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77. 내 타입 아냐
“트레.”
-멈추래.
그딴 건 통역하지 마!
꽝!
놈의 양손이 전부 포탑이다.
양손에서 레이저 포를 꽝꽝 쏴댄다.
그리고 지금 세주는.
-어, 저건 맞으면 죽겠는데?
‘너도 죽거든?’
-응. 그러니까 좀 피해라.
이러니저러니 해도 프로비던스는 세주의 몸을 숙주로 삼는다.
고로.
지금 세주의 앞에서 양팔을 앞세워 빛을 모아 쏘는 무슨 입자포 같은 건 피하지 않으면 일타이피, 둘 다 죽는다.
오버페이스 모드로 달린다.
기왕이면 아군의 피해가 없는 곳으로.
콰아아아아!
“음.”
방금까지 자리하고 있던 빌딩의 십여 층이 사라졌다.
‘13층짜리 건물이었구나.’
-정신 차리지?
위만 덩그러니 남은 건물 잔해가 바닥으로 추락한다.
쿠왕!
정신 차리고말고, 일단 튀는 게 전부다.
“트레이.”
-또 멈추라는데?
시발, 그니까 통역은 관두라니까.
*
시작은 좋았다.
‘모드 온 인파이터.’
벼락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불릿 마스터 모드의 총알도 안 통하는 상대다.
‘그렇다면야.’
그동안 머릿속으로 적에 대해 준비했던 것들.
놈에게 일격을 가하기 위한 모든 것.
-놈은 아마 근접전에 약할 거야.
-총알을 막는 배리어의 수준을 보면 알잖아?
이미 이전에 프로비던스와 상의했던 내용이고 세주도 동의한 부분이었다.
근접전이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착각이었다.
놈은 우주선 안에서 자신의 부대를 보냈고, 레이저 포를 쐈다.
‘지휘관일 것이다.’
전투보다는 지휘에 특화된 존재다.
사실상 개인 전투력은 현재 예상 범위보다 크게 상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둘의 결론이었는데.
개뿔!
오판이다.
뻑!
주먹으로 놈의 머리를 날린 순간이다.
놈이 다리를 휘둘러 세주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빨라.’
피할 수가 없었다.
인파이터 모드의 스킬, 육감으로 파악했지만.
맞는 순간이 돼서야 놈의 공격을 알아차릴 정도였다.
퉁!
막지는 못했어도 아머가 충격 대부분을 흡수해줬다.
덕분에 살았다.
쩌적.
아머의 옆구리는 깨졌지만.
-두 번째 작전으로 가자.
놈을 상상하며 짠 작전이 하나겠는가?
봄버맨 모드로 변경, 접착 폭탄을 있는 대로 날리려는 순간이다.
딸깍, 위이잉!
놈의 손목이 밑으로 꺾이더니, 텅 빈 손목이 보였다.
곧 그 안에 반짝반짝 흰 빛이 뭉친다.
“시발, 아니지?”
육성으로 부인한 사실을.
-맞는 것 같은데.
프로비던스가 확인해준다.
후왕!
레이저 포다.
몸을 날려 피하며 접착 폭탄을 있는 힘껏 던지자.
꽈앙!
중간에서 그걸 요격한다.
“트레이.”
-어리석다. 바보, 멍청이. 다중적인 의미다.
“염병!”
욕설을 뱉고 몸을 굴리고 피하는 상황이 오기까지 5분도 안 걸렸다.
세주의 위기를 본 순간이다.
“형님!”
치용이 옆에서 끼어든다.
후앙!
화륵!
번 업에 큰 칼까지 하여간 몸의 재능은 천부적인지라.
단숨에 전력을 다한다.
치용은 달리면서 붉은 칼을 던지고 푸르게 빛나는 큰 칼을 내리쳤다.
놈은 붉은 작대기 칼은 놔두더니, 손을 어느새 원래대로 되돌려 주먹을 칼날을 후려쳤다.
까앙!
그리고 어느새 사라진 유진이 놈의 머리 위에서 뚝 떨어지며 주사기를 목에 꽂는다.
팅!
주사기가 튕겨 나간다.
어림도 없는 공격이었다.
뻑!
놈은 유진을 왼손으로 후려치고, 치용을 발로 걷어찼다.
떡!
