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87화 (87/206)

#  87

87. 지배할 수 없다면

놈의 총탄은 첫날밤 새색시만큼이나 거칠었다.

맞기 전에는 소리 없이 조용했고, 다소곳했으나.

세주의 아머와 단단한 솜털을 뚫고 관통할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반은 운이었다.

몸을 옆으로 비튼 그 타이밍이 아니었다면 머리가 뚫렸을 거다.

확!

옆에서 황금빛을 뿜는 안나다.

꽝!

그녀가 땅을 박차자 포탄이 터진 것처럼 굉음이 고막을 때린다.

후악!

그녀가 달린 자리로 황금빛 잔상이 남았다.

무슨 인간이 달리는 데 후폭풍이 인다.

-인간 포탄, 전장에서 그녀의 별명이야.

아주 맞춘 옷처럼 잘 어울리는 별명이다.

레이싱 카처럼 달리는 그녀를 보고 세주는 옆 건물로 들어갔다.

그리고 승강기를 눌렀다.

띵!

그리고 얌전히 가장 높은 층을 눌렀다.

24층이었다.

띠링.

그리고 내려서 옥상을 찾아서 올라갔다.

“룰루.”

저녁을 뭘 사달라고 할까?

철컥.

벼락을 꺼내서 손에 쥐고 먼 곳을 본다.

‘어디냐?’

-1시 방향.

‘모드 온 스나이퍼.’

원거리 저격이라면 세주도 자신감이 충만하다 못해 넘친다.

난간에 총을 올리고 겨눈다.

깡!

저 밑 금빛 선에서 터진 소리다.

‘탄환을 견디네?’

-그녀의 능력 중 하나같아. 놀라운 방어 능력이야.

새로운 기술이나 시스템을 보면 프로비던스는 흥분했다.

-해부해보고 싶다.

‘미쳤냐?’

그랬다가는 당장 한미 전쟁이다.

-진짜 하겠다는 건 아니고, 스캐닝이라도 자세히 해보고 싶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살펴보고 싶은 여자야.

‘네가 기계가 아니라면 성희롱으로 끌려갈 소리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그게 그런 의미로 밖에 안 들려?

‘지나가는 남자 백이면 백 똑같이 들릴걸?’

-포착.

떠드는 사이 프로비던스가 적의 위치를 찾았다.

-특이한 종족이네. 하악. 저것도 갖고 싶게 생겼어.

이 변태 기계 새끼.

-눈, 코가 없고 청각이 극도로 발달한 종족 같은데. 손가락으로 탄환을 쏴? 형 보여? 엄청 신기한데.

응. 보이고 신기해.

그리고 적이고.

스코프도 필요 없이 놈을 겨눈다.

약점은 어딜까? 놈들처럼 가랑이? 아니면 머리?

-미군 부대에서 안쪽으로 포위망 좁혀 오는데?

그 사이 프로비던스의 말이다.

시간이 없다면, 단 한 번에 죽여야 한다.

-우리 저 시체 가지러 갈 거지? 응? 형? 저거 나 줄 거지?

‘그래. 너 다 가져라.’

-저기 금덩이 여자도?

‘아니, 저건 내가 마음대로 못 주지.’

그리고 눈을 감았다 떴다.

집중력이 칼날처럼 벼려진다.

주변 소리가 사라진다.

아니, 세상에 자신만 남은 기분이다.

손가락을 들어 겨누는 놈이 보인다.

‘성질 부여.’

미군이 그들을 보기 전에 처리한다.

‘폭발.’

웅.

벼락 안에 담긴 탄환이 가볍게 떨린다.

그 떨림을 느낀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꾸왕.

집중 상태가 깨질 때마다 소리가 뒤늦게 고막을 울린다.

그리고 저 멀리서.

꽝!

폭음이 터졌다.

후아악!

똑같이 고층 빌딩 옥상에 있던 놈의 자리다.

머리 밑으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놈의 시신이 보였다.

놈의 시신이 난간에 부딪혀 떨어지는 게 보였다.

퍽!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바닥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을 것 같다.

통제되는 구역이 아니었기에, 갑자기 떨어진 징그러운 녹색 핏덩이를 보고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아, 저거 언제 가지러 갈래?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거기 위! 이곳은 포위됐다. 얌전히 무기를 내리고 투항하라.”

빠르기도 해라.

어느새 건물을 포위한 그들이다.

부르르.

그 사이 전화가 울렸다.

밑을 향해 손을 몇 번 흔들어주고 전화를 받자.

“여기서 처리할 테니 기다려.”

나호필이었다.

제 할 말만 하고 뚝 끊는다.

*

수습은 금방 했다.

일단 형태변환자를 거의 쓸어버렸으니까.

“어, 쟤 형태변환자다.”

하지만 미군은 완전한 소탕을 원했고, 세주는 그들을 도왔다.

사방에서 총구가 세주가 지목한 이를 향한다.

가랑이에 집중된 총구다.

안나의 직속 부하다.

