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85. 왔어?
고급 펜트하우스다.
대형 빌라의 꼭대기 층을 차지한 곳.
“장비 가져와.”
퍼스트 오더의 말에 직사각형의 묵직한 큰 상자를 들고 온다.
가져 온 이들 둘쯤은 그대로 집어넣을 크기다.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상자가 세워졌다.
“전 병력 집결해.”
“넵!”
정체를 숨기는 걸 최우선으로 삼는 그들이다.
그런 이들이 이렇게 나선다는 건.
“다 죽인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 거다.
“괜찮겠습니까?”
이십 대의 백인 여자 거죽을 뒤집어쓴 세컨 오더다.
둘이 나란히 서 있자, 화보를 보는 것처럼 주변이 밝아진다.
미남미녀 커플이다.
“문제없어.”
그들을 이곳으로 보내 임무를 맡긴 이들의 뜻에 반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동족이 너무 많이 죽었다.
그들을 그대로 놔둘 수 없다.
상대는 고작 몇 명뿐이다.
총 잘 쏘는 저격수 하나와 떨거지들.
“안나 휴이츠와 그 외 인간들도 다 죽인다.”
“네.”
쿵!
그들이 가져온 상자를 열자, 묵직한 무게의 암회색 아머가 나온다.
“전투원은?”
“오십입니다.”
‘마냥 당할 줄만 알았냐?’
우득.
그가 묵직한 아머에 몸을 실었다.
위이이잉!
아머의 눈 부위에서 빛이 나온다.
“들어 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 남자가 들어온다.
“어디지?”
겁에 질려 벌벌 떠는 이 자는 인간이다.
한때는 대통령 비서였으나, 지금은 인간의 편을 배반한 이.
“주소는….”
그가 안나 휴이츠와 일행이 있는 아파트 주소를 말한다.
밑으로 내려가자 50기의 아머와 덤프트럭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자.”
복수? 그런 얄팍한 감정은 그들에게 없다.
이건 벌이다.
열등한 종족이 감히 그들을 공격한 것에 대한 벌!
*
“놈들을 찾을 수 없습니다.”
“구별할 수 없습니다.”
“형태변환자는 재앙입니다.”
안나 휴이츠 부대원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건 하나다.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한 괴물, 구별할 수 없기에 함부로 공격할 수도 없다.
“쫓아가서 죽이기 어렵다면, 놈들이 오게 하면 됩니다.”
세주가 그들을 향해 말하자.
“그게 쉬운 일입니까?”
대통령이 되묻는다.
백악관 테러로 능력은 입증했다.
세주가 빙그레 웃었다.
“네. 어렵지 않습니다.”
대체 무슨 짓을 할 작정인지, 안나가 그의 팔을 잡았다.
“이곳에 있는 분들이 위험에 빠지면 안 됩니다.”
이 여자가 함부로 외간 남자한테 손을 대네.
‘지금 이거 호감의 표현이지?’
-아니, 수틀리면 패버릴 거니까 말 똑바로 하라는 표현이야.
프로비던스 놈은 어찌 된 게 낭만이 없다.
전장 중에 피어나는 풋풋한 감정들.
좋잖아.
“정확하게 설명해주십시오.”
안나가 세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안 돼. 나한테는 강슬이 있다.’
순간 그녀의 유혹에 빠질 뻔했다.
-지랄 좀 그만해줘.
응.
“네.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작전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이다.
중간 중간, 안나의 눈썹이 흔들린다.
주먹도 불끈불끈 쥔다.
그만큼 듣기 어려운 내용일 거다.
“불가.”
안나의 입이 열렸다.
응. 당연히 이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그녀는 반대겠지만.
다른 이들은 어떨까?
가령 자신의 얼굴을 한 외계인이 활개 치는 나라의 대통령은?
“휴이츠 대령.”
“네.”
안나가 몸을 돌려 그녀의 대통령을 바라본다.
