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71화 (71/206)

#  71

71. 기분이 안 좋네

“사령관님!”

적색의 괴생명체가 나타난 직후다.

사령부에 비상이 걸렸다.

새로운 타입의 괴물이 나타날 때마다, 인간은 희생을 감당해야 했다.

브레인 레이퍼가 그랬고.

하얀 눈이 그랬다.

“상황 보고해!”

강대총이 외친 직후다.

무전이 되지 않는다는 건, 치명적이다.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 받을 수 없었다.

10분이 넘어서야 앞쪽 상황에 대해 보고가 올라왔다.

“전부 격퇴했습니다.”

“…뭐?”

방금 새로운 적이 나타났다고 보고받은 직후다.

그런데 격퇴했단다.

“무슨 헛소리야!”

“저격팀입니다. 반세주 휘하 50명, 새로운 타입의 적 궤멸.”

사실은 반세주 혼자 처리했지만.

지휘부는 강남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다.

앞쪽에서 타고 온 무전으로 인해 상황을 파악한 이들이 전한 정보에 강대총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보물이네.’

적에게 악몽을 선사하는 아군의 보물이다.

그리고 10분 뒤 번쩍하고 천둥이라도 치듯 빛이 눈을 괴롭히더니.

꽈과과광!

폭음이 터졌다.

그리고 들어온 보고다.

“적군의 모선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시아 3호 포착.”

저 멀리 거대한 우주선이 모습을 드러낸다.

긴 유선형의 형태에 작은 비행체를 뿜어내며 강남 상공에 뜬 모습이다.

“빌어먹을.”

“사령관님?”

“전투기 내보내!”

“옛!”

그리고 강대총은 아무도 없는 통신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전화기를 들었다.

뚜르르. 딸깍.

“말씀하십시오.”

“소멸 작전 인가해주십시오.”

“그만큼 위험합니까?”

“멸망의 위기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허락하겠소.”

딸깍.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는 몸을 일으켰다.

소멸 작전.

미국으로부터 인계받은 핵미사일을 놈에게 때려 넣는 일이다.

“후.”

방사진이 없는 수소 폭탄, 최소한의 피해로 마무리하기 위한 전술핵폭탄이다.

그래도 자국 내에 저런 걸 떨어뜨려야 한다는 점에서는 최악의 선택임에 분명하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

인가를 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쏘는 건 아니다.

만일 현재 화력으로 놈을 제거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거기서 끝이다.

밖으로 나오니, 다급한 표정의 부관이 다가온다.

“전투기 모두 격추당했습니다!”

잠깐이지만 인류가 놈들을 압도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놈이 제대로 칼을 뽑은 순간, 인류는 곧바로 바람 앞에 등불 꼴이 됐다.

“소멸 작전 인가받았다. 준비해.”

결국 강대총은 최악의 상황을 직접 그려야 했다.

*

‘자, 다음에는 뭐냐?’

붉은색 외갑을 입은 놈들이 나타날 때마다 벼락이 불을 뿜는다.

큰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 탄환은 빈틈을 뚫고 들어가 놈들의 머리를 터트렸다.

-죽는 걸 알면서도 계속 나오네?

‘진짜 이거 보내는 놈 대가리 안 좋은 거 아니냐?’

순간, 렌즈의 빛이 짙은 푸른빛을 토한다.

-젠장할.

‘왜?’

우우우우웅!

하늘 위다.

흰빛이 뭉치는 게 보였다.

-빌어먹을, 내 스캐닝을 피했어!

‘설마 아니겠지?’

아니길 바란다.

아무리 세주라도 저런 거에 직격당하고 살길 바랄 수 없다.

-튀자.

설마는 때론 사람을 잡는다.

프로비던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레이저 포.

세주 하나를 죽이기 위해 놈이 과감한 수를 던졌다.

사라락 하며 포신이 보이기 시작한다.

육각 패널 모양이 허공에서 사라지며 나타나는 연노랑의 동체.

우주 위에 떠 있다가 모습을 숨겼던.

아시아 3호다.

*

반세주를 서포트하기 위해 남은 병사는 승리라는 두 글자를 떠올렸다.

‘이제 집에 갈 수 있으려나?’

어머니와 아내가 떠올랐다.

아들 하나와 딸 하나.

단란한 가정이다.

군대에 끌려올 땐 최악이었지만, 막상 이곳에서 버는 돈을 집으로 보내니 거금이었고.

지금은 살아남았으니, 남는 장사다.

“피해!”

잡념에 빠진 그가 세주를 바라봤다.

다급하게 외치는 목소리다.

그는 그가 그렇게 격렬하게 외치는 걸 처음 봤다.

“전부 현재 장소 이탈한다!”

언제나 여유 있었다.

자신을 노리고 노란 괴물이 달려들 때도.

비행체가 허공을 날고 반투명한 미사일이 도시를 향해도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오늘 오전에는 붉은빛의 괴물들까지 나타났지만, 그는 항상 여유가 있었다.

