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98화 (98/206)

#  98

98. 죽여주는 작명센스

프랑스 보급 장교는 패배를 직감했다.

‘보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군대가 이겼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다.’

쏴아아아!

쏟아지는 비가 그의 일을 더 힘들게 했다.

물안개가 시계를 좁혔다.

“쉬지 마! 앞쪽에 탄약 보급해야 해!”

탄약도 보급해야 하지만, 실제로 보급해야 할 건 식량이다.

전투 식량이 보급 된 뒤 6시간이 지났다.

아직은 괜찮다.

하지만 현재 탄약도 제대로 보급 되지 않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전선이 밀리더라도, 전방 부대를 후방으로 돌려야 했다.

“움직여! 모두 짐 챙기고 이동한다!”

트럭에 짐을 싣고 몸을 올리려던 참이다.

훅.

갑자기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부유감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릴 때 탔던 놀이기구가 떠올랐다.

땅이 멀어진다.

“어어어어!”

화아악!

빗줄기와 바람이 거세졌다고 생각했다.

그제야 등을 콱 쥔 놈이 있다는 걸 알았다.

‘잡혔다.’

철컥.

권총을 꺼내서 위를 향해 쐈다.

탕! 탕! 탕!

물론 놈은 꿈쩍도 안 했다.

꼼짝없이 잡혔다고 생각한 순간이다.

펑!

빗물과는 다른 걸쭉한 액체가 방탄모 위로 쏟아지고, 몸이 바닥으로 추락한다.

아니, 등을 쥔 놈도 함께다.

급격하게 가까워지는 땅을 보며 반사적으로 굴렀다.

파바박.

진흙이 된 땅을 구른 탓에 전신에 흙이 묻었다.

쏴아.

빗줄기 속에서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죽을 뻔했다.’

죽지는 않았다는 소리다.

뒤를 돌아보자.

머리가 터진 적이 보였다.

그리고 그 바로 옆.

퍽.

진흙이 된 땅에 떨어지는 또 다른 놈도 보인다.

퍽. 퍽. 퍽.

한두 놈이 아니다.

누가 하늘에서 살충제라도 뿌렸는지, 날아다니는 놈들이 갑자기 후두둑 떨어진다.

‘누가?’

아니, 어떤 사람이 이런 짓을 할 수 있지?

전선에 있던 부대가 돌아왔나?

그가 눈을 들어 앞을 바라봤다.

운무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누가 했는지는 몰라도,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놈들의 방해가 없다.

“…보급품 다시 챙겨!”

뛰어서 그가 돌아간다.

“무사하셨습니까?”

부대원 중 하나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전선으로 간다!”

주위를 둘러볼 새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현재 할 일이 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

치용은 눈을 떴다.

‘죽을 뻔했다.’

정말로 죽을 뻔했다.

“으으.”

신음이 들렸다.

몸을 일으켰다.

‘병원?’

태어나 한 번도 입원한 적이 없던 남자, 그걸 사나이의 기준으로 삼던 김치용이다.

근데 지금 이 꼴은 뭔가.

팔뚝이 링거 바늘이 꽂혀 있다.

“누가 이걸 꽂았어.”

팍하고 뽑자, 핏방울이 흩어졌다.

일어나자 바닥이 빙글빙글 돌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죽을 뻔했다.

마지막 기억이 흐릿했다.

자기보다 더 큰 놈과 싸운 것만 기억났다.

밖으로 나가려다 팔에 흰 완장을 찬 남자와 마주쳤다.

“…그, 아직 일어나면.”

“어흥.”

괜찮다고 답해주고 치용은 밖으로 나갔다.

쏴아아아.

비가 내렸다.

군복도 아머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앞으로 걸었다.

투두둑.

‘늪인가?’

가볍게 걸음을 옮기는데 바닥에서 누가 옷깃을 잡고 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진흙이긴 하지만 늪은 아니다.

그냥 다리가 무거운 거다.

“합.”

남자는 기합, 치용은 기합을 넣고 다시 걸었다.

정글도랑 붉은 막대기를 찾아야 했는데, 그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신음 소리와 시신이 굴러다닌다.

전부 무시하고 걸었다.

자신은 죽을 뻔했다.

100명과 싸운 것도 아니다.

1:1 이었다.

걷다 보니, 퍽하고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피해!”

“놈들이 없어졌어!”

바닥을 구르는 기묘한 생물체가 보였다.

무시했다.

관심 밖이다.

앞으로 걷다 보니,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아머를 입지 않았지만, 자신이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은 손톱만 봐도 알아보는 게 남자다.

“형님.”

“어? 왔어?”

저격 라이플을 들고 허공에 틱틱 방아쇠를 당기는 형님이 보였다.

그를 향해 치용은 고백했다.

“죽을 뻔했습니다.”

“어어. 그치.”

