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
76. 싸우자 개새끼야
전장에 선 세주는 자신의 할 일을 잘 알았다.
그 첫 번째.
아군을 규합해 싸우게 하는 것이다.
“일제 사격!”
투두두두두!
기관총이 불을 뿜고.
슈우우우!
뒤에서 대전차 로켓이 날아간다.
꽈과광!
일순간 앞쪽에 뿌연 먼지가 일어났다.
쿠드드득.
연이은 폭발에 앞쪽 건물이 기우뚱하고 기울어졌다.
-9시 깜빡이 둘.
아군에게 절대적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 그 두 번째였다.
거기에 자신은 저격수다.
철컥.
현재 외계인과의 전쟁에서 영웅 소리를 들을 정도의 저격수!
텅!
반파 된 자동차를 박차고 몸을 띄운다.
앞을 막은 아군과 흰둥이 놈 너머, 뒤엉킨 시야가 탁 트인다.
눈에 보이는 깜빡이는 둘.
둘 사이에는 꽤 거리가 있었다.
확인하고 총구를 든 순간, 세주는 자신이 맞출 수 있는 건 한 마리뿐이라는 걸 알았다.
그 때, 깜빡이 둘의 정 가운데로 뭔가가 보였다.
치용이었다.
그가 미친 듯이 뛰어오고 있었다.
‘치용, 네가 오른쪽이다.’
이래봬도 같이 목숨을 걸고 싸운 사이다.
단번에 호흡을 맞추리라.
둘이 눈이 허공에서 마주치고 세주는 곧바로 총구를 돌렸다.
꽝! 꽝!
공중에서 벼락을 쏘자 몸이 훅 뒤로 밀려난다.
저격은 명중이었다.
깜빡이 두 대 중 한 대가 펑하고 터진다.
그리고.
‘…저 새끼 눈치가.’
-바랄 걸 바래라.
반동으로 밀리고, 밑으로 떨어지는 세주의 눈에 비친 치용이 외쳤다.
“아이 씨! 내 건데!”
터진 깜빡이 바로 앞에서 외치는 모습이었다.
‘그래. 너랑 내가 통할 거라고 믿은 내가 병신이지.’
-응. 형이 병신이야.
‘넌 좀 닥치고 있을래?’
우측에 있는 놈을 향해 급하게 총구를 틀었다.
깜빡.
총구가 돌아가기도 전에 깜빡이는 빛이다.
-늦었어.
‘이런 제길.’
아군의 사기가 하늘 높이 치솟은 이유는 갑자기 죽는 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니, 전처럼 허무하게 죽어가는 이가 없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레이저 포 한 방이라도 먹으면, 멱살 잡고 끄집어 올린 사기가 꺾인다.
거기에 집에 가서 이불을 수십 번 찰 대사까지 했다.
피해를 줄이려고 다른 수를 쓰려는 순간이다.
반쯤 작살 난 자동차가 날아가 깜빡이 옆을 후려친다.
꽝!
그 덕에 깜빡이가 옆으로 틀어지고 레이저 포는 애꿎은 허공을 가로지르다, 옆쪽 빌딩 4층쯤을 펑하고 뚫었다.
텅!
마침 그 힘을 쓴 자의 옆으로 내려선 세주다.
“후.”
왼눈에 검은자위 대신 흰자위만 가득한 남자가 옆에서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발해의 이무영이었다.
힐끗.
그가 세주를 본다.
“너 혼자 싸운다고 생각했나?”
아니, 전혀.
그런 생각 한 적 없는데.
적은 많고 아군은 적다.
아직도 적은 바글바글하다.
벼락을 쏴 연신 서핑보드 놈을 부수고 깜빡이를 깬다.
그래도 적은 많았다.
그러니까 절대로 저놈들 상대로 혼자 싸울 생각은 없었다.
“…나이스 샷.”
세주는 그에게 칭찬을 건네는 것 외에 할 말이 없었다.