“중령님?”

그가 세주를 부르자.

“뛰어!”

그를 보고 외친다.

옥상에 자리 잡은 50명의 저격병이 부리나케 움직인다.

그도 몸을 틀었다.

그런데 어디로?

밑으로 떨어지기에는 너무 높다.

그는 계단을 향해 달렸다.

다른 이를 살필 겨를이 없었다.

뛰는 도중 뒤편에서 번쩍이는 게 느껴졌다.

‘늦었나?’

죽음의 순간이다.

뻥!

그 순간 누군가 그를 걷어찼다.

“왁!”

놀란 그의 몸이 건물 옥상 밖으로 날아가고.

그의 자리에 그가 보필하기로 했던 남자가 보였다.

‘중령님?’

그리고 빛이 그 자리를 강타했다.

콰아아아아앙!

*

쿠아아아아!

건물에 꽂힌 빛의 기둥이다.

콰앙!

직사각형의 콘크리트와 철골 구조물이 그대로 폭발했다.

치용은 반사적으로 뒤로 몸을 날렸다.

후아아아아악!

후폭풍이 퍼지며 부서진 건물의 파편이 무기가 돼서 사방을 헤집었다.

퍽!

날아온 건물 파편에 병사 하나가 피떡이 돼서 날아가고.

꽝!

전차에 철골이 꽂혀 전복되더니, 그대로 터진다.

콰가가가가!

흙먼지가 일어나서 사막의 모래폭풍처럼 주변을 감싼다.

반사적으로 몸을 날린 곳, 맨홀이었다.

터덩!

맨홀을 뜯어내다시피 하고 몸을 던졌다.

하수도 안으로 추락한 치용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퍽, 바닥에 처박히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등에 뭔가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쿵! 퍽!

재수 없게 머리가 벽에 부딪혔고.

그대로 머리가 빙글 돌았다.

아주 잠깐 정신을 잃었고, 그는 곧 눈을 떴다.

‘무슨 일이지?’

전복된 전차와 콘크리트 덩어리에 맞아서 터진 병사.

떠오른 장면을 되새기며 상체를 일으켰다.

위이이잉하는 이명 덕에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주르륵.

귓구멍에서 무언가 흘렀다.

손으로 닦으니 진득진득한 액체다.

‘핀가?’

아프진 않았다.

이명이 신경 쓰였으나, 머리가 어지러워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철퍽.

바닥에 손을 대고 몸을 일으켰다.

미지근한 물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

일어나서 철제 사다리에 손을 대자.

뜨끈뜨끈했다.

사방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그래도 치용은 올라갔다.

‘형님.’

폭발한 건물, 몸을 날리며 봤다.

빛이 떨어진 곳은 세주가 있던 곳이다.

쿵.

맨홀을 밀고 올라가자.

한순간에 폐허가 된 곳이 보였다.

부서진 건물, 사방에 흩어진 콘크리트와 철골 파편들.

“으으윽.”

누군가 앞에서 신음을 흘리고 있다.

물론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입을 벌리고 버둥거리는 걸 봤을 뿐이다.

오른팔만 남은 병사다.

누구였더라?

“김상용?”

그런 이름이었다.

내년에 동생이 결혼한다고 했던가?

치용의 전장은 기다리는 곳이었고, 그는 남는 시간 동안 주변에 있는 이들과 농담을 하며 지냈다.

기억력이 형편없는 그였지만.

이상하게 전부 뇌리에 박히듯 떠올랐다.

김상용, 최상우, 전병상, 황재규….

모두 자신의 주변에 있던 이들이다.

“컥.”

김상용은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죽었다.

비무장지대에서 수없이 봤던 시체다.

주변을 둘러봤다.

“혀… 엉.”

퍽퍽.

손을 들어 귀를 때렸다.

피가 튀었다.

그래도 들리지 않았다.

‘불편한데.’

“치용이 혀… 엉.”

그를 부르는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손을 뻗은 이는 찾을 수 있었다.

“재형이냐?”

올해 막 스물이 된 병사.

이등병으로 첫 출전이라고 했던 이.

안재형이다.

치용은 그에게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었다.

호리호리한 몸에 서글서글한 눈매가 마음에 들었다.

고아 주제에.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자랑한다.

그곳에서 만난 이가 자신의 진짜 가족이라고 떠들던 놈.

“야, 너 왜 그러냐?”

이놈은 몸의 반이 없다.

오른쪽 어깨부터 왼쪽 허리까지만 남았다.

이이잉하던 이명이 그제야 가라앉는다.

노블 패스가 욱신거렸다.

치용은 억지로 노블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남은 걸 귀에 쑤셔 박았다.

‘좀 들려라.’

“아프네요.”

들린다.

“응. 아프겠다.”

“아, 형. 나중에 우리 누나 소개해주려고 했는데.”

“됐어. 새끼야. 나 눈 높아.”

“끅끅.”

