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70. 저격하는 남자
퉁! 퉁! 퉁!
연속으로 그의 총구가 동그란 폭약을 뱉는다.
처음 던진 폭약이 불길 속으로 들어가 터진 직후다.
두두둥! 두두두둥! 두두두두둥!
불길 너머로 놈들의 쏘는 총성이 들린다.
그리고.
꽈-앙!
꽈과과과과광!
광안이 놀라서 뒤로 몸을 던지고 귀를 막을 만큼의 폭음이 터졌다.
인준이 계속 동그란 폭약을 쏘아냈다.
티디디딕!
철컥.
불똥이 튀는 소리, 그리고 다시 장전하는 소리.
바로 앞, 인준이 양팔을 턴다.
그러자 수류탄이 후두둑 바닥에 떨어진다.
그는 안전핀을 뽑은 뒤 수류탄을 하나둘 앞으로 던졌다.
그러면서 발사대처럼 쓰는 총기를 연신 당겼다.
둥! 둥!
그러다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았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더럽게 많네.”
폭약을 정면이 아니라 양옆, 가상으로 뿌리고 수류탄도 거기로 던졌다.
적군이 가운데로 모인다.
그리고는 아머를 벗었다.
양손으로 힘껏 그걸 집어 든 인준이 앞으로 집어 던졌다.
부우우웅!
그게 앞으로 나가 불길 속으로 들어간 순간이다.
인준이 자신의 총을 들고 선 채로 조준하더니 쐈다.
퉁. 후웅!
고속 유탄이었다.
인준의 총구에서는 아주 다양한 폭발물이 튀어 나갔다.
그리고는 유탄이 날아가 그대로 그가 벗은 아머를 때린다.
꽝!
파아아아악!
아까 같은 폭음은 없었다.
대신 아머가 터지며 먹구름 같은 것이 뿜어져 나와 일대에 떨어진다.
“가까이 가면 죽습니다. 나오는 것만 사격하면 됩니다.”
인준의 말이 들렸다.
“트레에에에에!”
회색 연기 안쪽, 끔찍한 비명이 들린다.
“저게 뭐지?”
“백린탄입니다.”
아머가 통째로 백린탄이었다.
혼자서 적 웨이브를 통째로 무너뜨린 순간이었다.
*
“야, 우리 좆 된 거 같은데.”
“네. 하, 어떻게 합니까?”
“올 킬 중령 부대원 맞지?”
“병풍이라고 막말한 그 중위입니다.”
입으로 재앙을 부른 상병과 눈치 없는 병장이다.
부대로 돌아와 보고를 올리니 지휘관이 수고했다고 했다.
그리고 끝이다.
그들은 다시 총을 들고 전장으로 향하지 않았다.
왜 안가냐는 물음에 지나가는 부사관이 답해줬다.
“알파 팀과 이인준 중위가 전위에서 전부 죽였다.”
전부?
그놈들을?
레이퍼를 타고 달려오는 그 자식들을?
안색이 파랗게 변한 입만 산 상병이 말했다.
“병장님.”
“왜?”
“기가 막힌 별명을 짓는 거 어떻습니까? 개 멋있는 거로.”
“…통할까?”
“병풍이나 김치용 마이너 버전을 만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때쯤 부대 전체에 슬슬 곰 새끼, 왕자님 등의 별명이 떠돌았다.
“뭐가 좋겠냐?”
“폭발의 신이나 폭약의 신?”
이인준은 주로 폭발물을 다룬다고 들었다.
“너무 길어.”
“폭신. 어떻습니까? 그리고 전위 부대에서 만났던 우리가 소문을 냈다고 하는 겁니다.”
그럴듯했다.
둘은 곧 소문을 냈다.
“병풍이 아니라, 폭신이야. 폭신.”
“병풍이라니, 무슨 폭신입니다. 폭신.”
폭신 이인준.
처음에는 그럭저럭 통했다.
다들 폭신 이인준이라고 했다.
그런데 병풍이 아니라고 열심히 변호한 탓이었을까.
“병풍? 폭신? 병신 아니고?”
