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86. 미친년과 미친놈
‘단단하네.’
-그러게 형 머리만큼이나 단단한 것 같은데.
‘내 머리는 연두부처럼 부드러워 새끼야.’
-그리고 그만큼 하얀 백지 같지.
기계 새끼가 레벨 업을 했다.
말싸움을 전보다 더 잘한다.
철컥.
왼팔에 붙은 벼락을 다시 밑으로 겨눈다.
방금 한 발은 아무런 수작도 없는 정직한 총알이었다.
18mm 대구경 저격 탄환을 그냥 정직하다고 할 순 없지만.
‘50 마리쯤 되나보다?’
-응. 정확해 오십이야.
많이도 왔다.
철컥!
투두두!
그사이 붉은 탄환이 날아온다.
고개를 숙이자, 머리 위를 스치는 탄환이다.
‘모드 온 쉐어링 사이트.’
프로비던스를 띄워서 밑을 보자.
두툼한 아머를 입은 놈이 왼팔을 들고 있다.
위이잉 회전하는 기관총이 손목을 빙 두른 게 보였다.
세주는 놈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몸을 낮췄다.
그리고 아파트 뒤편으로 기었다.
훌륭한 포복 자세다.
콰과과광!
놈들이 아파트 1층부터 들어와 깨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프로비던스의 시야로 계속 보고 있던 세주가 순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왼팔을 들었다.
왼팔 주먹 위로 뻗은 총구, 벼락이 불을 뿜는다.
꽝!
그리고 동시에 화르륵 건물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꽈과과광!
내부에서 폭발음이 연신 들렸다.
놈들이 한 짓이 아니었다.
-잘도 터지네.
‘매복인 걸 알면서 순순히 들어온 저놈들이 멍청한 거지.’
전부 반세주와 그 일행이 설치한 폭탄이다.
그대로 뛰어서 옆의 건물 옥상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한 번 더 폴짝 그 옆 건물로 몸을 옮긴다.
밑으로 가려고 철문을 열자.
“늦어.”
인준이 기다리고 있었다.
“작전 성공.”
말하고 밑으로 부리나케 내려갔다.
인준이 바깥을 살피더니 쾅하고 철문을 닫았다.
*
처음 이상하다고 느낀 건, 세컨 오더였다.
“아무도 없습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퍼스트 오더가 위를 가리켰다.
“위에 한 놈 있다.”
저격수, 오자마자 자신의 머리를 맞춘 놈이 있다.
꽝하고 천장을 뚫었다.
뚫린 곳으로 올라가자 말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지금 입은 아머는 오감 전체를 끌어올려 주는 기능이 있었다.
높아진 청각이 쥐새끼 놈들의 말소리를 잡아냈다.
펑!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
[왔다. 눌러.]
목소리가 들린다.
스피커폰으로 돌린 스마트폰이다.
‘없어?’
인간은 한 명도 없었다.
화르르륵!
벽을 온통 불꽃이 채운다.
동시에 꽈앙, 하고 폭음이 귀를 때렸다.
“퍼스트 오더!”
밑에서 세컨 오더의 목소리가 들렸다.
뿌지지직.
아머 안에서 인간 거죽이 찢긴다.
완전 당했다.
처음 반세주란 놈을 잡을 때 했던 매복을 역으로 당했다.
놈은 자신들이 올 줄 알고 만반의 준비를 한 상태였다.
‘멍청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그는 그대로 창문을 향해 어깨를 들이밀었다.
그대로 바깥으로 향하려는 순간, 창문 바깥에서 끼이잉하는 푸른 덩어리가 날아왔다.
몸을 숙이자.
그 빛이 그대로 머리 위를 스쳤다.
꽝!
고개를 돌리자 호박만한 구멍이 불꽃 사이에 생겼다.
화륵.
금세 불꽃이 다시 타오르며 구멍을 막았지만, 순간 그 구멍으로 바깥 풍경이 보였다.
‘총알?’
후드득.
스친 아머의 왼쪽 귀부분이다.
손을 올려 만지자 바스러졌다.
‘이게 총알이라고?’
저격수의 총알은 위험하고 음험했으며, 또 대단했다.
적이지만 어떻게 숨어도 죽이는 그의 총알은 정말 사신의 낫과 같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들은 철저하게 창가와 얇은 벽이 있는 곳을 노렸다.
위력은 형편없었다.
분명 그랬는데.
“시발.”
인간 습성에 물든 퍼스트 오더의 마지막 한 마디였다.
소리 없이 다가온 푸른빛이 가랑이 사이를 때렸다.
꽝!
*
‘커버링, 스파이럴, 관통.’
스나이퍼 모드를 켠 상태다.
1층에 내려와 건물을 바라봤다.
화륵.
불꽃이 타오르고 폭약이 터진다.
‘찾아.’
-찾고 있어.
프로비던스의 스캐닝 모드가 적의 위치를 파악한다.
오른팔을 든다.
한 발의 파괴력은 벼락이 더 훌륭하다.
하지만 이름만큼 너무 시끄럽다.
