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91화 (91/206)

#  91

91. 일기토

안으로 침입했다지만 고작 100명의 적과 바깥에서 교전을 준비하는 수천 명의 적.

어느 쪽이 더 위협적인가?

물을 것도 없었다.

그게 세주가 만든 전장이었다.

적의 대군이 미, 영국군과 교전을 벌일 때, 안으로 파고들어 끝낸다.

“구보.”

처음부터 그걸 감안한 훈련이었다.

잰걸음으로 바닥을 뛰며 달리는 이들이다.

돌과 흙, 나무뿌리가 섞인 땅은 그들을 괴롭히지 못했다.

이것보다 더 험난한 환경으로 훈련을 해왔다.

그들이 해온 훈련이 빛을 발했다.

파바박!

부대원 100명이 땅을 박차며 세주의 명령을 기다린다.

홀로그램 맵을 보며 달리던 세주가 입을 연다.

“10시 육해 부대 조준.”

육군과 해병을 합쳐서 만든 명칭이다.

차자자작!

“쏴.”

타다다당!

조준하고 쏘는 데 몇 초면 충분하다.

퍼버버벅!

정글을 활보하는 놈들이었다.

바퀴벌레를 닮았고 털이 숭숭 나 있는.

-외골격이 형편없는 놈들이야. 일반 탄도 못 견디는 것들이 자꾸 튀어나오는 걸 보면 놈들의 목적은 전투가 아냐.

‘정찰 용도겠지?’

-우리 형이 이렇게 컸네. 척하면 착하고 알아듣고.

‘미친 기계 놈.’

“이동.”

정찰이 목적이라면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게 움직인다.

‘찾아.’

세주는 프로비던스를 괴롭혔다.

송각무의 재능을 발견한 건 행운이었다.

그의 더듬이는 다가오는 적을 감지하는 최고의 안테나다.

홀로그램 형상으로 띄워 둔 맵은 전체 놈들의 병력을 파악하고.

프로비던스에게는 스캐닝 모드를 풀 파워로 쓰라고 했다.

-12시, 1km 내외 여덟.

“전방 비명탄 하나.”

“어흥!”

인간의 말을 점점 잊는 건지.

치용이 나서서 오버 스로우 투구 폼으로 비명탄을 냅다 집어던진다.

쌔애애액!

날아가며 탄이 터지고.

끼아아아아아악!

비명성이 울린다.

철컥.

동시에 세주가 침묵을 꺼냈다.

침묵을 꺼내면 멈춰선다.

약속된 행동이다.

유진이 주먹을 들어 부대 전체에게 수신호를 보낸다.

엄폐 후 경계.

간단한 수신호에 세주를 제외하고 모두가 재빠르게 움직인다.

그의 곁을 지키는 건 셋이면 충분하다.

전보다 두꺼운 아머를 입은 인준이 우측 앞을 막고.

치용이 칼 두 자루를 꺼내 좌측 앞을 막는다.

“밝은 눈 대형 유지.”

중얼거린 유진이 세주의 정면에서 자세를 낮추고 방패를 꺼냈다.

폭동을 진압할 때는 쓰는 기동대의 방패와 비슷한 모양새다.

연노랑 빛의 사각 방패를 든 유진이 가볍게 발을 굴렀다.

툭.

준비 완료라는 신호다.

송.

세주가 그 사이 방아쇠를 당긴다.

침묵은 여전히 조용하고 은밀했으며.

스나이퍼 모드를 켠 세주는 정밀한 기계와 같았다.

송송송송송송송송!

총 여덟 발.

“대형 해제.”

세주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이동이다.

-살아남은 놈 없어.

‘에너지 뽑아 와.’

이제까지 처리한 놈들의 에너지도 남김없이 수거했다.

에너지는 언제나 옳다.

-벌써 했거든.

업그레이드된 프로비던스는 시키지 않아도 척척 할 일을 했다.

그들이 모두 떠난 뒤다.

스컥!

노란 섬광이 일더니, 적이 내려선다.

둥근 머리에 유리막을 씌운 듯한 면상.

흰둥이 침공 때 봤던 노랑이와 같은 모습이다.

파박.

섬광이 일며 모습이 사라진 그가 나타난 건, 정글 안이다.

그의 유리막에 시신이 반사되어 비친다.

머리를 뚫은 손가락만 한 구멍을 본 그가 손끝으로 그걸 훑었다.

시신은 워싱턴에서 세주가 벼락으로 터트렸던 놈과 같았다.

눈과 코가 없는 대신 청각이 발달한 적의 저격병이다.

총 여덟 구.

죽은 이들의 숫자다.

헬멧 우측에 손을 댄 놈이 입을 열었다.

“트레이.”

그리고 한참 뒤 고개를 끄덕이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레.”

프로비던스가 있었다면 이렇게 해석했을 것이다.

내가 처리하겠다.

스아악.

