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69. 병풍, 김치용 마이너 버전 그리고 병신.
“야, 너 올 킬 중령 본 적 있냐?”
“한 번 봤습니다.”
병사 둘의 대화다.
“그럼 그 올 킬 중령 부대원은?”
“올 킬 중령 볼 때 봤습니다.”
“그 곰은 정말로 덩치가 크디?”
“무지막지했습니다. 주먹이 사람 머리통만 했습니다.”
바로 옆에서 대화를 듣던 이가 피식 웃는다.
병사 둘과는 다른 복색이다.
피식 웃는 그를 보고는 말하던 상병이 그를 바라봤다.
“아저씨 진짜예요.”
그가 고개를 대강 끄덕여주고는 하늘을 바라봤다.
세 번째 침공이다.
비행체를 뿜어내던 하늘 저편도 이제는 잠잠해진 순간이다.
지상으로 떨어진 놈들이 꽤 많다고 들었지만, 각 부대에서 적절하게 타격을 하고 있다.
“그 얼굴 하얀 중위는?”
“남자인 제가 봐도 캬, 감탄이 절로 나오는 얼굴이었습니다.”
정유진의 이야기다.
그건 인정한다.
그가 보기에도 유진은 빼어난 미남이다.
자기도 모르게 병사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반세주에 김치용, 정유진까지.
한 명이 빠졌다.
그런데 병사 둘이 그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슬슬 나올 법한데, 통 나오질 않는다.
“그, 올 킬 중령 부대원 한 명 더 있지 않냐?”
다가가 슬쩍 말을 걸었다.
병사 둘이 그를 위아래로 훑는다.
“아저씨, 계급이 뭐에요?”
묻는 새끼는 병장이다.
그 옆은 상병, 입을 한참 털던 놈이다.
“장교다.”
“아, 장교님이시구나.”
병장 놈이 피식 웃었다.
장교라니, 그런 사람이 왜 전위 부대에 있단 말인가.
그는 믿지 않았다. 그래서 그를 상큼하게 비웃었다.
병사의 얼굴을 본 인준이다.
‘이 새끼가.’
세주가 만들어 준 아머는 전부 좋은데, 계급장이 안 보이는 게 흠이다.
병장이 그를 보고 묻는다.
“어디 부댄데?”
인준이 반말하자, 그도 서슴없이 말을 놓는다.
“이름 말하면 다 아는 그런 부대지. 그나저나, 나머지 부대원 하나는 모르나 보지?”
인준이 그의 말을 받았다.
허풍쟁이일 것이다.
아니라면 자신을 보고 바로 떠올리지 못할 리가 없다.
“누구? 아, 곰 중위 마이너 버전? 그 병풍?”
“…병풍?”
둘이 다시 말을 나눈다.
“그래. 병풍, 그 사람은 하는 일도 없이 뒤에 서 있기만 하잖아. 들어보면 김치용 중위님은 진짜 잘 싸우신다던데….”
“정유진 중위님은 나노킷 활용률이 100%라고 했습니다.”
김치용 마이너 버전.
병풍.
불끈.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것 같다.
화내면 지는 거다.
자신은 어른이다.
병사 둘은 끽해야 이십 대 중반.
“근데 아저씨는 진짜 어디 부대야?”
병장이 다시 물었다.
“25사단 특수 지원대다.”
수호신 부대의 정식 명칭이다.
“거기가 어디냐?”
눈치 없는 병장이 바로 옆 입을 함부로 놀리는 상병에게 물었다.
“듣보잡입니다.”
듣보잡.
듣도 보도 못한 잡것이라고?
병풍에 김치용 마이너 버전이라고 했으면 됐지, 거기에 하나를 더 갖다 붙여?
부대를 향한 말이지만, 인준의 귀에 이미 그런 사실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다.
다른 건 그렇다고 치고, 김치용 마이너 버전은 이유를 알아야겠다.
뇌 따위는 없는 놈의 하위 버전이라니.
“그런데.”
으득.
절로 치아가 갈린다.
“김치용 마이너 버전은 왜냐?”
“어디 아파? 안색이 안 좋은데?”
눈치 없는 병장이 되묻는다.
막 입을 열려던 인준보다.
말을 함부로 하다못해, 입이 재앙의 근원이 되는 상병이 하늘을 보며 말했다.
“놈들 철수하나 봅니다.”
하늘을 꽉 채우던 비행체가 거의 사라져 간다.
“김치용, 그 개, 아니. 하여간 마이너 버전은 무슨 개소리냐?”
“…아저씨 진짜 이상하네. 왜긴 왜야? 인상 더러운 건 비슷한데 하는 일이 없으니까 그러지.”
비슷해? 하는 일이 없어?
1차 침공 때야 셋 다 알려지기 전이니 그렇다 치고.
2차 침공, 흰둥이와 기둥 때는.
아버지를 구하느라 다쳐서 많이 나서지 못했다.
그래서인가?
그래서일까?
“인상이 비슷해?”
하지만 다 넘어간다 해도 그 김치용과 인상이 비슷해?