양팔을 들어 막은 치용이 뒤로 훨훨 날아간다.
그 사이다.
“비켜!”
인준이 백린탄을 던졌다.
훙!
어깨가 평소에 두 배는 부풀어 오른 상태에서 던진 기가 막힌 수였다.
놈은 피하지도 않았다.
퍽!
연막이 아니라 액체 형태로 만든 백린액이다.
몇 개 만들지도 않은 신상품이 놈의 몸에 달라붙더니.
화아아악!
거센 불길을 일으켰다.
‘통했나?’
-아니.
화륵.
탁.
손바닥으로 모기 때려잡듯 불이 난 부분을 찰싹찰싹 때리자, 불길이 금세 멎는다.
“…이건 너무한데요.”
입가에 피를 닦으며 유진이 다가온다.
“총알도, 폭탄도 안 통해?”
인준도 혀를 내둘렀다.
“근접전은 치용이 형, 세주 형을 씹어 먹을 정도고요.”
“야, 누가 씹어 먹혔다고 그래?”
어느새 다시 달려온 치용이다.
“하아압!”
언제 왔는지, 이무영이 달려와 이마에 핏대를 세운다.
사이킥 에너지라면 다를지도 모른다.
이무영의 흰자위만 있는 왼쪽 눈에 핏발이 서다 못해 피눈물이 흐른다.
놈이 몸을 돌려 이무영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대로 앞으로 달려가 걷어찼다.
뻥!
“으아아악!”
실 끊어진 연처럼 훨훨 잘도 날아간다.
“한 방에 팔이 부러져?”
치용이 옆에서 덜렁거리는 오른팔을 잡고 말한다.
“쿨럭, 전 내장이 상했나 봐요.”
유진이 다시 기침을 뱉더니 입가를 닦았다.
피가 나온다.
“그래. 한 번 해보자.”
인준이 의욕을 불태웠다.
그리고 세주는.
‘잠깐 생각 좀 하자.’
딸깍.
놈의 양손이 다시 레이저 포 형태로 바뀐다.
그리고 위잉위잉 다시 포를 쏴댄다.
“비 오는 날의 개미.”
세주가 입을 열고 몸을 날렸다.
넷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몸을 날린다.
도주하며 시간 끌잔 소리다.
‘하나씩 정리해보자.’
가설 하나.
놈은 탄환도 폭탄도 무시한다.
후왕!
레이저 포를 피하며 벼락을 꺼내서 그대로 쏘자.
콰아아아.
육각 패널의 모양이 허공에 생겨난다.
막강한 배리어다.
벼락을 넣고 다시 몸을 날린다.
가설 둘, 이동속도는 빠르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트레이.”
-또 멈추라는데?
놈이 정말로 빠르다면.
멈추라고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옆구리를 후려쳤던 속도로 자신을 따라잡으면 된다.
대신 놈은 레이저 포를 쏘며 세주를 토끼몰이 하듯 몰아친다.
요리조리 피하는 세주는 확신 했다.
‘근거리에서만 빠른 주먹과 발, 그러니까 일정 범위에서만 빨라지는 거야.’
거기에 위협을 느끼면 발동하는 배리어.
달리기 빼고는 공수가 겸비된 완벽한 괴물이다.
벼락, 대신 로켓 리볼버를 꺼낸다.
땅. 슈우우웅!
로켓이 날아간다.
놈은 당연히 배리어를 꺼냈지만.
꽝!
이번에는 적중했다.
정확하게 세주가 노리는 바대로.
놈의 바로 옆.
건물을 맞췄다.
조두 놈 머리 위로 바윗덩이가 떨어진다.
쿠쿠쿠쿵!
먼지구름이 다시 피어오른다.
‘배리어와 레이저 포를 동시에 못 쏴.’
세 번째 가설의 결론이다.
‘놈은 대인 전투에 능숙하지 못하다.’
-어쩌게?
‘핵&슬래쉬 모드 열어 줘.’
남은 에너지를 다 쏟아 붓는다.
보다 강하고 보다 빠르게, 놈을 죽인다.
그게 결론이다.
“제대로 해보자.”
마음을 먹고 한 걸음 나아간다.
콰앙!
놈이 돌무더기를 헤치고 나왔다.
-근데 형.
‘왜?’
