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96화 (96/206)

#  96

96. 함정

“곰 부대, 전면으로.”

세주의 명령은 거침이 없었다.

“우랏!”

치용이 앞으로 내달린다.

정찰병과, 즉 근접전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그 뒤를 따랐다.

급조한 편제다.

“왕자 부대 후방 경계.”

“옛!”

유진이 일부 인원을 데리고 뒤로 돈다.

계급을 무시한 일방적인 편제지만, 아무도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병신 부대 우측에 나오는 놈들 쓸어.”

“네.”

인준이 옆으로 돌아선다.

중화기를 다루는 이들이 전부 모였다.

“단추 부대!”

거기에 좌측을 맡긴 장광안의 사이키커 부대다.

얼굴에 50원 짜리만한 점이 붙은 남자, 장왕은 크롬 팀의 대장이었다.

그는 자신이 사이키커 부대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세주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필요한 건, 지휘관이다. 싸움질하는 놈이 아니라.”

용납할 수 없는 말이었다.

자신도 전술을 아는 남자다.

그 이후 두 번의 전투가 있었다.

“벽!”

광안이 외친다.

쿠드드드득!

단숨에 땅이 뒤집히며 흙벽이 세워진다.

염력을 쏟아 부어 만든 결과다.

“보자기!”

재차 들리는 외침이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알파 팀을 이끄는 저 눈알이 좁쌀만 한 남자는 부대를 운용하고 지휘하는 능력이 발군이다.

12명이 남은 사이키커 부대 중 둘이 염력을 거둔 뒤 소총을 들었다.

푸른 탄환은 아낄 수 있으면 아낀다.

대신 그들은 고속 유탄을 장착했다.

콰가가각!

벽이 공격해오는 적을 덮는다.

“쏴!”

슈우우우! 꽈광!

두 발의 고속 유탄으로 수십 마리의 적을 단숨에 소거한다.

단순한 전략이었다.

염력으로 벽을 만들고 덮는다.

그리고 그 안으로 고속 유탄과 수류탄을 던진다.

탄도 아끼고, 적도 빠르게 죽인다.

더구나 염력을 써서 적을 직접 죽이는 것보다 피로도가 훨씬 적다.

“이동.”

광안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움직이는 그들이다.

그사이 다른 부대도 주변 적을 전부 지웠다.

세주가 주먹을 쥔다.

다시 합류한 후, 움직이기 시작한 뒤 세주의 눈은 동태눈 같았다.

멍하니 허공을 보는 것 같은 상태로 그는 주변을 둘러본다.

명령을 내리고, 싸움은 곰 부대, 왕자 부대, 병신 부대, 단추 부대가 해치운다.

그 반세주가 갑자기 벼락을 꺼낸다.

세주는 벼락을 들고 단숨에 자세를 잡았다.

어딘가를 조준하는 모습이다.

장왕이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도 시력이라면 자신도 누구 못지않다.

하지만 지금 세주가 총구를 향한 곳은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는다.

하물며, 지금은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시간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이란 말이다.

이곳에 있는 모두 D를 복용한 이들이 아니었다면, 나무뿌리 같은 것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일이 허다했을 거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총을 들었다.

“전 방위 경계.”

인준의 목소리였다.

부대 모두가 세주를 중심으로 전후좌우를 경계한다.

“곰.”

세주가 조준한 채로 입을 연다.

“네.”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몸집이 큰 남자가 답한다.

어둠 속에서 실루엣만 보자면 정말 짐승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뒤에서 나 받쳐.”

그 커다란 몸집에도 소리 없이 세주의 뒤로 움직인다.

양손을 세주의 등에 댄 그다.

“풀 업 해라.”

세주가 입을 열며 말함과 동시다.

웅!

대기가 떨린다.

아니, 세주와 치용이 만드는 합주다.

둘의 몸에서 푸른빛이 터져 나왔다.

“대장.”

장왕이 옆을 보자, 크롬 팀의 막내다.

그가 물었다.