“그렇다니까, 귀찮게 하네. 진짜.”
눈칫밥 따위는 120인분을 처먹여도 모를 것 같은 병장이 답한다.
그러자 입이 만악의 근원을 넘어서 언젠가 그 주둥이 때문에 죽게 될 것이 분명한 상병이 인준을 보며 미간을 찌푸린다.
“근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가 계속 머리를 굴린다.
그 순간이었다.
두두두두.
땅을 울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뭐야?”
눈치 없는 병장이다.
그가 주변을 둘러봤다.
그들은 전위 부대였다.
앞쪽을 경계하는 부대.
“어, 어, 어.”
놀란 그가 손가락을 들고 앞을 가리킨다.
“아, 생각날 것 같은데.”
제 주둥이 놀리는 것에만 정신 팔린 상병이 계속 중얼거린다.
“정신들 차려라.”
인준이 입을 열었다.
웨이브였다.
그것도 꽤 색다른 형태다.
머리 노란 선이 두 개 그어진 놈이 적이라는 건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무려 3시간 넘게 전투에 임한 그들이다.
그런데.
“레이퍼 기마병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인준이 중얼거렸다.
맞은편 레이퍼에 탄 채 놈들이 돌진하고 있었다.
100m를 10초 이내로 끊는 괴물 무리의 돌진이다.
어림잡아도 숫자가 오백은 넘는다.
“아, 맞다! TV에서 봤다고!”
상병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앞을 보고는 놀라서 외쳤다.
“히이이익! 뭐야!?”
뭐긴 뭐겠나, 기습, 습격, 공격. 기타 그 비슷한 것들이지.
다행히 앞쪽에 전차가 비치되어 있다.
시간은 벌 수 있으리라.
안도한 순간이다.
데구르르르.
무언가 굴러오는 소리다.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흰 구슬이다.
두 개의 구슬이 전차 밑으로 굴러갔지만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꽝!
그리고 전차 밑에서 폭음이 터졌다.
쿠쿠쿵!
전차 밑에서부터 화염이 치솟아 커다란 쇳덩이를 달군다.
텅!
전차에 타고 있던 병사들이 부리나케 나왔다.
“이런 염병할!”
갑작스런 공격이었다.
인준이 큰소리로 외쳤다.
“좌우측 경계병!”
양옆, 적이 있었다.
레이퍼로 돌격하면서 기습을 한다.
적절했다.
아니, 적절한 정도가 아니라 꼼짝없이 당했다.
투다다다!
총을 들어 반격했지만, 수류탄을 던진 두 놈은 이미 도주한 뒤였다.
전차가 없다면 전위 부대는 종이호랑이다.
“시발!”
눈치 따위는 개에게 줘버린 병장이다.
그가 앞으로 나선다.
여기가 무너지면 끝이다.
그는 결사를 각오했다.
“정신 차리고 뒤로 가서 전열 정비해.”
“아저씨 누구야? 진짜?”
인준의 뒤 병장의 맞은편에 선 상병이 고개를 미친 듯이 좌우로 흔든다.
“듣보잡, 병풍, 곰 새끼 마이너 버전이다.”
“응?”
그리고 앞으로 나간다.
혼자서 달려오는 대군의 앞으로 향하는 모습이다.
“자살 행위야.”
병장이 중얼거리자.
“아닐 거다. 그리고 명령에 따라야지 병사?”
뒤를 보니, 단추 구멍처럼 작은 눈을 가진 이가 보였다.
“알파 팀?”
알파 팀의 리더다.
유명 인사였기에 병장은 곧바로 알아봤다.
국군의 자존심, 알파와 베타다.
“필승!”
“경례 생략하고 전열이나 정비해.”
둘이 뒤로 미친 듯이 뛰어간다.
아니, 그 둘 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모두 뒤로 물러간다.
돌격하는 적군을 향해 남아 있겠다는 건 자살 행위였다.
노랗고 까만 페인트를 칠한 펜스가 앞을 막고 있지만.
레이퍼의 발길질 한 번이면 의미 없는 장애물이다.
앞쪽으로 나선 인준 곁에 장광안이 붙었다.
“어쩌려고?”
힐끗 그를 본 인준이 입을 연다.
“왜 병풍 옆으로 옵니까? 향냄새 맡고 싶습니까?
단단히 삐졌다. 광안은 피식 웃으며 다시 말했다.
“혼자서는 무리다. 지원해주마.”
군 작전 시 광안의 계급은 대위다.
인준은 그에게서 눈을 뗐다.
“필요 없습니다. 김치용 마이너 버전은 혼자 싸우렵니다.”
광안은 속으로 웃었다.
치용보다는 작아도 몸집도 크고 인상도 살벌한 친구가 농담이 진하다.
고작 알지도 못하는 병사 둘이 하는 말인데도.
“농담이겠지? 걱정하지 마라. 알파 팀 전원 여기에 왔다.”
총원 80명.
현재 국군 최고의 전력이다.
베타도 고작 60명이다.
크롬은 50명이고.