라는 말이 농담처럼 퍼지면서.
전위 부대에서 직접 이인준을 본 둘이 그를 병신이라고 했더라가 됐다.
그리고 전투를 마치고 돌아온 인준은 그걸 듣고 생긋 웃었다.
“병신?”
그 두 새끼를 잡으면 갈아 마시리라.
아니, 꼭 자신의 부대로 데려가고 싶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들이 전역하는 그날까지 같은 내무실에서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그렇게 지내고 싶었다.
꼭, 간절히 그랬으면 했다.
*
꽝!
폭음이 울리고 건물이 부르르 떨렸다.
‘생각보다 머저리네.’
-누가, 형이? 드디어 인정?
이 새끼는 정말, 방심하면 안 될 존재다.
‘나 말고, 위에서 나 노리는 놈.’
말하며 위를 가리켰다.
보이진 않지만, 하늘 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미친 듯이 몰아치던 비행체들이 보이지 않는다.
하늘에 회색 동심원을 만들며 쏟아지던 미사일도 어느새 사라진다.
소강상태다.
비행체 습격이 세 번.
모두 세주를 노리고 덤벼들었다.
그때마다 벼락을 쏘면서 명령했다.
“야, 1시 방향 화망.”
50명의 저격병이 미친 듯이 저격탄을 쏘아낸다.
포탄 급의 탄환이다.
콰과과광!
화망이 아니라, 포탄 소나기를 맞는 놈들이다.
세주의 벼락과 저격병의 화망에 놈들이 날개 잃은 나비처럼 추락하면.
밑에서 아군이 기다리다 화력을 집중해서 죽인다.
하나, 둘 빠져나오는 놈들은 치용이 처리했다.
어디서 주워왔는지 붉은 작대기와 큰 칼을 들고 날뛰면 주변에서 곰 새끼란 외침이 터졌다.
정면에서 놈들의 군대도 간간이 기습을 시도했지만.
-형.
브로의 스캐닝 모드, 맵을 피해갈 순 없다.
총구를 가끔 내려서 밑을 향해 쏘면.
그걸 신호로 아군의 화력을 집중, 대공포와 중기관총, 유탄이 놈들을 박살낸다.
그리고 마지막, 놈들의 침투 경로가 더 은밀해졌다.
지하다.
-드디어 지하로 오네. 혹시 이 멍청한 새끼가 안 오면 어쩌나 했다. 진짜.
‘내 말이.’
놈들이 올 걸 대비해서 지하에 지뢰를 즐비하게 깔아뒀다.
꽈과광!
지뢰가 또 터진다.
생각보다 폭음이 강렬하진 않았다.
대신 빌딩이 흔들리며 50명의 저격수를 불안하게 했다.
겁먹기는.
물론, 지하를 통해서 살아남은 놈들도 있었다.
그놈들을 프로비던스가 속속들이 알려준다.
-어, 형 한 네 마리 들어왔다.
그러면 세주가 훌쩍 내려가서 쓱싹 처리한다.
-에너지는 어떻게 할까?
‘놔둬.’
투자할 필요가 없다.
“형님, 습격하는 놈들이 이제 없는뎁쇼.”
언제 올라왔는지, 치용이 다가왔다.
“야, 니들 이제 쉬어라.”
50명의 저격병에게 말하자.
“후아.”
“죽을 뻔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하겠어.”
다들 진저리를 친다.
“앓는 소리 하기는. 휴식 취하고 다시 집결한다. 6시간 준다.”
“6시간 너무 작습니다. 교관님. 몸이 견뎌 내질 못해요.”
“개소리하네. 내가 다 해봤다. 튀어가.”
비무장지대에서 다 해봤다.
“흐흐. 가기 싫으면 나랑 놀던가.”
옆에서 치용이 웃으며 말하자.
효과가 직방이다.
치용의 얼굴은 때로는 훌륭한 무기다.
그날 하루, 아군은 낮과 밤을 경계로 교대로 휴식하며 버텼다.
습격은 낮 동안 계속되고 저녁에는 멈췄다.