그가 반은 웃고, 반은 웃으며 눈을 감는다.

피눈물이 흘렀다.

“뭔가, 시발 억울하….”

눈에 핏발이 선 채로 흐르는 눈물이다.

치용이 손을 들어 눈을 감겨줬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자.

반대편에서 절뚝이며 달려오는 이가 보인다.

“중위님!”

나이 마흔에 딸이 둘 있는 상사다.

기억난다.

이상하게 전부 떠오른다.

여기서 인사했던 이들 전부와 이름이 머리에 누가 칼로 새겨놓은 것 같다.

그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달려왔다.

“박대필 상사.”

치용이 그를 향해 한 걸음 뗀 순간이었다.

두둥!

퍼버벅!

상사의 몸에 구멍이 났다.

“어?”

상사가 고개를 밑으로 내렸다.

피딱지가 붙은 이마와 찢어진 방탄복 밑.

커다란 구멍이 두 개다.

인간은 저런 상처를 입고 살 수 없다.

“컥.”

그가 앞으로 쓰러지고, 그 뒤.

“트레레.”

끼에에엑!

레이퍼를 탄 노란 몸의 외계인인 보인다.

자신이 한 번 큰 칼로 죽였던 놈.

그런 놈이 다섯이다.

모두 레이퍼에 탑승한 채 붉은 막대기를 들고 있다.

오면서 양옆을 향해 총구를 흔들며 쏘면서 온다.

폭발에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이 죽는다.

퍽!

비명 없이 그대로 죽는 이.

“컥.”

외마디 비명을 흘리는 이.

“살려….”

차마 말을 끝내지 못하는 이.

“트레레.”

“레레.”

“트레레레레.”

“트레이.”

놈들 중 하나가 손에 든 총을 들고 치용을 가리킨다.

총구가 곧 두둥 소리를 내며 흰빛의 탄환을 뿌린다.

총구를 본 직후, 치용은 붉은 막대기를 앞으로 세웠다.

붉은빛이 넓게 펴지며 방패처럼 앞을 가린다.

투두두둥!

‘몸이 무겁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태어난 이래로 가장 최악의 상태다.

평소였다면, 병원에 실려 가도 무방할 그런 상태.

그런데, 그런 게 아무 상관이 없었다.

“기분이 안 좋네.”

마상길에게 칼을 맞았을 때보다 10,000배는 더럽다.

“왜냐?”

질문에 대한 답은 기대도 안 했다.

두둥!

놈들은 총격으로 답했고, 붉은 작대기를 꺼내 들었다.

치용은 총구를 보자마자 옆으로 몸을 날렸다.

파바박!

그가 있던 자리가 흰빛에 타며 구멍이 생겼다.

그리고 치용은 내달렸다.

입은 꾹 다문 채다.

애도도 슬픔도, 분노도 전부 나중이다.

치용이 지금 할 일은 명확했다.

이 땅에 들어온 저 개자식들을 전부 죽이는 것.

그게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일 것이다.

*

폭발이 일어나자마자였다.

“나중에 보자.”

병신 이인준이란 별명을 지은 두 놈을 막 찾은 참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병장이 속도 없이 입을 연다.

폭음이 울렸고, 뒤편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뒤를 보자.

‘반세주.’

세주가 있던 곳이 터졌다.

건물 자체가 사라졌다.

그리고 하늘 위에 뜬 거대한 우주선.

그는 곧바로 뒤를 향해 뛰었다.

한참을 달리는 중이다.

“봤어요?”

정유진이다.

그가 옆에서 나타났다.

부릉.

어디서 가져왔는지 묵직한 오토바이를 끌고 왔다.

“타요.”

뒤로 몸을 날리자.

끼익!

오토바이가 비명을 지른다.

“좀 무겁네요.”

아머를 벗어서 가볍지만 둘 다 가진 화기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아머는요?”

“터트렸어.”

부아아아앙!

오토바이가 여기저기 까진 아스팔트 위를 질주한다.

터덩!

구멍이 파인 곳에 바퀴가 걸려도 핸들을 힘으로 눌렀다.

유진은 스로틀을 꽉 잡고 당겼다.

그대로 달리는 중 인준이 입을 열었다.

“안 죽었어.”

“…그렇겠죠?”

지칭하진 않았어도, 누구를 말하는 건지는 알았다.

화아악!

바람이 볼을 할퀴고, 둘이 빌딩이 무너진 지점으로 왔을 때다.

아무것도 남지 않고, 가뭄이 온 논바닥처럼 짝짝 갈라진 바닥이 보였다.

바닥이 뜨끈뜨끈했고, 저 멀리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창!

칼이 부딪치는 소리다.

둘은 말없이 그쪽으로 달렸다.

도저히 오토바이를 타고 갈 수 없을 정도로 바닥이 엉망이었다.

“치용이 형이에요!”

먼저 발견한 건 유진이었다.

막 다섯의 외계인과 싸우는 모습이었다.

“돕자!”

인준이 외치며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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