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67화 (67/206)

#  67

67. 곰 새끼

“적군 발견!”

“어디냐?”

부대원의 목소리에 치용이 몸을 움직였다.

건물 숲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 바로 강남이다.

세주가 위치한 건물 바로 앞.

그곳이 치용의 자리였다.

“몇 마리야?”

망원경으로 적을 확인한 병사가 입을 연다.

“노란 선 발견, 적군으로 추정, 적 1기입니다. 혼자서 돌진 중입니다.”

1기? 혼자?

“줘 봐.”

망원경을 뺏어 들고 보자.

말 그대로다.

한줄기 노란 선이 이쪽을 향해 쭉 달려온다.

눈에 커버링을 씌우자.

노란 아머를 입은 놈의 정체가 보인다.

“사살해.”

사선에 몸도 숨기지 않고 달려드는 놈이다.

“로우클 원, 저격합니다.”

그 바로 옆 저격총을 든 이가 스코프에 눈을 댄다.

탕!

조준하고 겨누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저격수가 방아쇠를 당긴 후, 놀란 눈으로 입을 열었다.

“…적중했으나, 적군이 무시하고 달립니다.”

적은 일직선으로 달려왔고, 점점 가까워졌다.

망원경으로 적을 주시하던 치용이 웃었다.

“야, 손님 맞을 준비 해야겠다.”

저격 탄환을 피하지도 않고 등에서 붉은 작대기를 꺼내 튕겨낸다.

달려오는 속도도 그대로다.

아군에 반세주와 전우조, 알파, 베타, 크롬, 발해가 있듯이.

적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을 수 있다.

세주가 줄곧 해왔던 말이다.

“대치중인 아군이 교전합니다!”

망원경을 든 다른 이가 말한다.

“좀 빨리 가야겠다. 코드명 노브레인. 이제부터 개별 활동에 들어간다.”

무전은 진즉에 먹통이다.

우드득.

목을 한 번 꺾은 치용이 움직였다.

2층 카페 베란다 창가를 거점으로 삼은 그들이다.

치용이 그대로 밑으로 몸을 던졌다.

“중위님!”

훅하고 밑으로 떨어지며 몸에 푸른빛을 두른다.

뒤에서 부른 소리를 일별하며 그대로 바닥을 구른 치용이 앞으로 내달렸다.

*

어느새 다가온 적을 향해 사방에서 뿜어지는 총격이다.

투다다다다다!

티디디딩!

“총격이 안 통합니다!”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어?”

레이퍼는 맞고 꼼짝이라도 하지.

저건 그냥 탄환을 무시해버린다.

일부는 붉은 작대기로 막고 일부는 그냥 몸으로 버틴다.

“로켓 쏴버려!”

푸슈! 푸슈!

대천차 로켓포가 놈을 향해 날아간다.

쿠아아아-. 쾅! 꽈과광!

“사격중지!”

폭발이 일어나고 뿌연 연기가 눈을 가린다.

“음.”

지휘관이 신음을 삼켰다.

폭발로 인한 연기가 걷힌다.

움푹 파인 아스팔트.

그리고 바로 옆에 있던 소화전이 물을 뿜는다.

“니미.”

생채기 하나 없는 놈이다.

그리고 동시에 놈의 얼굴에서 초록빛이 번쩍였다.

그 빛이 주변 모든 이들을 훑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갈겨!”

투다다다다다!

다시 총알이 빗발치지만.

어느새 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사격 중지!”

맨바닥을 때리던 총격이 다시 한 번 멈춘다.

지휘관의 고개가 바삐 움직인다.

‘어디냐.’

“오른쪽!”

맞은편에 선 이가 외쳤다.

거점으로 삼은 곳, 4층 옥상이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자.

턱.

난간을 잡는 노란 빛의 손이 보인다.

콰득.

악력이 얼마나 좋은지 시멘트 난간을 부수며 올라온다.

놈의 얼굴이 보이고.

반대편 손도 보였다.

왼손에 들린 건 붉은 빛의 막대기다.

지휘관이 수류탄을 들었다.

