.

우주선 내부 철판을 뜯어 와서 뭐에 쓰겠나?

전부 아머에 갖다 부었다.

물론, 치용을 비롯한 저 둘의 아머도 마찬가지고.

저 셋과는 다르다.

얇다.

-죽이지?

만든 프로비던스의 당당한 목소리다.

-그 동체를 녹이고 쪼갠 다음 실로 만들어서 짠 슈트에 배리어를 칠했어.

일명 섬유 자체에 배리어 강도를 부여한 기술이다.

그게 끝이 아니다.

그 위로 아주 얇은 철판을 덧댔다.

검게 염색한 걸 마지막으로 완성한 세주의 아머다.

반세주 전용, 칠흑으로 뒤덮인 아머.

그 이름은.

“검둥이다.”

“풉.”

누가 아머 이름을 듣고 웃는다.

‘어떤 새끼가 웃는 건지 다 봐둬.’

-에효. 그냥 내가 이름 지으면 안 돼? 부탁이다.

‘너라면 뭐라고 지을 건데?’

-블랙 팬서.

‘안 돼.’

절대 안 된다.

아머를 입으며 마치 표범처럼 날쌔 보여 적절한 이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세주는 싫었다.

‘검둥이가 훨씬 나아.’

어릴 때 기르던 강아지 이름도 검둥이다.

철컥.

팔과 다리를 감싼 아머를 착용한다.

치용의 아머는 부피가 있다.

덕분에 아머를 입고 서자 어른과 아이의 싸움 같았다.

“총 한 자루 드십쇼.”

치용이 말한다.

-주제도 모르고 덤비기는, 가, 조져 버려.

“오른팔만 써주마.”

세주가 말했다.

얼굴만 간신히 보이는 전신 착용 아머다.

그 안에 있는 치용의 입가가 올라간다.

“아무리 형님이라지만.”

치용의 말을 자르고 세주가 입을 열었다.

“한 발자국이라도 뒤로 물러나면 네가 이긴 거다. 그때부터 네가 형님해.”

세주의 말에 주변이 조용해진다.

안나가 조용히 세주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젓는다.

미친놈이란 의미가 깃든 고갯짓이다.

“난 몬스터에 건다!”

“나도!”

“에라 몰라! 난 역배당! 코리안!”

주변이 갑자기 시끄러워진다.

그래. 내기 판은 이래야 맛이지.

시끌벅적하고 서로 멱살 잡으며 대화가 오가는 거다.

열기가 가득 차오른다.

무대는 충분하니, 세주가 손을 들어 까닥였다.

“덤벼. 멍청아.”

도발까지 완벽하다.

쾅!

치용이 땅을 박찬다.

훅하고 모습이 사라졌다.

세주는 그걸 보면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머에 노블 에너지를 흘러 넣었다.

-오른팔만 쓴다며?

‘응. 이건 별개지.’

웅.

날아온 치용의 주먹이 날아온다.

포탄이라고 해도 믿겠다.

꽝!

쩌어어엉!

세주의 복부에 꽂힌 주먹이다.

그 자세 그대로 멈춘 치용과 세주가 보였다.

모두가 입을 떡하니 벌렸다.

안나는 방금 일격을 보고 생각했다.

과연 자신이라면 황금빛을 뿜어도 저 일격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인가?

모두가 놀란 순간, 세주가 오른팔을 뻗는다.

치용이 재차 왼발로 로우킥을 날린다.

몸집 차이 덕에.

허벅지가 아니라 허리를 노리는 꼴이다.

펑! 후앙! 텅! 터더덩!

날아간 치용이다.

안나가 눈을 부릅떴다.

방금 이 장면을 제대로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비 크헨이 미간을 찌푸렸다.

안나와 아비 크헨을 제외하고는 없을 거다.

아니, 한 명 더 있었다.

“거, 치사하네.”

내기를 종용하던 남자다.

세주의 오른팔이 순간 푸른빛에 휩싸였고, 거기에서 묵직한 에너지가 터졌다.

오른팔만 쓴다고 했지만.

“그건 오른팔이 아니라, 에너지 뿜은 거 아닌가?”

그가 웃으며 되물었다.

“오른팔만 썼잖아.”

세주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놔. 나한테 건 돈.”

“젠장.”

남자가 순순히 돈을 건넸다.

“자, 이제 흩어져! 개인 정비 시간이다.”

