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79화 (79/206)

#  79

79. 완전 최악의 상황인데

패러사이트.

기생충.

프로비던스와 친척쯤 되는 놈.

그게 세주가 죽인 조두의 정체였다.

그러니까 세주가 죽인 그 머리만 둥둥 떠다니는 놈은 사실 기생충이었다.

“겨우 기생충 하나에.”

자괴감이 머리를 치켜든다.

-우주의 해적이라고 불리는 놈이니까.

우주를 떠돌며 타 생명체에 기생한다.

그 생명체가 죽기 전에 타 행성을 침공한다.

그래서 영원한 삶을 영위한다.

타 행성에 침공하는 것만이 그들이 하는 생산 활동의 전부다.

그래서 ‘해적’이다.

우주라는 바다를 떠돌며 침공만 하니까.

놈들은 기억을 잃을까봐, 자신들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우주선 저장장치에 모아뒀다.

그걸 프로비던스가 파헤쳤고.

-지구는 꽤 훌륭한 자원 보고다. 거기에 인간은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생물이다. 식민지로 삼을 이유가 충분하다.

‘아주 만만하게 보네?’

조두 놈이 먼저 침을 찍었을 뿐이다.

우주에서 지구의 위치는 그리 좋은 포지션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저기 광활한 우주 너머 지성이 있는 존재는 모두 지구를 만만하게 보고 식민지로 삼으려고 한다.

한마디로 하자면 무료 배급되는 선물을 위해 줄을 서 있는 판국이다.

우주의 모든 지성체는 지구의 잠재적 침략자다.

이게 결론이었다.

-나 여기 더 있어도 되지?

‘왜?’

-이거 안 보여? 지금 외계 기술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우주선이잖아.

업데이트의 시간이냐?

남으라고 하려던 순간이다.

꽝!

밖에서 폭음이 울렸다.

“음?”

나호필이 밖으로 튀어나간다.

“무슨 일입니까?”

그 뒤를 세주가 바짝 따라갔다.

투두두!

총성도 들린다.

뚫어 둔 구멍으로 나온 둘은 그대로 멈춰야 했다.

“STOP!”

거친 음성이 귀를 때린다.

미군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군복과 생김새만으로 알 수 있었다.

왼손에 든 권총과 오른손에 수류탄을 들고 있다.

“가까이 오면 터트리겠다.”

그가 외쳤다.

근데 저 미군 나이가 꽤 있어 보인다.

못해도 마흔은 넘었겠는걸.

“무슨 짓입니까!”

나호필이 외쳤다.

“내 말을 믿는다면 지금 당장 저걸 죽여라.”

그의 권총 총구가 향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들어올 때 세주를 향해 미소를 보이던 외국인이 보인다.

금발의 중년 남자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미친 건가?”

그가 입을 열어 답하는 모습을 보고 세주가 나호필에게 물었다.

“누굽니까?”

“미국 외교부 장관.”

“그럼 저쪽은?”

“호위로 십여 명이 왔다고 알고 있는데….”

나호필이 말끝을 흘렸다.

자신도 현 상황을 파악할 수 없는 거다.

제압할까?

마음먹고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이다.

“저건 아군이 아니오!”

미군이 외쳤다.

“무슨 헛소리요?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누구요?”

정장을 입은 남자의 말이다.

“내가 다니엘 라이트요!”

미군이 다시 외친다.

저러다 목에서 피 나겠다.

살살 말해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다.

외계인 놈의 거대한 우주선을 보관하느라 만든 쉘터다.

건물 내부에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다니엘 라이트라고?”

나호필이 혼잣말을 했다.

“그게 누굽니까?”

“외교부 장관.”

권총을 든 남자가 재차 외쳤다.

“움직이지 마!”

움찔.

장왕이다.

그가 슬그머니 발을 빼다가 멈췄다.

다니엘 라이트라고 밝힌 남자는 뒤로 물러나 쉘터 벽에 등을 기댔다.

“저건, 인간이 아니오. 제발 내 말을 믿어!”

-형태변환자.

‘응?’

-우주선에 남은 정보 중 하나야. 다른 생물의 모습을 훔쳐서 따라 할 수 있는 놈들이라고 했는데.

“헛소리 그만하지. 자네 미쳤나? 다니엘 라이트는 나야. 외교부 장관이자 이 자리에 책임자로 온 나!”

반대편의 남자가 소리친다.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이란 소리인가?

아니지.

그냥 저 미군이 미친 걸 수도 있다.

‘스캐닝으로 알아볼 수 있겠어?’

-이미 했는데, 둘 다 인간이야.

그럼 저 남자가 미친 걸까?

일단 제압하고 나서 얘기를 들어봐야겠는데.

“나호필이 누구요!”

