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68. 왕자님
“퇴각해!”
지휘관 양중필은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외치고 고개를 뒤로 돌리자.
그사이 한 명이 뒤쳐지는 게 보인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구하러 갈 엄두가 안 난다.
다행이 뒤처진 부대원은 몸을 옆으로 굴리더니 지하로 들어가는 건물의 좁은 입구로 쏙 사라졌다.
두두둥.
그 사이 인간의 화기와는 다른 총성이 들린다.
맞으면 몸이 뚫리고 타는 것처럼 아프다.
맞지 않기를 바라며 앞으로 몸을 수그렸다.
“이런 개새끼들이!”
투다다다!
그나마 몸이 성해서 앞쪽에 있던 부대원 둘이다.
욕설을 뱉으며 달리다 말고 소총과 기관총을 갈긴다.
아군이 피할 시간을 버는 거다.
그러자 추격하던 놈들이, 건물에 등을 기대고 차를 뒤집어엎고 바리케이드를 만든다.
‘괴물 새끼들.’
첫 번째 습격에서 중형화기를 보유한 아군이 전부 당했고, 그게 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몸을 수그리고 올리던 사이다.
휙.
흰 구슬이 날아왔다.
“수류탄이다!”
“피햇!”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며 몸을 숨길 곳을 찾는다.
꽝!
폭음이 터졌다.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었다.
“으으으.”
다친 사람은 있지만.
곳곳에서 들리는 고통에 찬 신음이 상황의 암울함을 대변했다.
총을 쏘고 전술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거기에 수류탄까지 던진다.
“퇴각! 퇴각!”
답은 퇴각뿐이었다.
양중필 자신도 어깨를 깔끔하게 관통하는 총상을 얻었다.
타는 것처럼 아팠지만, 주저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퇴각을 부르짖으며 달린다.
절뚝거리는 부대원, 머리에 피를 질질 흘리는 부대원.
두둥! 두둥! 두둥!
바닥에 삐죽 솟은 철골을 피하다 적의 총알이 허벅지를 관통했다.
“악!”
“이 자식이!”
가장 친하게 지내던 놈이다.
다리를 절뚝이며 끝까지 잘 붙던 부대원이고.
“재수야!”
사회에서는 친구이기도 했다.
양중필은 그를 두고 갈 수 없었다.
드르륵!
어디선가 다시 총을 갈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푸푸북.
무언가 친구의 몸에 꽂힌다.
‘주사기?’
비슷하게 생긴 모양이다.
그리고.
“우오오오오!”
허벅지를 관통당한 놈이 갑자기 몸을 번쩍 일으키며 괴성을 지른다.
“재수야?”
푹!
놀라서 친구를 보는 사이 자신의 몸에도 무언가 박힌다.
“윽!”
어깨를 관통당한 상처 부위 바로 위다.
마취탄 같이 생겼다.
그런데.
“우오오오오오!”
친구처럼 절로 우렁찬 고함이 목구멍을 타고 나온다.
무슨 약인지는 몰라도.
상처가 급속도로 아물고 몸에 활력이 돋는다.
“우오오오오오!”
“우오오오오오!”
“우오오오오오!”
둘 뿐 아니라, 사방에서 비슷한 고함을 지른다.
단체로 곰이 빙의한 것 같다.
“저기!”
재수가 위를 가리키고.
하늘 위, 바닥으로 떨어지는 인간이 보였다.
낙하산도 없이 바닥으로 날아와?
저게 말이 되는 짓인가?
등에 이상한 날개를 단 남자다.
햇빛 덕분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가 다시 총구의 방아쇠를 당긴다.
“앗!”
방금 효과를 절감했지만, 총구를 보니 자동반사적으로 몸이 피한다.
하지만 그의 탄환은 빗나가는 법 없이 목표한 곳에 박혔다.
푸부북.
그의 탄환에 맞은 병사는 어김없이.
“우오오오오오!”
곰이 빙의했다.
“이대로면.”
교전이다. 반격의 시간이다.
가자!
그렇게 외칠 찰나다.
뒤쳐진 채 혼자 건물 지하 입구에서 고개를 빠끔 내미는 병사가 보였고.
날개는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어느새 밑으로 내려온 이가 앞을 막았다.
얼굴이 하얀, 소위 말하는 꽃미남이었다.
그가 양중필을 보고 입을 연다.