“정말 죽을 뻔했습니다.”

“응. 도로 죽이러 가자.”

“카웅!”

그래. 죽을 뻔했다.

그리고 이제는 복수할 차례다.

*

‘분명 죽을 거야.’

유진은 어릴 때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왕따를 당하다 계단을 굴렀을 때다.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어떻게 살았지?’

운이다.

머리가 모서리에 부딪힐 찰나, 올라오던 여자애와 부딪쳤고, 그 아이가 쿠션이 돼서 살았다.

‘나가서 싸우면 죽겠지.’

반세주란 사람이 떠올랐다.

그는 정말 대단하다.

훈련소에서 지금까지, 유진은 태어나서 그런 대단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말로만 형님이 아니다.

진심으로 유진은 그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전신이 쑤셨다.

투두두두두두둑.

천막 위를 때리는 빗소리가 들렸다.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쏴아아아.

비가 와, 낀 자욱한 운무다.

마치 자신의 앞날을 보는 것 같았다.

‘여기서 발을 내디디면 죽을지도 모른다.’

자신은 반세주가 아니다.

하물며 그 김치용도 아니다.

그런데도 왜 자신은 앞으로 걷고 있을까?

지친 몸을 이끌고 천막에 들어가 눈을 붙였다.

생각을 이을 겨를도 없이 푹 잠들어 버렸다.

정글 안에서 일어난 일은 참 힘들었다.

정말 힘들었다.

“일어났냐?”

천막 앞을 지나던 이가 보였다.

인준이다.

“세주 형 봤어요?”

“먼저 갔겠지.”

그럴 거다.

그는 일어나자마자 전장으로 향했을 테니.

“그렇겠죠? 화났으니까요.”

세주는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부수며 화를 내지 않는다.

그는 화가 나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대신 행동으로 보여준다.

52명.

유진은 정글 안에서 잃은 부대원의 숫자를 알고 있었다.

세주도 알 거다.

“가죠.”

“빌어먹을 놈들. 다 터트려 죽일 테다.”

세주의 반대다.

인준은 화가 나지 않아도 화를 낸다.

항상 화가 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인준도 정말 짜증이 치솟은 모습이다.

그는 정말 기분이 상하면 미간을 찌푸리는 버릇이 있다.

평소에 완벽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그지만 지금은 아니다.

“가요.”

둘은 앞으로 걸어 나갔다.

소총 한 자루 없다.

상관없다. 일단 세주를 만나는 게 먼저다.

어느 정도 걷자.

“카웅!”

특이한 고함이 들린다.

치용이다.

치용은 화가 나면 평소보다 격한 울부짖음을 뱉는다.

“왔냐?”

세주가 둘을 보고 손을 들고 인사한다.

“네.”

넷 다 몸이 정상은 아니지만.

넷 다 화는 났다.

‘난 화날 때 어떻게 했더라?’

모르겠다.

평소에 화를 불같이 내 본 적이 드물다.

“지금은 참아. 터트리는 건, 저 앞이다. 그러니까 웃지 마.”

‘내가 웃고 있었나?’

아, 생각해보니 계속 미소를 짓고 있었다.

유진은 화가 나면 조용히 웃었다.

그게 버릇이었다.

*

‘무기.’

프로비던스의 렌즈가 빛을 뿜는다.

유진의 유탄발사기가 달린 기관단총 두 정, 특수 제작 군용 대검 두 자루.

인젝션 탄 5,000발은 서비스다.

인준의 기관총과 청탄 10,000발.

그리고 망치다.

전에 인준이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었다.

보통 망치가 아니었다.

망치 머리가 성인 머리통만 하다.

맞으면 필히 어딘가 작살난다.

그리고 치용의 산탄총과 특수 제작 큰 정글도와 붉은 막대기.

“이거 챙기셨습니까?”

“응. 아깝잖아.”

다시 구하기도 만들기도 어려운 물건이니까.

그리고 아머를 꺼냈다.

“새로운 아머?”

인준이 멋들어진 자신의 아머를 보고 감탄을 터트렸다.

“좋지?”

“물론.”

순수한 감사를 표하는 녀석을 보고 흐뭇하게 웃어줬다.

“인벤토리 마크 투다.”

“노브레인 마크 투, 은따 마크 투.”

-만일 이게 소설이라면 그 작명센스 때문에 작가는 암살당할지도 몰라.

‘응. 소설 아니니까 괜찮아.’

“하하.”

유진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아머를 입는다.

“형님은요?”

“난 지금은 못 입어.”

아머의 무게도 견디기 버겁다.

대신 침묵을 들어 보여줬다.

“난 저격병이다.”

그리고 치용을 손가락으로 쿡 찌르며 말한다.

“척후.”

다음은 인준.

“척병.”

마지막은 유진이다.

“의무.”