“밑으로 뛰어내려!”

바로 옆에 있는 부대원만 다섯이다.

이대로라면 전부 죽는다.

총탄에 흠집 하나 없는 놈이라니.

저건 재앙이다.

팅!

안전핀을 뽑고 앞을 보자.

어느새 놈이 완전히 올라와 그들을 향해 뛰고 있다.

무섭게 빨라서 몸이 점점 커지는 것처럼 보였다.

“으아아아!”

이놈의 자식들.

도망가라고 했더니!

투다다다다다!

기관총을 갈긴다.

팅!

달려오던 놈의 머리에 탄환이 맞고 튕겨 나간다.

하지만 놈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휙!

수류탄을 던졌다.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차라리 밑으로 떨어지는 게 낫다.

‘개인 화기로는 무리다.’

적어도 일정 수준 이상의 화력이 갖춰져야 한다.

놈은 달려오는 그대로 아래에서 위로 붉은 작대기를 휘둘렀다.

스겅! 꽝!

칼날의 붉은빛이 잔상으로 남았고.

수류탄이 허공에서 쪼개지며 터졌다.

그 순간에도 놈의 달리는 속도는 여전했다.

‘전부 죽는다.’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끔찍한 참상이 벌어지기 직전이다.

땅!

티디디딩!

놈의 몸에 산개해서 꽂히는 탄환.

꽝!

직후 푸른 덩어리가 날아와 놈을 후려친다.

총알에도 로켓에도 멀쩡하던 놈이 뒤로 날아간다.

쿵!

삐죽하게 솟은 환기구에 몸을 들이받은 놈이다.

쿠드득.

충격은 없는지 금세 몸을 일으키고 앞을 바라본다.

바로 덤비지는 않았다.

아니, 덤빌 수가 없었다.

그 앞을 막는 상대가 있었기에.

“이 새끼가. 어울리는 상대랑 놀아야 할 거 아냐.”

등이 무슨 커다란 벽을 보는 것 같다.

“니들은 내려가 있어. 저 자식은 나랑 면담이다.”

곰 같은 덩치.

들어 본 기억이 있다.

수호신 부대.

반세주의 별명이 그대로 이름으로 굳어진 부대.

그 부대원 중 하나.

곰 새끼 김치용.

“야, 어디서 좀 놀았냐?”

소문 그대로였다.

말도 안 통하는 놈한테 말을 거는 태도, 그의 또 다른 별명을 떠올리게 한다.

노브레인.

생각 따위는 없단 소리였다.

*

파직!

붉은 칼날이 아머를 스칠 때마다.

상처가 남았다.

반면에 치용의 칼날은 놈을 때려도.

파캉!

제대로 된 상처가 남지 않았다.

맨 처음 달려들 때는 풀 업 상태였다.

거기에 노블 에너지를 끌어 모아 던진 일격이었고.

최소한 그 수준이 아니면 꿈쩍도 안 한다는 거다.

전장에 참여해서 처음으로.

아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치용은 적의 칼날을 피하며 소극적으로 싸워야 했다.

맞으면 그대로 베이는 상대의 칼날이다.

아무리 생각이 없고 멍청해도.

저 칼에 베이면 죽는다는 건 안다.

땅!

적의 칼날을 피하며 빈틈에 샷 건을 쏴도.

티디디딩!

놈의 연노랑 아머에는 잔 상처도 안 생긴다.

코앞에서 쏘는데도 이런다.

파워 업.

아머에 내장된 기능까지 개방한다.

근육에 아머가 달라붙는 감각과 함께.

기운이 솟구친다.

날아드는 칼날을 뒤로 누우며 피하고 몸을 일으키며 놈의 이마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꽝!

달려들던 놈의 몸이 멈춘다.

콰직.

들이받은 건 치용인데, 치용의 아머 이마 부분이 쪼개진다.

단단하기는 더럽게 단단하다.

“새끼가!”

발로 놈을 밀어 차며 반동으로 위로 뛰었다.

스걱!

그 자리를 스쳐 가는 놈의 칼날.