“노블 에너지로 저런 빛을 내는 게 가능한 겁니까?”

자신들도 풀 업 정도는 한다.

하지만 저 아우라는 뭐란 말인가?

장왕은 허세를 부렸다.

“노력하다 보면 돼.”

정작 자신도 처음 보는 광경이다.

화륵!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세주의 전신에 푸른빛이 타오른다.

끼에엑!

빛을 보고 재차 적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대기.”

세주의 목소리다.

막 교전을 준비하려던 인준과 유진이 제자리에 멈췄다.

평소에 농담과 반항을 일삼는 그들은 세주의 한 마디에 돌부처처럼 멈췄다.

끼에익!

촤아악!

소리만 들어도 어떤 놈들인지 알겠다.

끼에익, 하고 우는 놈은 ‘땅콩’이다.

전신이 마치 나무껍질 같은 외골격을 지닌 작은 괴물.

땅을 물살처럼 가르고 오는 건 칼날 두더지.

‘반격해야 해.’

장왕은 위기를 느꼈다.

그 순간이다.

훙.

후아아악!

뒤로 몸이 밀려난다.

갑자기 일어난 광풍이다.

장왕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비틀거리는 크롬 팀 막내의 옷자락을 쥐었다.

넘어지려던 막내가 몸을 바로 세운다.

“뭡니까?”

그가 놀라서 되묻는다.

정작 장왕도 묻고 싶었다.

언제 그랬는지, 치용의 발이 바닥에 찌이익 뒤로 밀린 채였다.

그리고 그 앞, 세주의 전신에서 빛이 사라진다.

“후우.”

눈을 감은 세주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꽤 지쳐 보였다.

그걸 본 인준이 외친다.

“쏴!”

아끼라던 푸른 탄환을 쏴대는 아군이다.

타다다다다!

적들이 다가오지도 못하고 죽는다.

“이동.”

지친 세주의 목소리다.

장왕은 궁금했다.

아까 무슨 일을 한 건지.

치용을 비롯한 셋은 놀란 눈치도 아니다.

광안을 보자, 그 작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물으려던 찰나다.

“아까, 뭘 한 겁니까?”

그보다 먼저 나선 이다.

탁월한 생존 본능으로 아군의 위험을 알려주던 송각무란 병사다.

“그 저격하던 놈, 항문에 총알을 박아줬지.”

세주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

-형은 미쳤어.

‘그래. 칭찬 고맙다.’

먼 거리에서 적을 죽일 수 있는 이를 저격병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저격병의 가장 기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시력이다.

보는 것.

청각으로 위치를 파악하든 감각으로 쏘든.

어쨌든 상대의 위치를 파악하고 쏘는 게 그들의 일이다.

세주는 스나이퍼 모드를 오픈하면서 시력이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하늘에서 독수리가 500원짜리를 쥐었는지, 50원짜리를 쥐었는지도 집중하면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모드 온 쉐어링 사이트, 스나이퍼.’

두 개의 모드를 발동한 채로 정글을 누볐다.

프로비던스의 시야를 공유했기에, 어둠은 문제도 아니었다.

밤의 정글을 헤치고 나아가는 그들이었지만.

적이 다가오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세주의 눈은 송각무의 감각보다 몇 배는 빨리 적의 위치를 찾았다.

‘빙고.’

-이대로 몇 시간을 더 누볐으면, 형이 먼저 쓰러졌을걸.

노블 패스가 따끔거릴 정도로 에너지를 운용했다.

일반 에너지를 노블 에너지로 치환할 수 있는 에너지 스위처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무리였다.

죽인 놈들의 에너지를 수급하면서 실시간으로 에너지를 보급한다.

효율은 안 좋았지만, 원하던 상황은 만들었다.

놈이 자신을 찾도록 한 거다.

다시 나서서 노리라는, 저격을 다시 시도하라는 도발이다.

“대기.”

세주가 부대원을 멈추고 벼락을 들었다.

저격 대 저격이라면, 먼저 발견한 쪽이 이긴다.

