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65화 (65/206)

#  65

65. 운수 좋은 날

동이 터오기 직전이다.

강남 상공에 작은 비행체가 나타났다.

인간들의 헬기와 닮았지만, 전혀 다른, 타원형의 비행체다.

프로펠러 대신 동체 밑에서 우웅하고 푸른빛이 솟았다.

팅.

옆면이 문처럼 위로 열리고.

텅.

흰색과 노란색이 섞인 갑옷을 걸친 발이 나왔다.

탄탄한 근육처럼 전신을 감싼, 연노랑 빛의 슈트다.

퓨슉.

목 위 헬멧 같은 얼굴 위로 녹색 불빛이 번쩍인다.

이전 흰둥이 놈들보다 배는 세련된 빛깔이다.

놈이 열린 문 바깥에 한 발을 걸치고 비스듬하게 앉았다.

한쪽 다리가 허공에서 달랑거린다.

유리막 얼굴 위 기묘한 문양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트레.”

그리고 놈이 입을 열자, 비행체가 허공을 선회한다.

슈슈슈슈슈슝.

그러자 놈의 비행체 뒤로 똑같은 비행체 수백 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트레.”

놈이 한 번 더 입을 연다.

비행체 앞, 불쑥 하고 두툼한 포신이 나왔다.

한두 대가 아니었다. 무려 수백 대.

전투 편대다.

맨 선두에 선 놈이 위로 열린 문을 잡고 타고 비행체 위로 빙글 몸을 올렸다.

등에 비껴 맨 긴 작대기가 붉은색으로 빛난다.

비행체 위에서 우뚝 선 놈이다.

주먹을 들고, 하늘 높이 올린다.

막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해를 등진 놈이 주먹을 밑으로 내렸다.

두두두두두두두둥!

수백 대의 비행체에서 탄환이 날았다.

2014년 1차 침공에서 강남대로는 반파되었다.

그 후로 4년.

복구가 끝난 땅에 다시 한 번 재앙이 몰아치고 있었다.

*

“없어졌습니다.”

추적하던 아시아 3호가 모습을 감췄다.

인류 침공의 주체라고 판단한 침공 모선이다.

노란 동체를 가진 놈의 모습이 잡히지 않는다.

그 이후 놈의 모습이 나타난 곳.

지구 성층권 위다.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흘릴 뻔했다.

김해 침공사령부 대장 최천기가 입을 열었다.

“전군 비상대기령 울려.”

위이이이잉!

그가 있는 곳에도 붉은빛이 번쩍이고 사이렌이 울린다.

비상이다.

“나호필.”

“말씀드렸잖습니까.”

흰둥이 놈들을 처리하고 보름도 되지 않았다.

언론은 승리를 기뻐했고.

희생당한 이를 위해 추모했으며.

광화문 한복판에 위령비가 세워졌다.

언론은 연일 국가와 군대를 비난하며 그동안 침공에 대해 숨긴 걸 밝히라고 촉구했다.

그리고 나호필은.

“이게 끝일 리 없습니다.”

레이퍼보다 약한 부대.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면 처리할 수 있는 놈들.

하물며 적 중에는 사이킥 에너지를 사용하는 놈들도 없었다.

조악한 소총을 들고 기둥을 타고 덤빈 놈들을 보며, 든 생각은 하나다.

“놈들은 다시 옵니다. 그때는 정규 병력을 가지고 올 겁니다.”

“네 거지 같은 예상이 맞았다. 준비한 것들은?”

“알파와 베타를 이은 세 번째 특수팀. ‘크롬’입니다.”

전부 사이키커로 이뤄진 특수 부대다.

거기에 초일류급 사이키커만 모았다.

“크롬의 대장은?”

마지막까지도 서로 주도권을 놓지 않았던 이들이다.

“장왕입니다.”

F랭크 문제아에서 새로운 팀 크롬의 대장까지.

수직 상승이다.

반세주 중령을 만난 뒤로 일어난 마법 같은 일 중 하나다.

“그 엿 같은 발해 팀 놈들도 합류하라고 해.”

배에 기름 낀 돼지들이 만든 민간 기업이다.

