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99. 응 니 뇌에
대부분의 인간은 맹수와 맨손으로 싸우면 죽는다.
대신 그 손에 무기가 들려 있다면 다르다.
다윗은 돌멩이로 골리앗을 죽였다.
총을 만든 이후 인간은 맹수를 죽일 힘을 얻었다.
맨손으로는 들개와 싸워서 이길지 말지 알 수 없는 인간이지만, 도구를 쓰면 사자도 죽인다.
그렇기에 도구를 쓰는 인간은 무섭다.
거기에 레이저 포를 쓰는 인간은 말할 것도 없다.
“한 방 더.”
콰웅!
레이저 포가 대기를 가른다.
좀 전까지 공포를 선사하던 칼날 가오리에게 두 번째 구멍을 선사하는 빛줄기다.
펑!
그리고 놈이 허공에서 터졌다.
-에너지 수급, 800만.
이런 화끈한 자식.
비트레이어 급이라더니, 역시나.
엄지를 척하고 올려줄 만큼 에너지가 쏠쏠하다.
“저건 뭐야?”
“아군인가?”
“놈들한테 레이저 포를 쏘는데.”
“나 비슷한 거 본적 있는데.”
“그거잖아. 침공선의 레이저 포, 똑같네.”
눈썰미가 있는 놈이다.
맞다.
침공선의 에너지 포를 연구해서 만든 것.
그게 지금 프로비던스가 쏘는 레이저 포다.
-두 발 남았어.
가진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과 별개로 많이 쓰진 못한다.
두 발.
‘방사형으로 변경.’
아직도 물밀 듯이 밀려오는 놈들이다.
칼날 가오리가 죽고, 그 뒤를 향해 세주가 손가락을 들었다.
“준비하시고, 쏘세요.”
파아앙!
배운 그대로를 한다면 수재, 배운 것 이상을 한다면 영재.
그리고 배운 것을 넘어 새로운 것을 한다면 천재다.
프로비던스는 적어도 기계 중에서는 천재다.
일직선으로 쏘던 레이저 포가 방사형으로 퍼진다.
일격에 비트레이어 급 괴물을 뚫어버리는 과격한 아이다.
퍼져서 위력이 흩어진다 해도.
“오 마이 갓.”
“지저스.”
“꿈인가?”
뒤에서 다시 지저귀는 목소리다.
방사형으로 퍼진 빛이 적을 녹였다.
전면 일대가 시원하게 트인다.
‘아, 힐링 돼.’
빛줄기도 아름답고 적들이 몰살당하는 건 더 아름답다.
-마지막 한 방.
깡그리 죽어 나간 놈들 사이다.
삼지창 같은 걸 든, 무사가 보였다.
“헬로우다. 저놈도 처리할 수 있나?”
언제 왔는지.
까무잡잡한 피부의 석 달 열흘은 못 먹은 얼굴의 남자가 말을 건다.
“물론.”
파앙!
세주의 손가락이 놈을 가리킨 순간.
갑자기 나타나 적의 궁둥이를 때찌해 준 레이저 포가 날아간다.
콰앙!
“어라?”
놈의 바로 앞에서, 레이저 포가 꺾였다.
‘배리어?’
-아니, 순수 힘.
힘?
삼지창을 든 놈이 세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상한 투구 사이로 섬뜩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그러니까 레이저 포가 날아오는데 그걸 창으로 후려쳤다는 거지?
‘저거 완전 또라이 아냐?’
그럴 힘이 있으면 피하는 게 정상 아니냐?
-조심해야겠어. 저놈만큼은 비트레이어 급 이상이야.
“안 죽었는데.”
옆으로 다가온 빈곤하게 생긴 놈이다.
“기다려 봐.”
현재 모드에 괜히 악몽이란 단어를 붙인 게 아니다.
본래 없던 모드였고, 업그레이드하며 생긴 모드다.
악몽.
적에게 그런 꿈을 꾸게 해주겠다는 의미다.
또한, 저 미친 로봇을 세상에 밝혀서 일상이 악몽이 된다는 의미다.
-거, 두 번째 의미는 참 듣기 껄끄러워.
‘오기나 해.’
세주가 오른손을 위로 뻗었다.
슝!
프로비던스가 세주의 오른팔로 온다.
위잉. 착착.
그리고 세주의 팔을 덮는다.
손등 위로 푸른 빛 렌즈가 나오고 길게 늘어난 몸체가 어깨까지 감싼다.
오른팔에 합체한 프로비던스다.
“악몽 마크 투다.”
