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72.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네 최대 강점이 뭔 줄 알아?”
“얼굴?”
세주의 물음에 치용이 말했다.
-죽여. 그냥 죽여 버려. 나 모욕 받았어.
“미친놈.”
인준이 옆에서 치용의 대답에 대해 신랄한 평가를 했다.
“이 정도면 남자답고 잘 생긴 거지.”
“…그렇죠. 수렵시대였다면 킹카였을 겁니다.”
유진마저도 치용의 대답에 멋들어진 답을 뱉었다.
“자, 치용아. 정신 차리고.”
세주는 말을 아꼈다.
생각해보니 말한다고 이해할 놈이 아니다.
-대단하긴 하네.
‘그러게.
치용은 타고난 놈이다.
딱 한 번, 상대한 패턴은 절대 다시 통하지 않는다.
생각하고 움직이는 게 아니다.
몸이 반응했다.
그는 한 번이라도 싸워 본 상대라면, 어떻게든 이길 수 있는 그런 재능을 가졌다.
*
한 번, 노랑이를 상대해 본 경험.
놈들의 패턴은 대동소이했고.
레이퍼는 비무장지대에서 신물 나도록 싸웠다.
타다닥!
땅을 박차고 가까운 거리에 접근하자 놈들이 붉은 작대기를 뽑아낸다.
스걱!
끼에엑!
왼손에 든 푸른 칼로 가까운 레이퍼의 머리를 쪼개고.
오른손에 든 붉은 작대기를 길게 만들어 한 놈의 목을 찌른다.
푹!
“트….”
놈이 바닥으로 쓰러진다.
다시 넷의 작대기와 레이퍼가 거칠게 그를 물어뜯으려 덤빈다.
치용은 물러나는 대신 앞으로 굴렀다.
구르면서 붉은 작대기를 던졌다.
날을 세운 작대기가 다시 한 놈의 머리를 뚫고.
몸을 일으킨 직후, 전신에 흐르는 노블에너지를 몽땅 남은 칼에 붓는다.
‘큰 칼.’
그리고 뒤로 돌면서 크게 휘둘렀다.
스아아악!
쩌저적!
세 놈의 몸을 단숨에 상, 하체로 분리한다.
끼에엑!
빡!
살아남은 레이퍼의 머리를 주먹으로 치고.
옆으로 몸을 날리며 칼을 휘돌려 다시 한 마리 레이퍼의 머리를 벤다.
석!
타닥!
움직이고 벤다.
단순한 동작의 연속이었지만, 놈들은 막지 못했고 레이퍼가 허무하게 바닥에 누웠다.
“후아, 후아.”
참았던 숨을 토한 치용이 털썩하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서 있을 힘도 없었다.
딱 한 번 상대해본 것으로, 놈들의 사각을 파악한 거다.
재능으로 치자면, 초일류급이었다.
“어이.”
마침 인준이 다가온다.
휘이이잉!
그때 머리 위 전투기가 날아갔다.
놈들의 우주선을 노리고 미사일을 쏘고.
퍼버버벙!
뒤에서 연신 지대공 폭격이 놈의 우주선을 노린다.
“일단 치료부터.”
인준의 말에 유진이 나노킷을 들고 치용의 몸에 뿌렸다.
셋은 잠시 말이 없었다.
퍼버벙!
허공을 나는 비행체가 아군의 전투기를 떨구는 모습이 보였다.
‘최악이네.’
인준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전황을 파악할 것도 없다.
이 전투는 패배다.
50명의 저격병은 보이지 않았고.
대공포대 만으로 놈들의 비행체를 다 막을 순 없었다.
거기에 거대한 우주선.
다시 그 레이저 포가 이곳을 강타한다면 그곳에 살아남은 이가 있을까?
‘이 전투는 졌다.’
인준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 말은 인류의 패배를 의미했다.
타국이라고 사정이 다를 것 같지 않았다.
“가자.”
치용이 몸을 일으켜 걷는다.
“어딜?”
인준이 묻자.
“형님 찾으러.”
유진이 몸을 일으켜 치용을 따른다.
“형님이라는 작자가 여러모로 골치 아프게 하네. 어디서 갇혀서 앵앵거리고 울고 있는 거 아니냐?”
“풉. 재밌네요. 세주 형이 우는 거.”
“야, 없다고 막말하냐?”
“없을 때는 원래 욕도 하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냐?”
치용도 피식 웃었다.
셋은 그대로 무너진 건물로 향했다.
치용이 잠시 뒤를 돌아봤다.
죽어 널브러진 시체와 육신의 파편들이 보였다.
‘나중에 보자.’
죽은 이들의 이름이 아직도 머리에 맴돌고 있었다.
*
‘여긴 지옥이냐? 천국이냐?’
세주는 눈을 뜨자마자 프로비던스를 불렀다.
-아직 지옥이지.
살아있단 소리구나.