“트레.”
‘뭐라냐?’
-화난대.
‘할 말은 뭐고?’
-에너지가 부족한데?
‘응?’
-핵&슬래쉬 모드 오픈 할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거기에 지금 전장과 떨어져서 에너지 수급도 멈춤.
시발, 빨리도 말한다.
세주가 급히 손을 내밀고 적을 향해 입을 연다.
“잠깐만 기다려봐. 형이 할 말이 있어서 그래.”
“트레이.”
-더 도망가면 형 외에 사람을 전부 죽여버리겠대. 자기는 그만큼 화가 났대.
‘그보다 짧게 얘기한 것 같은데.
-직역을 원해? 의역해준 거지.
쾅!
놈이 다시 레이저 포를 쏴댄다.
“에이, 무슨 인내심이 저렇게 없어!”
다시 몸을 날리며 피하자 놈이 세주를 쫓지 않는다.
“트트트레이이.”
-어디 한 번 가봐라. 아군의 시체 속에 혼자 서 있게 될 거다.
“그럼 곤란한데.”
싸울 수밖에 없나?
“형님, 전 아무래도 저 새끼랑 붙어보고 싶습니다.”
치용이다.
시간 끌기가 될까?
“저도요. 도망가자니 남자 가오 상하네요.”
말투가 안 어울린다. 정유진.
콰아아!
인준은 입을 여는 대신 아머에 부착된 미사일을 쐈다.
꽈광!
물론 효과는 없다.
“생각 있는 거지?”
인준이 묻는다.
“5분만 끌어라.”
“5분 안에 저놈 죽을 수도 있다는 거 알고 가십쇼. 퉤.”
손바닥에 침을 뱉으며 치용이 말했다.
제발, 5분 안에 아무도 죽지나 마라.
“밑천 깔 순간이죠? 형님들. 저 먼저 갑니다.”
푹.
유진이 손에 주사기를 들더니 자신 목에 찌른다.
“끄아아.”
이상한 신음을 흘리고, 눈을 감았다 뜬다.
-저거 무슨 짓이야?
‘뭔데?’
-아드레날린과 스테로이드 거기에 D까지 희석한, 뭘 만든 거야? 저 자식.
“흐으으. 이거 기분 이상하네요.”
유진이 피식 웃더니.
놈을 향해 달린다.
오버페이스 모드만큼 빠르다.
소위 말하는 스팀팩이란 걸 직접 몸에 꽂은 효과다.
“으랴랴랴랴랴랴!”
그 뒤를 치용이 따르고, 인준도 달려든다.
그리고 세주는.
“좀만 기다려라!”
슬슬 유인해서 전장에서 벗어난 참이다.
적어도 조두 놈과 싸움에 아군이 죽어나가지 않길 바랐다.
유인했던 그 길을 부리나케 되돌아 달려갔다.
‘내가 에너지 타령을 할 줄이야! 에너지 내놔!’
얼마 뛰지도 않았지만, 아군이 보인다.
‘모드 온 오버 페이스.’
속도를 높이고 벼락을 꺼낸다.
꽝! 꽝! 꽝!
“와!”
“우와!”
아군이 탄성을 질렀다.
나선 자리에서 단숨에 주변을 쓸어버리는 속도.
-이 페이스면 1분.
좋았어.
신명나게 날뛰었다.
셋이 죽지 않길 바라며 더 날뛴다.
그리고 에너지 수급이 완료되자마자.
“자, 나머지 부탁한다!”
외치고 다시 뛴다.
“엇! 올 킬 중령님 어디 가십니까?”
전장은 어느새 아군의 압도적인 우세다.
중간 중간 사이키커 부대가 활약 중이었다.
크롬 팀 장왕의 모습도 보이고.
장광안도 선방 중이다.
이제 남은 건 한 놈뿐이다.
“으아아압! 내가 왔다!”
그리고 본래의 자리로 가자.
“쿠엑.”
이상한 소리를 내며 치용이 바닥을 짚고 있다.
피와 위액이 섞인 걸 토하고 있다.
“후으으으. 형님, 시발. 유진이.”
무시하고 앞으로 걷는다.
“늦었어.”
바닥에 누운 인준이 보인다.
왼 다리가 검게 탔다.
잘려나간 건 아니다.
