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
93. 이모탈 엔젤스
눈을 뜬 세주는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을 삼켰다.
“음.”
-움직이지 마. 척추에 손상이 입었어. 잘못 움직이면, 평생 불구가 돼.
눈앞에 프로비던스의 렌즈가 보인다.
고작 한 방에 몸이 망가졌다.
아머와 단단한 솜털 덕인가?
치용의 어깨가 뚫린 장면이 떠올랐다.
“치용은?”
“일어났나?”
인준이 다가왔다.
피가 튀어서 까맣게 딱지가 진 얼굴이 보인다.
평소보다 더 무서워 보이는 얼굴이다.
“응. 잘 잤다.”
“…곰은 죽진 않았다.”
다행이다.
죽지만 않으면 된다.
“후, 일으켜줘.”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된다니까.
‘괜찮아.’
인준이 옆구리에 팔을 끼웠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워줬다.
등을 기대고 나니, 토굴 같은 곳이다.
낮은 천정에서 흙이 부스스 떨어져 내렸다.
“운이 좋았어. 달리다가 발견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인준이 설명한다.
“응. 유진은?”
“저기.”
인준이 어깨 뒤를 엄지로 가리켰다.
유진이 토굴 벽에 비스듬히 누워 잠들어 있다.
“얼마나 지났지?”
“습격 후 6시간.”
“음. 어? 일어났어요?”
유진이 눈을 떴다.
그가 세주를 보고 반갑게 웃었다.
부자연스럽게 바닥에 늘어뜨린 팔이 보였다.
“이거요? 부러졌어요.”
겨우 한 번 놈의 탄환을 막았을 뿐이다.
그런데 팔이 부러져?
“방패는 멀쩡한데. 제 팔이 버티질 못했네요.”
“나노킷은?”
“인준이 형이 해주고 있는데 효율이 너무 떨어져요.”
“가져와.”
-안 돼! 지금 노블 에너지를 운용하면 척추에 이상이 생길 수 있어.
‘걱정하지 마. 컨트롤 능력만 쓰면 돼.’
세주가 나노킷을 건네받고, 유진의 팔에 에너지 입자를 뿌렸다.
겨우 에너지를 컨트롤 하는 거로도, 묵직한 통증이 등골을 타고 목을 스쳤다.
보통 부상이 아니다.
‘에너지 체크 해.’
-남은 에너지 350만.
자잘 한 숫자는 필요 없다.
350만이면 유니크 모드 하나는 열 수 있다.
나노킷은 사기적인 능력을 갖춘 치료제지만.
골절을 단숨에 낫게 할 순 없다.
거기에 치용.
눈을 감은 그의 어깨는 간신히 팔이 붙어 있는 형국이다.
저대로라면 팔을 잘라야 한다.
나노킷 정도로 치료되기에는 너무 중상이다.
‘상처 살펴봐.’
놈의 탄환이 꿰뚫은 흔적이다.
저건 정보다.
프로비던스가 푸른빛을 뿌리며 상처를 살피는 동안이다.
“나머지는?”
“반은 죽었을 거다.”
인준이 말했다.
눈을 감았다.
한 명도 죽이지 않는다고?
그 얼마나 오만하고 멍청한 생각이었을까?
그래. 자신만만했다.
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훈련을 거세게 시키면서도 이길 줄 알았다.
긴장감이 들지 않을 정도로 적은 약했다.
형태변환자라는 놈은 전투력이 전무할 정도였고.
미국에서 마지막에 습격한 저격을 하던 개체를 죽이고 정보를 습득한 순간, 이겼다고 생각했다.
정보에 앞섰고, 적을 노린 작전이 성공했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제대로 얻어맞았다.
그것도 단 한 놈에게 당했다.
‘5초에 한 발 정도.’
기억을 더듬었다.
탄환의 위력과 날아드는 간격, 당하는 순간 궤도.
‘빠르고 강력하다.’
벼락과 맞먹을 정도다.
결론은.
적에게 벼락을 쥔 자신에 버금가는 저격수가 있다는 거다.
청각으로 적을 감지하며 쏴대는 놈과는 격이 다른, 개체다.
탄환에 뚫린 상처를 본 프로비던스다.
-에너지가 집약된 탄이야.
“커버링 탄환이란 소리냐?”
-비슷해. 아니, 그것뿐 아니라, 상처가 나선 모양으로 말렸어. 강렬한 회전을 동반했다는 소리지.
‘스파이럴?’
-상처만 봐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에 버금가는 기술을 썼다고 판단해.
치용의 팔을 보고 있자, 프로비던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저 미련퉁이 팔 끊어야 해.
‘놔둬.’
-회복 불가야.
‘테크룸으로 가자.’
-후, 형. 어떤 생각인지는 알겠지만, 난 반대야.
말을 나눠봤자 끝이 없다.
‘응. 열심히 반대해라.’
“잠깐 쉰다.”
인준에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
훅하고 사방이 어두워지고, 보이는 광경이 변한다.
