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73화 (73/206)

#  73

73. 불붙이죠

두둥!

흰둥이 놈들이 총을 쏘고.

끼에에엑!

레이퍼가 미친 듯이 달려든다.

지옥도가 따로 없다.

“후퇴! 후퇴!”

연신 뒤로 물러나자, 전차가 앞으로 나선다.

“쏴!”

꽝!

포탄이 적을 향해 날아간다.

펑!

단숨에 적의 전열이 무너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트레레.”

“레레.”

뭐라고 지껄이며, 놈들이 허공에 흰 구슬을 던진다.

뭉친 구슬이 전차를 강타한다.

꽈과광!

“염병할!”

아군이 뿔뿔이 흩어진다.

퇴각뿐이다.

살아남을 수가 없다.

놈들은 끊임없이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갈겼다.

거기에.

“제기랄! 깜빡이다!”

깜빡이, 새로운 적이었다.

흰둥이 놈 다섯이 붙어서 지키는 적의 무기다.

다리 넷에 조명 같은 렌즈가 전면을 채우는 놈이다.

깜빡.

그 렌즈가 깜빡인다.

깜빡이라 부르는 이유였다.

훙! 콰과광!

깜박이고 나서 3초, 렌즈에서 초고열의 레이저 포를 쏴댄다.

“끄아아아악!”

다리를 잃은 병사 하나가 비명을 지른다.

바로 옆 전우가 다가와 그의 팔을 잡아끈다.

질질 그를 끌면서 뒤로 달리는데 누군가 팔을 내리친다.

빡!

“윽!”

소총을 들고 뒤로 고개를 돌리자.

자신이 끌고 오던 병사가 주먹을 쥐고 있다.

“놓고 가! 병신아!”

“싫습니다!”

“야, 장우혁!”

“안 됩니다!”

이러다가는 둘 다 죽는다.

“장우혁, 미쳤어? 안 꺼져? 꼴 보기 싫으니까 가라고! 안 가면 내가 쏴버린다!”

“조까.”

장우혁은 웃으며 말했다.

서로 치고받고 산 세월만 2년이다.

이등병 때부터 같이 있었다.

그 2년 동안.

우혁이 병장을 달고 지금 쓰러진 이는 하사가 됐다.

서로 등을 지키며 싸운 시간이다.

우현이 입을 연다.

“안 버린다고. 새끼야.”

나이는 동갑이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친구로 지내곤 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김장우는 이 미친 새끼를 보내야 했다.

“가라, 제발.”

“안 가.”

장우혁은 끝끝내 그를 잡아끌었다.

퍽! 퍽!

팔을 때린다.

번쩍.

그리고 둘의 뒤로 빛이 번쩍였다.

깜빡이다.

“염병.”

장우혁이 밑을 내려다봤다.

“개 같다.”

“내 말이. 시발.”

김장우가 그의 말을 받았다.

둘은 뒤로 돌아 소총을 갈겼다.

타다다다!

의미 없는 반항이었다.

파아앗!

곧 레이저 포가 둘을 삼켰다.

뼈마디 하나 남지 않는 열기에 둘의 흔적이 사라진다.

“끄아악!”

곳곳에서 병사가 죽어 나갔다.

총원 400명이 모인 부대원 중 살아남은 이는 고작 50명이었다.

그들이 겨우 적군을 피해 후퇴한다.

50명 중 하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살았다.’

뒤를 쫓는 놈들이 안 보인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끔찍했다.

쫓는 놈들도 쫓기는 지금의 상황도.

위이이이잉!

소음이 들렸다.

50명이 모두가 고개를 든다.

타원형의 서핑 보드처럼 생긴 허공을 부유하는 이상한 기계다.

그리고 그 서핑 보드의 앞쪽 얇은 면이 열리며, 납작한 원반이 나온다.

그리고 곧 그 원반이 전기톱처럼 위이이잉하고 돌아간다.

밝은 빛을 뿌리는 원반톱이다.

곧 그 원반톱이 허공을 날았다.

“끄아아악!”

피육!

스치는 순간 방탄복이 쩍 벌어지고 사람 두개골쯤은 우습게 자른다.

“반격해!”

소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진다.

투다다다! 꽈광!

하지만 서핑 보드는 유려하게 허공을 날며 그 모든 걸 피했다.

50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데 걸린 시간이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

“인정할 건 인정하죠.”

유진이 입을 연다.

“뭘?”

우직!

회색 콘크리트 덩어리를 들고 던진 치용이 물었다.

“이대로는 한나절이 걸려도 못 찾아요.”

“그래. 너무 비효율적이다.”

인준이 유진의 의견에 동의했다.

“어쩌자고?”

콰드드드 팅!

치용이 철골을 잡고 당기다가 뒤로 훅하고 밀려난다.

중간이 똑 부러졌다.

“터트리죠. 폭약 가진 거 있죠?”

“있긴 하지.”

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더 무너지면?”

치용치고는 머리를 굴린 질문이다.