총 한 자루 없이 칼 하나만 믿고 덤비는 놈이다.

그런데 놈을 죽일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이 한 놈 잡자고 강남에 폭격을 떨어뜨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놈은 재앙이었다.

단일 개체로 무서운 전투력을 보여주는 괴물이다.

뒤로 물러나 치용이 자신의 칼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

“야, 잠깐 기다려 봐.”

말이라도 알아들은 듯 놈이 멈췄다.

“트레.”

놈이 입을 열었다.

놀랄 만도 하지만 치용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은 개소리와 같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다.

산뜻하게 무시하고.

“후아.”

숨을 내뱉고 산탄총의 어깨끈을 풀었다.

덜그럭.

총을 한쪽 구석에 던지고.

앉았다 일어나며 무릎을 구부렸다 펴고, 허리를 꺾는다.

“트레이.”

그 사이 놈이 다시 입을 열지만.

또 무시다.

그리고 치용이 입을 열었다.

“벌써부터 밑천 다 보일 줄은 몰랐는데. 쩝. 됐다. 이제 덤벼.”

칼을 양손으로 쥔다.

세주가 특별하게 만들어 준 커다란 칼날이다.

그리고 치용의 몸에 불꽃이 붙었다.

푸른빛으로 타오르는 소리 없는 불꽃이었다.

번 업.

완벽하게 구현한 기예다.

치용의 기세가 변한 순간 상대도 땅을 박찼다.

탁!

놈이 달려드는 걸 본 치용이 칼날을 뒤로 당긴다.

야구 선수처럼 손잡이를 쥐고, 힘을 모은다.

우우우웅!

칼날이 요동쳤다.

놈이 어느새 다섯 걸음 이내로 들어온다.

아직 칼날이 닿지 않는 거리.

“으럇아아!”

전신에 타오르던 푸른 불꽃이 사라지고.

그 순간 치용이 풀스윙으로 칼을 휘둘렀다.

*

산탄총을 던져놓는 치용이 보인다.

그 싸움을 지켜보는 병사들 모두 침을 꿀꺽 삼키는 순간이다.

갖가지 화기가 둘을 겨누고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고로 지금 산탄총을 버린 저 곰 새끼가 지면 꽤 우울한 결과가 그들을 기다릴 듯했다.

“도망가고 싶네.”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그들 모두의 뜻을 대변했다.

총을 버리고 갑자기 몸을 푸는 치용이 보인다.

“개소리하지 말고.”

다른 이가 그를 타박한다.

주변 병사들이 한 마디씩 거든다.

“이긴다. 이기면 돼.”

“총은 왜 버리는 거야?”

“갑자기 체조는 왜 하고?”

“알게 뭐냐? 그냥 뭐가 됐든 저 괴물 새끼나 죽여줬으면 좋겠다.”

갑자기 치용이 몸이 불타오르고.

“놈이 뛴다!”

멀리서 보는데도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빠르다.

아니, 싸움 내내 둘은 인간 이상의 움직임을 보여줬다.

푸른 불꽃이 타오르던 치용의 몸이다.

그러다 한순간 불이 팍 꺼진다.

“시발.”

누군가 침울하게 입을 열었다.

한 놈은 여전히 괴물이고 한쪽은 기세 좋게 타오르던 불길이 사라졌다.

졌다고 생각한 순간이다.

치용이 든 칼날이 늘어났다.

“어? 어?”

“저거? 저거?”

스걱!

푸른빛을 뿜어내는 칼날이 그대로 허공을 그었다.

섬뜩한 소리가 수십 미터 떨어진 그들의 귀에도 들렸다.

“…죽이네.”

괴물의 몸이 상, 하체로 나뉘어서 옥상 바닥에 떨어지는 게 보였다.

“저거 뭐냐?”

푸른 칼날이 쑥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내 눈이 잘못된 거 아니지.”

“아닐걸. 내 시력 2.0이다.”

모든 병사가 자신의 눈을 의심할 만 한 광경이다.

칼이 늘어나?

하긴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이긴 거지?”

“이겼지.”

