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94화 (94/206)

#  94

94. 대실패.

휘리릭!

눈앞에서 녹색 채찍이 움직였다.

다이스는 그 지나가는 채찍에 머리를 맞았고, 잘못 넘어져 뇌진탕으로 기절했다.

그리고 지금 눈을 떴다.

그는 숨도 함부로 내쉬지 못했다.

주변에 동료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키는 장면이 보였다.

처음에는 이긴 줄 알았다.

자신들에게는 황금빛 여신이 있었고, 무기가 있었다.

녹색 알 괴물, 강을 뚫고 올라온 칼날 괴물.

외계인이 기르는 짐승일까? 아니면 저게 외계인일까?

이건 현실일까?

꿈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꿈일 거다.

이런 게 현실일 리 없다.

우드드득.

선임 하사관이자 자기 아내의 오빠다.

방금까지 ‘사람’이었던 자가 부러진 목을 자기 손으로 맞춘다.

피부 전신에 녹색 점이 퍼지더니, 저 상태가 됐다.

눈알 하나가 툭 튀어나와 있다.

시신경에 걸려 눈알이 대롱대롱 매달려 가슴을 통통 때린다.

구역질이 나오는 걸 참았다.

입을 손으로 틀어막은 다이스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 지랄 맞은 꿈이 깨길 바라며.

하지만 꿈은 계속됐고, 다이스는 살아야 했다.

아내와 아이가 떠올랐다.

그가 몸을 뒤로 질질 끌었다.

죽은 아군 전부가 몸을 일으킨다.

좀비도 아니고 보기만 해도 끔찍한 광경이었다.

출렁.

강물이 출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쨌든 살기 위해서 저 강을 넘어야 했다.

슥슥.

걸리지 않도록 조심히 기어가는 중, 누군가 옆에서 톡하고 팔뚝을 쳤다.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걸렸나?’

침을 꿀꺽 삼키며 옆을 봤다.

“쉿.”

다행이다.

산 사람이었다.

“저놈들 반응 없어. 이대로 빠져나간다.”

장교였다.

다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대로 복귀 후 지원 요청한다. 저 개새끼들 이대로 놔두지 않는다.”

“옛 써.”

없던 용기가 솟았다.

슥슥.

기고 또 기었다.

강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쯤이다.

‘살았다.’

다이스의 손끝이 강물에 살며시 들어갈 때.

퍽!

옆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꾸엑.”

그리고 자신을 이끈 장교의 입에서 빨간 게 삐죽하고 나온 게 보였다.

고개를 뒤로 돌렸다.

두툼한 발이 장교의 등을 밟고 있다.

‘내장이구나.’

장교의 입에서 나온 빨간 것이 뭔가 했다.

끽소리도 못하고 죽은 그를 보는데 말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트레이가 아니라 익숙한 언어였다.

“H.E.L.L.O.”

두툼한 발의 주인이다.

‘말이 통하나?’

그럼 죽이는 게 아니라 포로로 삼는 건가?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갔다.

천천히 양손을 들어 항복의 의사를 표현하려는 순간이다.

스걱!

목에서 작열감을 느꼈다.

다이스는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다고 느꼈다.

빙글빙글 도는 와중에 밑에 놈이 보였다.

손에 거대한 삼지창 갖은 걸 들고 있다.

‘아, 나 죽었나?’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통.

죽은 이의 머리통이 바닥에 떨어져 튕긴다.

회색의 아머를 갖춰 입은 놈이, 손에 든 삼지창을 휘리릭 돌렸다.

후두둑하고 피가 주변에 뿌려졌다.

삐죽삐죽 가시가 솟은 투구를 한 번 고쳐 쓰고는 그가 시체를 발로 툭 찼다.

스스스스스스!

녹색 알 같이 생긴 괴물의 촉수가 바닥을 타고 달려온다.

그리고 그 촉수가 시신의 몸통에 박혔다.

푹!

“H.E.L.L.O.”