인준이 내심 감탄했다.

노브레인이 생각을 한다.

“자, 만약 세주 형님이 죽었다면….”

“안 죽었어.”

치용이 끼어든다.

“그러니까 만일이잖아요. 죽었다면 여길 터트리든 말든 상관없어요. 그리고 살았다면 지금 뭐 하고 있을까요?”

“나오려고 하겠지.”

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세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죽었다면 어차피 상관없고, 살았다면 정신을 차리고 올라오고 있을 거다?”

“다들 세주 형님이 어떤 줄 알잖아요. 고작 이런 폭발에 정신을 잃고 헤매고 있을 것 같아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실제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다.

“아무렴 그럴 일 없지. 형님 지금쯤 거의 다 올라왔을지도.”

치용이 넘어오고.

“하자.”

인준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폭약 설치하죠.”

미친놈들이었다.

지하에 갇힌 사람을 살리기 위해 윗부분을 다 박살내서 날려버리겠다는 발상이라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유진도 정상 범위 안에 있는 인간은 아니었다.

곧 폭약을 설치한 후, 뒤로 물러났다.

인준이 도화선을 길게 연결한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을 연다.

“놀라진 않겠지?”

“형님이에요. 이 모든 걸 예상하고 있을 거예요.”

유진의 얼굴에 확신으로 가득 찬다.

“진짜?”

치용이 되물었다.

“네. 진짜. 잘 생각해봐요. 세주 형님 없이 이 싸움 이길 수 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질 것 같다.”

“질 것 같은데.”

치용과 인준의 대답이 같았다.

“우리가 할 일은 간단해요. 빨리 세주 형님을 끌어올려서 전장에 가는 것. 자, 이제 합의 끝, 불붙이죠.”

*

‘혹시 나 구한다고 오지 않을까?’

-누구? 또라이 삼형제?

‘나의 충실한 부대원들이지.’

-와서 폭약 터트려서 형 구한다고 난리나 안 피우면 다행이지.

‘넌 그 자식들이 정말 또라이로 보이냐? 적어도 유진만큼은 아닐 거다.’

폭약이라니.

생각이 있는 놈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이다.

지금도 프로비던스가 기가 막히게 붕괴 범위를 확률로 계산해서 알려주고 있다.

콘크리트 덩어리 하나 빼고 철골 하나 들추고 위로 올라가는 형세다.

“킁킁.”

그러다 세주가 갑자기 개처럼 코를 씰룩인다.

-왜?

‘폭약 냄새나는데.’

그것도 꽤 고농축이다.

위로 고개를 올렸다.

흙과 건물의 잔해로 막힌 위쪽이다.

‘설마.’

누가 건물 잔해 위에 폭발을 일으키는 건가?

냄새만으로 구별하기에는 적의 폭발물이 아니다.

아군 것이 더 담백한 냄새가 나고, 적의 것은 시큼한 향이 났다.

‘아닐 거야.’

갑자기 부대원 얼굴이 떠오른다.

꽈과광!

곧 위에서 폭음이 울리고.

쿠르르르르!

사방에 흙과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밀려 내려온다.

“염병할!”

-대피로 계산 중.

대피로는 무슨 개뿔.

번 업.

전신의 노블 에너지를 태우고 땅을 박찬다.

콰과과과!

속에서 뭔가 울컥하고 올라왔지만, 꿀꺽 삼켰다.

이대로 이 무게에 지면 함몰되는 거다.

그러면 아무리 세주라도 생매장 당하는 꼴을 못 벗어난다.

눈을 감고 노블 에너지 전부를 쏟아 붓는다.

‘도전.’

전신의 에너지를 쏟아 넣어서 몸을 마치 창처럼 만든다.

그리고 바닥을 박찬다.

프로비던스가 남은 에너지가 간신히 주변에 배리어를 만들었다.

콰아아아.

눈을 감고 위로 솟는다.

쾅!

그대로 땅 위에서 솟는다.

“웩!”

나오자마자 무리하게 노블 에너지를 운용한 대가로 피를 토했다.

안 그래도 전신 화상에 다리까지 부러진 몸이다.

그리고 바닥을 굴렀다.

눈을 떠서 앞을 보자.

치용과 인준, 유진이 보였다.

“형님!”

셋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야, 너희.”

울컥하고 다시 속에서 핏덩이가 솟구친다.

몸이 엉망이다.

-레스큐 모드 가동.

프로비던스가 알아서 몸을 회복해준다.

저 뒤로 왜 앰뷸런스 같은 게 보일까?

셋이 가까이 오자, 세주가 입을 연다.

다시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혼미해지는 정신을 붙잡았다.

세주는 꼭 물어야 했다.

“어떤 새끼냐? 누가 폭탄 터트렸어?”

그리고 고개를 뚝 하고 떨어뜨렸다.

유진과 치용이 인준을 바라봤다.

터트린 건 인준이니까.

*

눈을 감고 있는데, 따스한 손길이 느껴졌다.