꼭두새벽에 한 해프닝이 끝났다.

세주는 치용에게 다가갔다.

“뭡니까?”

그리고 놀라는 치용에게 손을 내밀었다.

맨몸에 맞았다면 치명상이 분명한 일격이지만.

치용은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그냥 멀쩡했다.

주변을 물린 세주가 그에게 입을 연다.

“구경꾼은 사라졌으니까, 이제 이 아머를 진짜 쓰는 법을 알려줄게. 셋 다.”

“아머?”

치용이 되묻는다.

“충격 흡수 장치가 내 공격을 막은 거다. 그리고 방금 한 공격도 노블 에너지를 한 번에 쏟은 거고. 내가 한 게 아니라, 아머의 힘으로, 방어도 물론 같은 계열이다.”

끔뻑.

어려운 얘기였구나.

치용이 몸을 일으켰다.

“알려주십쇼.”

앞뒤 딱 잘라먹고 말한다.

아머 다루는 법, 놈에게 죽지 않는 법, 그리고 놈을 죽일 방법.

그걸 알려달라는 거다.

“응.”

세주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음에 만나면 목을 잘라서 가져와.”

“그럽죠.”

섬뜩한 말을 주고받는 둘이지만.

전혀 농담 같지 않았다.

“저기.”

그 사이로 유진이 입을 연다.

“뭐?”

“그놈 목 없지 않나요?”

아, 맞다.

놈 목이 없다.

얼굴이 가슴팍에 박히고 목이라고 불릴만한 게 없는 놈이다.

“그치. 목이 없지.”

“그럼 대충 가슴팍 잘라서 가져오겠습니다.”

“그럴까?”

“컁!”

치용이 자신의 스타일대로 답했다.

*

오전 9시.

적이 습격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세주는 막사를 새로 배정받았다.

땀을 흠뻑 흘린 그는 생수통을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그리고 간이 샤워실을 만들었다.

“씻자.”

입술이 터진 치용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가 씻고 막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잤다.

오후 1시.

인벤토리에서 컵라면을 꺼내서 끓여 먹었다.

“이런 건 어디서 가져오는 겁니까?”

컵라면 세 개를 먹어치운 유진이 묻는다.

“프로비던스가 들고 다녀.”

“…그렇군요.”

수긍하지 마. 그냥 물어!

하지만 더 묻는 사람은 없었다.

식사를 끝낸 직후다.

누군가 천막 바깥에서 외친다.

“준장님! 한국 지원군 왔습니다.”

“빨리도 온다.”

그래도 준비는 끝났다.

밖으로 나와 알버트 크로이츠를 찾아갔다.

“연합 총사령관?”

“맞다.”

“나 줘.”

“…총사령관을 달라는 건가?”

세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례해.”

옆에서 안나가 눈을 흘겼다.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 않아서 안색이 창백한 그녀다.

“아들 복수 해줄 게.”

움찔.

안나가 몸을 가볍게 떨었다.

프로비던스는 정보를 곧잘 물어다 줬다.

알버트 크로이츠, 델 크로이츠의 아버지이자 미군의 명장 소리를 듣는 이다.

이게 인간 대 인간의 싸움이라면.

그가 이곳에 있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건 그런 싸움이 아니다.

“…약속할 수 있나?”

“깡그리, 티클 하나 없이 싹 비워주지.”

“그럼 너 해라.”

“좋아.”

-총사령관 지위가 무슨 딱지치기로 넘겨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딱지 좀 치지.’

-무슨 개소리야?

‘닥치라는 소리다.’

괜히 이들 앞에서 힘자랑한 게 아니다.

밖으로 나오니 나호필이 다가온다.

“왔냐?”

“뭐?”

확실히 더 위 계급인 나호필인데 서슴없이 말을 놓는다.

“나 지금 연합군 총사령관.”

“…뭐?”

“지금은 내가 명령권자라고.”

“….”

나호필이 입을 다물고 알버트를 바라본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호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알버트.”

“어허, 뒷방 늙은이 그만 괴롭혀.”

세주가 웃으며 나호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말했다.

“한국 지원군 전부 데려와.”

놈들이 무슨 이유로 공격을 감행하지 않는지는 모르지만.

안 오면 이쪽에서 간다.

턴이 넘어왔다.

이제는 인간이 공격 할 차례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