“…진행 해주십시오.”
“대통령님.”
“합시다. 시위를 떠난 화살입니다.”
표현 좋고.
네. 그렇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말과도 같은 뜻입죠.
“누굴 보낸단 말입니까?”
“내가 갔으면 좋겠지만.”
대통령은 안 된다.
그가 죽으면 진짜 패닉이니까.
“제가 가겠습니다.”
대통령의 비서다.
말끔한 얼굴을 한 그가 몸을 일으킨다.
“제가 적임입니다.”
안나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갸름한 턱에 각지겠다.
비서가 떠나고, 그들은 준비했다.
“놈들이 올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나호필이 와서 묻는다.
“네.”
“왜 그렇게 확신해?”
철컥.
아머를 입고 벼락을 왼팔에 붙인다.
그리고 침묵은 오른팔에.
양손을 쥐었다 펴며, 장비를 점검한다.
“놈들은 인간의 습성을 배웁니다.”
이미 들었던 얘기다.
나호필이 고개를 끄덕인다.
“맨 처음 놈을 만났을 때, 카페에서 놈은 매복했습니다. 그리고 저격을 통해 놈들을 공격하자 보복하듯 우리를 찾았습니다.”
마치 인간처럼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놈들은 인간의 습성을 제대로 배운 겁니다.”
“아.”
치용이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설명해줘야 했을 거다.
“도망 다니며 친구와 가족, 동료를 죽인 놈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쫓아오겠지.”
쫓아오는 정도일까?
-죽이고 싶어 환장하겠지.
‘정답이다.’
거기에 놈들이 찾던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장관들.
미끼가 뭉텅이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놈들은 이걸 먹으러 올 거다.
나호필이 신중한 얼굴로 묻는다.
“그러다 놈들을 감당할 수 없으면?”
그렇지. 그럴 수도 있다.
놈들의 전력이 상상 이상이라면, 끔찍한 위험을 초래하는 일일 거다.
“튀어야죠.”
비틀.
나호필이 순간 중심을 잃었다.
역시나다.
‘이 새끼가 정상일 리가 없지.’
그 시각.
인간을 배신한 척을 한 대통령 비서가 몸을 일으켰다.
‘살았네.’
죽음을 각오하고 한 짓인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이다.
“트레이.”
섬뜩한 목소리가 들렸다.
물론 무슨 말인지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리고 언제 왔는지 자신 앞에 이상한 놈이 서 있다.
동그란 머리통에 납작한 귀가 옆에 넓게 붙은 놈이다.
눈도 코도 입도 보이지 않는다.
“트레.”
목소리가 들리는 곳, 목이다.
목이라고 보이는 중간에 쩍하고 벌려져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보기만 해도 턱이 덜덜 떨린다.
긴 팔과 다리 놈은 그저 비서를 지켜만 본다.
그 모습이 더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다.
등이 축축하게 젖었다.
‘움직이면 죽일까?’
떨리진 않았다.
‘천천히 뒤로 가볼까?’
문이 어디쯤이었는지 떠올렸다.
다섯 걸음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놈이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린다.
손가락이 특이했다.
아니, 손가락이 아니라 동그란 구멍이 달려있다.
위에는 작은 구멍이, 밑에는 그보다 큰 구멍이다.
총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서 실제로 탄환이 나온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것 같다.
그제야 다리가 떨렸다.
의연히 맞서고 싶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는 않았다.
“후우.”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뱉자, 조금은 나아졌다.
끼리릭.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싶은 순간이다.
툭.
무언가 위에서 떨어졌다.
“억!”
긴장감이 극도에 달했던 그다.
놀라서 뒤로 꽈당하고 넘어졌다.
“나가세요.”
들었던 목소리다.
한국에서 온 지원군 중 하나다.
안나 휴이츠 대령만큼이나 외모가 눈에 띄던 남자.
‘정유진?’