테러리스트라고 판명하고 움직이려는 데 자꾸 입을 연다.

“기다려.”

나호필이 세주를 말리고 나섰다.

“여기.”

그가 손을 들고 자신을 표시했다.

그러다 총이라도 쏘면 어쩌려고?

나호필은 D도 먹지 않은 일반인이다.

그의 우측 뒤에서 자리를 잡고 만발의 준비를 했다.

군복을 입은 테러리스트가 입을 연다.

“한 달 전부터 내가 통신을 보낸 사람이오.”

“그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나호필이 되묻자.

“난 나를 증명할 수단이 없소.”

‘미친 것 같지는 않지?’

-그렇다고 여기에서 수류탄을 터트리게 할 순 없잖아.

단숨에 제압하자니 거리가 있다.

차라리 죽이라고 하면 그게 편하겠는데.

“지금 저 미친놈의 말을 믿는 겁니까?”

정장을 입은 다니엘 로버트 2가 입을 열었다.

솔로몬의 판결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누가 진짜 같습니까?”

“모르겠다.”

나호필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세주가 밑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거기!”

다니엘 로버트 1이 세주를 향해 총구를 들이댄다.

“둘 다 진짜라는 말인데.”

아랑곳하지 않고 세주가 입을 열었다.

“둘 다, 팔 하나쯤은 날아가도 본인임을 증명할 수 있다면 싼 거 아닙니까?”

“뭐?”

“팔?”

놀라기는.

-형태변환자는 형태를 변환하는 거지 본질을 바꿀 순 없어. 몸에 일정한 피해를 입으면 본래의 모습이 드러날 거야.

“헛소리 집어치우지. 저자는 미쳤어.”

“쿨럭.”

그 틈에 다니엘 로버트1이 피를 토했다.

퉁!

잠깐의 틈.

세주의 몸이 사라진다.

그리고 나타난 건 그의 옆이다.

콱!

한 손으로 목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수류탄을 뺏는다.

그가 총구를 들어서 세주를 향했지만.

뻑!

이마를 들이받자,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제압 완료.”

애초에 이 정도 거리가 필요했을 뿐이다.

했던 소리도 다 개소리고.

물론 프로비던스에게 들은 정보는 진짜니까.

적어도 진짜 형태변환자라면 동요했을 거다.

그러니까 다니엘2는 인간이 아니다.

“너 뭐냐?”

세주가 묻자.

“무슨 헛소리지?”

그가 여전히 결백한 모습을 보였다.

이 새끼가 아주 사람을 호구로 알아.

프로비던스의 렌즈가 그의 전신을 훑는다.

-신기하기 하네.

어떤 인간이 이런 상황에서 심박 수가 그대로 유지가 되지?

더구나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미쳐 날뛰는 놈 앞에서?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그건 무리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심박수조차 변하지 않는다.

침착할 순 있지만, 몸의 변화가 없을 순 없다.

스캐닝으로 인간과 놈을 구별할 순 없다.

하지만 차이점은 보였다.

한쪽은 쉴 새 없이 땀을 흘리고 흔들리는 데 반해.

그는 너무도 멀쩡하다.

거기에 지금 세주의 도발적인 발언에도 조금의 동요도 하지 않는다.

“정말 전쟁을 원하는 거요?”

그는 끝까지 역할에 충실한 참인가 보다.

미국과의 전쟁을 말한 거겠지만.

“싸움은 너희가 먼저 시작했어.”

훅.

세주가 다시 내달렸다.

오버 페이스 모드를 켜 둔 상태다.

달려들며 주먹을 휘두르자.

“반세주 준장!”

나호필이 급하게 외친다.

하지만.

휙, 하고 놈이 고개를 뒤로 꺾어 피했다.

참고로 지금 속도의 주먹이라면.

어지간한 베테랑이 아니면 피할 엄두도 못 낸다.

“너구나.”

“나 알아?”

피한 그가 눈을 빛내며 말한다.

세주는 답을 한 직후.

뻗었던 주먹을 뒤로 당겼다.

뻑!

팔꿈치로 놈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놈이 세주를 지나쳐 구른다.

멈춘 놈은 금세 몸을 일으켰다.

일으키는 순간, 정장이 뿌지직하고 찢어진다.

뭐냐? 저 근섬유가 똘똘 뭉친 것 같은 모습은.

전신이 마치 근육으로 이뤄진 것 같다.

“후아. 껍질 답답해 죽을 뻔했네.”

후드득.

그가 인간의 탈을 벗었다.

얼굴은 동글동글했고, 눈을 옆으로 쭉 찢어졌다.

코는 없지만 입은 컸다.

얼굴의 반이 입이었다.

“우리 쪽 일원을 해치운 거, 너 맞지?”