“난 아닙니다.”

“아니길 빈다. 차라리 평생 고자로 살아.”

안나가 서슴없이 말을 던졌다.

“제가 고자가 되면 대령님이 평생 데리고 사시는 겁니까?”

그가 땀을 흘리는 이런 상황에서 농담을 건넸다.

안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평소에도 저런 농담을 곧잘 하던 이다.

“확실해?”

언제부터 이렇게 격의가 없는 사이가 된 건지.

“응.”

세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령님. 정말 아닙니다.”

“쏴.”

뿌지지직!

놈의 거죽이 벗겨진다.

땅! 퍽!

안나의 손에 들린 산탄총이다.

근거리에서 맞은 놈은 녹색 체액이 돼서 바닥으로 흩어졌다.

“트레….”

중얼거리며 죽는 놈이다.

형태변환자 소탕은 금세 끝났다.

적은 이미 리더를 잃었고, 남은 놈들은 모두 세주가 집어냈다.

혹시 다른 지역에서 살아남은 놈들이 있다고 해도, 발악할 힘조차 없을 터였다.

일반 탄환에도 죽는 놈들이다.

정체가 드러난 순간 죽는다.

“후.”

안나가 숨을 깊게 내쉬고 세주를 바라봤다.

“…저녁 먹을래?”

녹색 체액이 군복에 튄 여자가 수줍게 묻는다.

그런데도 백금발과 푸른 눈의 조화는 그녀를 신비롭게 보이게 했다.

군복에 묻은 건 놈들의 체액이 아니라 청포도 즙일지도 모른다.

-강슬은 잊었나 봐?

하, 역시 기분 잡치고 초치게 하는데 우리 프로비던스만 한 놈이 없지.

‘중요한 순간에 잠깐 꺼뒀으면 좋겠다.’

-뭘?

‘널.’

-하여간 남자들이란.

‘성 정체성도 없는 놈한테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다.’

“맛있는 거 사줘.”

세주가 말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밑으로 내려갔다.

그들이 있던 곳은 미군 부대의 외계인 연구시설이다.

지하로 내려가자, 세주가 죽인 시체가 보였다.

“양도를 받을 수 없었다. 저놈은 뭐지?”

나호필이 그를 반겼다.

그걸 알아보러 온 참입니다.

미국 영토에서 죽었다고 시체를 못 뱉는단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에너지 수급 10,000.

높은 수치는 아니다.

에너지 수치에 비해 위협적인 놈이다.

태국 고추 같은 놈이었다.

작다고 무시해서 먹으면 매운 것처럼 에너지 수급이 적다고 무시하면 아군을 몰살하는 괴물이 될 거다.

“반세주 준장?”

연구실 앞을 지키는 이가 묻는다.

“맞습니다.”

이들을 도운 대가 중 하나다.

저 시체를 관람하게 해주는 것.

진짜 관람이다.

일정 거리 이상에서 눈으로만 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세주는 눈으로만 봤다.

대신 프로비던스가 보고, 뜯고, 즐기러 출발했고.

위잉!

날아간 프로비던스가 렌즈에서 빛을 뿌리며 놈을 살핀다.

-오호, 과연. 상당한데.

“언제까지 볼 겁니까?”

저 미친 기계가 만족할 때까지입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미군 소속 호위병이 눈빛이 사나워지다 못해 세주를 향해 레이저를 뿜을 때쯤 프로비던스가 돌아왔다.

‘빨리도 온다.’

-놈의 뇌 속에 몇 가지 정보가 들어 있었어.

‘뭔데?’

-좀 심각한 내용인데.

‘들어나 보자.’

프로비던스에게 내용을 전부 들은 후다.

“저녁.”

군복이 아닌 깔끔한 원피스를 입은 안나가 보였다.

음. 눈이 부시다.

옷만 갈아입었을 뿐인데.

천사가 내려왔다.

“나도 옷만 갈아입고.”

들어가서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비행기는 내일 오후에 출발합니다. 형님.”

치용이 웃으며 말한다.

“복이 터졌군.”

이건 인준.

“부드럽게 리드하세요. 형님.”

마지막은 유진이다.

“가자.”

나와서 그녀에게 말하자 그녀가 앞장섰다.

리무진이 둘을 태우고 달렸다.

안나와 저녁 식사는 생각보다 흡족한 자리였다.

“어차피 많이 먹잖아?”

이런 쿨한 여자.

고급 레스토랑에 딱 둘만 있는 자리였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음식이 들어왔다.

고깃덩이다.

“먹자고. 내가 내는 거니까.”

아구아구.

고기를 찢어서 입에 넣는 행위를 반복한다.

야들야들 한 게 살살 녹는다.

“송아지 통구이야.”

잠시 시름을 잊을 정도로 맛있다.

우적우적, 으적으적, 오물오물.

둘이 경쟁하듯 먹는다.

한참을 먹는데 안나가 세주를 바라본다.

“왜?”

“한국으로 언제 돌아가?”

“내일.”

