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66. 예측
2차 침공 격멸 직후.
‘난 이 자식을 조두라고 칭하겠다.’
적절한 이름이 필요했다.
레이퍼 무리를 이끌고 온 거대한 괴물의 이름을 골이라고 지었듯이.
놈에게도 이름을 지었다.
-조두? 새대가리? 진심 아니지?
‘200% 진심이다.’
-…그냥 내가 지을걸.
‘야, 잘 들어봐.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고.’
-그러시겠지.
‘진짜다.’
-응. 읊어봐.
프로비던스가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2번의 침공이 놈에게 준 교훈은 뭘까?’
-이 새끼들 이번엔 죽여 버려야지. 정도?
‘그럼 우리에게 남은 교훈은?’
-이러다 죽겠다?
기계 새끼가 매우 비관적이다.
‘조두랑 친구 하고 싶지 않으면 머리 좀 굴려라.’
-말이 심한데.
‘단순한 거다. 놈은 두 번이나 인류에게 생각하고 준비할 기회를 줬다.’
-그래서?
‘그 두 번의 기회에서 배운 걸 써먹을 때가 됐다는 거다.’
과거의 사실을 토대로 앞날을 미리 헤아려 보는 것.
예측이다.
“중령, 내 질문을 들은 건가?”
혼자서 생각에 잠겨 있지만 혼자는 아니었다.
가죽 소파에 앉은 세주, 그리고 맞은편에 오십대의 남자다.
준장, 원 스타 계급장이 진짜 별처럼 반짝반짝하다.
광을 냈나보다.
그런데 누구였더라?
‘누구라고 했지?’
-무슨 참모라고 했어. 원 스타고.
“네. 듣고 있습니다.”
“그럼 대답해라.”
‘질문 뭐였나?
너무 무시했다.
지금 이 일보다는 앞날이 더 중요하다.
타당한 이유로 무시한 거다.
일분일초가 바쁜 마당에.
-발해 팀에게 사과하래.
“제가 말입니까?”
“그럼 누가 하겠나? 직접 손 쓴 사람의 사과를 바라는 거다.”
하기 싫다.
몹시 하기 싫다.
그들은 할 일 한 거 맞다.
그런데 쥐어 팼다.
민간인 무시하는 건 너무하잖아.
그리고 그 자식들이 지킬 사람은 다 지켰잖아.
문제 있어? 없잖아.
슬쩍 고개를 돌렸다.
텅.
그 사이 둘만 있던 방문이 열렸다.
“심문실도 아니고 응접실?”
소파에 편안히 앉은 세주와 원 스타를 보고 대뜸 말을 한 놈이다.
몸집이 꽤 있고 인상이 사납다.
도베르만이 떠오른다.
-저 새낀 또 뭐야?
프로비던스가 세주의 마음을 대신해줬다.
“지고학 대장. 지금 심문 중이다.”
“심문? 지금 이걸 심문이라고 하는 거요?”
후루룩.
세주가 테이블에 놓인 찻잔을 들었다.
녹색 빛깔 물이 참으로 맛깔나게 보인다.
아직 뜨겁다.
후후 불어가며 마셔야겠다.
후룹.
빠직.
도베르만의 이마에 혈관이 튀어나온다.
외계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괴상한 모습이다.
-형도 참.
‘뭐?’
-이럴 땐 우릴 일심동체 같아.
‘칭찬이지?’
-말이라고 해?
“누구?”
녹차 잔을 들고 살짝 들어 올리며 묻자.
“네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지고학이라고 불린 도베르만을 닮은 개새, 아니, 강아지가 말했다.
어디서 말이 들어 본 대사다.
“응. 좀 해.”
“따라 나와라.”
도베르만이 이를 드러낸다.
“아이 참, 어떻게 합니까?”
곤란하네. 참.
나오라니 나갈 수밖에 없긴 한가.
“지고학 대장!”
세주를 심문하던, 직접 차를 끓여 준 준장이 그를 노려본다.