허벅지 밑이 타서 피는 흐르지 않았다.
레이저 포에 당했구나.
“아프냐?”
“너도 당해 보던지.”
싫다. 아플 것 같아.
마지막으로 유진이 보였다.
취미도 이상한 자식이다.
배에 놈의 손을 왜 꽂고 있단 말인가?
“쿨럭.”
입가에서 흐르는 피가 바닥을 적신다.
동그랗게 모인 피가 고였다.
세주는 눈길을 돌리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등을 뚫고 나온 놈의 손을 반대쪽으로 밀었다.
드드드드.
손이 뒤로 밀리고, 떨어지는 유진의 몸을 받는다.
“트레이.”
-얌전히 목을 내어놔라! 라고 하네.
삼류 영화의 악당 같은 새끼한테 이렇게 당했구나.
대사 센스 봐라.
유진의 몸을 들고 치용을 향해 갔다.
쾅!
놈이 그 뒤를 덮쳤다.
쩍!
날아오던 놈의 몸이 도로 튕겨 나갔다.
그걸 본 치용의 눈이 커졌다.
뭐가 희끗하더니 놈이 튕겨 나간다.
‘안 보였어.’
어느새 곁에 다가온 세주가 유진을 옆에 눕혔다.
“잘 보살피고 있어.”
그리고 몸을 돌렸다.
이미 핵&슬래쉬 모드를 켠 상태.
-너무 오래 유지하지는 마.
‘걱정 마라.’
잠깐이면 된다.
‘불릿 레이스.’
밀리 모드 인파이터 모드를 잇는 유니크 모드이자.
근접전으로서는 최적의 모드다.
탄환만큼 빠르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 불릿 레이스.
핵&슬래쉬 모드의 첫 번째 스킬이다.
탕!
바닥을 박차는데 마치 총성과 같은 소리가 들린다.
순간 사물이 물에 젖은 그림처럼 흐려진다.
놈의 모습만이 또렷하게 잡힌다.
콰직!
처음에는 놈의 양팔.
양손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번 업 상태의 커버링이 그대로 놈의 팔을 부순다.
“트레!”
-아프단다. 비명이야.
그것 참 신나는 소리다.
그 다음은 발.
콰직, 콰직!
오른발을 내리찍어 부수고, 복부를 후려친다.
뻥!
시원한 구멍을 뚫어줬다.
애초에 머리 위만 본체인지, 몸이 금세 재구성된다.
놈이 주먹을 휘둘렀다.
이전에 무섭게 빠르게 느껴지던 것이 이제는 하품이 나올 만큼 느리다.
놈의 품에 파고들어 그대로 껴안았다.
콰득!
허리를 끊자.
파지지직.
홀로그램이 흩어지듯 몸이 조각난다.
왼 손날로 목을 치자.
둥실하고 놈의 목이 허공을 날았다.
통!
놈이 목이 바닥에 떨어지자 몸이 파지직하고 흩어져 사라진다.
세주가 걸어서 놈의 머리 위에 발을 올렸다.
“트레이.”
-살려 달래.
“트레레레이이.”
-자신과 하나가 되자.
이 새끼가.
‘나한테 프러포즈하는 거냐?’
-…상황에 따라서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
“내 타입 아냐. 새끼야.”
콰드드득! 펑!
머리가 터진다.
후아아아악!
놈의 머리에 집중되어 있던 노블 에너지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에너지 폭풍을 만들었다.
그 틈으로 프로비던스가 넙죽넙죽 에너지를 받아먹는다.
“난 글래머가 좋아.”
그리고 몸을 돌렸다.
“형님.”
치용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누운 유진의 모습도.
모드를 풀고 그들을 향해 걸었다.
아시아 3호도 조용하고 더 습격하는 적들도 없다.
-주변 적 반응 없음.
프로비던스가 확인해준다.
긴 전투의 끝이었다.
와아아아아!
마침 저 먼 곳의 전투도 끝을 봤는지.
함성이 울렸다.
하지만 세주는 웃을 수도 함성을 지를 수도 없었다.
저 멀리 반세주 개자식을 열창하는 것에 어떤 뜨거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유진을 향해 걸어갈 뿐이었다.
유진의 두 눈이 꼭 감겨 있는 게 보였다.
세주는 웃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