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89화 (89/206)

#  89

89. 그는 많이 미쳤어

‘죽인다.’

‘미친놈.’

‘네 명 다 악마야.’

‘개새끼들.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무슨 말을 하는 줄 알 수 있다.

세주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서 빛이 쏟아져 나온다.

살기라고 불러도 무방할 빛이다.

“눈빛이 마음에 드는데.”

치용이 중얼거리자, 모두의 시선이 세주를 떠났다.

장광안은 훈련을 받으면서 군이 아니라 기업을 택한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다행인 정도가 아니다.

‘저 악마랑 같은 소속일 순 없다.’

적어도 저 악마 밑에서 훈련을 받을 일은 두 번 다시 없으리라.

굳게 다짐한 그다.

치용, 인준, 유진이 불쌍했다.

‘그래. 저런 새끼 밑에 있다 보니까 정신이 이상해지는 거야.’

스톡홀름 증후군과 같은 효과다.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저렇게 미친 거다.

“훈련은 끝났다. 너무 긴장하지들 마.”

세주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를 들은 박태희는 그제야 이성이 돌아왔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남자, 여자는 다를 뿐이다.

그러니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부르짖던 그녀다.

훈련 나흘 차.

“전 여자예요.”

베타 팀 일원 중 하나였다.

평소 아끼던 아이.

남자가 하는 거라면 여자도 할 수 있다고 같이 의기투합한 대원.

“그래서?”

그 앞에서 태연하게 답변하는 세주가 보인다.

“여자니까….”

“나랑 사귈 거야?”

숨이 끊어질 것 같은데도, 그들의 대화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교관님 만나면 훈련 빠질 수 있나요?”

그녀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그 앞에서 세주가 미소를 보이고 답한다.

“아아아아아니.”

놀린다.

악마다.

대원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일그러졌다.

‘포기하고 가라고 해야겠다.’

오늘 숙소에 들어가면 그렇게 말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개새끼, 죽여 버릴 거야.”

아끼던 대원이 눈에 독기를 품는 게 보였다.

그날 밤, 박태희는 그 대원에게 돌아가라 말했고, 대원은 답했다.

“아뇨. 안 갑니다.”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대원이다.

“꼭 내 발을 핥게 해주마. 반세주 개자식.”

자면서 중얼거리는 그녀를 보며 박태희는 훈련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다음 날이 되면 쳇바퀴 굴러가듯 다시 뛰게 된다.

“부모가 있습니까?”

“가족이 있습니까?”

“그들을 죽이기 싫다면 뛰십시오.”

세주는 아침마다 같은 말을 외쳤고, 그 효과는 강력했다.

아무도 탈주하지 않았고, 모두 견뎠다.

그 인고의 시간.

박태희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드디어 훈련이 끝나고 실전에 나간다는 사실이 기쁠 정도다.

우웅.

수송선 위에 몸을 실은 이들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약 한 시간 뒤, 강하한다.”

고도를 낮추는지, 기압이 변하는 게 느껴졌다.

침을 꿀꺽 삼킨 박태희가 세주를 바라봤다.

“좋은 소식 하나 알려주겠다.”

좋은 소식?

미국과 영국만 참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구가 폭탄 한 방에 날아가게 생겼는데, 누구는 지옥 문턱을 밟는 훈련을 하고.

누구는 얌전하게 지켜만 보겠다는 심산인가?

구경만 하는 타국의 인간들, 잡히면 얼굴에 주먹을 꽂아주고 싶었다.

터벅터벅.

흔들리는 수송선 안에서 가운데로 온 세주가 입을 연다.

“좋은 소식은, 내가 너희들의 아군이란 점이다.”

“….”

침묵이 주변을 감싼다.

박태희는 순간 뿌연 안개가 낀 것 같던 머리가 맑아지는 걸 느꼈다.

‘저 악마 새끼.’

그래. 맞다.

저 인간 같지도 않은 새끼가 바로 아군이다.

이제는 교관이 아니라 함께 싸우는 이다.

전우다.

그러니까 저자의 적의와 살의는 자신이 아니라 적을 향할 거다.

그 단순한 사실을 깨닫는 순간, 안도감과 함께 가슴에 뜨거운 게 올라왔다.

‘질 리가 없어.’

이긴다. 기필코 이긴다.

악마가 자신들의 편에 섰다.

질 수가 없는 싸움이다.

“반세주 개자식.”

“반세주 개자식!”

누군가의 외침이 퍼진다.

박태희도 목이 터져라 그 외침에 동참했다.

“반세주 개자식!”

“반세주 개자식!”

그들의 목소리가 수송선 안을 가득 채웠다.

*

폭탄 제거.

그게 이들의 가장 1번 목적이다.

‘공습, 폭탄은 안 돼.’

수류탄도 되도록 쓰지 않는다.

만일 아마존 안의 폭탄이 터진다면 인류는 끝이다.

‘이 와중에 지원군이 없다니.’

안나는 아마존 강이 보이는 초원에 자리 잡은 채였다.

미군에서 지원한 병력은 이천.