거기에 손발을 맞춰 온 시간도 길며, 사이키커도 40명은 있다.
돌격해오는 저 무리를 전부 죽일 순 없어도.
멈출 수는 있다.
그 사이 아군이 전열을 정비한다면, 저 병력, 아주 경미한 피해로 막을 수 있다.
두두둥!
그 사이 놈들이 총을 갈긴다.
“피해!”
광안이 몸을 숙였다.
그들도 인간이다. 총을 맞으면 죽는다.
그런데 인준이 멀뚱히 서 있다.
“뭐하나!”
“전 병풍이라 서 있는 겁니다.”
‘이런 미친 또라이 새끼!’
적군이 쳐들어오는데도 저런 소리를 지껄이나?
광안이 얼굴이 빨개졌다.
‘하여간 그 자식 부대는 정상인이 없어.’
“도울 거면 뒤로 빠지십시오. 제 앞에 나서면 다 죽는 겁니다. 병풍이 그렇게 무섭습니다.”
병풍 얘기나 그만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경고했습니다.”
말과 함께 인준이 앞으로 뛰었다.
오른손에 들린 묵직한 기관총을 들고서.
*
세주는 인준에게 전선 유지를 하라고 했다.
육신을 비교하자면 인간 자체는 적에 비해 약하다.
근접전에 돌입하거나, 전선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것이다.
그의 판단에 인준도 동의했다.
그에 맞춰 준비도 했다.
퉁! 퉁!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기관총에서 묵직한 소음이 난다.
그리고 오른팔이 뒤로 밀렸다.
반동이 무지막지한 총이다.
하지만 아머에 노블 에너지를 주입해 쓰는 오버피지컬로 근육을 보강.
연사로 쏴도 무리 없는 튼튼한 오른팔이 됐다.
퉁! 퉁!
위력은 무지막지했다.
세주의 벼락 탄환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한 발에 레이퍼의 머리가 터진다.
적당히 조준하고 쏘며 뛰던 인준의 왼팔이 두꺼워졌다.
그가 왼팔을 위로 털자 수류탄이 손목에서 튀어나온다.
퉁.
그걸 잡고 입으로 안전핀을 문다.
두두둥!
그 사이 놈들도 인준을 노리고 총격을 가했다.
아직 거리가 멀어서 조준 사격으로 맞출 정도는 아니었다.
달리던 인준이 왼팔을 앞으로 뿌렸다.
메이저 리그 투수 저리 갈 정도의 깨끗한 투구 폼이다.
쌔애액!
꽈광!
앞쪽에서 터진 연막탄이다.
연막이 앞을 가리자마자 제자리에 멈춘다.
그리고 양팔을 털자.
후두둑하고 원통형 수류탄이 바닥에 떨어진다.
인준은 나름 영재 소리를 듣고 자란 사람이다.
치용처럼 멍청하지 않다.
‘내가 왜 김치용 마이너 버전이냐.’
절대로, 죽어서도 인정할 수 없는 말이다.
그가 수류탄을 양쪽으로 넓게 던졌다.
퍼버버벙!
폭음을 내며 터진다.
하나씩 마치 줄을 맞추듯 던진 수류탄이다.
펑! 펑!
터진 수류탄에서 화염이 치솟는다.
다시 자신의 기관총을 들고 뒤로 물러나서 보자.
그의 300m 전방에 폭 100m짜리 불바다가 생겼다.
도로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차량이 펑펑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끼에에엑!
불길 너머로 레이퍼의 기성이 들렸다.
흰둥이 때 놈들이 인간의 눈을 막았다.
그럼 인간은?
연막탄은 놈들에게 통할까?
‘통하네.’
잘만 통한다.
거기에 화염벽을 만들었다.
여기서 멈췄어도, 인준은 엄청난 활약을 보인 셈이다.
두두둥!
놈들이 불길을 보고 주춤하며 탄환을 난사했으니까.
하지만 눈에 커버링을 씌운 인준의 시야 너머, 놈들이 달려드는 게 보였다.
철컥.
기관총 앞, 총열을 쥐고 뽑는다.
텅!
그러자 주먹만 한 크기의 총구가 그 뒤에 자리하고 있다.
기관총에서 유탄발사기로 바뀐 모양새다.
“대체 어떤 식으로 개조를 해야 그렇게 되는 거냐?”
언제 다가왔는지 광안이 묻는다.
“잘 하면 됩니다. 나야 병풍처럼 서 있기만 하니까.”
소심하다. 극도로 소심했다.
“알파 팀은 중위 말대로 전부 뒤로 물러났다.”
“잘하셨습니다. 병풍처럼 서서 구경이나 하시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총기를 앞으로 겨눈다.
퉁!
그러자 거기서 동그란 덩어리가 날아간다.
광안이 미간을 찌푸리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뭘 쏜 건지 궁금했다.
빠르진 않았다.
곡선을 그리며 불길로 떨어지는 모습이 눈에 잡혔다.
무엇인지는 금세 알 수 있었다.
꽈과과광!
동그란 덩어리, 그건 폭약 덩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