“우리 요청을 이렇게 무시해도 된다고 보시오?”
“누가 무시를 했단 말이냐!”
그럼 사람을 구한 영웅을 정말 감옥에라도 넣을 줄 알았어?
침침한 전등 밑에서 담배 한 대 주며 심문할 줄 알았냐고.
엉거주춤하게 궁둥이를 들다가 도로 앉았다.
싸움의 불똥이 다른 곳으로 튀었다.
끼이이익.
지고학이 들어 온 문이다.
밖에서 다른 이가 들어온다.
“뭐야?”
젊은 얼굴이다.
군복도 아니다.
세주는 아는 얼굴이었다.
김해에서 봤다.
나호필.
현재 군인을 뺑뺑이 돌리는 시스템을 만든 놈.
“너.”
도베르만이 세주를 손가락을 가리킨 순간이다.
그는 흠칫하고 어깨를 떨더니, 손가락을 접고 뒤로 돌아 파이팅 자세를 취한다.
“뒤를 쳐?”
도배르만이 진짜 화가 나 입을 연다.
-나호필 따라온 애들 좀 하네. 사이킥 에너지가 아주 충만해.
염력이다.
도베르만이 세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마자 일어난 일이다.
염력이 그의 등을 노렸다.
나호필의 뒤, 두 명이 얼굴을 내민다.
얼굴에 점이 턱 하니 붙은 놈.
장왕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준수한 얼굴에 배우 뺨치는 얼굴.
알파 팀 에이스이자.
-딱밤이네.
그래. 딱밤 맞고 입원한 에이스다.
나기주.
“오랜만입니다.”
그가 고개를 꾸벅 숙인다.
“필승.”
장왕은 경례를 한다.
“여어.”
녹차를 왼손으로 쥐고 오른손을 들어 인사를 받아줬다.
“치워.”
나호필이 입을 열었다.
“이 새끼들이!”
지고학이 발작을 일으키기 직전이다.
슥.
뒤에서 누가 그의 목에 칼날을 댄다.
“죽여도 됩니까?”
와. 이 새끼 봐라. 살벌하네.
뒤에서 나타나는 모습이 암살자 저리가라다.
얼굴이 낯이 익다.
초인프로젝트 2기, A팀이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죽을래? 나갈래?”
나호필이 묻자.
지고학이 끄응하고 신음을 뱉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겠다.”
“그래. 가라.”
놈이 나가며 입을 열었다.
“내 오늘 이날을….”
꽝.
말 하던 놈 앞에서 장왕이 문을 닫았다.
“정리했습니다.”
나호필은 세주 반대편에 앉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다음 침공 대비할 거다.”
예측.
여러 번 맞아 본 놈은 본능적으로 가드를 올리는 법이다.
“좋은 생각입니다.”
“훈련 맡아주겠나?”
훈련이라니.
그럴 시간이 있을까?
이전에 온 흰둥이 놈, 프로비던스는 그들의 시스템을 잡아먹고 한 가지 사실을 알려줬다.
흰둥이는 실험체다.
인간의 학습 능력을 모방한.
그들은 레이퍼를 통해서 인간을 시험했고.
흰둥이 놈들을 통해서 배웠다.
고로, 이번에 올 놈들이야말로 진짜 병력이다.
더구나 시간을 많이 줄 리 없다.
파악은 끝나고 이 사냥감은 자기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사냥꾼은 그저 걸어와서 방아쇠를 당기면 그만이다.
“죽도록 굴릴 겁니다.”
“바라는 바다.”
그 말에 장왕의 얼굴이 검게 변했다.
*
그동안 겪었던 끔찍한 훈련 시간이 머리를 스친다.
장왕은 전장에 선 채 주변을 둘러봤다.
“민간인 대피를 최우선으로 움직인다.”
“넷!”
“교관님 오기 전에 끝낸다. 가.”
“넷!”
파바박!
장왕을 포함, 셋을 남기고 전부 달린다.
최정예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다.
팀 크롬.
세주가 훈련시킨 사이키커 부대였다.