익숙한 광경, 테크룸이다.
-여기서 그 모드를 여는 건 엄청 바보짓인 건 알지?
붕. 프로비던스가 날아와 못된 시누이처럼 달라붙는다.
“왜?”
-저 셋을 살리겠다고? 에너지를 거기에 투자해? 적은 형만큼이나 위험한 저격수야.
“응. 그래. 소년 만화의 필수인 라이벌의 등장이지.”
-농담할 때가 아냐. 곰이랑 노안, 그리고 호빠 선수 셋이 도움이 된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형이 위험에 빠지는 건 반대야. 차라리 저 셋을 버려. 그게 올바른 판단이야.
“나 지금 척추 다쳐서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레스큐 액트 모드면 20시간이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어. 식량도 내 인벤토리에 충분히 담아왔으니까….
턱!
프로비던스의 기체 위로 손을 올린 세주다.
말을 멈춘 기계의 렌즈에 눈을 맞춘다.
인간이라면 이게 눈이겠지.
세주가 눈을 마주친 뒤 입을 열었다.
“내가 언제 네 말 듣디?”
-…응. 염병. 안 듣겠지. 고집쟁이. 미련한 병신, 개자식. 시발.
“너무 나간다. 이 미친 기계 새끼야.”
기회라고 욕을 쏘아대는구나.
-아? 그랬어? 하도 내 말을 안 들어서 안 들리는 줄 알았지.
“들려. 듣고 안 드는 거야. 너 짜증나라고.”
-아우. 진짜 싫어. 완전 싫어.
“모드 트리나 열어.”
화악.
눈앞을 채우는 모드 트리다.
20시간 뒤에 몸이 회복된다고?
그 시간 동안 기다릴 수 없다.
기다리는 동안 자신이 데려온 이들은 전부 죽겠지.
그렇게 놔두고 싶지 않다.
아니, 그렇게 놔두지 않을 거다.
모드를 선택하고 말한다.
“오픈해.”
다시 눈을 감았다.
테크룸에서 빠져나와, 눈을 뜨자.
치용이 깨어나 있었다.
“우와. 이 구멍 보이십니까? 크하하. 이게 바로 전장의 훈장이란 겁니다.”
일어난 세주를 보고 치용이 웃음을 터트린다.
거, 그 식은땀은 닦고 말하지 그러냐?
웃는 것도 힘들면서 허세는.
김치용이니까 여유를 부리는 거다.
가진 건 깡다구밖에 없는 놈이니까.
‘모드 온.’
에너지 320만을 부었다.
그리고 연 유니크 모드는 회복계열이다.
프리스트 모드에서 레스큐 액트 모드를 열었고, 지금 그 세 번째 유니크 모드를 열었다.
‘이모탈 엔젤스.’
모드, 이모탈 엔젤스.
-하루에 쓸 수 있는 횟수는 열두 번이 전부야.
말 안 해도 안다.
파악!
세주의 머리 위다.
흰 고리가 생겨나더니 파삭하고 깨지고 가루가 몸을 덮는다.
사사삭.
전신에 가루가 스며든 순간, 척추를 괴롭히던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5분도 되지 않아, 막 열 시간, 숙면을 하고 일어난 것처럼 몸이 가뿐해졌다.
세주가 몸을 일으켰다.
낮고 좁은 토굴 천정에 머리가 닿았다.
“…척추를 다쳤는데?”
인준이 놀라서 세주를 본다.
“나았어.”
그리고 손을 뻗자, 흰 고리가 날아간다.
파사삭.
유진에게 하나, 치용에게 하나다.
“음. 아픈데요.”
골절이 치유되면서 뒤틀린 뼈를 맞춘다.
고통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유진은 땀을 흘리면서도 그 이후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치용은 지금 생니를 몽땅 뽑히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울 거다.
인간의 어깨는 근육과 인대로 이뤄진 복잡한 메커니즘을 관절이다.
그게 회복되는 과정이 과연 편할까.
“으으으으.”
기다렸다는 듯 치용의 신음이 들렸다.
어깨 구멍이 아물어간다.
아니, 안에서부터 근육과 신경이 다시 만들어진다.
셋의 시선이 그에게 몰렸다.
그리고 치용은 웃기 시작했다.
“우흐흐흐흐. 이거 너무 간지러운데, 아. 미치겠네.”
-저 새끼는 뇌를 고쳐야 하는 거 아냐?
‘고칠 뇌가 없을걸.’
노브레인, 치용의 별명이다.
-아, 그렇지. 아무리 유니크 모드라고 해도. 죽은 사람을 살리지 못하고, 없는 기관을 만들어낼 순 없지. 응, 아무렴 무리지.
인준이 옆에서 태연하게 둘을 지켜본다.
이 새끼는 이제 놀라는 척도 안 하네.
“안 놀라냐?”
입을 딱 하니 벌리고 놀라길 바란 건 아니지만.
인준이 너무 태연하니 오히려 불안한 기분이 든다.
