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88화 (88/206)

#  88

88. 농담 아냐?

워싱턴에서 작전을 끝내고 돌아온 지 15일 째 되는 날이었다.

나호필은 풀썩하고 자리에 앉았다.

브리핑을 위해 사람들을 모았다.

어두운 방, 그리고 프로젝터의 빛이 전면을 비춘다.

순간 눈이 감겼다.

‘피곤하군.’

잠이 왔다. 졸린 정도가 아니라 이대로 잠깐만 정신을 놓치면 쓰러질 것 같다.

지금은 잘 시간이 아니었다.

나호필이 입을 열었다.

“불 켜.”

벌써 며칠째 철야인지, 지금 자신이 깨어있는 건지, 꿈을 꾸는 것인지 조차 구분이 가지 않는다.

“5분만 기다려.”

말하고 나호필은 바깥으로 나갔다.

복도를 따라 걷다 화장실로 들어갔다.

안에 주르륵 놓인 소변기가 보였다.

용케 남자 화장실은 잘 찾아 들어왔다.

쏴아.

“어푸!”

물을 얼굴에 끼얹다가 아예 얼굴을 세면대에 박았다.

“푸핫!”

잠수라도 하듯 버티다가 얼굴을 들었다.

숨을 몰아쉬고 일회용 핸드타월을 드드득 뜯어내 얼굴을 닦았다.

찬물에 얼굴을 담갔더니, 정신이 돌아온다.

그리고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 새삼 깨닫게 됐다.

반세주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준비를 하는 거겠지.’

다가올 큰 전쟁을 대비하는 거다.

목수가 자신의 공구를 깨끗하게 닦고 정리하듯.

그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시 회의실로 돌아온 나호필이 손가락을 들었다.

팟.

절전 모드였던 프로젝터 빛이 켜진다.

프로젝터가 비추는 것, 넓은 우림과 그사이를 가로지르는 강줄기다.

“어딥니까?”

앉은 이 중 하나가 물었다.

“아마존이다.”

열대우림, 정글, 지구 산소의 3분의 1을 책임지는 지구의 허파다.

“정찰병 5개 분대가 이 안에서 실종됐다. 그리고 건진 건 고작 이 사진 한 장이다.”

삭.

전면에 사진이 바뀐다.

아주 큰 바위처럼 보였다.

녹색으로 빛나는 커다란 보석 같았다.

흔들린 초점 덕에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성인 남성 둘, 셋의  손으로 감쌀 수 있을 정도로 커 보였다.

“뭐로 보이나?”

“보석 아닙니까?”

장광안, 알파 팀을 대표해서 자리한 이다.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종류겠죠?”

박태희, 베타 팀 대표다.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은 한국 전력의 핵심이다.

알파, 베타, 크롬.

세 개 팀과 각 부대 특수부대 지휘관들까지.

총 아홉이 자리하고 있다.

“해병대에게 맡겨 주십시오. D를 먹은 해병이라면 전부 조질 수 있습니다.”

브리핑이 끝나기도 전에 누가 입을 연다.

해병 특수부대 지휘관이다.

후퇴를 모르고, 전진만 아는 남자다.

‘그건 죽어도 안 되지.’

저자를 지휘관으로 보내면 비무장지대 때만큼이나 희생이 나올 거다.

“폭탄이다.”

“…폭탄입니까?”

장왕이 눈살을 찌푸렸다.

“폭탄, 그것도 지구를 날려 먹을 놈이다.”

나흘 전에 찍은 사진이다.

단순하게 폭탄만 자리하고 있다면 좋았을 거다.

하지만 기대는 사람을 배반하고, 설마는 사람을 잡는다.

정찰 5개 분대를 잃고 나서야 얻은 정보를 나호필이 말했다.

“저 폭탄이 위치한 곳을 중심으로 최소 레이퍼 웨이브 때만큼이나 병력이 모여 있다.”

레이퍼 웨이브, 세주가 개자식이라 불린 순간부터 마지막 비트레이어를 잡는 그 순간까지를 말한다.

나호필이 말한 정보를 곱씹은 이들의 표정이 굳는다.

“그 숫자가 최소다.”

그것보다 더하면 더하지, 적지는 않다는 소리다.

위성사진으로 쉼 없이 아마존 위를 찍고 지금도 무인드론이 들어가지만, 얻은 정보는 빈약할 따름이다.

비무장지대랑 같았다.

전파를 방해해서 무전기가 무용지물이다.

전략가는 최악을 상정하고 움직인다.

나호필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히 최악의 상황을 이들에게 알렸다.

최악을 보여주는 것과는 별개로 전략가에게는 다른 의무도 있다.

‘아군의 사기를 올려서 전장에 임하게 하는 것.’

“구경만 할 생각은 없다.”

나호필의 손짓에 탁하고 회의실 불이 켜졌다.

프로젝터의 푸른빛이 벽에 흐리게 잔상을 남긴다.