6시간을 휴식하고 저격병이 돌아왔고.
그때까지도 세주는 제자리를 지켰다.
-민간인은 다 피한 것 같아.
하루의 유예시간이 주어졌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피해는?’
-민간인 사상자 78명. 그중 사망자는 21명.
침공해 온 규모에 비하면 정말 적은 숫자지만.
역시나 입맛이 쓰다.
-입술이 부르트도록 얘기해줬잖아. 형은….
‘알아. 새끼야. 나 슈퍼맨 아니라고.’
그리고 기계 새끼가 입술이 어디 있냐?
벼락을 수직으로 세우고 하늘을 바라본다.
‘아직 있겠지?’
-있어야지.
세주가 짠 판에 놈이 움직이리란 시나리오는 없다.
거기에 충분한 미끼도 던졌다.
일부러 부대원 셋, 치용, 인준, 유진을 흩어 놨다.
자신은 매일 놈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습을 보인다.
내가 널 엿 먹인 놈이다. 와서 날 죽여 봐라.
얼마든지 받아주마.
몸으로 하는 대화다.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하늘을 보자.
뒤에서 치용이 물었다.
다시 해가 떠오르고 있어서 동이 트는 시점이다.
햇살이 세주의 몸을 감쌌다.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50명의 저격병이 그걸 지켜봤다.
신비감과 그가 해낸 일들.
‘저 사람은 정말 영웅이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할 때쯤.
“똥마려우십니까?”
곰 새끼가 물었다.
비틀.
세주는 순간 벼락을 놓치고 몸이 흔들렸다.
다시 몸을 추스른 후 뒤를 돌아보자.
눈을 깜빡이는 치용이 보였다.
“너 안 내려가냐?”
“거, 이거 좀 봐주십시오. 주워왔는데.”
붉은 작대기를 들고 설친다 싶더니, 적에게서 뺏었단다.
막대기 손잡이를 잡자.
웅.
가벼운 진동이 느껴지고 막대기 위로 알 수 없는 배열의 그림이 떠오른다.
-오호. 연구할 가치가 있네.
‘뭔데?’
-노블 에너지를 다룰 줄 아는 사람에게 반응하는 거야. 원하는 대로 칼날이 변하는 형태라 절삭력이나 크기를 조절하는 그런 기능이 있고.
스캐닝으로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줄줄 읊는다.
업그레이드된 프로비던스다.
쓸 만 해졌다.
치용을 바라보고 설명을 해주려던 찰나다.
한다고 알아들을까?
“너 이거 어떻게 썼냐?”
“그냥 잡고 나니까 칼도 되고 길어지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냥?”
“네. 뭐, 그냥 원하는 대로 변합니다.”
역시, 몸에 모든 뇌세포를 갖다 부은 남자다.
-진짜 몸이 열일한다.
프로비던스가 감탄을 터트릴 정도다.
“응. 그게 다야. 그냥 잘 갖고 써.”
마침 그가 새로 개발한 기술.
‘큰 칼’이라고 이름 붙인 것과도 잘 맞는다.
네이밍 센스 최악이다.
큰 칼이 뭐냐? 큰 칼이.
“아, 그렇습니까? 뭐 놈들한테 뺏은 거긴 한데 손에 착착 감겨서.”
-그럴 수밖에 주인에게 맞춰서 노블 에너지를 더 수월하게 움직이게 하는 물건이니까.
응. 설명해도 몰라.
“그냥 써. 넌 그럼 돼. 생각 같은 거 하지 마.”
“전 뭐 생각도 없는 놈인 줄 아십니까?”
덜컹.
심장이 두근거린다.
“…너 생각도 하냐?”
“사실 안 합니다. 크하하핫.”
유쾌하게 웃으며 치용이 내려갔다.
저 미친 새끼.
진정한 또라이가 여기 있다.
-저 칼, 스캐닝 했으니까 비슷한 물건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할까?
‘아니.’
-아, 왜?
하고 싶어 죽겠나 보다.
‘하지 마라. 허락 안 한다.’
-쳇.