크롬 부대원 중 하나가 뒤를 돌아봤다.
절뚝거리며 누군가 아파트 입구에서 나와 달려왔다.
건물 안에서 적과 대치하던 사람이다.
그가 아내와 아이를 안고 안도하는 게 보였다.
후웅.
그때였다.
하늘 위다.
퍼엉!
폭음과 함께 회색 연기로 만들어진 동심원이 보였다.
그리고 밑으로 향하는 미사일이다.
파지직!
스파크를 튀기는 반투명한 로켓 형태의 미사일이다.
“무섭네.”
장왕이 감탄을 터트렸다.
박민우가 그걸 보며 외쳤다.
“뭐하는 겁니까?!”
놈들의 폭격이 떨어지는데 구경을 하고 있다.
장왕이 그를 돌아봤다.
그리고 입을 연다.
“구경합니다.”
‘구경?’
그때였다.
슝! 꽝!
머리 위.
날아오던 폭탄이 박살난다.
그리고 내려오던 비행체를 향한 폭격이 시작됐다.
퍼버버버버벙!
지대공 미사일이 허공을 난다.
그들의 머리 위, 폭죽이 미친 듯이 터진다.
놈들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중이었다.
거기에.
꽝!
갑자기 적 비행체 하나가 부서져 추락한다.
꽈과광!
미사일이 아니다.
뒤쪽이었다.
익숙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소리다.
비무장지대의 전투에 참여했던 그다.
‘벼락?’
그 미친 저격 발사음과 비슷한 소리가 수없이 들린다.
“수호신?”
박민우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야, 혼자서 떨구려고 하지 말고, 다섯이 하나 노려.”
세주가 말하며 다음 표적을 향해 눈앞에 붉은 점을 움직인다.
많이도 온다.
꽝!
벼락이 울고.
꽝!
비행체 하나가 터진다.
-이게 진짜 되네.
프로비던스도 세주의 계획에 혀를 내둘렀다.
물론 세주는 평소와 같이 밀어붙였다.
‘된다고 했잖아.’
굴리면 된다.
그는 군대에 격언에 충실했고.
현재 서울 고층 건물 위에.
오십의 저격수를 준비했다.
그가 직접 가르친 저격수 오십 명이다.
거기에 그들의 손에 들린 총.
배럿 M82다.
아니, 거기서 끝이 아니다.
전부 커스터마이징이 들어간, 벼락의 이미테이션이다.
15mm 총탄을 장착하고, 풀 업을 할 수 있는 저격병 50명.
하늘을 보며 세주가 읊조렸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먹어라.”
환영식 한번 거하게 할 차례였다.
꽝.
다시 벼락이 불을 뿜는다.
아직까지는 세주만이 적을 격추했다.
하지만 곧.
“좋아!”
누군가 환호를 외쳤다.
“호흡 잡아라.”
대답은 없다.
그렇게 가르쳤다.
사선에서는 방아쇠를 당기는 게 최선이라고.
좋다고 외친 놈 끝나면 한 마디 해줘야겠다.
뿌듯했다.
이들이 결국 합심해서 허공에 뜬 비행체 하나를 추락시켰으니까.
물론 이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대공 포대에 박격포, 다양한 화기가 주변을 지킨다.
“놈들이 어디로 올까?”
“번화가로 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피해를 줘야 하니까, 선택은 제한적입니다.”
나호필의 물음에 세주의 답이다.
나호필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예측이다.
적과는 이미 2번을 싸웠다.
레이퍼를 내려 보냈을 때 싸움이 끝났다면 머리를 쓰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레이퍼가 졌다.
골이 무너졌다.
비트레이어가 죽었다.
놈은 흰둥이를 내려 보냈다.
도시를 향한 침공, 그건 놈의 목표를 보여준 거다.
도시로 오지 않고, 비무장지대나 사람이 없는 곳으로 온다면 고마울 따름이다.
거기서는 마음껏 폭격을 퍼부으며 싸우면 되니까.