“한 달 뒤, 놈들을 습격한다.”

“대장은 누굽니까?”

장왕이 물었다.

알파, 베타, 크롬 세 개 팀의 대표가 서로의 눈을 본다.

지휘관의 역량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나호필이 직접 나설 것인가?

그는 현세의 제갈공명이란 별명이 붙은 이다.

“해병대에게 맡겨 주시면 말끔하게 완수하겠습니다.”

“켈로 부대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해병대와 경쟁 구도를 보이는 육군 부대까지 나선다.

둘에게 답하는 대신 나호필은 다른 얘기를 꺼냈다.

“타국 부대도 출전한다.”

당연한 일이다.

아마존에 자리 잡은 저 폭탄이 정말 지구를 위협할 존재라면, 두고 구경할 순 없다.

“그리고 한국군 대장은.”

말을 끊고 모두를 둘러봤다.

일단 이 브리핑이 끝나면 한숨 자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타국을 설득하고 부대를 정비하고 적의 정보를 캐내고, 너무 무리한 일정이었다.

‘나머지는 알아서 하겠지.’

나호필의 입장에서 대장으로 임명할 이는 한 명뿐이었다.

“반세주 준장이다.”

덜컥.

장왕이 자신 앞에 놓인 잔을 넘어뜨렸다.

“준장이 지휘만 하는 겁니까?”

한 달 뒤에 작전을 계시한다는 말이 장왕의 귓가에 맴돌았다.

반세주라면 남는 시간을 한가롭게 그냥 넘어갈 인간이 아니다.

“아니, 반세주 준장의 요청이 있었다. 참전을 원하는 인원, 전부 준장의 부대로 간다.”

“안 돼.”

장왕이 자기도 모르게 읊조렸다.

반세주는 훌륭한 군인이고, 뛰어난 사람이다.

구국의 영웅이며, 아군의 희망이다.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그의 전적을 부인할 수 없다.

“왜 그러나?”

장광안이 묻는다.

“그 새, 아니 준장님 성격 모릅니까?”

안다.

지랄 맞긴 하다. 거친 말도 곧잘 하고.

하지만 그만큼 능력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좋은 기회네요. 반세주 준장의 강함의 비결이 궁금했거든요.”

박태희가 배시시 웃는다.

장왕은 이 바보 같은 이들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그래. 겪어보면 알 것이다.

그 반세주란 작자와 그 밑의 삼폭이란 별명의 부대원이 얼마나 지랄 맞은 인간들인지.

“우리 해병의 훈련보다 고된 훈련은 없다.”

“육군 부대의 독수리 훈련받아봤나?”

당해봐라. 그다음에 얘기하자.

장왕은 조용히 운명을 수긍했다.

*

“죽음을 각오했습니다!”

해병 중 하나였다.

반세주의 요청이었다.

나호필은 그 요청에 충실히 따라서 500명의 최정예 특수부대원을 추려서 보냈다.

“죽고 싶어서 지원했다고?”

“적을 하나라도 죽이고 죽을 겁니다.”

“대단한데.”

세주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지나갔다.

“적은 두렵지 않습니다!”

‘아주 지랄들을 하네.’

-왜 이렇게 화가 났어?

프로비던스와 장난 칠 기분도 들지 않았다.

연병장을 가득 채운 500명의 열의가 느껴졌다.

인류를 위해서 싸운다는 자부심이 보인다.

그리고 세주는 그들 중 400명을 돌려보냈다.

“이해할 수 없다.”

장광안이다.

“뭘?”

“고작 100명으로 뭘 할 거냐?”

“잘 싸워야지.”

“500명도 적었어!”

전략과 전술에 아무리 무지하다고 해도, 적은 무지막지한 숫자다.

아마존에서 폭탄을 처리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적의 대군을 돌파해야 한다.

“하암.”

세주가 하품을 하며 다리를 책상 위로 올렸다.

장광안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무슨 생각이냐?”

“그건 저도 궁금하네요.”

베타 팀의 박태희였다.

장왕을 제외하고는 세주의 바로 밑, 부대를 이끄는 이들이 다 모였다.

“광화문에 위령비에 가 봤어?”

광화문 광장에 이순신 장군 동상만큼이나 눈에 띄는 위령비가 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

박태희조차도 화가 난 얼굴이다.

“내가 500명을 데려가면 얼마나 살아 돌아올까?”

“전쟁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이에요.”

“위령비 앞에는 거기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는 이들이 있다. 시신조차 찾지 못한 자식을 그리워하는 이들.”

현대의 오벨리스크다.

죽은 이의 이름이 적힌 그 거대한 탑은.

“이번 작전에 사망자는 없어. 불만 있으면 돌아가.”

“빌어먹을. 반세주. 이 미친 자식.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장광안이 얼굴을 붉혔다.

“응. 말이 돼.”

“미쳤군요. 정식으로 상부에 보고하겠어요.”

박태희가 몸을 돌려 나갔다.