대강 식사가 끝나자 디저트가 나왔다.

각각 앞에 치즈 케이크가 하나씩 나왔다.

조각이 아니라 통짜다.

“이 정도는 먹지?”

먹기야 하지.

우걱우걱.

‘정말 먹기 위해 만났구나.’

-그럼 뭘 기대했는데?

‘이런저런, 그런 것?’

-그니까 뭐?

‘닥쳐라. 네가 뭘 안다고. 미성년자랑은 말 안 해.’

훈련소 때부터 치면 프로비던스는 아직 두 살도 안 됐다.

“다음에 내가 한국에 가면 저녁 사줘.”

그녀가 대뜸 말했고, 세주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 닥터랑 셋이 앉아서 먹으면 보기 좋겠다.

프로비던스가 그런 세주를 놀렸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시 5성급 호텔이다.

귀빈 대접을 받는 그들이다.

돌아갈 때도 미국 대통령 전용기를 내준다고 하니.

세주는 방으로 올라가 나호필을 포함 넷을 불렀다.

TV를 켜니.

“…이상 테러리스트는 모두 검거했습니다.”

세주 일행이 전부 잡혔다는 소식이다.

“형님?”

유진을 선두로 부른 이들이 전부 모였다.

“왜 벌써 왔어요?”

유진이 큰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나도 한가롭게 데이트나 했으면 좋겠다만.’

“자, 간단하게 설명하지. 마지막 놈을 죽였을 때, 놈의 머릿속에 박힌 정보가 흘러들어왔어.”

말하며 세주가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그래서요?”

놈에게서 얻은 정보, 처음은 단 한 줄의 문장이었다.

지배할 수 없다면 없애라.

“놈들은 지구를 터트릴 거다.”

“어떻게?”

나호필과 눈을 마주쳤다.

“폭탄이 있답니다. 지구 어딘가에.”

“어딘지도, 뭔지도 모르고?”

“대강 형태만 압니다. 아주 큰 녹색 보석처럼 생겼다고 합니다.”

“언제 터지는데?”

“두 달 뒤입니다.”

“믿으라는 건가?”

나호필이 사나운 표정을 했다.

“믿기 싫으면 우리 다 같이 손잡고 동반자살 하면 됩니다. 지구 따위는 펑, 하고 터지든 말든.”

“그런 폭탄이 들어왔는데, 아무도 몰랐다고?”

“그 두 달 뒤라는 것. 폭탄이 자라는 시간입니다.”

“폭탄이 자라?”

“네. 성장형 폭탄이랍니다.”

나호필이 표정이 구겨진다.

꾸깃꾸깃 한 종잇장이 된 그가 이마를 짚고 고개를 숙였다.

“그럼 어쩝니까?”

자기 목숨조차 관심이 없는지 치용이 태연하게 물었다.

“어쩌긴 어째.”

세주가 그를 마주 봤다.

“찾아서 없애야지.”

여전히 할 일은 단순하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그러니까, 나호필은 각 국가의 수장을 설득해서 폭탄을 찾고.

세주와 그들은 그걸 처리해야 했다.

*

나호필은 세주의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아니, 무시할 수 없었다.

차라리 이게 거짓이라서 반세주를 향해 욕을 내뱉을 수 있다면, 그게 최고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나호필이 본 반세주는 대단한 또라이지만.

이런 일로 거짓을 말하지는 않을 인간이었다.

그리고 부대로 돌아온 세주는 시뮬레이션 센터를 연병장에 만들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두 달. 그사이 적을 잡을 전술을 훈련한다.”

“적이요?”

유진이 되묻는다.

놈의 머리에서 프로비던스가 파낸 정보들.

-간단하게 설명할 게. 형을 공격한 놈. 대한민국 군인 계급으로 치자면 일병쯤 되는 놈이야.

‘그 위로 더 있다는 거냐?’

-물론. 일병이라고 했으니, 그 위로도 바글바글 하단 소리지.

“적, 이 미친놈들은 침공을 멈추지 않을 거다. 우리는 그에 대비할 거고.”

콧김을 푹 하고 내쉰 치용이 나선다.

“우랏!”

인간의 언어를 잊었구나. 곰 인간아.

그가 시뮬레이션 센터로 들어갔다.

“저 미친 새끼.”

인준과 유진도 함께다.

마지막 세주도 그 안에 들어섰다.

캡슐에 얌전히 몸을 맡기는 셋이 보였다.

그걸 보고 세주도 안으로 들어갔다.

‘폭탄 위치가 무슨 나무랑 풀이 잔뜩 있는 곳이라고 했지?’

-열대 우림 같아 보였어. 하지만 단편적인 정보라서 오염됐을 수도 있어.

나호필에게도 같은 정보를 전했다.

그래서 비슷한 환경을 만들었다.

세주는 나무를 하나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숨을 죽였다.

들고 있는 총은 침묵이다.

첫 번째 시뮬레이션.

저격수 반세주 대 나머지 셋의 모의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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