군에서 배운 노하우를 쓰고, 임의로 훈련소 인원을 빼돌려 만든 집단.

초능력자로 이뤄진 민간 기업이라니.

권력을 남용하는 놈들이 만든 게 아니라면, 만들어질 수도, 가능하지도 않은 것들이다.

“알겠습니다.”

그들이 민간 기업이든 뭐든.

다 죽게 생겼으면 같이 싸우는 거다.

“대장님!”

사이렌이 울린 지 몇 분이나 지났다고 이리 다급하게 부르는지.

“말해.”

“서울 강남 지역 침공입니다.”

아주 지구가 동네북이다.

“세 개 팀 출동해. 수도방위군한테 연락하고, 민간인 대피시켜.”

어디로 놈들이 오든 피해는 어쩔 수 없다.

이건 전쟁이다.

전쟁은 피해 없이 이길 순 없다.

“지면 끝인가.”

최천기가 조용히 읊조렸다.

물리치지 못하면.

인간이 상상한 것보다 더 험난한 최악이 올 것이다.

“그보다 반세주는?”

“준비한 대로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상황을 나호필 만큼이나 준비한 자가 있다는 거다.

과연 그게 얼마나 먹힐지는 봐야겠지만.

*

“헉!”

눈을 떴다.

익숙하지 않은 천장이다.

‘총은?’

옆으로 손을 뻗었다.

잡히는 게 없다.

“오빠?”

옆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그는 이곳이 집임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아냐.”

박민우는 아내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눈을 비비는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더 자.”

그녀를 눕히고 일어났다.

요즘은 좋은 일이 연신 일어났다.

첫째, 전쟁이 끝났다.

박민우도 비무장지대에서 싸운 이 중 하나였다.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딸깍.

불을 켜고 거울을 바라봤다.

흉하게 흉터가 나 있던 왼쪽 머리 위.

까슬까슬하게 머리가 자라고, 피부가 본래대로 돌아온다.

전쟁이 끝난 후 개발된 D 부작용 억제약을 복용한 효과다.

전쟁도 끝나고 신약도 개발됐다.

이게 두 번째다.

그 이외에는 아이도 잘 자랐으며.

군 복무의 대가로 얻은 고액 연봉은 그들에게 안락한 보금자리를 제공했다.

거기에 휴가 나오기 전, 필수코스로 받는 정신 상담에서.

꽤 좋은 점수를 받았다.

요즘 같으면 지낼 만 했다

가장 최근에 일어났던 습격에도 장비를 착용하고 가는 중에 모든 상황이 끝났다.

‘반세주.’

TV에 나온 얼굴을 보고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자신의 훈련병이었던 남자.

현재는 중령이며.

비무장지대의 수호신.

일산의 올 킬.

가는 곳마다 파란을 일으키는 남자다.

훈련소에서도 마지막에 두각을 나타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대단한 사람이 될 줄이야.

좋은 일만 가득하다.

그런데 가슴이 불안하다.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처럼, 행운이 몰려오다 불행이 떨어질 것 같다.

‘아니야.’

고개를 저었다.

피해의식이다. 군에서 험난한 생활을 너무 많이 겪었다.

정신과 상담을 빼먹지 말아야겠다.

화장실을 나왔다.

동틀 녘이었다.

그가 있는 곳은 17층.

한강을 바라보는 고가의 아파트다.

베란다 창문으로 향했다.

평소에 보던 멋진 풍경 위로, 동이 터오는 멋진 햇빛 위로.

“…지랄 맞네.”

정말로 운수 좋은 날이 되어가고 있다.

점점이 떠오르는 비행체들이 보인다.

그는 본능적으로 적군임을 알았다.

아니, 누구라도 그리 생각할 것이다.

날아든 놈들이 곧 밑으로 향해 무차별 폭격을 가했다.

꽈광!

드드드드.

폭음이 울렸다.

“수진아!”

안방으로 달렸다.

“아아.”

큰 소리에 놀란 아내가 경기를 일으키며 깬다.

“일어나!”

“응?”

옆에서 눈을 비비며 깬 아이다.