성인 남성 허벅지만 한 굵기의 뱀이 나무를 타고 올라오다 노란 먹잇감을 발견한 뱀은 본능적으로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인간쯤은 디저트로 먹어치우는 아나콘다다.

먹이를 발견한 아나콘다는 놈을 관찰했다.

잠시 뒤 나무를 타고 올라가 노란 먹잇감의 위를 차지했다.

날 때부터 영특한 그 뱀은 이 구역의 왕이었다.

인간을 먹어본 적 있는 이 뱀은 총기와 칼을 구분할 줄 알았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먹이로 삼은 놈이 둘 중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다는 것도 알았다.

팍하고 나무를 박차고 놈을 향해 몸을 날린다.

위에서부터 내리꽂히는 수백 킬로의 야수다.

몸으로 먹이를 잡고 조여 압사 후 집어삼킨다.

단순하지만 가장 합리적인 사냥 방법이며, 이제까지 한 번도 배반하지 않았던 필살의 수법이다.

휘릭!

꽈드득!

금세 몸을 놈을 감싼다.

성공이다.

아나콘다가 먹이를 쥔 몸에 힘을 주려는 순간, 빛이 보였다.

슥슥.

자신의 몸을 무언가 가르고 지나감을 느꼈다.

후두두둑!

정글을 누비던 커다란 뱀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수십 덩이의 고깃덩이가 된 몸이다.

잘리고 나서도 꿈틀거리던 뱀 위로 사사사삭하고 바퀴벌레를 닮은 놈들이 덮는다.

그들이 훑고 지나간 땅에는 방금까지 정글을 누비던 뱀의 형상은 티끌만큼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놈이 파박 하고 노란 전광을 뿌리며 사라졌다.

섬광이 되어 놈이 날아간 곳.

세주와 부대원 모두가 사라진 방향이었다.

*

-뭔가 온다!

프로비던스가 말함과 동시에 맵을 가로지르는 빛이다.

맵 위를 가로지르는 속도가 레이싱 카만큼이나 빨랐다.

“흐꺽!”

송각무가 갑자기 발을 헛디디며 넘어진다.

“왜 이래?”

바로 옆 부대원이 그의 옆구리를 잡아챘다.

“웩!”

“더럽다. 인마.”

송각무가 구역질을 하고 손을 덜덜 떤다.

“준장님.”

머리가 핑 하고 돌며 편두통이 생겼다.

그는 세주를 불렀다.

말해야 했다.

지금이 얼마나 무서운 상황인지.

각무는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비무장지대에서 싸울 때다.

하얀 눈을 처음 봤을 때, 그는 줄행랑을 쳤다.

놈들이 어떤 능력을 가졌고,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 모른다.

하지만 보는 순간 알았다.

‘여기에 있으면 죽는다.’

그는 도망갔고, 살았으며.

후일 하얀 눈의 위력을 알았다.

그날 그곳에 있던 이들 중 반 이상이 아군의 총에 맞아 숨진 날이었다.

세주는 각무를 돌아보지 않았다.

“넌 강단이 부족해.”

인준이 직접 와서 그를 일으켜 줬다.

“은폐.”

숨으라는 말이다.

세주의 명령이 떨어지자 백 명의 부대원이 흩어진다.

일부는 나무 위, 일부는 거리를 벌린다.

세주가 뒤로 돌아섰다.

파박!

치지지직!

노란 전광을 전신에서 번뜩이는 놈이다.

‘노랑이?’

-아니, 완전 차원이 다른 존재야.

허공에 떠서 스캐닝 모드를 돌리던 프로비던스가 어깨에 내려앉는다.

스아아악.

놈이 지나간 자리로 매캐한 풀이 탄내가 났다.

놈이 멈추고 세주를 바라본다.

세주도 놈을 마주 봤다.

“트레이.”

놈이 입을 열었다.

-…자기가 전사라고 1:1로 싸우자고 하는데?

1:1?

삼국지의 명장면이 떠올랐다.

여포와 관우, 수없이 이뤄졌던 일기토.

어릴 때 얼마나 손에 땀을 쥐고 봤던가?

‘복숭아나무 아래서 형제가 되기로 맹세를 했네. 유비, 관우, 자아앙비.’

-뭐해?

‘향수에 젖고 있다.’

적이지만 놈은 낭만을 알았다.

“좋지. 일기토.”

스사사사사사!

놈의 뒤로 검은 물결이 몰려온다.

이제까지 봤던 놈들이다.

바퀴벌레를 닮은 적들.

지금까지 봤던 숫자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세주가 한 걸음 나섰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몸으로 말하는 거다.

싸우자고 한다면, 싸워주면 된다.

놈이 한 걸음 나선다.

파지직!

양손에서 노란빛이 번쩍이더니, 채찍 같은 두 줄기 선이 튀어나온다.

쾅!

시작은 세주였다.

어느새 벼락을 꺼내든 뒤였다.

폭음이 터지고, 바닥을 때린 벼락의 탄환에 땅이 뒤집힌다.

놀라운 위력이었지만, 맞추진 못했다.

파지직!