툴툴대는 프로비던스를 놔두고 전장을 바라봤다.
붕붕.
2차전이다. 다시 비행체가 허공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순간.
-사이킥 에너지 감지.
프로비던스의 경고와 함께다.
비행체 하나에서 붉은빛이 번쩍인다.
그리고 그 빛이 세주를 향해 날아왔다.
“맞춥니까?”
50명의 저격병이 묻는다.
“아니, 놔둬.”
붉은빛은 자신에게 온 손님이다.
비행체가 쏙쏙 튀어나오고 있다.
50명의 저격병이 할 일은 저걸 떨구는 거고.
벼락을 들고 한 놈을 겨눴다.
꽝!
에임 모드를 켜고 쏜 총알이 놈에게 적중하기 직전이다.
꿀렁.
무슨 젤리를 맞춘 것처럼 총알이 앞에서 틀어져 허공으로 날아간다.
너무 작아서 대공포나 지대공 미사일로 맞출 수도 없다.
그런 놈이 총 다섯.
스코프로 확인하니 붉은 외갑을 두른 놈들이다.
‘흰둥이, 노랑이 다음은 빨강이냐?’
둥실 떠오르던 놈들이 순간 속도를 높인다.
-엄청난 사이키커야. 인간 중 강하다고 자신한다 해도 명함도 못 내밀겠어.
나기주도, 김해의 F반, 지금은 크롬 팀이 된 이들도.
견줄 수 없을 정도의 사이키커가 다섯이다.
거기에 프로비던스는 종종 세주에게 말했다.
-우리 사이킥 에너지는 포기하자.
‘왜?’
-재능이 없어. 애초에 염동력, 텔레파시 이런 건 되게 섬세한 건데. 형은 그런 거랑 거리가 멀어.
‘야, 나 저격하는 남자야.’
-솔직히 섬세한 게 아니라 형 반쯤은 감으로 때려 맞추잖아.
묵직한 팩트에 대답을 회피했다.
그래서 사이키커랑 세주는 상극이다.
사이킥 에너지 방어를 노블 에너지로 해야 하니까, 효율성이 떨어진다.
고로, 놈이 세주를 노린 칼은 제법 날카롭다고 할 수 있었다.
-1분 후, 도달.
다섯의 사이키커다.
모습을 숨기지도 않고 염동력 방패를 믿고 덤빈다.
날아오는 모습에 자신감이 느껴진다.
-뭐해?
프로비던스가 재촉한다.
그래. 할 일 해야지.
진짜 자신을 노리는 놈이 아이큐가 두 자리가 아닌가 의심이 된다.
‘나 저격하는 남자라니까.’
허공에 둥둥 떠서 오면.
‘모드 온, 스나이퍼.’
맞추면 된다.
커버링을 눈에 씌우고 놈들의 방패를 확인한다.
반구형의 원이 전면을 막는 형태다.
곧 주변의 소리가 사라지고 집중 상태에 들어간다.
‘응축, 저지.’
거기에 하나 더.
노블 에너지 컨트롤 양도로 만든 두 번째 기예.
커브다.
놈들은 총알을 막는다.
방금 전 쏜 한 발로 충분히 증명 된 사실이다.
꽝!
벼락이 불을 뿜으며 총알을 뱉는다.
푸른 탄환이 허공을 가른다.
본래 총알은 직사가 아니라 곡사다.
그런데 커브를 담은 총알은, 그보다 더 말도 안 되는 각도로 휘어진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크게 마구처럼 휘어지는 탄환이다.
푸른빛이 앞을 막은 반구형의 원을 피해 옆에서 벼락처럼 꽂힌다.
퍽!
가장 왼쪽에서 날아오던 놈이다.
푸른빛에 머리통이 꿰뚫려 터진다.
붉은 나비 한 마리가 허공에서 힘을 잃고 떨어진다.
철컥.
퉁.
탄피를 뱉어내는 벼락을 다시 들고, 다시 조준한다.
날아오던 네 마리가 주춤 하지만.
‘미안하지만.’
-이미 늦었어.
손발이 착착 맞는 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