“빨리!”

“오빠?”

어리둥절한 그녀다.

“이리 와!”

아이를 안고, 아내의 팔을 거세게 당겼다.

꽈광!

폭음이 다시 울렸다.

밖을 바라본다.

도시 방어 시스템이라고 했던가?

서울을 뒤덮은 반구형 형태의 패널이 보인다.

배리어가 놈들의 폭격을 막았다.

“가자.”

저 배리어가 얼마나 버틸까?

아, 그런 걱정은 할 필요도 없었다.

놈들은 그대로 강남 한복판으로 비행체를 몰고 내려오고 있었다.

그전에 온 놈들은 연기를 피웠다고 했나?

똑같은 일이 벌어지면 도망갈 길은?

주변 지리를 머리에 담는 중이다.

비행체 하나가 급격하게 가까워져 온다.

생각보다는 컸다.

타원형이었으며, 군의 전투 헬기보다 세 배는 컸다.

쿠구궁.

드드드드.

건물 전체가 떨렸다.

‘위에 착륙했나?’

그렇다면 더 급한 일이다.

“빨리!”

박민우는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달렸다.

딩동.

승강기가 열리자마자 안에 탔다.

아직 어리둥절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내와 아이부터 내려 보내자.

그다음 다른 사람들도 구하면 돼.

위이이잉.

텅!

내려가던 승강기가 갑자기 멈췄다.

“꺅.”

아내와 아이가 놀란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둘을 잡았다.

곧 불이 꺼졌다.

“아빠?”

“오빠?”

아내와 아이가 자신을 부른다.

“괜찮아.”

비상벨을 누르지만, 답이 없었다.

촤아악.

퉁.

쿵.

무슨 소리인지.

밖에서 소음이 들린다.

“후.”

호흡을 가다듬고 승강기 문틈에 손가락을 비집고 집어넣었다.

끼기기기긱.

“으으읍.”

그도 D를 먹은 이다.

이 정도는 한다.

끼기긱.

철이 맞물리는 듣기 싫은 소리가 울렸다.

곧 문이 양옆으로 열렸다.

“나가.”

다행이다.

중간쯤 걸렸으면 올라가기 힘들었을 텐데.

엘리베이터는 8층쯤 멈췄고.

바로 앞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아내와 아이가 나가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지이잉.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덜컹.

바로 앞문이 열린다.

“계단으로 가.”

둘을 내려 보내며 나온 이에게 대피하라고 말하려고 했다.

문이 열리며 보이는 물건에 박민우는 반사적으로 문을 걷어찼다.

꽝!

흰색의 총구다.

왜 색이 저따윈지 모르지만.

그 뒤에 따라온 손이 인간이 아님을 안 순간.

생각 따위는 소용없었다.

콰득.

발로 문을 때리고 양손을 힘껏 앞으로 민다.

버티자.

밑에 아내와 아이가 있다.

꾸그극.

그런데 점점 뒤로 밀린다.

안에서 미는 놈의 힘이 대단했다.

꺄아아악!

타이밍 좋게 울리는 비명.

박민우는 몸을 날렸다.

힘을 빼며 문이 밀리는 순간 그 힘을 이용해 벽으로 날아갔다.

쿵!

벽에 어깨가 부딪쳤지만 신음조차 없이, 계단 밑으로 몸을 던졌다.

두두둥!

그 뒤로 기묘한 소리가 들리고.

퍼버벅!

자신이 부딪쳤던 벽에 구멍이 생겼다.

‘총.’

생각도 잠시다.

“수진아! 지연아!”

밑으로 몸을 던지다시피 했다.

두두둥!

뒤에서 섬뜩한 소리가 계속 들렸다.

맨몸이다.

맞으면 죽는다.

더구나 밑.

“오, 오빠.”

밑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뛰어! 지연이 살려야지!”

다행이다.

적을 만난 게 아니다.

6층.

자주 보던 노부부다.

머리가 터져 죽어 있다.

아이는 놀라서 부들부들 떨고 있고.

아이 엄마는 그런 아이의 눈을 가리고 있다.

“가!”

둘을 다시 내려 보내고 위를 올려다봤다.