“뭘, 이 정도로.”
인준이 어깨를 툭 두드려 주고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경계 겸이다.
세주는 조용히 인준을 바라봤다.
‘저 새끼도 정상은 아니지.’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더라도 왜 그런지 묻고 싶지 않을까?
궁금하지도 않나?
“우와, 다 나은 것 같은데요. 형님 굿.”
유진이 엄지 두 개를 들었다.
세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진이 인준 옆으로 선다.
회복 중인 치용을 위해 주변을 살피는 거다.
그런데.
‘저 새끼도 안 궁금한가?’
유진도 묻지 않고 빙그레 미소를 짓고 경계 태세를 취한다.
“우흐흐흐흐.”
미쳐서 웃는 곰 새끼는 당연히 안 물어볼 거고.
참, 희한한 새끼들이네.
-형. 이제 깨달았구나.
‘응?’
-저런 또라이 셋을 살리기 위해 지금 그 모드를 연 거야. 적의 위협에 맞서면서 말이야. 우리는 다른 모드를 열었어야 했어.
프로비던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싫은 건 싫은 거다.
남은 부대원이 몇이나 될까?
심각할 정도의 타격일 거다.
눅눅한 공기가 불쾌감을 일으킨다.
샤워한 후에 뽀송뽀송한 이불 안에 들어가서 뒹굴고 싶다.
계속 주변을 떠다니는 모기를 비롯한 갖가지 벌레도 너무 싫다.
웽!
‘기분은 최악, 기후도 최악.’
-라임 맞춘 건 아니지?
‘살짝 맞춰봤어. 난 당신과 함께할 수 있습니까? SHOW ME THE MONEY!’
-아뇨. 절대로요. 탈락, 무조건 탈락! 탈락! 탈락!
미쳐 날뛰는 프로비던스를 외면하고 치용을 바라봤다.
회복을 마치고 그가 몸을 일으킨다.
“우흐아. 이거 참, 고문입니다.”
정말로 간지러워서 웃었을 리가 없다.
전신에 흐른 땀이 그가 겪은 고통의 정도를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손을 내밀자, 치용이 그 손을 맞잡았다.
“가자.”
“어디로 가는 겁니까?”
“너한테 총 쏜 새끼 똥꼬에 한 발 박아주러.”
“으럇샤!”
치용이 고함을 지르자, 토굴이 덜덜 흔들린다.
“미쳤냐? 아주 여기 있다고 광고를 하지?”
인준이 말했다.
참, 저 말투는 평생 가도 안 변할 것 같다.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것과 갈구는 거로는 올림픽 금메달감이다.
어쨌든 그로서는 그 또한 환영 인사겠지.
“이 새끼는 툭하면 시비야.”
“…그냥 죽었어야 했다.”
“뭐, 이 새끼야?”
…환영 인사가 아닐지도 모른다.
‘대단한 놈들.’
세주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웨엥! 탁!
그사이 날아든 벌레를 잡으려고 세주가 손을 휘둘렀다.
하지만 맥없이 목에 손자국만 남았다.
날벌레는 그대로 유유히 날아갔다.
“이동하자.”
이곳에 있을 순 없다.
세주를 비롯한 넷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겨우 200m 정도 나아갔을 때, 앞을 가로막는 바퀴벌레 떼가 보인다.
“치워.”
화륵!
인준이 나서서 불꽃을 뿜는다.
양손에 붙인 화염방사기에서 뿜어지는 불길이 그대로 놈들을 태웠다.
스아악! 스아악!
듣기 고약한 놈들의 비명이다.
불길을 뿜으며 그대로 내달렸다.
맵을 보며 프로비던스에게 명령했다.
‘찾아.’
-이제 와서 패잔병 모아서 어쩌게? 차라리 빠져나가서 본대와 합류해. 그게 합리적이야.
‘응. 니 똥이다.’
-…염병.
흩어진 부대를 찾으라는 명령에 프로비던스가 호전적인 대답을 하며 스캐닝 모드를 돌린다.
시키는 대로 하면 일단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하는 게 몹쓸 입버릇을 가진 프로비던스를 상대하는 최선이다.
방향을 확인한 후다.
“가자.”
“정말 놈한테 똥침 하러 가요?”
해맑게 웃는 유진의 얼굴을 보며 세주가 답했다.
“일단 애들 좀 모으고.”
화륵!
뒤에서 불을 뿜던 인준이 합류한다.
맵을 확인한 세주가 말했다.
“3시 방향으로 ‘부름 받은 개미’ 대형.”
나오는 적은 쓸어버린다.
대신 목적은 공격과 교전이 아니라 이동이다.
그대로 넷이 내달린다.
촤아아악!
기다렸다는 듯 앞쪽에서 칼날이 바닥을 가르며 다가왔다.
“시작부터 반겨주는구나.”
세주가 말하며 치용을 툭 쳤다.
“으랏샤! 내 어깨 이제 새 거다! 이 새끼들아!”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외치며, 치용의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