-…놀리는 거 아니지?
‘진심인데.’
그 사이 다시 서핑보드가 허공을 난다.
꽝!
벼락을 다시 쏜다.
펑!
날아들던 놈이 터진다.
상대가 너무 많다.
사기가 치솟아 어찌어찌 상대하고는 있다지만.
전쟁은 본래 머릿수다.
중국의 인해전술이 괜히 무서운 전술이라 평가받는 게 아니다.
그리고 그 인해전술을 물리친 건, 미국은 폭격이었다.
그 사이 놈들 중앙에 흰 연기가 떨어진다.
‘왔네.’
기다리던 이다.
인준의 백린연막이다.
백색의 연기가 적 중앙을 감싼다.
흩어지지 않고 적을 몰살하는 사나운 화염 연막.
개량해서 준 아머에 부착 된 기능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낀 연기 안쪽.
“트레에에!”
“레에에!”
“트으으으!”
놈들의 비명만이 가득했다.
“저건 뭐야?”
“몰라.”
“알게 뭐냐? 저 새끼들만 죽이면 됐지.”
아군은 그사이 합심해서 앞쪽에 총탄과 포탄을 갖다 붓는다.
펑! 펑!
지금껏 들리던 것과 다른 폭음에 뒤를 돌아보자.
박격포다.
붉은 화살과 서핑 보드의 숫자가 줄어들자, 뒤쪽도 전열 정비가 끝난 거다.
*
전장의 공기가 변한다.
“킁.”
코끝으로 알싸한 향이 다가왔다.
‘폭탄.’
하지만 거리가 멀다.
어디서 터지는 건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폭탄 냄새 맡는 개 코가 됐지만, 지금 주변에는 그런 폭약이 한 가득이다.
“이거나 먹고 뒈져랏!”
슈웅!
방금도 바로 옆에서 대전차 로켓포를 쏘고.
“으라라라랏!”
이무영이 기합을 넣으며 허공에 수류탄을 던진다.
무려 스무 개의 수류탄의 안전핀을 동시에 뽑는다.
절로 엄지가 들리는 기예다.
염동력을 기가 막힐 정도로 세밀하게 다룬다.
꽈과광!
이런 상황에서 다른 폭약 냄새를 맡은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달달한 향 가운데 낀 알싸한 향.
‘스캐닝으로 폭약 좀 찾아봐.’
-사방이 폭발물인데 무슨 헛소리야?
‘놈들 폭탄 냄새가 나.’
프로비던스의 스캐닝도 필요 없었다.
어느 순간 냄새가 훅 가까워졌다.
그리고 앞을 보니.
꽝!
아군의 전위 부대가 폭발에 날아간다.
품에 납작한 납덩이같은 걸 든 놈이다.
폭탄을 끌어안고 아군을 향해 몸을 던진다.
“끄으으으으!”
“으아아악!”
“내 다리!”
폭발의 여파는 컸다.
“저건 못 막아.”
이무영이다.
근데 왜 옆에서 자꾸 조잘거리는 거냐?
“힘 빠지는 소리는 관두지?”
그 순간, 다시 알싸한 향이 코끝을 찌른다.
많았다.
한두 놈이 아니었다.
수십 마리의 노랑이가 모두 납덩이를 들고 달려온다.
저놈들이 다 달려오면, 원폭만큼이나 커다란 폭발이 일어날 것 같다.
긁적.
첫 번째 놈이야 모르고 당했다지만.
‘이거 해치우면 놈이 내려올까?’
포신이 부서진 우주선의 주인.
이 일의 원흉이자, 목표인 조두 놈.
-가능성은 있지.
놈이 노리는 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정도 피해를 입으면서까지 지구를 원한다는 건.
분명 바라는 게 있을 거고, 저놈 낯짝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모든 위협을 제거하면 된다.
결국, 제 발로 직접 오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직접 나서지 않으면 상대할 수 없다는 걸 알려주는 거다.
화륵.