지휘관은 치용이 싸우는 걸 보며 가슴이 짜릿해지는 걸 느꼈다.

전군, 경계.

그리고 재차 오는 적을 대비한다.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후웁. 하고 숨을 들이켜고 입을 여는 순간이다.

얄궂은 입이 그의 의지를 배반했다.

군을 통제하는 대신 그는 외쳤다.

“곰 새끼 만세!”

그가 외치자.

“노브레인 최고!”

치용의 별명을 부르짖는다.

싸움은 이제 시작했지만.

죽다 살아난 그들로서는 당연한 환호였다.

*

치용이 적과 만난 그 시간.

유진은 전투 헬기 위였다.

“아군 부대 투입된 장소 맞지?”

소곤소곤 묻는 그의 말투는 영 적응하기 어렵다.

바로 옆에 앉은 상사가 굳은 얼굴로 답했다.

“네. 맞습니다!”

투다다다다.

헤드셋을 낀 채 밑을 보던 유진의 눈에 푸른빛이 씌워졌다.

꽝! 꽈광!

하늘 위에서 놈들의 미사일이 날아든다.

반투명한 로켓 형태의 폭발물들.

상사는 목숨을 걸고 전투 헬기에 탑승해 유진에게 전장을 안내했다.

무전이 없어서 모든 것이 예측과 예상으로 이뤄진 전장이다.

쿠앙!

이 반투명한 로켓 미사일은 허공에 갑자기 나타나 회색의 동그란 연기를 만들며 밑으로 내리꽂혔다.

하지만 어떤 미사일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인류가 가진 힘은 절대 약하지 않았다.

전파가 방해받는 범위를 측정.

그 경계선 바깥에서 지대공 미사일로 죄다 요격해버린다.

그 와중에 놓치는 건.

꽝!

세주의 저격 부대가 전부 작살낸다.

유진은 세주와 이미 작전에 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고.

그래서 전투 헬기에서 밑을 내려다보는 지금 이 순간이 그리 위험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문제는 놈들이 타고 온 비행체다.

요격당해도 안에 탄 놈들은 살아남아 밑으로 떨어진다.

헬기 위에서 본 숫자만 해도 꽤 많다.

비행체 하나에 놈들이 열 명씩만 타 있어도 기백이 넘는다.

유진은 눈에 커버링을 씌워 밑을 샅샅이 살폈다.

최전방, 전투가 시작된 곳을 찾는다.

꽝!

그때 밑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우르르 뛰는 군복 입은 이들이 보이고.

그 반대편 소총을 쏴대는 흰색 아머를 입은 적군도 보인다.

“나 내려간다.”

“어딜 말입니까?”

“어디긴.”

밑이지.

이전, 세주가 했던 짓과 똑같다.

로프를 잡고 밑으로 떨어진다.

물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세주가 준 아머의 기능은 다양하다.

특히나 유진에게 기동성을 위해 정말 특별한 기능들도 넣어줬다.

촤아아악!

적당한 지점에서 로프를 놓으며 유진이 몸을 활짝 폈다.

동시에 아머의 등에서 찰칵하고 짧은 날개가 펼쳐졌다.

활공이다.

사아아아악!

매캐한 화약 냄새와 함께 날카로운 바람이 볼을 스쳤다.

“퇴각해! 퇴각!”

그리고 그 밑.

아군의 목소리가 들린다.

전쟁에 희생은 필수불가결이다.

더구나 이 싸움은 아무도 죽지 않고 이길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떨어지는 유진의 눈에 널브러진 시신이 보인다.

죽는 이가 생긴다.

군복을 입은 그 시신은 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전부를 살릴 순 없다.

그래도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반세주의 좌우명이.

어느새 부대원 모두의 마음가짐이 됐다.

유진은 떨어지며 자신의 무기를 꺼냈다.

기관단총 치고는 묵직한 무게가 느껴지는 유진 전용 총기다.

총구를 한쪽으로 향한다.

피를 흘리고 다리를 절뚝이며 도주하는 아군을 향해서였다.

드르륵.

그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퍼버벅.

그리고 그의 탄환은 그대로 아군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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