이름을 떠올렸다.
굳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문으로 뛰었다.
덜컹.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따앙! 하고 뒤에서 소음이 울렸다.
그걸 살필 겨를은 없었다.
그는 펜트하우스 전용 승강기로 뛰었다.
유진은 아머에 투명화를 걸고 적에게 투항한 척하는 남자를 따라갔다.
‘죽일 순 없잖아. 따라가.’
세주의 명령이었다.
만일 일이 틀어지면 그를 구출하고 세주에게 연락하는 것.
그게 유진이 할 일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런 놈을 상대하는 건 계획에 없는데.’
처음 본 형태의 외계인이다.
놈이 손을 휘둘러서 유진을 가리킨다.
구멍이 뻥 뚫린 손끝이 보이는 순간.
급하게 몸을 숙였다.
땅! 쨍그랑!
비싼 술을 진열해 둔 유리가 산산이 깨진다.
꼬르르.
그중 술병 하나가 터져서 바닥을 적셨다.
술 냄새를 맡은 유진이다.
‘아깝네.’
말하지 않았지만, 자타 공인 애주가다.
뒤 돌아 깨진 유리병을 확인하고 싶은 걸 꾹 참고 앞을 본다.
놈의 손가락은 총구다.
위력은 첫발에 충분히 겪었다.
유진의 아머 왼팔이 깨졌다.
군복을 걸친 왼팔이 그대로 드러날 정도다.
그것도 반사적으로 옆으로 피하며 맞은 거다.
‘정통으로 맞으면 죽는다.’
짜릿한 긴장감이 심장을 옥죈다.
‘저 사람 살리고 내가 죽으면 세주 형이 뭐라고 할까?’
이전 전투에서 그가 죽은 줄 알았던 셋의 표정이 볼 만 했다.
투두두!
놈의 팔이 움직인다. 그 틈에 기관단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인젝션 탄이 아니라, 일반 탄환이다.
티디디딩!
‘타입은 갑주형.’
세주와 그들은 외계인의 타입을 나눴다.
갑주형과 배리어형.
방어 형태를 갖고 나눈 두 가지 타입.
기준은 명확했다.
방어를 무엇으로 하느냐.
놈의 전신은 레이퍼보다 몇 배는 단단해 보였다.
슥.
놈이 다시 팔을 움직인다.
빠르진 않았다.
위력이 끔찍할 뿐이지.
탁!
바닥을 박차고 지그재그로 뛰었다.
‘거리를 좁히자.’
총이 안 통한다면 칼이다.
노블 에너지를 뿜으며 달리자, 놈이 팔을 다시 유진에게 조준하려 한다.
낯짝이라고 보이는 부분에 눈, 코, 입이 없으니, 어떤 표정인지 모르겠다.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게 어려웠다.
‘언제는 안 그랬나?’
레이퍼도, 브레인 레이퍼도, 흰둥이 놈들도.
언제나 상대는 미지의 존재였다.
퉁!
순간 몸을 가속하자.
‘…개 같네.’
놈의 팔이 전보다 수배는 빠르게 움직인다.
만약 놈에게 입이 있다면 지금 웃고 있으리라.
단순하게 손끝에서 총을 쏘는 게 끝이 아니다.
놈은 머리를 쓸 줄 안다.
‘미리 대비하길 잘했네.’
은따 아머는 유진이 원하면 그에게 ‘약’을 주입한다.
그 약은 자신 몸에 완벽하게 최적화된 스팀팩이다.
텅!
땅을 박찬다.
오버 페이스 모드의 세주만큼이나 빠르다.
텅!
놈의 탄환이 방금까지 유진이 있던 땅을 뚫었다.
퉁! 퉁!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밑에 층 몇 개는 뚫었다.
놀라운 관통력이다.
휘릭.
어느새 꺼내든 군용 대검 두 자루.
웅!
‘큰 칼 따라 하기.’