프로비던스의 푸른빛이 주변을 밝혔다.
몸을 웅크리고 버틸만한 아주 작은 공간이다.
파지직.
스파크 튀는 소리에 옆을 보자.
날개 한쪽이 부서진 프로비던스가 보였다.
‘아프냐?’
-나보다는 형 몸을 더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자.
이상한 모양으로 뒤틀린 왼다리가 보인다.
그 폭발에서 겨우 다리 하나가 부러진 거다.
운이 억세게 좋았다.
아니, 운이 아니라 프로비던스 덕이었다.
레이저포가 강타한 순간이 떠올랐다.
-사망률 100%.
“염병!”
방금 막 아군 하나를 발로 찬 순간이다.
프로비던스는 냉정하게 살아남을 확률이 없다고 말했고.
세주는 몸을 틀며 노블 에너지를 있는 대로 끌어올렸다.
오버페이스로 피하기는 늦었다.
놈이 쏘아낸 광선이 이미 코앞이었다.
“브로!”
-에너지 쓴다!
지금 승인이고 자시고 물어볼 때냐?
“해!”
노블 에너지를 겹겹이 쌓아 아머에 때려 박았다.
우우우웅!
아머가 반응하며 푸른 막을 만든다.
품에 있던 PBB, 배리어 구슬을 몽땅 터트리고.
-배리어 시스템 가동.
프로비던스가 세주의 몸 주변으로 육각형 패널을 만든다.
그리고 오버페이스 모드를 켜둔 그대로 뒤로 몸을 날렸다.
-꽈앙.
바로 곁에서 터진 빛의 포탄은 그리 시끄럽지 않았다.
그저 폭음이 울리는구나, 하고 느껴졌을 뿐이다.
고열에 콘크리트와 철골이 녹고, 부서지고 폭발한다.
프로비던스가 만든 배리어가 녹아 없어지고.
푸른 반구를 만든 아머가 부서진다.
PBB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죽음을 직감했을 때, 세주는 반사적으로 밑을 향해 총구를 향한 채로 쐈다.
꽝!
노블 에너지를 모아서 쏜 바닥이 뚫리고, 그대로 밑으로 추락했다.
최대한 폭심지에서 멀어져야 했다.
부서지고 녹아 없어지는 건물의 열기를 느끼며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남은 노블 에너지를 터트렸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따갑다.’
화상을 입었는지 피부가 따끔거리고 왼 다리가 부러졌다.
-복합 골절이야. 자체 치유로는 무리야.
일어나자마자 레스큐 모드를 켰지만.
‘아프다.’
-그럼, 놈이 가진 최강의 창을 맞고도 따끔할 줄 알았어? 그리고 형, 호구야? 그냥 그 한 놈 놔두고 갔으면 됐잖아.
‘본능이었다. 새끼야. 이미 지나간 일로 잔소리할래?’
자신도 안다.
재수 없는 소리가 아니라, 일개 병사보다는 자신의 목숨이 더 소중하다는 걸.
전쟁의 측면에서 봤을 때도, 그러하다.
하지만.
본능이다. 본능.
반사적으로 그를 살렸고, 대신 자신은 목숨을 건 도박을 해야 했다.
-마지막에 벼락을 쏜 건 칭찬해.
‘아이고, 감사합니다.’
“후우우우.”
호흡을 뱉는 데 목이 따끔거렸다.
바깥뿐 아니라 몸 안쪽도 화상을 입은 것 같다.
전신이 뜨겁다.
-위기네.
‘위기지.’
예상하지 못한 일격이다.
쏠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소리 없이 다가와서 머리 위에서 꽂을 줄 누가 알았나.
놈이 나타나길 바랐다.
보이지도 않는 놈을 잡을 순 없으니까.
그리고 놈은 나타났고, 세주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나한테 이거 레이저 포 쏜 새끼 졸라 좋아하고 있겠지? 나 죽은 줄 알고.’
-그렇겠지.
‘근데 여기서 어떻게 나가냐?’
-잘 나가야지.
이 미친 기계 새끼가 또 의무를 팽개친다.
‘그 잘 나가는 방법을 얘기해보시지.’
-두 가지야. 하나는 무리 좀 해야 하는 거고, 또 다른 하나는 누군가 꺼내주는 거지.
‘내가 얼마나 갇혀 있었는데?’
-2시간.
길다.
아군이 자신을 찾을까?
레이저 포를 직격으로 맞고 빌딩 안에 갇힌 놈을?
‘내가 올라가야겠네.’
-무리 좀 해야겠지.
부스스.
머리 위로 회색 가루가 떨어졌다.
“천천히 가자, 천천히.”
주문을 외우듯 말하고 세주가 위로 손을 뻗었다.
하나씩 뚫고 올라가는 거다.
-지상 50m 이내로 다가서면, 알지?
안다.
남은 힘을 모아서 뚫고 올라간다.
그리고 놈과 맞서 싸운다.