침묵은 정교하다.
그 정교함에 힘을 싣는 것만으로 놈들을 죽일 수 있다.
첫발 벼락의 탄환을 맞춘 것으로 놈들이 입고 온 아머의 강도는 파악했다.
그다음부터는.
‘프리딜이네.’
막는 놈도 없고, 암살을 시도하는 놈도 없다.
도망가는 놈을 잡기 위해 퇴로에는 치용과 인준이 자리한다.
나머지는 전부 세주의 몫이다.
-열시, 하수관 위 5cm.
숭.
프로비던스가 말하는 순간, 총구를 움직여 당긴다.
폭약은 함정이라는 걸 알리기 위한 것도 있지만.
놈들이 빠져나오게 하는 효과도 있다.
드드드. 꽝!
한 놈이 벽을 뚫고 나온다.
두툼한 아머의 양손에 붉은빛이 어렸다.
숭.
아파트 밖으로 나온 놈은 프로비던스의 도움도 필요 없다.
꽝!
가랑이 사이를 맞고 아머가 그대로 추락한다.
핀포인트 사격이다.
*
그 장면을 치켜 본 휴이츠 대령이 팔을 쓰다듬었다.
“소름 돋는 장면이군. 그렇지 않나 대령?”
커튼을 들춰 밖을 보던 대통령의 말이었다.
이들은 건물에 있지 않았다.
세주가 폴짝폴짝 뛰어서 도망간 건물 바로 앞에 세워진 관광버스로 전부 피신했다.
“네?”
안나가 딴생각을 하다가 되묻자.
“아니네.”
사실 그녀는 소름이 돋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뛰쳐나가고 싶었다.
‘나도 잘 싸울 수 있는데.’
“반세주 준장은 우리 군의 자랑입니다.”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나호필이 말한다.
‘자랑은 자랑이지. 미친놈 중에 제일이니까.’
영웅이지만, 그들과 며칠 생활한 나호필은 알았다.
저들은 정상이 아니다.
슈퍼 쌩 또라이들이다.
하지만 작전 수행 능력과 전투력만큼은, 최고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었다.
“이제 다른 얘기를 나눌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나호필이 대통령을 향해 입을 연다.
“다음?”
“국가 재난에 힘을 써준 우리를 외면할 생각은 아니시겠죠?”
공격적이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 정도의 전공을 눈앞에서 이루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호필은 그들의 입이자, 외교의 책무를 가지고 온 이다.
더구나, 세주의 능력까지 보여준 참이다.
“원하는 게 뭔가?”
“첫 번째, 안전한 본국 송환입니다.”
꿈틀.
대통령의 뒤쪽 안나의 눈썹이 움직였다.
“그 말은 지금….”
“조용.”
국방부 장관이다.
그가 그녀를 제지했다.
군인이라면 모르겠지만, 정치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들.
타국의 전력은 그들에게 이롭지 못한 법이니까.
“약속하지.”
“두 번째는 지원한 핵무기에 관한 얘깁니다.”
나호필은 떠들었고, 미국 대통령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다.
터엉!
“당했습니다.”
밖을 보던 안나다.
“…뭐라고?”
나호필이 되묻고 창가에 얼굴을 붙였다.
그들이 이곳에 있는 걸 발각되면 안 된다.
커튼 틈으로 바깥을 살피자, 바닥에 쓰러진 인영이 보였다.
‘반세주?’
절대로 쓰러질 것 같지 않던 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
‘최악이네.’
유진은 어깨를 관통한 상처를 손으로 막았다.
‘남은 양이 얼마나 되지.’
나노킷을 확인하니, 겨우 관통상 한두 번 치료할 정도다.
‘출혈만 막자.’
나노킷을 뿌리며 몸을 숨겼다.
막 골목 코너를 돈 참이다.
1분 이상 한 자리에 머물 수 없었다.
그러면 어김없이 적의 총알이 유진을 쫓았다.
‘지랄 맞네.’
보이기만 한다면 싸울 수 있다.
하지만 놈을 찾을 수 없었다.
탄환이 날아오는 각도와 방향을 계산해서 온 길을 역으로 달려가도 없다.
스산한 바람만이 볼을 스칠 뿐이다.
‘저격이다.’
그것도 반세주 형님만큼이나 무서운 저격수다.
‘위력은 아머를 뚫고 관통할 정도.’
거기에 신출귀몰한 움직임까지.
‘그놈이겠지?’
한 번 맞붙었던, 눈이 없던 놈.
타닥.
다시 1분이다.
몸을 움직였다.
지상을 달리는 대신 최대한 벽을 타고 입체적으로 움직였다.
전후좌우, 어디로 움직일지 모르도록.
퍽.
오른쪽 벽에 구멍이 생겼다.
‘움직임을 예측 당하는 순간 죽는다.’
조두 놈에게 배를 뚫렸을 때도 죽음을 예감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야,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먼 줄 아냐?”
호스트바에서 일했던 시절의 일이었다.
선배 기수가 물었다.
“돈?”