“정유진 중위다. 퇴각해라. 효과 길어야 5분이다.”
“넵!”
양중필은 그의 말을 재깍 알아들었다.
무엇보다 계급도 한참 높았으니까.
그는 그대로 퇴각을 명했다.
*
콘크리트 잔해가 즐비한 바닥을 박차며 유진은 뛰었다.
막 부대 하나를 퇴각시킨 참이고.
지금은 앞쪽에 덩그러니 남은 병사를 구해야 했다.
두두둥!
놈들이 총격을 가한다.
유진은 지그재그로 달리고, 몸을 수그리며 결국 목표한 지점에 도달했다.
적과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곳.
“와.”
놀란 눈을 한 병사가 보인다.
한 명이 낙오된 걸 보고 일부러 이곳에 떨어진 참이다.
병사의 계급장이 보였다.
계급은 일병.
방탄모를 잃어버리고, 머리를 부딪쳤는지 피딱지가 맺혀있다.
나노킷을 들어 뿌리자.
“아아.”
작게 신음을 흘렸다.
적당히 치료하며, 한 손에 수류탄을 빼고 안전핀을 입으로 문 뒤 뽑았다.
“퉤.”
그리고 휙 앞쪽으로 던지자.
꽝!
폭음이 터진다.
나노킷으로 치료하며 똑같은 방식으로 두 개를 더 던졌다.
꽝! 꽝!
대강 치료를 마친 뒤다.
“정유진 중위다. 이름은?”
“일병 이경주!”
눈썹이 진하고 피부에 여드름이 많이 났다.
“뛸 수 있어?”
유진은 말을 건네며 기관단총을 앞으로 들었다.
“문제없습니다.”
다친 건 머리지 다리가 아니다.
이경주는 유진의 손에 들린 무기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그거 총입니까?”
“기동성을 살리기 위한 기관단총이지.”
“그렇습니까?”
총구 위에 커다란 유탄 발사기가 달려있다.
그러니까 기동성 따위는 개 무시하고 보기에 밸런스 따위는 개나 줘버리는 외형의 총이다.
“고개 숙이고.”
유진이 고개를 푹 수그리며 경주의 머리를 누른다.
두두둥!
두두둥!
파바바박!
머리 위로 총탄이 지나간다.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에 몸을 숨긴 둘이다.
엄폐할 곳이 마땅치 않다.
밑으로 숨자니, 퇴로가 없고.
가장 큰 문제는.
우르르르.
아스팔트를 찢어발기는 수류탄의 폭발에 건물에 콘크리트 가루가 떨어져 내린다는 점이다.
“곧 무너지겠지?”
위를 보며 유진이 중얼거렸다.
콘크리트 위가 쩍쩍 쪼개지고 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이경주가 놀라 외쳤다.
“괜찮아. 당장은 안 무너져. 그나저나 저것들 수류탄도 던져?”
“조준 사격도 합니다.”
“응. 보니까 그러더라.”
이 사람은 뭔가?
이경주는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나노킷을 다루는 솜씨는 초일류 의무병이다.
그리고 이 상황, 적군과 단둘이 대치하는 상황인데 너무 여유가 넘친다.
“병과?”
“…척후입니다.”
까닥.
유진이 손가락을 벽에 대고 적의 위치를 곱씹었다.
쿠르르르.
그 사이 위에서 자꾸 콘크리트 먼지가 떨어진다.
이경주는 죽을 땐 죽더라도 차라리 나가서 싸우다 죽고 싶었다.
여기서 숨어 있다가 건물 더미에 생매장당하는 건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그때다.
쌕!
흰 돌로 보이는 동그란 구슬이 날아왔다.
“수류탄!”
그걸 본 경주가 놀라 외쳤다.
처음에 아무 방비도 안 한 덕에.
자신은 머리가 깨지고 중화기병인 전우는 상체가 날아갔다.
“염병!”
이경주가 고개를 숙이고 지하로 몸을 날렸다.
건물이 무너지든 말든, 반사적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피하면서 아차 했지만, 이미 늦은 셈이다.
탕!
꽈앙!
찌르르르르. 부스스스.
머리를 박고 몸을 수그린 채로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콘크리트 가루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토도독!
작은 조각들까지 떨어지는 걸 보니, 이 건물의 수명이 그리 길진 않은 것 같았다.
“허억, 허억.”