‘시발, 욕이 절로 나오네. 야, 이거 이길 확률이 너무 적은 거 아니냐?’
-애초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어.
다윗이 어떻게 이겼더라?
돌팔매질을 했던가?
*
이이이이잉!
충청도를 비롯해 각지에 있는 전투기가 창공을 날았다.
후앙!
미사일을 쏘고, 포탄을 갈긴다.
퍼버버벙!
하지만 의미가 없었다.
적은 막강했다.
날아다니는 비행체는 어떤 기술이 도입되었는지 공중을 유연하게 선회했고.
거대한 우주선은 미사일을 맞아도 끄떡도 안 했다.
육각형 패널로 감싸인 배리어는 아군의 어떤 공격도 유효하지 못했다.
펑! 퍼버벙!
공중을 제압당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거기에 몇 개의 비행체가 갑자기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레이더에도 육안에도 잡히지 않는 스텔스 기술이다.
놈들의 비행체는 곧바로 지대공 포대가 있는 곳에 미사일을 퍼부었다.
꽈과과광!
지상에 안착한 레이퍼와 흰둥이, 노랑이, 빨강이.
그리고 모선에서 골 다섯이 모습을 드러냈다.
절망이란 단어를 현실로 표현한 모습이었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가한 총공세.
인류, 아니 군 지휘부는 패배를 직감했다.
*
소신출 중령.
그는 한국이 낳은 최고의 조종사였다.
현역임에도 많은 이들을 최고의 조종사를 만든 베테랑 교관이기도 했다.
오기 전, 서로 가겠다고 난리 치는 놈들에게서 강압적으로 이번 임무를 가져왔다.
작전명 소멸.
“작전 브리핑하겠다.”
강대총이 직접 왔다.
“미사일을 요격하는 놈들이다. 거기에 배리어는 뚫리지도 않는다. 중령이 할 일은 하나다.”
“압니다.”
멋들어지게 조종해서 핵무기를 실은 전투기로 놈의 모선에 다이빙하는 것.
그게 전부, 그는 자살 특공대다.
“우리는 아직 지지 않았다.”
적의 모선을 무너뜨리고, 반격의 불씨를 쏘아 올린다.
그게 사령부 총괄 강대총의 작전이자 모든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죽었다.
자신이 가르친 교관도 동기도, 선배도.
소신출은 전투기를 향해 걸었다.
시간은 언제나 적의 편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장에서 인간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필승.”
강대총의 앞에서 경례를 올리자.
강대총도 천천히 손을 올린다.
“필승!”
이등병 못지않게 큰 목소리다.
그대로 그를 뒤로하고 걷는다.
저벅저벅.
“중령님!”
그리고 전투기에 다다른 순간.
뒤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필승!”
전투기 조종사 모두다.
죽은 이를 제외한 300명이 넘는 이가 모두 한 목소리로 경례한다.
척.
소신출은 말없이 마주 경례하고 전투기에 탑승한다.
텅.
조종석 문이 닫히고, 그는 유리 바깥에 대고 엄지를 들었다.
이긴다, 꼭 성공한다.
여러 가지 의미가 깃든 그의 몸짓에.
모두가 꼿꼿이 선 채로 그를 바라봤다.
‘질 수 없다.’
이들이 지면 남는 건 무엇일 것인가?
학살? 식민지?
무엇이 되었든, 지옥이란 두 글자가 현실에 나타난다는 점만은 변함이 없었다.
“나머지 전투기 전부 출격한다.”
소신출 중령이 성공하기 위해서다.
곧 공군 전투기 수납장에 있던 모든 전투기가 이륙했다.
소신출 중령의 뒤를 따라서였다.
*
소신출은 전투기 조종의 달인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후욱!
갑자기 나타난 반투명한 미사일을 보고 조종간을 비튼다.
전투기 동체가 옆으로 누웠다.
싸아아악!
‘됐어.’
피했다.
벌써 여러 번 비슷한 위기를 넘겼다.
뒤에서 아군의 비행기가 연신 터졌다.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느새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는 노랑 전함이다.
소멸 작전을 끝낼 시간이었다.
위이잉!
연노랑 전함이 코앞까지 왔을 때.
파라라락!
소신출은 그게 긴 머리칼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사방으로 나풀거리는 머리카락처럼 생긴 빛의 선들.
그리고 그 앞에 손을 든 놈.
우지지직!
“염병할!”
전투기가 허공에 멈췄다.
무슨 짓을 해도 꼼짝도 안 한다.
꾸득꾸득.
기체가 우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신출은 생각할 것도 없이 핵미사일을 쐈다.
하지만.
‘반응이 없어.’
나가지 않는다.
이미 미사일 부근이 무형의 힘에 우그러진 탓이다.
꽈아아아아앙!
그리고 폭발.
생각할 틈도 없이 단숨에 허공에서 재가 되어 사라진다.
인류의 마지막 발악은 실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