눈을 뜨자.

의외의 얼굴이다.

강슬, 비무장지대의 베이글 미녀가 아니라 의사다.

붉게 염색한 머리칼을 뒤로 질끈 묶은 그녀가 세주를 바라본다.

“여기서 뭐 하십니까?”

세주가 묻자.

“일하죠.”

그녀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답한다.

팔에 링거를 꽂고, 약을 주사한다.

그리고 세주의 다리를 보고 입술을 깨문다.

“정확한 건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알겠지만, 복합 골절 같아요.”

사무적인 태도다.

세주가 빤히 바라보자.

“의료 봉사 지원 왔어요.”

“위험합니다.”

“알아요.”

이 여자는 뭘까? 목숨을 내놓고 다니는 걸까?

“위험한 데 왜 옵니까?”

그녀가 바닥을 훑더니 총 모양의 엑스선 촬영기를 꺼낸다.

간이형 엑스선 촬영기다.

그걸 세주의 다리에 대고 그대로 쭉 훑는다.

“음. 뼈를 맞춰야겠어요. 생각보다 심하지는 않네요.”

당연한 소리다. 레스큐 액트 모드가 계속 치료 중이니까.

“왜 왔습니까?”

“다친 사람 구하러요. 전 의사니까요.”

직업 정신 투철하네.

세주가 상체를 반쯤 일으켰다.

“아직 움직이면 안 돼요.”

“그거 잘 들고 있어요.”

엑스선 촬영기를 보니 뼈가 어떻게 뒤틀렸는지 알겠다.

세주는 손끝에 노블 에너지를 모아서 다리를 푹하고 찌른 뒤.

대충 뼈를 맞춘 뒤 손가락을 뽑았다.

피가 샘솟자, 강슬이 급하게 거즈를 겹쳐 막는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놀란 강슬이 외쳤다.

“놀 시간이 없습니다.”

그쪽이 의사라면, 세주는 군인이다.

그리고 군인은 싸우는 사람이고.

레스큐 액트 모드가 풀가동 중이다.

손가락이 파고든 상처가 금세 사라진다.

“…재생력이.”

D를 먹은 병사는 재생력이 다른 이들보다 탁월해진다.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닌데.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세주가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예쁘네.’

-이제 걸을 만한 것 같은데, 얼굴 감상은 그만하지?

질투는.

“저기 강 닥터.”

“말해요.”

쉬지 않고 말했다.

“나중에 밥이나 한 끼 합시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작은 천막이었다.

간이용으로 만든 것이었는지, 작고 좁았다.

채 세 걸음을 떼기도 전에.

“살아오면요.”

뒤에서 강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또 제가 좀 합니다.”

살아오는 거야 자신 있다.

답해주고 밖으로 나오자.

“거, 형님 그냥 딱 잡고 입술부터 들이대면 됩니다.”

치용이 진지하게 말하고.

“풉.”

인준이 비웃는다.

“식사라는 표현을 권장해요. 형.”

유진이 신중한 얼굴로 말한다.

세주는 그들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치용을 발로 걷어찼다.

뻑!

“악!”

“너지?”

폭탄을 던지고 터트리자고 제안한 거 분명 생각 없는 이 새끼다.

“아닙니다!”

“아냐? 그럼?”

“정유진이가 했는데 왜 저한테 그러십니까?”

정유진이?

뒤를 돌아보자 얼굴 하얀 그가 배시시 웃는다.

미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강슬보다 예쁜 얼굴일지도 모르겠다.

“최선의 선택이었어요. 아군은 미친 듯이 죽어 나가고 형이 필요했어요. 온종일 땅 파서 형이 나오면 뭘 해요. 이미 다 죽고 난 뒤라면 의미가 없잖아요.”

-일리 있네. 그대로 조금씩 올라왔다면 하루는 걸렸을 거야.

세주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시간은 고작 두 시간.

하루가 아니라 고작 몇 시간 갇혀 있다고 나온 셈이다.

유진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세주만 있다면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

‘사이비 종교 교주가 된 기분인데.’

-뭐, 거짓말은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가자.”

장비를 챙기고 셋을 앞세운다.

반격의 시간이다.

셋을 위한 아머도 새로 완성됐다.

“형님.”

치용이 그런 세주를 부른다.

세주가 눈으로 묻자.

“왜 저만 때립니까?”

-분위기 파악 못 하는 무식한 놈.

“이거 줄게.”

그의 앞에 아머를 꺼내 준다.

치용의 눈이 금세 아머로 향했다.

전과는 다른 형태다.

훨씬 얇아서 몸에 착 붙는 형태의 아머다.

검은 슈트 같은 느낌이다.

액체 형태의 배리어를 발견한 프로비던스의 개발품이다.

이름 하야.

“노브레인이다.”

그의 코드명과 같다.

“마음에 쏙 듭니다.”

치용이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자, 그럼 이제 진짜 반격의 시간이다.

“가자.”

다시 입을 연 세주다.

그리고 셋이 그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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