파바박.

놈이 아직도 뒤를 쫓고 있었다.

‘밑에서부터 훑고 올라온 거다.’

이미 전력이 꺼진 아파트는 어둡기 짝이 없지만.

동이 터오는 시각, 비상구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 덕택에 달리는 데 지장은 없었다.

‘시간을 끌어야 해.’

이대로 쫓기다가 끝날 순 없다.

박민우가 몸을 반전했다.

노부부 중, 할아버지가 들고 다니던 묵직한 지팡이가 보였다.

그걸 손에 움켜쥐고 6층 문을 방패삼아 뒤로 숨는다.

타다닥!

무섭게 쫓아온 놈이다.

흰색의 갑옷 같은 걸, 입고 있다.

문 뒤에서 단숨에 지팡이를 휘둘렀다.

뻑!

머리를 맞은 놈이 휘청하며 옆으로 고개를 꺾었다.

이마에 노란 선이 두 개 그어져 있다.

놈의 팔을 발로 걷어찼다.

탁!

손에 든 총이 옆으로 날아갔다.

박민우는 몸을 붙였다.

그대로 좌우로 놈의 머리를 후려쳤다.

쩍. 뻐버벅!

네 대까지 놈을 때렸을 때다.

턱.

휘두른 왼 주먹이 중간에 멈췄다.

어느새 놈의 손이 민우의 손목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머리를 박민우의 코에 들이받았다.

뻑!

“욱!”

순간 눈앞에 별이 번쩍였다.

그리고 놈이 주먹을 뻗는다.

힘이 무지막지한 놈이다.

고개를 숙였다.

간신히 피하고 나니 눈앞에 뭐가 빠르게 다가온다.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막자.

빠각!

“악!”

왼손가락 뼈가 부러졌다.

놈의 무릎이었다.

“이 새끼가.”

오른발로 놈의 오금을 찼다.

하지만 놈이 피한다.

딱!

박민우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빙글.

시야가 빙글 돈다.

‘정신을 잃으면 죽는다.’

턱을 맞아서 균형을 잃는 순간이다.

비틀거리며 뒤로 연신 물러났다.

털썩하고 주저앉자, 놈이 천천히 다가온다.

일어나지도 못하고 주저앉았지만.

‘도망갈 시간은 벌었겠지?’

아내와 아이는 살았을 거다.

그런데.

놈이 손가락을 들어 밖을 가리킨다.

무슨 짓이지?

이미 승기를 다 잡은 놈이다.

밖을 바라봤다.

깨진 베란단 창문이다.

놈과 똑같이 생긴 놈이다.

로프에 매달려 촤아아악, 하며 내려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놈이 한둘이 아니었다.

베란다 창밖을 통해 밑으로 내려가고 있다.

‘안 돼.’

아내와 아이가 밖에 있다.

“안 돼!”

밖으로 몸을 날리는데 놈이 달려와 옆구리를 찬다.

뿌각.

척추가 흔들렸다.

“웩!”

내장 어디에 구멍이 생긴 것 같다.

아니, 옆구리에 구멍이 뚫린 것 같다.

쿵!

몸이 붕 떠서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에 부서진 TV 액정 조각이 오른 팔뚝을 쿡하고 찔렀다.

그래도 앞으로 기어갔다.

아내와 아이가 저 밖에 있다.

가야 했다.

박민우가 지나간 자리로 피의 길이 생겨났다.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사라지려는 순간이었다.

놈이 척척하고 다가와 박민우의 앞을 막는다.

이놈이 누구인지, 무슨 목적인지도 모르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놈은 박민우를 놀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를 악문 박민우가 마지막 발악을 준비할 때.

촤아아악!

다시 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놈들이 더 내려오는 것인지.

자신을 막은 놈 뒤로 바깥이 보였다.

그리고.

땅! 퍽!

자신의 옆구리를 찬 놈의 머리가 날아가는 게 보였다.

“6층 클리어.”

박민우가 눈을 깜빡거리다 기어서 밖으로 향했다.

저 밑.

자신을 공격했던 흰색의 외계인이 전부 시체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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