치용의 기술을 카피한다.
양쪽 군용 대검에서 푸른 칼날이 솟는다.
왼손에 든 칼로 놈의 목을 긋고.
오른손에 든 칼로는 놈의 허벅지를 벤다.
스걱!
허벅지는 스쳤고, 목은 베었다.
“트렉!”
놈이 한 손을 들어 상처를 틀어막았다.
목에 달린 주둥이 바로 밑이다.
녹색 체액이 흘렀다.
‘안 죽어?’
이놈들도 약점이 따로 있는 건가 싶었다.
투둑!
그대로 앞으로 다시 달려들었다.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스아악!
군용 대검에서 나온 푸른빛이 허공을 가른다.
“트레!”
놈이 외치며 양손을 앞으로 뻗는다.
투두두둥!
총알을 날린다.
몸을 숙이며 화망을 피하고 한 걸음 더 다가간다.
슉! 푹!
놈의 배에 칼을 꽂고, 유진은 그 상태로 앞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그대로 난도질할 요량이었다.
“퉤!”
그러자 놈이 흰 조약돌 같은 걸 뱉는다.
‘피한다.’
고개를 옆으로 꺾고,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셈이었다.
그 순간.
꽝!
조약돌이 터졌다.
훅!
폭발력에 몸이 뒤로 밀려난다.
‘폭탄이었어?’
조약돌이 빛나는 순간 아머에 있는 배리어 기능을 있는 대로 끌어올렸다.
덕분에 큰 상처는 없었다.
“쳇.”
대신 놈을 놓쳤다.
어느새 자리에서 말끔히 사라진 놈이다.
“상당한데.”
유진의 주관적인 평가로 보자면 레이퍼나 흰둥이 따위는 상대가 안 될 정도의 놈이다.
*
“그 지역 일대 소거해.”
가는 도중 미군이 아파트 한 채를 제외하고는 주변에 사람들을 물린다.
이런 상황이 되었어도 인간들 모두에게 자신들의 정체를 알릴 순 없다.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세컨 오더다.
그들의 지위는 곧 명령체계다.
퍼스트가 모두에게 명령하면 세컨과 써드는 그에 충실히 따른다.
그 외 동족은 전부 셋의 명령에 따를 뿐이다.
“상관없다.”
애초에 몰래 숨어 다니며 무방비의 동족을 노린 놈들이다.
장비를 갖추고 만나는 순간, 놈들을 먼지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
쿠르르.
덤프트럭이 멈추고 그가 내렸다.
위잉! 뻥!
트럭 뒷문을 발로 걷어차자.
까아앙!
후앙, 하고 철문이 날아가 아파트 1층 철문에 부딪혔다.
아파트 철문이 뒤로 휘어지며 텅하고 뜯겨 나갔다.
쿵!
그리고 첫걸음을 내디딘 순간이다.
꽝!
어디선가 벼락이 쳤다.
그리고 머리를 향해 무언가 내리꽂힌다.
쩌-엉!
순간 고개가 옆으로 팩 돌아갔다.
“트레이!”
세컨 오더가 외치며 뛰쳐나왔다.
슥.
퍼스트 오더가 손을 들어 막았다.
“이게 최선이라면.”
여기서 끝이다.
방금 전의 일격은 꽤 훌륭했지만, 타격은 없었다.
위를 보자 옥상에 삐죽 솟은 총구와 한 인간이 보인다.
저놈이다. 저격수, 이제까지 자신의 동족을 죽인 놈이다.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저격수 놈이 오른손을 든다.
시력을 집중했다.
흐릿한 놈의 형체가 잡혔다.
놈은 중지를 들고 있었다.
퓨슈슈슈슉!
퍼스트 오더는 말이 없었다.
다만, 아마의 전신에서 증기가 푹하고 뿜어져 나오는 걸로, 감정을 대변했다.
그가 밖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트레.”
다 죽이라는 명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