‘대군으로 싸우는 건 멍청한 짓이야.’

그녀도 같은 판단이다.

소수 정예로 적을 격멸하고 게릴라전을 유도, 그 뒤 폭탄을 제거한다.

그게 가장 깔끔하다.

‘하지만 폭탄을 어떻게 제거하지?’

인간의 폭탄과 같아서 신관을 제거하는 형태는 아닐 것이다.

“휴이츠 대령님.”

바로 옆 그녀의 부관인 델 크로이츠 대위다.

“고민하지 마십시오.”

델은 그녀의 참모이자, 이 부대의 두뇌다.

그의 말은 들을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폭탄을 해제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대령님, 정말 고민하고 계셨습니까?”

델 크로이츠는 그녀를 잘 안다.

그녀는 생긴 것과 다르게 직진 밖에 할 줄 모르는 무식한 인간이다.

인간 포탄이란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미국 형태변환자 소탕 작전 이후 그녀가 조금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많이 변했네.’

델 크로이츠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하는 게 우선입니다. 거기까지 가는 것도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니까, 고민은 접어두십시오.”

적절한 조언이다.

하지만 어째 역할이 바뀌었다.

자신이 고민하고 안나는 돌진한다.

이게 지금까지의 형태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아?”

맥폴 테리.

영국군 지휘관이다.

꾸불거리는 금발 머리와 푸른 눈.

갸름한 턱선과 부드러운 미소.

누가 봐도 감탄이 터질 정도의 외모다.

사근사근하고 자상한 기운이 전신에 퍼져 나오는 바람둥이다.

“신경 꺼.”

안나와는 구면이다.

그는 안나를 만나면 언제나 친절하게 작업을 걸었다.

“오, 안나. 걱정은 접어 둬. 내가 왔으니까.”

외모만큼이나 실력도 있다.

그는 특별한 이였다.

마치 안나 자신과 같이 말이다.

“한국군은 언제 오지?”

그가 물었다.

애초에 이 작전의 시작도 그들이 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얼굴을 보여서 작전 회의 및 기타 사항을 의논해야 했다.

“몰라.”

안나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진짜 몰랐다.

반세주는 연락이 닿지 않았고, 그 점이 내심 서운한 그녀다.

‘미리 연락할 수도 있는 거 아냐?’

그들과 헤어지기 직전 떠오르는 말이 뇌리에 박혀 빠지지 않는다.

매일 곰 같은 덩치의 남자와 투닥거리는, 인상이 사납게 생긴 남자였다.

“반세주 준장은 어떤 여자를 좋아하지?”

그 말을 들은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가슴 큰 여자.”

그녀는 그 날 밤, 집에서 샤워하고 전신 거울 앞에 섰다.

예쁘다는 건 자신도 알았다.

외모가 탁월하다.

안다.

그런데 가슴은?

‘작구나.’

절대 크다고 할 수 없다.

손을 들어서 잡자, 안으로 쏙 숨는 가슴이다.

능력으로도 해결이 안 된다.

“한국군 지휘관은 누구야?”

가슴 큰 여자를 좋아하는 놈.

어쨌든 협력해야 할 이들이다.

아는 바대로 말해주는 게 옳았다.

그녀는 세주에게 호감이 있다.

하지만 진실을 외면하지는 않았다.

“정상은 아냐.”

안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무슨 의미로 정상이 아니라는 거냐?”

뭐라고 말해줘야 할까?

미친놈이라고?

아니 그 표현은 너무 단순하다.

안나는 잠시 고민했다.

델 크로이츠는 둘의 대화를 들으며 과연 이게 각 나라를 대표하는 영웅들의 대화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는 많이 미쳤어.”

안나는 말재주가 없었다.

델 크로이츠는 그녀의 대답을 들으며 자기도 모르게 이마를 탁 쳤다.

너무 정확한 표현이다.

“그렇게 말하면 이해가 되지 않아. 안나.”

그런 안나의 말에도 맥폴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그녀를 배려했다.

어느 면으로 보나 대단한 사람이다.

“금일 13시 이전에 도착한다고 했으니, 기다리면 직접 볼 수 있을 겁니다.”

델 크로이츠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델,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맥폴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자상한 사람이었다.

맥폴이 부드럽게 델에게 말했다.

치직!

“전방 비행체 감지.”

정글을 정찰하는 부대원이 무전에 다급하게 외쳤다.

“비행체?”

데몬 플라이? 아니면 또 다른 놈들의 출현인가?

델은 두 명을 돌아보고 말했다.

“나서지 마십시오. 적에게 우리의 전력을 알려서는 안 됩니다.”

“후, 같이 싸우자는 한국군은 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시작인가?”

맥폴이 팔을 털며 말했다.

나서지 말라고 하더라도 싸움이 시작되면 어쩔 수 없다.

아군이 죽는 걸 구경할 정도로 그는 인내심이 깊지 않다.

“벌써?”

은은한 미소를 짓는 안나다.

델은 확실히 자신의 상관이 미친년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아니지만, 싸움의 순간이 다가오면 자기도 모르게 짓는 미소다.