-이 죽일 놈의 작명 센스.
옆에서 빈곤하게 생긴 놈이 놀란 눈으로 돌아봤다.
“저건 누구야?”
“동양인인데?”
“중국의 비밀병기인가?”
“아냐, 일본의 염동력자가 당해서 비밀병기가 온다고 했었어.”
니들 안 싸우냐?
왜 뒤에서 자꾸 재잘 대냐?
오른팔에 붙은 라이트 브로로 앞을 겨눈다.
모드도 없지만, 원래 맞추는 건 특기 중의 특기.
거기에 놈은 꼼짝도 안 하고 있다.
우우우웅!
오른쪽 손등 위로 빛이 모인다.
이름이 헬로우라고 했던가?
그에 걸맞은 인사가 필요하다.
“안녕. 개새끼야.”
콰앙!
푸른빛이 그대로 뻗어 나간다.
네 방의 레이저 포도 위력적이지만, 지금이 한 방은 더 묵직하다.
오른팔에 붙은 프로비던스는 세주의 몸에 호스를 박고 노블 에너지를 뽑는다.
그리고 일반 에너지와 섞어서 위력적인 한 방을 만든다.
그게 이거다.
쩌어어어어엉!
후아아악!
‘그래도 안 죽네?’
탁월한 시력이 놈의 날아가는 모습을 잡는다.
창을 빙글빙글 돌리더니 그대로 레이저 포에 찌른다.
저 새끼 무슨 판타지 세계에서 왔니?
뭘 광학병기에 냉병기를 가져다 대.
하지만 놈은 그걸로 막았다.
아니, 부쉈다.
레이저를 가르고 버텼다.
대신 몸이 뒤로 밀려 보이지도 않는 곳까지 날아갔다.
“죽였나?”
근데 이 새끼 누구지?
빈곤한 얼굴을 가진 놈이 재차 묻는다.
“몰라.”
못 죽였다.
뭐, 저런 새끼가 다 있나 싶다.
콰우우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배리어.’
무언가 날아온다고 느낀 순간, 라이트 브로 형태의 프로비던스에게 명령했다.
훙!
노블 패스가 엉망이라 쓰지도 못하는 노블 에너지를 실컷 삼켜 푸른 막을 만든다.
쩡!
하지만 날아온 물체는 창호지 찢듯 그대로 들이쳤다.
발로 빈곤한 자식을 밀고 옆으로 피했다.
쾅!
날아온 물체가 바닥에 그대로 내리꽂힌다.
드드드.
얼마나 무지막지한 힘으로 던졌는지 땅이 떨렸다.
놈이 들고 있던 삼지창이다.
‘얼마나 멀리서 던진 거냐?’
-몰라.
우웅.
오른팔에 붙은 라이트 브로를 해제했다.
“와.”
“이긴 건가?”
“진짜?”
뒤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놈들 얼굴이나 보자.
뒤를 돌아보자, 피에 절고 절뚝이며, 어안이 벙벙한 이들이 보였다.
“이겼어!”
“저 일본인이 우리를 살렸어!”
“와!”
“재팬!”
이런 미친 새끼들이.
“아임 코리아아아아안!”
우렁차게 외쳐줬다.
썰렁한 공기가 주변을 스치고 갔다.
레이저 포와 치용, 인준, 유진의 활약에 전면에 남은 적이라고는 그린밤이라는 놈뿐이다.
“에, 코리안 만세!”
“한국 만세!”
“와아아아아아아아!”
그제야 함성이 제대로 들린다.
“고맙다. 여기가 끝인 줄 알았다.”
빈곤한 놈이다.
“근데 누구?”
“아비 크헨, 이스라엘에서 왔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세주가 그 손을 맞잡았다.
“진심으로 감사한다.”
말하는 상태를 보니, 이스라엘의 국민 영웅쯤 되는 것 같다.
고작 일개 병사가 지금 세주 옆에서 감사를 표하지는 않을 테니까.
근데, 왜 이렇게 비틀댈 정도로 말랐는지.
“와아아아아아!
들려오는 함성과 함께 해가 느물느물 지고 있었다.
다시 밤이 온다.
빗줄기가 점점 옅어지더니, 그쳤다.
“멋져!”
“최고야!”
세주를 향한 환호가 끊이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지금 막 목에 칼이 들어와서 죽기 직전에 뒤에서 누가 나타나 칼 든 강도 놈 멱을 따줬다.
감사하지 않으면 사람 새끼가 아니다.
“얘들아 가자!”
그건 그거고.