머릿속에 돈이 최우선이던 시절이었다.
“아냐. 임마.”
“그럼 뭔데요?”
“아마추어는 감정을 보여.”
“네?”
무슨 말인가 싶었다.
“하지만 프로는 일 앞에서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아. 프로는 정말 일 만하거든.”
그러니까 사모님들에게 불필요한 감정을 보이지 말란 말이었다.
갑자기 선배 기수와 한 대화가 떠올랐다.
레이퍼는 본능에 충실한 놈들이었다.
하물며 조두 놈도 바라는 게 있다는 게 느껴졌다.
어릴 때부터 눈치 보는 게 습관처럼 굳어진 유진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읽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을 노리는 탄환에는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다.
프로다.
감정이 전혀 없이 완벽하게 쫓기만 한다.
‘이대로라면 내가 먼저 지쳐.’
확실하다.
유진은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세주 형님한테 던지자.’
자신이 안 되면 다른 이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입대하기 전까지는 혼자서 모든 걸 다 해결하고 살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투정을 부리고 기댈 곳이 있다.
위험한 순간이지만, 그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다 형님 탓.’
자신을 여기로 딸려 보내서 이런 사단이 발생한 거다.
그러니까.
‘살려줘요.’
죽고 싶지도 않고, 죽을 생각도 없는 유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꽝하는 폭음을 들었다.
‘다 왔다.’
앞으로 내달렸다.
“우리 왕자님 갔다 왔냐?”
퇴로를 지키던 치용이었다.
“엎드려요!”
둘이 동시에 고개를 숙이자.
팍하는 소음이 귓가를 때린다.
피하지 않았다면 치용이 머리가 바닥에 던진 수박처럼 터질 뻔했다.
“뭔데?”
역시 본능만은 짐승 그 이상의 남자.
치용이 단숨에 태세를 전환한다.
“우린 안 돼요.”
“뭐가 안 된다는 거야?”
“저격수예요.”
“응?”
이 말이 안 통하는 곰 인간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려 했던 자신을 원망하며 유진은 그를 붙잡았다.
“세주 형님한테 가자고요!”
“아씨, 왜!”
씩씩거리는 치용을 달고 옆으로 내달렸다.
퍽!
다시 바닥에 구멍이 뚫렸다.
‘토끼몰이 당하는 기분이네.’
유진은 건물 뒤로 숨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동시에 깨달았다.
‘…놓친 게 아니라 놓아 준 건가?’
고개를 들어 앞을 보자.
세주가 제자리에서 오른팔을 앞으로 든 모습이 보였다.
침묵이라 이름 붙인 총이다.
그리고 타오르는 건물에서 적이 무참히 죽어 나가고 있다는 것도 알겠다.
후아앙!
이제까지와는 파공음 자체가 다른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펑!
그리고 세주가 뒤로 훨훨 날아간다.
‘내 실수다.’
유인한 게 아니라, 유인당한 거다.
으드득.
치용이 옆에서 미소를 짓는다.
“이 개새끼 누가 먼저 잡나 내기할래?”
세주가 공격당한 모습을 본 순간 이성의 끈을 놓으려는 그를 붙잡아야 했다.
“형!”
“놔라.”
무섭다.
평소의 치용과는 다르다.
“저희 형님이에요. 설마 죽었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죠?”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
치용까지 죽게 둘 순 없다.
“히얍!”
장난스러운 기합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세주가 날아간 자세에서 다리를 치켜들고 덤블링 하듯 일어난다.
“어떤 새끼가 감히 나한테 저격 질이냐?”
동시에 세주가 약지와 소지를 펴 밑으로 흔든다.
‘배부른 개미.’
유진은 그 신호를 정확히 읽었다.
아무도 일어나지 말고 모습을 보이지 말 것.
현재 위치에서 목숨을 도모할 것.
세주의 명령이었다.
“쳇. 내가 죽일 건데.”
치용이 다시 얌전해졌다.
그리고 세주를 향한 두 번째 탄환이 날아왔다.
꽝!
하지만 그 탄환은 중간에서 터졌다.
세주는 앞을 가로막는 황금빛 등판을 보았다.
작고 여리지만 어떤 것보다 단단해 보이는 여성의 등이다.
휘이이잉!
전신에서 황금빛을 내는 여자, 세주의 앞을 막은 이.
안나 휴이츠 그녀였다.
“…왜 나온 거야?”
“구해주려고.”
서로 존칭을 잊은 둘이다.
미친년과 미친놈.
양 국가의 영웅이 동시에 고개를 돌린다.
슈앙!
놈이 다시 탄환을 뱉어냈고, 그 탄환은 둘을 일직 선상에 두고 날아왔다.
일타이피.
둘을 동시에 잡겠다는 거다.
안나가 주먹을 휘두른다.
쩡!
탄환을 튕겨낸다.
“이 새끼가.”
안나가 비틀린 미소를 짓는다.
“우리가 만만한 가 본 데.”
“먼저 잡은 사람한테 저녁 사기.”
“콜.”
세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둘의 모습이 훅하고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