그걸 본 회색 갑옷을 입은 놈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걸 알아들을 수 있는 존재는 한 명도 없었다.

전멸이었다.

3국이 합심해서 짠 그린 밤 작전은 실패였다.

그냥 실패도 아닌, 수천의 사상자를 만든 대실패다.

*

진득한 공기가 목 뒤를 스쳤다.

열대우림은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몇 시간이나 지났지?’

송각무는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생존 본능, 스스로 이름 붙인 그 능력이면 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군과 흩어지기 전, 자신의 바로 후임의 팔이 날아가던 것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가 지른 비명이 귓가에 메아리친다.

다리가 부러진 채 도망치던 이.

머리가 터져 죽은 이.

단 한 순간에 지옥도가 펼쳐졌다.

전부 죽었을 거다.

그 정도 상처를 입고 살 순 없다.

각무는 거기서 죽는 대신 도망갔다.

‘송각무, 이 치킨무보다 못한 놈.’

스스로를 책망한다고 해도 변하는 건 없다.

도망의 연속이다.

사방에 적들만 가득한 것 같다.

스스스.

갑자기 선명하게 귀를 파고드는 소리에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고개를 돌리니, 뱀 한 마리가 나무를 타고 밑으로 기어갔다.

‘끝이구나.’

불길한 느낌이 드는 곳을 피해서 달렸지만.

결국, 여기가 마지막이었다.

사방 어디를 봐도, 살아날 구석은 없다.

본능이 말해줬다.

안전한 곳 따윈 없었다.

철컥.

소총을 들어 탄환을 확인하고, 수류탄을 하나 꺼내 들었다.

겁이 나지 않으면 거짓말이다.

“죽을 땐 죽더라도.”

겁을 집어먹는 대신 혼잣말을 내뱉는다.

누구라도 같이 있다면 좋겠지만, 어느새 뿔뿔이 흩어져,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너무 넓다.

한 번 흩어진 이들이 모이기에는 지나치게 넓다.

“그냥은 안 가지.”

이도 저도 안 되겠다 싶으면, 악이라도 써.

곰 인간, 김치용이 했던 말이다.

그 말을 실행할 줄이야.

스스스스.

후두두두둑!

나무를 등지고 들리는 소리다.

놈들이 다가온다.

“오냐. 같이 가자.”

뒤로 돌아서 수류탄을 던진다.

꽝!

동시에 소총 방아쇠를 당겼다.

투두두두두!

그 틈으로 놈들이 달려든다.

바퀴벌레를 닮은 괴물들이다.

퉁!

단숨에 120발로 개조된 탄창이 빈다.

철컥.

1초도 되지 않아, 재장전을 하고 연신 방아쇠를 당긴다.

놈들이 몰렸다 싶으면, 소총 위로 달아둔 고속 유탄을 쏜다.

꽝!

쿠쿠쿠쿠궁.

바퀴벌레 무리가 갑자기 뒤로 물러났다.

‘응?’

순간,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때린다.

각무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옆으로 뛰었다.

파악!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뭔가 슉하고 지나갔다고 느낄 뿐이었다.

“끕.”

비명은 지르지 않았다.

덜렁하고 허공에 뜬 자신의 군화가 보였다.

아니, 잘린 건 자신의 오른쪽 다리다.

허벅지 밑이 허전했다.

격통이 전신에 엄습했다.

“끕. 개새끼들아!”

투두두두두! 슈욱!

남은 탄환과 유탄을 전부 쏟아낸다.

그리고 냅다 수류탄을 던졌다.

꽈과광! 꽝!

오른쪽 다리 밑으로 생명력이 빠져나가듯 피가 콸콸 흐른다.

쇼크사로 죽지 않은 게 다행이다.

‘아니, 죽는 게 나았을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은 수류탄은 네 개, 동시에 안전핀을 손에 쥐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고작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온 것만으로는 다리가 뜯긴 고통이 사라지지 않았다.