그가 뱀처럼 긴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응? 무슨 헛소리야? 난 저 사람의 호위일 뿐인데.”

세주가 모르쇠를 시전 했다.

“…너희 말로 하자면 아주 재수가 없는 놈이라고 하더니.”

조두 놈과 아는 사이인가?

꾸드드득.

그는 기지개를 켜듯 몸을 움츠렸다 폈다.

“목적은 네가 아닌데. 왜 네가 여기에 있는지.”

그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 모습에 괴리감이 느껴진다.

‘인간 같아.’

-인간의 습성을 학습한 거야. 패러사이트 놈과 같아. 방식이 다를 뿐.

인간을 침공한 놈들 중 하나라는 거다.

그럼 미국을 침공한 놈들인가?

“겨우 쓰레기 치우던 놈 하나 잡았다고 기고만장해 있나?”

그가 재차 입을 연다.

“아니, 그런 적 없는데.”

“우리는 약하지 않다. 기대해도 좋다.”

‘개 썅 마이웨이네.’

그런 적 없다니까.

“기대하고 싶지 않은데.”

“그럼 오늘은 이만.”

말과 함께 그가 땅을 박찼다.

퉁!

빠르다.

무엇보다 가는 방향이 나호필 쪽이다.

놀랄 틈도 없었다.

나호필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꽝!

다시 폭음이 울렸다.

‘조두한테 나에 대해서 들었으면.’

저격수란 것도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슈우우우.

어느새 꺼내 든 벼락의 총구에서 흰 연기가 올라온다.

상반신이 날아간 놈의 하체가 바닥에 통통하고 떨어졌다.

“진짜 상황정리 끝.”

세주가 입을 열고 나호필을 올려다보자.

그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내려왔다.

“으으.”

그 사이 다니엘 라이트1, 아니, 진짜 다니엘 라이트가 신음을 흘렸다.

“설명이 필요합니다.”

나호필이 붙잡아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가 흐린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놈은?”

“죽었습니다.”

“죽었다고? 놈들은 불사신이오!”

‘응?’

콰직!

하반신만 남은 놈을 향해 시선을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다리만 남은 놈이 바닥을 찢고 그대로 도망간다.

‘도마뱀이냐?’

-진짜 살아있었네. 생체 신호라고 할 만한 게 전혀 없었는데.

프로비던스의 스캐닝으로도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다.

이번 상대도 만만치 않다는 소리로 들린다.

“나 다니엘 라이트, 정식으로 도움을 요청하오.”

그가 나호필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설명부터.”

나호필은 그에게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나호필 소장 엘리트네.

영어 발음이 원어민 뺨친다.

*

형태변환자의 습격.

그게 미국 전역을 덮친 악몽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싸울 만했소.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지휘관이 죽어 있고. 이겼다고 생각한 전투가 어느새 끝나 있었소.”

“그럼 지금 미군은 놈들이 장악했다는 겁니까?”

“그건 아니오.”

그가 슬쩍 세주 쪽을 쳐다봤다.

“저쪽은?”

“반세주 준장입니다. 이곳에 있을 자격은 충분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시선을 돌리고 다니엘이 다시 입을 연다.

“안나 휴이츠, 그녀가 대통령과 주요 요인을 피신시켰소. 그녀가 아니었다면 전부 죽었겠지.”

“…무슨 말입니까?”

나호필이 되물었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미국 대통령은 건재했다.

현 시국에서 각 나라의 수장들은 핫라인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더구나 미국은 한국과 우호적인 관계다.

“그자는 진짜가 아니오.”

형태변환자.

놈들이 미국 전체를 잡아먹고 있다는 소리다.

‘일이 커지는데.’

-안나 휴이츠….

‘왜?’

-기억이 풀렸어.

‘무슨 소리야?’

이 기계가 또 무슨 미친 소리를 하나 싶었다.

-그 여자 미군에서 형과 같은 위치야.

‘응?’

-설마 전 지구에서 여기에만 외계인의 도움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아니냐?’

-내 이름 프로비던스는 9명의 한국 과학자와 한 명의 외계인의 이름을 따온 거라고 했잖아.

‘그랬지. 반이라고 했었잖아.’

프로비던스를 만든 외계인의 이름.

반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래. 그 반이 설마 한국에만 왔겠어?

‘아.’

-전 세계를 돌며 도울 수 있다면 다 도와줬어. 그는 마치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다는 듯. 침공할 지역에 미리 준비를 한 거야.

‘그걸 왜 이제야 말해?’

-지금 떠올랐어. 안나 휴이츠란 이름을 듣자마자. 잠긴 기억 중 하나였어.

아직도 잠긴 기능이 있었냐?

그보다 그럼.

‘세상에 너 같은 또라이 같은 로봇이 또 있다고? 완전 최악의 상황인데!’

-…말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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