뇌전이 터지는 소리가 들린 순간 놈은 어느새 세주의 머리 바로 위로 이동했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치용이 붉은 작대기를 들고 놈을 향해 휘두른다.

스앙!

놈은 몸을 틀어 피했다.

피한 자리에 인준이 기관총을 갈긴다.

드르르륵!

묵직한 철갑탄이 놈의 몸에 꽂혔다.

티디딩!

놈이 몸을 휘돌리며 일부는 튕겨 냈지만, 몇 발은 몸에 박혀 녹색 체액이 튀었다.

“트레!”

-비겁한 놈!

‘감정 이입하지 말고 통역만 하지?’

외치는 사이다.

놈의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난다.

군용 대검을 든 유진이다.

푸른빛이 놈의 목과 가슴을 가른다.

카가가각!

촤아악!

녹색 체액이 뿌려진다.

어느새 놈의 바로 앞에 다다른 세주다.

노란 전광을 뿌리던 놈의 팔을 잡았다.

지지직.

따끔거렸다.

그 상태로 벼락의 총구를 놈의 머리에 댄다.

꽝! 펑!

머리가 터진다.

팔을 놓자 놈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일기토는 무슨.”

전장에서 무슨 낭만을 찾는단 말인가.

지금은 전쟁 중이며.

전장에서 치사하고 야비하고 더러운 건 아무 상관이 없다.

이기는 놈이 장땡이니까.

사아악!

검은 물결이 이루며 남은 적들이 몰려온다.

“태워.”

세주가 입을 명령했다.

바퀴벌레를 닮은 놈들은 이미 연구가 끝났다.

불에 약하고 잘 탄다.

인준이 앞으로 나선다.

텅!

사사삭!

앞으로 달려드는 놈을 향해서 양 주먹을 내민다.

손등 위로 불꽃이 뿜어져 나갔다.

인준의 아머 안에는 때려 박을 수 있을 만큼 최대한도로 무기를 넣어 놨다.

화르르르륵!

화염이 놈들 앞에 벽을 만든다.

티디디딕!

스악! 스악!

기묘한 비명을 지르며 놈들이 금세 타 죽는다.

유진이 세주 옆으로 내려섰다.

“말도 안 통하는데 자꾸 뭐라고 하는 걸까요?”

비트레이어 진형이라 이름 붙인 포메이션이었다.

강력한 대인전투력 또는 그에 버금가는 적이 나타났을 때, 유진의 할 일은 하나였다.

싸울 때 뒤를 쳐라.

유진은 순진무구한 얼굴로 야비한 짓을 잘한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이놈의 야비함을 모른다.

“사람 얼굴로만 별명을 붙이는 더러운 세상.”

어째서 유진만 왕자님이라는 멋들어진 별명이란 말이냐.

이 별명이 붙고 나서 세주, 치용, 인준은 유진을 몰아 붙였고.

유진은 그럴 때마다 침묵으로 일관했다.

어떤 말을 해도 같은 답만 돌아오니, 대화가 되지 않는다.

그는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게 낫다는 걸 금세 깨달았다.

유진은 평소에 그랬던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다시 이동.”

부대를 다시 모아 움직이는 순간, 세주가 각무를 보고 물었다.

“속 괜찮냐?”

“…괜찮습니다.”

송각무는 생각했다.

자신의 생존 본능 따위 저 넷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본능은 이곳에서 죽는다고 외치는데, 정작 죽은 건 습격한 놈들이다.

아니, 그냥 죽은 것도 아니고 만나서 겨룬 순간 바로 뒤를 잡혀 죽는다.

역시나 그는 결심했다.

‘불구는 되지 말자.’

불구가 되는 순간 저들과 남은 복무 기간을 함께 해야 했다.

*

“소장님!”

며칠 만에 푹 잠들었다.

그렇기에 지금 깨우는 놈의 목소리가 반가울 리 없다.

별일 아니라면, 아작을 내줄 거다.

결심하고 몸을 일으켰다.

“와 보셔야겠습니다.”

부관이 급하게 부른다.

“침공이냐?”

흰 내의 위로 군복을 대강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침실에서 나오며 나호필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여기서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부관이 부리나케 걷는다.

‘침공은 아니다.’

사이렌도 울리지 않고 본부 내 사람들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움직인다.

그가 가는 방향, 격납고다.

남해 수중에 이 본부를 세우게 만든 이유가 있는 곳.

놈들의 우주선을 보관하는 곳이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부관이 안으로 움직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연구원 모두를 한 곳에 모아 둔 채 총을 든 이들이 보인다.

격납고를 지키는 부대원들이다.

‘반란? 형태변환자?’

상황이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반세주 덕분에 형태변환자가 이곳에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는 그걸 구별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새로 온 사람은 없어.’

출입을 통제했고, 지금까지 새로운 사람이 들어온 적은 없다.

그렇다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뭐란 말인가?

그의 의문과는 별개로 부관은 급하게 안으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나호필은 말없이 그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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