그리고 세주는 놈을 봤다.

전신이 회색빛을 띠는 인간과 같은 체형이다.

놈은 두꺼운 가지 위에 있었다.

그리고 오른팔을 들고, 자세를 취했다.

미국에서 죽였던 저격병과 생긴 건 똑같았다.

-인간 중에도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 있듯이. 저것도 같은 종류겠지.

그 사이 벼락을 겨누고 모든 준비를 마친 세주다.

치용을 불러 뒤를 받치게 한다.

양손이 등에 닿는다.

웅.

풀업에서 단숨에 번 업으로 넘어간다.

놈도 오른팔을 들어서 세주를 향한다.

붉은 점이 놈의 가슴을 가리킨다.

훙.

드드드드드.

몸이 뒤로 밀린다.

치용이 받쳐준 덕에 볼썽사납게 구르진 않았다.

몰입에 들어간 순간,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과해.

‘아니, 충분해.’

방금 쏜 탄환은 EB 탄, 일명 애비탄이다.

불릿 마스터 모드로 쏴준 한 발이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기에 거리가 너무 멀다.

대신 세주는 볼 수 있었다.

상체가 날아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놈을.

모드를 전부 끄자, 힘이 쭉 빠졌다.

“후우.”

숨을 내쉬며 몸을 추슬렀다.

“정리하자.”

목이 잠겼다.

묵직한 피로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움직여. 이곳에 머무르면 적습을 받을 확률 90%야.

부대는 다시 움직였다.

한참을 헤매는 중이다.

저 멀리서 꽝하는 폭음이 들렸다.

‘누구지?’

-지원군이겠지.

정면에 남은 부대의 교전일까?

그렇다면 기회다.

세주는 빠르게 부대를 이끌었다.

그들은 곧 녹색의 커다란 돌덩이를 볼 수 있었다.

킁킁.

세주는 냄새를 맡았다.

정말로 대단한 폭탄이라면 봄버맨 모드 덕에 냄새가 날 거다.

하지만 특별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녹색 덩어리는 골을 처음 봤을 때와 비슷했다.

둥. 둥.

일정한 주기로 박동이 느껴졌다.

이상할 정도로 불쾌했다.

눅눅한 공기 때문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함정이야.

녹색 덩어리 앞이 좌우로 열린다.

폭탄은 개뿔.

저건, 이곳에 자리 잡은 놈들이 타고 온 우주선이었다.

좌우로 크게 열린 곳, 칙칙한 어둠 속에서 쿵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앞발을 시작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놈이다.

치용보다 배는 크다.

양 팔뚝에 가시 같은 칼날이 달려 있다.

머리는 없었다.

아니, 두 눈과 커다란 입이 가슴에 박혀 있다.

두꺼운 팔과 다리, 온몸을 감싼 보랏빛의 갑주를 두른 놈이다.

“트레이.”

놈이 나와 읊조린다.

선명하게 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상하게도 놈이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반갑다고 하네.

‘엿이나 처먹으라고 해.’

“부대 반전! 전원 전장 이탈한다!”

세주가 외쳤다.

“부대 반전! 이탈이다!”

복명복창하며 전 부대가 뒤로 돌아 뛴다.

꽝!

폭음이 터진다.

그 덩어리가 있던 자리다.

바닥이 팬 게 보였다.

놈의 모습은 부대 위쪽에 나타나 밑으로 떨어졌다.

슉.

바로 옆에서 치용이 푸른 칼을 들고 움직였다.

놈을 향해서다.

꽝!

둘이 충돌하며 묵직한 소리가 대기를 울린다.

“어흥!”

치용이 거칠게 소리쳤다.

그사이 부대가 뒤로 빠져나간다.

치용은 빠져나가지 못하고 놈을 향해 칼을 휘두른다.

놈은 양팔을 휘둘러 치용에게 맞섰다.

-놓고 가야 해.

한 명도 남겨두고 갈 순 없다.

아니, 남게 된다면 자신이 남는다.