지금 당장은 세주를 비롯한 저 셋도 쉬어야 한다.
이들 덕분에 소강상태가 됐으니까, 쉴 시간은 있을 거다.
“그린밤은 처리 안 하나?”
아비 크헨이 물었다.
“저건 다음에 하자.”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말했잖아. 악몽 모드 합체는 맨몸으로 하면 부담이 될 거라니까.
알아. 기계 새끼야.
알지만 형이 지금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니었잖아.
-하여간 내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데.
자다가 떡 먹으면 목 막혀 죽어. 이 미친 새끼야.
“후, 하긴 지금 누가 당신의 말에 반기를 들겠나.”
그가 웃었다.
해골이 웃는 것 같아서 그리 보기 좋진 않다.
치용이 제일 먼저 도착했다.
그의 활약도 본 이들이 환호를 외쳤다.
“베어! 베어!”
여기서나 저기서나 곰이다.
“몬스터! 몬스터!”
음. 업그레이드됐다.
곰에서 괴물로.
“뭐라는 거야.”
콧김을 뿜으며 치용이 답했다.
이 자식은 왜 욕구 쌓인 발정 난 강아지 같은 표정일까.
“그놈 못 찾았습니다. 나 죽일 뻔한 놈.”
아아.
그 덩치 크고 사나운 괴물을 죽이지 못해서 화가 났구나.
이 단순하고 무식한 놈아.
“와아아!”
다음은 인준이다.
치용은 사실 근처에 있지 않으면 활약을 보기도 힘들었을 거다.
하지만 인준은 아니다.
그는 중화기로 무장한 남자, 화려하게 적을 터트리고 죽였다.
거기에 아머에 들어있던 지뢰탄.
땅을 파고 들어가 터지는 아주 특별한 폭탄이다.
물론 프로비던스가 개발한 물건이다.
칼날 두더지를 쓸고 백린탄을 쏘는 그의 모습은 가히 영웅 서사시의 한 장면이었다.
“콜드 하트! 콜드 하트!”
‘뭐라는 거야?’
-차가운 심장이라잖아.
‘저기, 외계어는 잘도 의역하면서 이건 직역하냐?’
-냉정한 사람이란 뜻이야.
무표정하게 싸우는 인준을 가리키는 별명이다.
눈앞에서 적이 터져 녹색 체액을 뒤집어써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는 인준이다.
“흥.”
내심 마음에 들었구나.
인준은 코웃음을 치며 가벼운 미소를 보였다.
기분 좋냐?
그리고 유진이 어느새 다가와 생긋 웃는다.
그는 조용히 숨어서 적의 요인을 암살했다.
부대원의 위협이 될 놈들을 미리 제거하는 역할이었다.
고로, 그의 활약은 아무도 보지 못 했다.
하지만 모두 그를 보는 순간, 아니 일단 여자들은 그를 보는 순간 외쳤다.
“프린스!”
“프린스!”
“와우!”
대부분 여자 목소리다.
미추를 따지는 눈은 전 세계가 같은 건지, 아니면 이 새끼가 정말 너무 잘생긴 걸까?
“재수 없는 놈.”
세주가 그를 보며 말했다.
자신은 고작 코리안이다.
근데 이 자식들은 그럴듯한 별명이 붙었다.
“아비 크헨!”
바로 옆에 빈곤한 놈을 향한 함성도 있었다.
이름보다는 해골이란 별명이 잘 어울리겠다.
“제길, 꼼작도 못 하겠다. 오늘은 능력을 너무 많이 썼어.”
그가 중얼거렸다.
“능력?”
“나 아비 크헨이다.”
아니, 능력 물어봤지, 누가 이름 물어봤냐?
“어제의 싸움을 봤다면 날 모를 수가 없을 텐데.”
안 봤어. 그니까 말이나 해.
“그것보다 먹을 거나 좀 있으면 나눠 줘.”
먹을 거야 넘친다.
인벤토리에 3분 카레부터 갖가지 걸 다 담아왔으니까.
그중에서 특별히 아끼는 걸 꺼내줬다.
“한국 보급품 중 최상품이다.”
“오, 정말인가?”
군코바를 건네줬다.
그가 그걸 한 입 깨물더니, 묘한 표정을 지었다.
“…독특한 맛이군.”
응. 코 맛이야.
그래도 우적우적 다 씹어 삼켰다.
그러더니, 몸에 살이 붙는다.
실시간으로 살이 찐다. 이게 능력인가?
살찌는 능력?