세주는 강남을 찍었다.
익숙하니까.
놈은 마치 인간처럼 행동했다.
더는 미지의 존재가 아니다.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존재가 됐다.
그는 자신을 너무 많이 보여줬다.
전투기와 무인 정찰기 등은 싸움에서 전부 뺐다.
전파 방해를 염두에 뒀다.
무전도 되면 쓰고 아니면 말고다.
강남 인근 지역에 들어간 부대는 전부 개별 작전이 가능한 이들이다.
철컥. 팅.
벼락의 탄피가 허공을 날았다.
스코프에 눈을 댄 채, 방아쇠를 멈췄다.
‘어디냐?’
-맵으론 안 보여.
업그레이드된 프로비던스도 못 찾는 놈이다.
이 부대를 지휘하는 놈, 그놈을 찾는 중이었다.
구조는 비슷할 거다.
습격하는 놈들과 그걸 지휘하는 놈.
스코프를 돌리다가도 위험한 순간이 올 것 같으면 방아쇠를 당겼다.
꽝!
그 외에는 전부 놈을 찾기 바빴다.
그리고.
-저기.
‘찾았다.’
프로비던스와 세주가 동시에 한 곳을 본다.
연노랑 빛의 슈트아머를 입은 놈이다.
근육처럼 선명한 골격의 아머다.
떠오르는 햇빛을 반사하는 놈이 한쪽을 본다.
정확히 세주가 있는 쪽이다.
-여기 본다.
그래. 구경 잘 해라.
특대 급 선물을 줄 차례다.
서핑보드를 타는 것 같이 비행체 위에 선 놈이다.
‘모드 온 스나이퍼.’
스파이얼, 응축, 폭발.
비트레이어를 죽인 삼 종 세트다.
놈은 피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일단 맞고 나면 생각이 바뀔 거다.
웅.
벼락 전체가 푸른빛에 물든다.
세주의 전신도 마찬가지다.
주변 소리가 사라진다.
쭈욱.
눈이 확대경처럼 변한다.
놈이 바로 코앞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초인이라 부르기 부족함이 없는 시력이다.
놈의 일거수일투족이 눈에 잡힌다.
‘지금.’
정확한 타이밍을 잡은 순간이다.
끼릭.
자연스럽게 검지를 뒤로 당긴다.
꽝!
벼락이 푸른 불꽃을 토했다.
사아아악!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푸른 탄환.
놈은 벼락이 울리자마자 몸을 뒤로 기울였다.
‘피해도 소용없다.’
폭발 성질 부여다.
놈과 가까이 가는 순간 터진다.
스코프 너머.
놈의 몸을 뒤로 기울인다.
그의 발밑에 있는 비행체가 올라간다.
서퍼들이 파도를 타는 모양새다.
탄환이 날아가는 방향.
비행체가 갑자기 밑면을 보이며 앞쪽으로 쭉 밀려온다.
푸른 선과 비행체가 만난다.
꽈-앙!
폭음이 터졌다.
스나이퍼 모드를 끈 세주다.
“저 새끼 봐라.”
커버링 탄환 정도면 터트릴 수 있는 비행체다.
그런데 있는 힘껏 갖가지 기교를 부린 탄환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이딴 수로 피해?’
비행체를 날리고 밑으로 몸을 날리는 놈이다.
야생짐승처럼 몸이 가볍다.
비행체를 박차고, 반동으로 도망가고 총알을 막는다.
말이 쉽지.
저건 묘기다.
-어차피 저격으로는 안 될 거라며?
‘그러긴 한데.’
아쉽다.
먹이를 뺏긴 기분이다.
이 또한 예측이다.
비트레이어를 저격으로 잡았고, 상대는 자신을 안다.
조두라고 불렀지만, 정말 새대가리가 아니라면.
‘똑같은 수법에 당할 놈을 보내지는 않겠지.’
거기에 자신을 노릴 거다.
치용만 신날 일이다.
세주에게 오는 적을 차단하는 역할.
그게 오늘 치용의 일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