-그냥 가.

‘입 닥치고 있어.’

부대가 움직이는 걸 확인하며 뒤로 몸을 돌렸다.

화륵.

갑자기 허공에서 불꽃이 생기더니 꽝하고 터진다.

치용과 놈, 둘 사이다.

그리고 황금빛이 번쩍하고 대기를 갈랐다.

쩡!

놈을 향해 돌격한 황금빛 물체가 튕겨 나온다.

“김치용!”

세주가 외치자, 그가 뒤로 돌아서 물러난다.

황금빛 물체, 안나 휴이츠다.

왜 여기에 있는지 물을 틈도 없었다.

“빠져나간다!”

세주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사방에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안나가 부대로 합류했다.

아니, 그녀뿐 아니다.

-뺀질이네.

맥폴 테리, 영국군의 영웅이라는 녀석도 함께다.

말을 나눌 것도 없이, 그대로 내달리는 그들이다.

달리는 전면이다.

바글바글하게 모인 땅콩 놈들이 길을 틀어막는다.

“전군 교전!”

세찬 세주의 외침과 함께, 남은 커버링 탄환을 쏟아낸다.

투두두두!

싸운다.

다친 이가 생긴다.

나노킷을 쓰고, 다시 움직이고 싸운다.

미친 듯이 뛰면서 싸우고 또 싸운다.

-모드는 무리야.

오면서 너무 무리한 탓이다.

노블 패스가 시큰거렸다.

세주는 뛰면서 벼락의 방아쇠를 당겼다.

쾅!

치용이 큰 칼을 들고 날뛴다.

인준이 백린탄을 사방에 뿌렸다.

유진은 아군 사이를 뛰었다.

“뒤로 빠져!”

어울리지 않은 거친 외침이다.

유진은 위험한 상황에 빠진 이를 뒤로 당겼다.

그를 향해 나노킷을 뿌리며, 방아쇠를 당긴다.

“후방 막아!”

광안의 외침이 들렸다.

꽝!

폭음이 터지고, 사방에 수류탄을 던진다.

“크아앙!”

치용의 외침이 들려왔다.

애비탄을 쐈던 것이 확실히 무리는 무리였다.

몸이 평소보다 무겁다.

세주는 쉴 틈 없이 총을 쐈다.

아니, 이곳에 있는 모두 살기 위해 발악했다.

“수류탄 없습니다!”

누군가 외친다.

“제기랄!”

사방에서 터지는 절망에 가까운 외침이다.

사이키커 전부 코피를 줄줄 흘리며 싸웠다.

-커버링 탄환 다 썼어.

인벤토리에 담은 탄환도 끝났다.

인준도 백린탄이 떨어졌다.

그래도 멈추지는 않았다.

몇 번이나 적을 만나고 싸웠는지 모를 정도의 난전이다.

부대원 중 둘이 뒤로 처진다.

부상 탓이다.

난전 중에 입은 다리의 상처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레스큐 모드 온.’

-빌어먹을! 여기서 죽을 생각이야?

여기서 모드를 운용하면 세주의 몸이 견디질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구경만 할 순 없다.

레스큐 모드 스킬 중 하나다.

허공에 치료용 드론을 만들어 사방에 퍼트린다.

‘누구도 죽게 안 둬.’

싸우고 또 싸운다.

황금빛을 뿜는 안나의 활약이 돋보였다.

“본대 쪽으로 가자!”

맥폴의 외침이다.

화륵!

그는 허공에 불꽃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뿌렸다.

쾅!

그러던 중 앞쪽에 폭음이 울렸다.

다시 그놈이다.

육중한 몸과 칼날을 두른 팔을 가진 놈.

-나서면 형 죽어.

알지만, 저놈 덕에 몰살당할 순 없다.

세주가 나서려는 순간이다.

“제 차롑니다.”

치용이 그를 제치고 뛰어나갔다.

쩡!

말릴 새도 없다.

푸른빛이 번쩍이는 칼과 놈의 팔이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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