치직!

“한국군입니다!”

급하게 망원경을 꺼내 먼 상공을 향했다.

작은 점처럼 보이던 것이 커진다.

한국 수송선이 맞았다.

‘그런데 어딜 가는 거지?’

이쪽으로 바로 날아오면 된다.

참전은 하지 않았지만, 브라질과 인접 국가에 양해는 구했다.

당분간 아마존에 민간인이 들어올 일은 없을 거다.

아니, 아예 근접한 항구에 살던 이들도 잠시 대피시켰다.

그래서 마나우스 항구를 1차 보급소로 삼은 상태고.

어느새 안나와 맥폴도 망원경을 꺼내 델과 같은 장면을 공유했다.

“무슨 짓이냐?”

수송선의 고도와 속도를 본 맥폴이 중얼거렸다.

“강하?”

안나도 의구심이 들었다.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아마존 정글 위로 강하할 것 같은 모양새였다.

“설마.”

델이 탄식을 뱉은 순간.

수송선에서 검은 점들이 떨어져 내린다.

진짜 강하다.

일언반구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곧바로 열대우림 지역으로 떨어진 거다.

“지도.”

맥폴이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입을 열었다.

부관이 재빠르게 움직여 지도를 가져왔다.

낙하산도 없이 밑으로 떨어지는 놈들이다.

정상은 아니다.

안나의 말이 맞았다.

“음.”

지도를 본 맥폴은 신음을 흘렸다.

그린 밤이라고 이름 붙인 폭탄이 있는 곳과 고작 몇 킬로.

“자기들끼리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무리 소수정예라지만 적은 대군이다.

“몇 명 떨어졌어?”

부관에게 망원경을 건네고 숫자를 세라고 시킨 참이다.

“104명입니다.”

고작 104명.

이제야 안나가 한 말이 기억났다.

많이 미친놈.

다른 표현을 붙일 필요가 없었다.

그와 동시다.

퍽!

망원경을 든 부관의 머리가 터졌다.

핏물과 뇌수가 허공에 뿌려진다.

“델!”

안나가 외치며 자신의 부관을 잡고 뒤로 던졌다.

훅하고 델 크로이츠가 날아가고.

“경계! 엄폐해!”

안나가 외쳤다.

한 번 경험해 본 놈이다.

“적은?”

몸을 숙여 풀밭에 누운 채 맥폴이 물었다.

안나는 짐승처럼 몸을 웅크린 채 대답했다.

“저격수.”

한국군이 떨어졌기에 시작된 싸움인가?

아니면 적이 자신들의 허점을 노린 것인가?

사실 이유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자신들은 여기에 싸우러 왔고, 적은 자신들을 노리고 있다.

“작전은?”

“손발 안 맞아. 따로 가.”

안나가 미군을 맥폴이 영국군을 따로 움직이기로 결정한 거다.

“그럼 살아서 보면 데이트?”

안나가 중지를 들어서 잠깐의 작별을 위한 인사를 건넸다.

“영, 까칠해.”

맥폴은 그대로 무전기를 들었다.

치지직.

‘전파 방해?’

레이퍼 놈들이 습격했을 때와 같았다.

난감했지만, 그렇다고 절망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그는 조용히 몸을 수그린 채, 아군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싸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

공습, 폭격 불가.

그렇다고 미사일을 갈길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었다.

-잠입 후 쓱싹. 전군을 상대하지 않으면 그만이야.

‘우리 브로 어쩐 일로 머리를 썼네.’

세주, 자신의 생각과 딱 맞는 말이다.

기특해서 말하자 프로비던스가 답했다.

-가끔, 나도 내가 사람이었으면 해.

‘왜?’

-계급장 떼고 형이랑 맞짱 뜨게.

하, 이 새끼.

‘넌 네가 사람 새끼가 아닌 걸 다행으로 알아라.’

-뭐?

‘네가 사람 새끼였으면 싸가지 없어서 한평생 따만 당하다 관에 못질할 때까지 친구 하나 없이 살다가 갔을 거다.’

저주는 본래 진지하고 디테일하게 하는 거다.

-시발.

‘뭐?’

-신발에 뭐 묻었다고.

강하 직전에 군화를 살폈다.

묻은 게 없었다.

“포인트 도착!”

타이밍 좋게 뒤에서 외친다.

인준의 목소리다.

“그럼 먼저 간다.”

세주가 밑으로 뛰어내렸다.

파아아악!

공기가 찢을 듯이 몸을 헤집는다.

팔다리를 쫙 펴고 그에 저항하자 순간 공중에서 몸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바람 소리가 연신 귀를 때렸다.

‘꺼내.’

전초전이다.

손에 야구공 크기의 쇠 구슬이 잡힌다.

프로비던스는 쉼 없이 그걸 꺼내고, 세주는 그걸 잡고 밑으로 던졌다.

그리고 정글 한복판에서 귀곡성이 터졌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언제 들어도 섬뜩한 소리다.

세주가 놈들에게 준비한 첫 번째 선물이었다.

비명탄, 소리를 터트리는 폭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