그리고 모두를 돌아보고 말했다.

“가자.”

52명의 대한 복수의 시작이며, 엿 먹은 반세주의 반격이다.

‘복병에 잠복에 함정에 아주 가지가지 해줬겠다.’

-걸린 건 형인데, 뭘.

‘아니, 준비한 놈이 잘못이다. 남자라면, 사내라면 그러지 말았어야 해.’

프로비던스가 홀로그램을 만든다.

일기토를 하자고 덤빈 놈을 넷이서 다구리 쳐서 죽인 장면이다.

세주가 몸으로 그 영상을 뚫고 지나갔다.

“지금 내 눈에는 저 개자식들만 보인다.”

“카아아웅!”

“다 터트려주마.”

“에에, 죽지 않도록 열심히 싸울게요.”

넷이 전선에 도착한 직후다.

퍽!

뭔가 날아오자 치용이 손을 들어 쳐냈다.

“싸워!”

“밀리면 죽는다!”

전선은 지옥이었다.

땅콩 대부대, 날파리 대부대, 칼날 두더지 대부대다.

바퀴벌레를 닮은 놈들까지 있다.

거기에 죽은 시신이 녹색 반점이 돋아난 채로 덤빈다.

꽝!

폭탄 좀비다.

달려들어서 부딪치는 순간 폭발한다.

그 폭발에 당한 이의 팔이었다.

후방에 병력을 돌릴 여유가 없는 정도가 아니다.

절대로 지고 있다.

“노브레인 포메이션.”

세주가 입을 열자, 치용이 튀어 나간다.

“어어어어어흥!”

웅!

단숨에 칼날에 푸른빛이 솟는다.

위로 쭉 뻗은 칼날이 5m는 넘었다.

훙!

그걸 그대로 밑으로 내리꽂는 치용이다.

퍼버버벅!

범위에 있던 놈들이 전부 잘려서 흩어진다.

그대로 돌진.

중세 시대 기마병의 돌진만큼이나 훌륭한 돌파력이다.

“우랴압!”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 적군을 갈라 안으로 들어간다.

사방에 포위된 치용은 칼날을 눕혔다.

그리고 그대로 원을 그렸다.

촤아아아아악!

그 범위에 있던 놈들이 전부 썰린다.

단숨에 5m 이내에 적을 주살한다.

인준은 그 범위 바로 바깥이다.

말없이 기관총을 들더니, 그대로 갈긴다.

투다다다다다!

청탄, 커버링 기술로 만든 탄환이다.

노블 에너지를 집약해서 만든 탄환.

제조할 때 탄환 하나당 100의 에너지가 든다.

에너지 과소비다.

탄피가 사방으로 튄다.

그리고 그의 앞에 선 놈들은 없었다.

유진은 조용히 모습을 숨겼다.

그리고 적 사이를 누볐다.

아무도 그의 모습을 찾지 못하는 새였다.

적 사이사이에 특이한 모습을 한 놈들을 향해 자신의 인젝션 탄을 쏜다.

푹.

노란빛을 띠는 놈들이다.

일기토인지 뭔지 한다던, 적의 주력 보병.

“트레에에!”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놈들이 녹색 체액을 뿜으며 죽어 간다.

유진의 인젝션 탄은 지금도 계속 연구를 거듭하는, 놈들에게 작용하는 치명적인 독이다.

그리고 반세주는.

하늘을 나는 놈들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날파리들이 잔뜩 있다.

소소소소소소소소송!

초당 2발, 미친 속도로 총을 쏜다.

그 와중에 총구를 내려 달려드는 폭탄 좀비를 맞춘다.

꽝!

다가올 겨를을 주지 않는다.

단단한 침묵의 총열이 달궈져, 치이익하고 내리는 빗물과 만나 수증기를 피웠다.

전장에 도착한 지 단 10분.

전면 일대를 쓸어버린 그들이다.

그러자 강물에서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콰아앙!

빗물에서 솟는 거대한 놈이 보인다.

납작한 가오리를 닮았다.

전신에 칼날이 달린 것과 몸집만 빼고 말이다.

-비트레이어 급이야.

‘오냐.’

그렇다면 준비한 카드를 꺼낼 순간이다.

몸이 엉망이고, 풀업도 못하고, 모드를 제대로 못 써도 할 수 있는 건 있다.

‘모드 온.’

새로운 모드다.

몸에 부담이 가는 종류가 아닌 새로운 타입이다.

‘나이트메어.’

세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깨에서 프로비던스가 앞으로 나간다.

콰지직.

“어?”

모두의 시선이 모인다.

투명화가 풀린 프로비던스이 모습이 공개되고.

위이잉.

프로비던스의 렌즈 앞 빛이 모인다.

파앙.

그리고 놈들의 우주선에서 쐈던 것과 같은, 레이저 포가 뿜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