“같이 죽자. 개새끼들아.”

다가오면 수류탄을 터트리자.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이다.

“죽긴 왜 죽어.”

각무는 훈련소 교관 셋, 그러니까 치용, 인준, 유진 이 셋 중에 최악의 교관을 꼽자면 번번이 인준을 꼽았다.

그의 말투는 언제나 신랄했고, 가차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 괴로웠다.

“목숨 아낄 줄 모르는 놈이네.”

살아생전, 이 목소리가 반가운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인준이다.

두꺼운 아머를 입은 그가 양팔을 내민다.

텅!

분사구가 나오고.

화르르르륵!

불길을 뿜는다.

푹!

그 틈에 누군가 다가와 목에 무언갈 꽂는다.

“진통제야. 진정해.”

유진의 목소리였다.

그가 다리 상처를 보더니, 끈을 꺼내 꽉 묶는다.

이미 흘린 피가 한 바가지다.

눈앞이 가물가물하다.

그의 본능이 살아날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온다.

“놔두고 가십시오.”

각무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죽음에 초연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

이 정도는 견딜 수 있다.

죽더라도 질질 짜면서 가지는 않을 거다.

그런 생각이 드는 와중이다.

딱!

“억?”

뒤통수를 누가 세차게 때렸다.

“뭐 새끼야?”

자신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인간이다.

“이 새끼가, 말이라고 막 하네. 죽긴 왜 죽어?”

파삭.

동시에 머리 위에서 흰 고리가 깨지더니, 가루가 몸을 덮는다.

“어?”

유진이 그걸 보더니 다리를 지혈하던 끈을 풀어버린다.

“으, 으갸갹!”

오른 다리에 격통이 재차 엄습한다.

아니, 고작 건드려서 아픈 게 아니다.

그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밑을 보자 다리가 재생되고 있다.

그에 놀랄 겨를도 없었다.

“끄으으으.”

다리가 잘리는 것보다 배는 아프다.

그 틈이다.

슈가각!

그의 다리를 잘랐던, 날카로운 칼날이 날아온다.

훅.

송각무의 눈앞을 커다란 등이 막아섰다.

쩡!

그리고 들리는 굉음이다.

치용이다. 그가 앞을 막고 상대의 공격을 쳐냈다.

바퀴벌레 놈들 사이다.

양팔이 긴 채찍처럼 늘어진 이상한 놈이다.

아니, 채찍이 아니라 그게 바로 그의 다리를 자른 칼날이다.

얇고 가는 칼날을 리본처럼 허공에서 휙휙 돌리는 놈이다.

훙! 훙!

단숨에 칼날이 재차 짓쳐들어올 것 같았다.

“위험….”

꽝!

“…합니다.”

각무의 말과 말 사이에 터진 폭음이다.

그리고 그의 앞에 칼날 채찍을 휘두르던 놈의 상반신이 날아간 게 보였다.

이런 걸 할 수 있는 무기는 자기가 알기로는 하나뿐이다.

폭탄이 아닌 탄환이 지닌 위력만으로 상대의 상반신을 날리는 무기라면.

뒤로 고개를 돌렸다.

“여. 괜찮냐?”

벼락의 주인이다, 반세주.

유진이 주사한 진통제 덕분에 고통이 조금씩 가셨다.

‘살았구나.’

그를 본 순간, 본능이 속삭였다. 이곳에 죽음의 위험은 없다고.

송각무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그에게 경례를 붙였다.

착!

“필승!”

자신은 살았다. 안도감과 죄책감이 들었다.

동시에 심장이 시큰거렸다.

죽은 이들의 모습이 머리를 스친다.

팔을 잃은 후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와, 대단합니다.”

‘그래. 평생 환청이 들릴지도 모르지.’

그를 놔두고 왔다는 것, 평생 그를 괴롭힐 거다.

“안 아픕니까? 전 무지 아팠습니다.”

팔이 잘린 후임이 그의 앞에 서 있다.

“환영도 보이다니.”