전신의 노블 에너지를 태운다.
번 업이다.
위이이잉.
벼락의 총구가 푸른빛에 휩싸인다.
‘모드 온 에임.’
스킬 트레이싱.
적군 사이사이에서 튀어나오는 놈들이다.
시야에 잡히지 않으면 트레이싱은 의미가 없다.
세주가 눈을 깜빡이며 입을 열었다.
‘듀얼 모드. 모드 온 쉐어링 사이트.’
남은 에너지로 열어 둔 새로운 모드다.
‘가.’
-오케이.
프로비던스가 어깨에서 날아간다.
기우뚱.
날개 한쪽이 없어서 균형이 엉망이지만.
등 뒤 점화구에서 푸른 불꽃을 뿜으며 올라간다.
왼쪽 눈에서 한 방울 눈물이 흘렀다.
그러자.
오른쪽은 평소에 시야.
그리고 왼쪽 눈은 프로비던스의 시야를 공유한다.
‘보인다.’
달려드는 놈들이.
이상한 경험이었다.
시야를 공유하는 것만으로.
‘세상이 좁아져.’
무슨 일이든,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에 프로비던스가 켜둔 칼큘레이팅 모드까지.
폭발물을 가진 놈들을 향해 에임 모드의 붉은 점이 멈춘다.
철컥.
왼팔을 들었다.
아머에 붙은 벼락의 총구가 전방을 향한다.
‘커브.’
꽝!
벼락이 불을 뿜고, 18mm 커버링 탄환이 휘어져 적군 사이를 누빈다.
펑!
가장 앞서서 달려오던 놈이 펑하고 터졌다.
적군 사이에서 놈이 지닌 폭탄이 터진다.
꽈광!
“전위 부대 전속력 후퇴!”
세주가 외치며 다시 벼락을 쏜다.
쾅! 펑! 쾅! 펑!
꽈광! 꽈광!
-위.
그사이 프로비던스가 경고를 날렸다.
머리 위, 놈의 우주선을 향한 시선에 보이는 것, 육각형의 포신이다.
‘저건 몇 개나 있을 것 같냐?’
-두 개. 그 이상은 없어.
그 사이 스캐닝 모드로 놈을 파악한 프로비던스다.
철컥.
왼팔에서 벼락의 탄피가 팅하고 나온다.
아무렇게나 바닥에 버리고 다시 재장전.
그리고 천천히 켜둔 모드를 풀었다.
“제길! 레이저 포다!”
“피해!”
“전부 도망가!”
우주선의 포신을 발견한 아군이 기겁한다.
어느새 성큼 가까워진 놈의 우주선이다.
부러진 포신 바로 밑, 육각형의 두꺼운 기둥이 보인다.
아군을 향한 두 번째 포신이다.
“학습능력 없는 새끼.”
세주가 중얼거리고 하늘을 본다.
‘모드 온 불릿 마스터.’
백도어로 연 것도 아니고 정당하게 에너지를 지불했다.
고로.
몇 발이든 쏴줄 수 있었다.
준비를 단숨에 끝내고 벼락을 쏜다.
후웅.
곧 세주가 뒤로 쭈우욱 밀려났다.
두 번째 포신에 흰빛이 모이기도 전이다.
꽈아아아아앙!
대기를 찢는 폭음과 함께 훅하고 뚝하고 반이 부러진 포신이 바닥을 향해 추락한다.
후아아아아앙!
꽈과광!
먼지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와?”
냉철한 얼굴을 하던 이무영이 입을 벌리고 세주를 바라본다.
아저씨 침 나올 것 같은데.
“전군.”
호흡이 거칠어진다.
아무리 정당하게 연 모드라지만.
유니크 모드가 몸에 부담을 주지 않는 건 아니다.
숨을 돌린 세주가 입을 연다.
“돌격!”
그의 외침이 아군의 귀에 박힌다.
사이키커도, 서핑보드도, 깜빡이도, 노랑이도.