호흡을 몰아쉬며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수류탄이 날아왔는데, 폭발의 흔적이 안 보인다.
아니, 폭발했다면 중위를 포함 자신이 살아남을 리도 없다.
“어떻게 된 겁니까?”
“요격.”
“…네?”
쌕! 쌕!
다시 흰 구슬이 날아오고!
“수류탄!”
이경주는 다시 몸을 날렸다.
전보다 배는 빠른 움직임이다.
하지만 멍청하게 또 지하로 기어들어 간다.
그사이 유진은 양손에 든 기관단총을 들고 쐈다.
단발로 한 발씩.
타당! 꽈광!
폭음이 터지고.
“헉, 헉.”
호흡을 배는 가쁘게 몰아쉰 경주가 올라왔다.
“무슨 일입니까?”
“요격.”
두 번째다.
마치 동영상을 다시 돌려 보는 것 같은 대화다.
쌕!
그사이 다시 날아오는 흰 구슬.
“수류…!”
“보면 알아.”
세 번째는 멍청하게 지하로 몸을 던지는 대신 눈을 부릅떴다.
수류탄이 날아오는 데 자신은 멀쩡하다.
천국이든 지옥이든 지금 그곳에 문을 두드리고 있어도 모자랄 판이었는데.
탕! 꽝!
팔을 든 유진이 보이고.
찌르르르. 끼기기긱. 부스스스.
대기가 울리며 건물이 신음을 흘리며 가루를 뱉는다.
“맞춘… 겁니까?”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응.”
“날아오는 수류탄을 말입니까?”
자기도 모르게 되묻는다.
잘해야 사람 주먹만 한 크기의 구슬, 그게 놈들의 수류탄이다.
“그게 됩니까?”
“하다 보면 돼. 적절한 훈련과 함께 갈구면 다 돼.”
‘네?’
아까부터 무슨 농담 하는 것처럼 가볍게 말한다.
문제는 이곳이 현실이고.
자신은 그 안에서 굉장히 불리한 조건에 있다는 거다.
고로, 지금 자신 옆에 있는 사람이 날아오는 콩을 맞추든, 수류탄을 맞추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퇴로 확보해야 합니다.”
어쨌든 도망가는 게 목표다.
경주의 두 눈이 뒤쪽을 훑었다.
잘 달리면 빌딩 하나를 끼고 돌아서 대로 쪽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중….”
중위님. 저쪽으로 뛰는 건 어떻습니까?
라는 질문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땅. 훙!
‘진짜 유탄 발사기구나.’
그 작은 기관단총 위에서 불꽃을 뿜으며 로켓이 날아가는 게 보인다.
슈아아악!
‘고속 유탄이네.’
빠르고 강하게 잘 날아간다.
꽝!
폭음이 터졌다.
저 멀리 보이던 1층 편의점 안이 금세 새까맣게 탔다.
타다닥!
꽈광!
안에 뭐가 있었는지, 재차 폭발이 터졌다.
부스스스.
다시 콘크리트 먼지가 머리를 훑는다.
뭘 먼저 물어야 할까?
경주는 평소에 자신이 이렇게 호기심이 많은 사람인 줄 몰랐다.
지금 이 사람이 뭘 하고 있는지.
이미 봤지만, 기관단총 위 유탄 발사기는 진짜인지.
도망갈 생각은 있는지.
정체가 뭔지.
그런데 그 모든 호기심을 뒤로하고 경주가 입을 연 건 다른 이유 때문이다.
투두두둑!
건물 위가 조금 기운 것 같고, 돌비가 머리를 때렸다.
“무너질 것 같습니다.”
“그럼 뛰어야지.”
아, 무너지면 뛰면 되는구나.
그럼 무사한 거구나.
참 무사태평한 답이다.
“어디로 뛰는 게 좋겠습….”
이번에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땅. 슈웅.
유탄을 쏜다.
펑!
폭음이 참, 정겹기도 하다.
경주는 머리가 하얘지는 걸 느꼈다.
그러다 누군가 자신의 뒷덜미를 잡고 뛰었다.
누군가는 무슨.
얼굴 하얗고, 아군을 향해 총을 쏘고 적을 향해 유탄을 쏘는 남자.
정유진 중위다.
땅! 후웅.
세 번째 고속 유탄이 날고.
꽝!
폭음이 터짐과 동시다.
쿠르르르르!
둘이 있던 건물이 무너진다.