각무가 중얼거렸다.

“…대장님. 맛탱이 간 것 같습니다.”

그가 각무를 가리키고 손가락으로 귀 옆을 휙휙 돌린다.

“이 새끼가, 후임이 선임한테.”

자기도 모르게 그를 향해 소리치자.

“에? 멀쩡합니까?”

후임이 웃으며 답한다.

끔뻑.

눈을 감았다 떴다.

환영도 환청도 아니다.

“어이, 치킨무. 특공 정신으로 무장했네?”

그제야 자신의 손에 들린 수류탄 네 개가 보인다.

그것보다 더 놀라운 건 눈앞의 사람이 멀쩡하게 나타난 거다.

“…강심수 대위님?”

폭발에 휩쓸려 팔, 다리가 부러져 날아가는 걸 봤다.

육해 부대 대장, 강심수 대위 그가 눈앞에 있다.

“어이, 정신 차려. 각무.”

강심수가 그의 이마를 탁하고 쳤다.

“…어떻게 된 겁니까?”

각무가 이마를 쓰다듬으며 되묻는다.

강심수가 답하기 전, 세주가 그들 사이로 들어온다.

“총원 백에서 현재 인원 48명. 이제 다리 멀쩡한 것 같은데?”

“아!”

발가벗겨진 다리가 보인다.

아머가 찢기고 옷가지는 없지만, 멀쩡한 허벅지 근육이 보인다.

발가락도 멀쩡하다.

꿈틀거려 봐도 자기 다리가 맞다.

“제가 꿈을 꾸는 겁니까?”

“아니.”

세주가 고개를 젓는다.

“그럼 뭡니까?”

“사실 내 몸 안에 싸가지 없는 오버 테크놀로지 기계가 있어서 네 다리도 재생한 거고, 반격을 준비 중이지.”

“…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준장님의 썰렁한 농담을 다시 듣다니.”

“농담 아닌데.”

주변을 둘러봤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이들 중 반 이상이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이제 다 죽고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사내새끼가.”

강심수가 씌익 웃는다.

그 또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전부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에 나타난 세주다.

“전장이다. 눈물을 아껴. 아직 할 일이 많다.

세주가 그를 보고 말한다.

훈련소와 지금까지를 통틀어 처음 듣는 격려다.

“넵!”

각무가 세차게 외쳤다.

“그 전에 신발하고 옷 좀 챙겨라.”

강심수가 자신의 잘린 다리를 들고 온다.

잘린 자신의 다리에서 군화를 벗긴다.

살면서 다시는 해보지 못할 경험이었다.

그들이 모인 직후, 세주가 눈살을 찌푸린다.

“온다.”

세주가 주먹을 들어 앞으로 반쯤 뻗는다.

뒤로 물러나며 교전하라는 수신호다.

“탄창 바꾼다.”

그리고 세주가 입을 연다.

유진과 인준이 뒤로 움직이며 그들에게 탄창을 보급한다.

셋은 어디에 저렇게 많은 탄을 들고 왔는지 모를 노릇이다.

아니, 애초에 다리 재생부터 말이 안 된다.

“생각하면 머리만 아파.”

계급이 괜히 높은 게 아니다.

강심수가 명답을 내렸다.

보급된 탄창은 묵직했다.

탄창의 안쪽에서 푸른빛이 보였다.

“똘똘한 개미 대형으로.”

세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가오는 적을 향해 조준 사격하라는 신호다.

철컥.

탄창을 바꾼 그들이 앞으로 총구를 세우고 자세를 잡는다.

곳 우거진 수풀 너머로 무언가 꿈틀거리며 다가온다.

파사사삭!

우직!

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와 우림을 헤치고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기다려.”

세주의 목소리다.

긴장감에 식은땀이 흐른다.

꿀꺽하고 침을 삼킨 부대원 모두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리고 기다렸다.

“조준.”

다시 세주의 목소리가 들리고.

끄에에엑!

적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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