“내 능력은 폭발이다. 다만, 너무 많이 쓰면 몸 안의 에너지가 극도로 소비 되 방금처럼 살이 쏙 빠져 버려.”
신기한 놈이다.
아비 크헨은 세주를 향해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고 있다.
남자한테서 받기 싫은 종류의 눈빛이다.
극도의 호감을 표하며 그가 입을 열었다.
“너도 외계인의 기술을 받은 거겠지? 나도 그 중 하나다. 다시 소개하지. 이스라엘의 아비 크헨이다.”
“그래. 만나서 반갑다. 하나 더 줄까?”
눈빛이 부담스러워, 군코바를 권했다.
“아니, 그건 됐다.”
역시 우리의 군코바 두 개는 못 먹지.
“그럼 귀환하자.”
일단 더 회복해야 한다.
몸이 아직도 삐걱댄다.
와아아아!
함성을 뒤로하고 그들은 움직였다.
아비 크헨의 막사로.
“왜 이쪽으로?”
묻지만 싫은 눈치는 아니다.
“이스라엘의 영웅이면 막사 크겠지? 우린 막사도 없거든.”
“빌어먹을 알버트, 이런 영웅에게 막사조차 내주지 않는 건가?”
이상할 정도로 연합군 수장에게 적의를 보이는 그는 자신의 막사로 그들을 초대했다.
천막은 24인용 텐트만큼이나 넓었고, 안에는 호피를 깐 침대가 있었다.
이 새끼, 전장 중에 아주 스위트룸을 만들어 놨다.
“내 능력은 휴식 없이 회복이 안 되기 때문에 막사는 좋은 편이다.”
응. 니 똥이다.
핑계는 새끼가, 그냥 이게 좋다고 말해.
막사 바닥에 몇 겹을 깔아놨는지, 냉기도 습기도 올라오지 않는다.
뜨거운 물과 보송보송한 이불만 있다면 아주 행복할 것 같다.
“쉬자.”
할 땐 하고 쉴 땐 쉰다.
인간의 몸은 한계가 있으니까 잘 쉬어 줘야 한다.
세주는 눈을 감았다.
테크룸으로 입장한 후 프로비던스를 찾았다.
“브로!”
-응.
“800만! 800만!”
당장 유니크 모드를 열 수도 있는 양이다.
-형 몸 빨리 회복하고 싶지?
“응?”
당연한 말을.
-그럼 병원 만들자.
갸우뚱.
고개를 모로 꺾고 프로비던스를 바라봤다.
-지금 하면 750만 초특가 세일! 병원을 지으면 초소형 나노 로봇이 형의 몸을 고쳐줘. 레스큐 모드랑은 비교도 하지 말고. 그건 모욕이니까. 이건 노블 패스도 고쳐 줘. 혹시 알아? 형의 고장 난 머리도 고쳐 줄지?
이 새끼가.
무조건 믿으라는 땅 투기 사기꾼 같은 말투지만.
마음이 움직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에너지 얼마라고?”
-750만. 캬, 죽이지? 어떻게 딱 50만 남기고 병원을 열 수 있는지. 사실 800만인데. 내가 응? 불세출의 오버테크놀로지잖아? 그래서 50만을 프로그램 수정으로 줄였어. 자, 오픈하자.
“그래. 하자.”
이래서 다들 사기를 당하나 보다.
홀라당 말에 넘어가 ‘병원’을 열었다.
연구실과 같은 형태의 구조물이 테크룸에 자리 잡는다.
동시에 몸 안에서 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완전 회복까지 4시간 30분.
효과는 죽여준다.
나흘이 걸려야 회복할 걸 고작 4시간 30분에 회복하게 해준다.
하지만 아까운 건 아까운 것.
똥 싸고 나면 마음 변하는 게 사람이다.
“으, 내 750만.”
-자, 회복하면서 놀면 뭐해. 훈련하자.
“무슨 훈련?”
-형, 커버링 기술 전이와 양도 배웠잖아. 하지만 양도를 쓰는 범위가 너무 허접해. 자, 그 시간이 다시 돌아왔어. ‘프로비던스 님 기술을 가르쳐 주세요.’ 시간!
“졸라 배우기 싫네.”
-어허!
배우긴 할 거다.
농담 삼아 말했지만, 프로비던스는 세주에게 해를 가하는 짓을 하지 않는다.
근데 기분은 더럽다.
“캬악 퉤!”
-에이 씨 어디다 침 뱉어.
테크룸은 사실 프로비던스의 세계다.
그니까 침을 뱉은 곳은.
“응. 니 뇌에.”
인공 지능 로봇의 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