장광안도 그녀를 뒤따라갔다.

“보세요. 분명 따지러 올 거라니까.”

유진이 얼굴을 내밀며 들어온다.

“그러던지 말든지.”

세주가 피식 웃었다.

“내일 트레이닝 코스는?”

“다 짰어요.”

“근데 그 말 진심이에요?”

“뭐가?”

“한 명도 안 죽이겠다는 거요.”

진심이었다.

단 한 명도 죽이고 싶지 않다.

세주는 아는 사람이 죽는 걸 볼 수 없다.

정신병이라고 해도 좋다.

-형은 슈퍼맨은 아니지만, 뭐 가능성이 없진 않지.

프로비던스가 세주의 의견을 따랐다.

“너 내가 헛소리하는 거 봤냐?”

유진을 보고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네. 많이 봤는데요.”

자식이 농담은.

유진이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도로 나갔다.

‘저 자식은 무슨 농담을 저렇게 진지하게 하냐?’

-…형 눈에는 저게 농담으로 보여?

농담 아냐?

*

“친애하는 최정예 여러분, 지금부터 이 부대는 일시적으로 제 휘하에 속하게 됐습니다. 좋습니까?”

알파 팀 25명, 베타 팀 25명, 크롬 팀 30명, 그 외 특수부대 20명.

총원 백 명에 맞춘 부대다.

자신의 말에 대답을 위해 3초를 기다렸다.

답이 없었다.

“자, 교관 셋 출발.”

“크흐흐흐. 신난다!”

치용은 점점 뇌가 퇴화하는지 단어 선택이 단순해진다.

“전부 대가리 박아!”

그가 우렁차게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모두가 어리둥절한 순간이다.

철컥.

“명령 불복종 쏩니다.”

유진이 권총을 들고 와 겨눈다.

크롬 팀 전원이 머리를 박는다.

파바바박!

“아니, 지금 이게… 헙!”

빡!

입을 열던 장광안은 허벅지에 엄습하는 고통에 입이 절로 다물어졌다.

누가 허벅지를 차고 그의 목을 잡고 그대로 땅으로 머리를 꽂았다.

쿵!

“크아!”

“반항하면 죽인다고 했다.”

치용이 외치고, 옆에서 인준이 적절하게 통역을 한다.

박태희는 치용의 눈을 봤다.

‘절대 장난도 농담도 아니다.’

그녀는 훈련 때도 해본 적 없는 원산폭격을 했다.

연병장에 뾰족 솟은 돌이 정수리를 찔렀다.

‘아파.’

그녀뿐 아니다.

전부가 머리를 박는다.

그 앞에서 세주가 다시 입을 연다.

“앞으로 한 달간 본 지휘관과 함께할 겁니다. 좋. 습. 니. 까?”

‘나 너무 친절한 거 아니냐?’

대답하라고 적절하게 끊어서 질문해준다.

-형, 진심으로 말하는데 제발 병원 좀 가봐. 상담이 필요하다고.

프로비던스의 응원에 즐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연병장 전체가 떨리는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온다.

“지금부터 허락하지 않으면 입을 열지 않습니다. 대답 안 해도 됩니다.”

장광안은 목을 짓누르는 손길에 반항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 순간 들리는 세주의 말에 억울함이 치솟았다.

‘아니, 그럼 대답을 왜 시킨 건데?’

대답 안 했다고 지금 머리를 박으라고 했으면서.

“지금부터 제군들은 시키는 일 제외하고는 똥도 마음대로 싸면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몇몇이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연다.

“대답하지 말라니까, 사람을 자꾸 나쁘게 만드네. 2단계.”

“다리 하나 팔 하나 드세요. 안 들면 허벅지에 구멍 나요.”

유진이 대열 중간을 돌면서 입을 연다.

아무리 단련된 육체와 D를 먹은 이들이라도, 가혹할 정도로 몰아친다.

“자, 지금이라도 집에 가고 싶으면 일어나서 갑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리 말하는데, 남은 거 후회할 겁니다.”

꿈틀.

그사이 두어 명이 몸을 비튼다.

“후아!”

치용이 단숨에 그곳으로 달려가 둘의 옆에 선다.

“크흐흐.”

그리고 그 앞에서 웃는다.

인준이 따라왔다.

“너희 둘 눈여겨본다고 했다. 이해해라. 반쯤은 짐승 같은 놈이라.”

“어흥!”

그 말에 치용이 허공에 포효를 터트렸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내무실 앞, 세 명이 멀뚱히 연병장을 바라봤다.

박민우와 병신 이인준이란 뜻하지 않은 별명을 만든 병사 둘이다.

그중 병장이 입을 연다.

“중사님. 오늘 탈영해도 됩니까?”

“언제 갈 거냐?”

“네?”

“나도 나가고 싶어서.”

박민우는 훈련소 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과연 저 넷과 자신이 사이가 좋았던가?

‘전출 가고 싶다.’

솔직한 심정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