자폭도, 레이저 포도 안 통한다.
질 수 없는 전투였다.
“두 번째 보는 거지만 진짜 무지막지하네요.”
언제 왔는지 유진이 옆으로 다가온다.
“일은?”
“전부 끝냈어요.”
사이키커를 다 잡았다는 얘기다.
“잘했다.”
치용도 어느새 옆에 다가오고.
백린연막을 뿌려서 적을 학살한 인준도 성큼성큼 다가왔다.
-준비해. 온다.
프로비던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에서 백색 유성이 떨어졌다.
쌔애액!
꽈르릉.
아까부터 불안하게 흔들거리던 고층 빌딩 위.
꽝!
하고 백색 유성이 그 빌딩 옥상을 맞췄다.
쿠르르.
빌딩이 신음을 흘리다 모로 기운다.
다행히 아군이 모인 쪽이 아니었다.
꽈과과광!
귀를 찢는 소음과 먼지가 확하고 해일이 되어 주변을 덮쳤다.
콰콰콰콰.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그 사이.
세주는 벼락을 분리하고 바닥에 엎드렸다.
“뭐하십니까?”
치용이 옆에 쪼그려 앉는다.
“저격.”
“뭘요?”
바로 옆 유진도 묻고, 어느새 다가온 인준이 대신 입을 연다.
“너 저 뇌 없는 새끼 닮아 가냐? 아까 떨어진 거 못 봤어?”
“그 하얀 거요?”
무너진 빌딩 사이에 떨어진 거다.
넷 다 보통은 넘어선 이들이다.
눈에 커버링을 씌우자.
먼지 너머로 인간의 뇌와 닮은 것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게 보였다.
투명한 유리막에 떠 있는 뇌와 넘실거리는 머리카락.
아니, 머리카락은 아니다.
전부 노블 에너지다.
“환영 인사 해줘야지.”
조두야, 조두야. 우리 집에 왜 왔니?
처음부터 출력 빵빵하게.
‘모드 온 불릿 마스터.’
오늘만 해도 세 번째다.
세주는 포신을 때릴 때와 다르게 탄환을 작게 만들었다.
애비탄 미니 버전.
놈을 위한 선물이다.
훙.
드드득!
시간 끌 것 없이 놈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자.
세주의 몸이 엎드린 채로, 뒤로 밀린다.
턱! 턱!
치용과 유진이 발을 내밀어 세주가 밀리는 걸 막았다.
콰아아아아아.
폭음 대신 들리는 소리다.
폭포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사아아악.
어디서 바람이 불어와 먼지구름을 훅하고 걷어갔다.
“트레이.”
들리는 목소리다.
여성에 가까운 기계음이다.
넘실거리는 노블 에너지 머리카락 밑.
사지를 단 인간 형태의 괴물이 서 있다.
세주가 조두라 이름 붙인 놈.
이 침공의 시작이자 끝.
-죽이겠다고 하는데?
‘…알아들어?’
-당연하지. 나 프로비던스야. 언어 형태 파악해서 간단한 뜻 정도는 전해줄 수 있어.
세주가 몸을 일으켰다.
놈과 정면으로 마주 선 상태다.
그 사이에서도 아군과 적군의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아직도 비명이 들리고, 폭음이 터진다.
‘내 말 알아들을까?’
-아마도.
“후아.”
숨을 한 번 내쉰 세주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선다.
가까이는 지금도 아군이 죽어 나가고.
멀리서는, 이 침공으로 인해 죽은 이들을 셀 수도 없다.
광화문에 세운 위령비에 이름을 올린 이들의 숫자가 수천을 넘었다.
놈들과 싸우며 죽어간 비무장지대의 군인들.
김택동이 자살로 막은 골의 침공이 끝났지만.
2차로 터진 기둥 침공에도 죽은 이들의 숫자가 적지 않다.
3차라 할 수 있는 지금도 죽은 이들이 많다.
“싸우자. 개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