그 사이 유진이 자신을 놔줬고, 경주는 앞으로 뛰었다.
콰가가가, 콰드등! 쿠쾅!
의성어로 표현하기도 힘든 소리가 복합적으로 들린다.
뒤를 돌아보니.
뿌연 먼지가 눈을 가렸다.
마스크를 올려 쓰고 눈을 찌푸리며 앞을 보자.
한 인영이 나온다.
먼지 구덩이 속, 마스크와 독특한 아머를 입은 정유진이다.
“상황정리 완료. 부대 복귀 하자.”
그가 입을 열어 말했다.
경주는 부대로 돌아가 자신이 겪었던 일을 말하면.
‘마약을 한 거로 의심할까? 미쳤다고 의심할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
유진은 바빴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베이비시터.
눈에 보이는 아군 부대를 지휘, 통솔.
위험에서 구해내는 역할이다.
원거리에서 나노킷 치료액을 뿌릴 수 있고, 전투력 또한 치용, 인준에게 뒤처지지 않는다.
적합한 자리이긴 했다.
“아악!”
유진은 아군의 비명과 폭음이 들리는 곳을 향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꽝!
허공에 수류탄을 사격하는 거로.
“…누구십니까?”
“중위 정유진.”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유탄을 쏴서 적들을 죽였다.
그래도 아군은 죽었다.
막기만 해서는 결국은 답이 없다.
그래도.
‘현재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세주의 좌우명이 그들 부대의 모토가 됐다.
그리고 유진은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항상 그렇게 살아왔던 그였다.
적과 조우한 다섯 번째 부대를 만났을 때다.
“꺄악!”
여군 하나가 다리를 절뚝이며 도망가는 중이었다.
그 뒤를 총을 들고 쫓는 적군.
적이 막 총구를 들어 앞을 가리킨다.
“젠장!”
도망가던 전우다.
뒤로 몸을 반전한다.
다리를 절뚝이던 여자의 동공이 파르르 떨린다.
그리고 외쳤다.
“가!”
그녀는 도움을 바라지 않았다.
세상에 백마 탄 왕자님은 없다.
자기 일은 자신이 하는 거다.
그게 그녀의 인생이었다.
‘개자식들. 얼굴 똑똑히 봐주마.’
자신을 죽인 놈이 누구인지.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당당하게 몸을 돌리리라.
그게 그녀가 살아온 방식이다.
“실례.”
나긋나긋한 목소리다.
전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움.
얼굴이 하얗고, 치아가 가지런하다.
보통 죽을 때 주마등이 스쳐 가듯 지난 삶이 떠오른다고 하는데.
여군의 눈에는 그녀가 생각하던 가장 이상적인 남자가 보였다.
그 순간 그 남자가 자신을 어깨로 둘러업는다.
훌쩍.
그리고 던졌다.
중력을 배반한 듯 몸이 허공을 붕 떴다.
뒤로 날아가며 고개를 다시 돌렸다.
“받아.”
자신을 던진 남자가 입을 연다.
이게 현실일까?
쿵!
“윽!”
몸을 돌렸던 전우다.
그녀를 받아내고는 외친다.
“퇴각해야 해!”
몸을 일으켜 달렸다.
일단 살아야 했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둘은 부지런히 달려서 아군과 합류했다.
한참을 달린 직후, 안전지대로 온 후다.
그녀가 바로 옆에 있는 이에게 물었다.
“너도 봤지?”
같은 여군으로 친구처럼 지내는 이였다.
“누구?”
“마지막에 나 던진 사람.”
“봤지.”
꿈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한 평생 믿을 리 없던.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아, 이딴 거 없구나 하고 체념한.
그런 존재, 일명 백마 탄 왕자는 있었다.
아니, 그냥 피부가 하얀, 어쨌든 왕자가 있었다.
“왕자님.”
자기도 모르게 읊조리자.
“그래. 잘 생기긴 했더라.”
친구가 그 말을 받았다.
연예인도 명함 꺼내기 힘든 얼굴이긴 했다.
친구는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로도 유진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아군을 위해 뛰어들었고.
그를 본 이들은 험난한 와중에도 유진의 얼굴에 시선이 갔다.
왕자님.
어느 여군이 말한 그대로 유진의 별명이 굳어지는 순간이다.
누군 곰 새끼, 누군 왕자님.
차별대우 받는 별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