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64화 (64/206)

#  64

64. 올 킬

‘왜?’

놈은 나서지 않는다.

처음에 보낸 건.

-사냥개지. 레이퍼는 놈에게 사냥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거야.

그래. 딱 그 정도다.

인류에겐 엄청난 위협이었지만, 놈에게는 기르는 짐승 정도다.

-흰둥이는 일종의 학습 프로그램이야.

‘프로그램?’

-인간을 보고 따라 하는 단순한 구조거든.

흰둥이 놈들이 인간을 닮은 이유다.

애초에 외계인에게 몸과 마음과 정조를 다 바친 비트레이어, 마상길 덕에 인간에 대한 것도 파악했을 거고.

-하얀눈 개조, 비트레이어 등. 놈이 노린 거 이쪽이었단 거야.

소년 홀로그램이 나타나 머리를 톡톡 두드린다.

인간의 습성을 노렸다?

레이퍼로 끝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냥개는 사냥감을 몰고, 죽이는 건 사냥꾼의 엽총이다.

놈의 엽총, 그게 지금 지구 전 세계에 꽂혔다.

기둥에서 쏟아지는 흰둥이들, 그게 놈의 탄환이다.

이 작은 땅덩이에만 세 개.

타국은?

결론은 여전히 같다.

그놈은 인류를 전부 죽이려 한다.

흰둥이 놈들은 대강 정리한 듯, 지도에 나타나는 수가 급감했다.

라페스타 거리로 들어선 참이다.

근데 이 자식은 왜 직접 내려오지 않는 걸까?

‘브로, 혹시 그 자식 겁먹은 거 아냐? 딱 보니까 아, 이 형한테 덤비면 나 죽는 거 아냐? 하고 쫀 거지.’

-네. 그러네요. 그럴 수도 있죠.

대답에 성의가 없다.

‘소울을 담아서 대답해줄래?’

-형은 토끼가 눈 뒤집고 덤비면 무서워? 우리 솔직해지자. 형 부족한 거야?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거야?

일부러 그러는 거야. 일부러.

모자란 거 아니야.

“그래. 그렇지.”

겁먹어서 내려오지 않는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 사이 다시 맵에 놈들이 나타난다.

이제는 드문드문 보이는 놈들이다.

“전방 부대 사격 준비.”

착착.

몇 번 해봤다고 이제 명령에 즉각 반응한다.

구슬을 던지고.

“발사.”

하품이 나올 것 같았다.

일산을 중심으로 벌써 하루.

흰둥이 놈들의 씨를 말린 그들은 놈들이 타고 온 기둥을 발견했다.

기둥 다섯 개.

다른 지역에 비하면 대규모 침공이다.

‘조사해.’

프로비던스를 보냈다.

“전부 제자리 대기, 주변 경계한다.”

아직도 어리둥절한 이들이다.

병사와 부사관, 장교가 섞인 기묘한 부대였다.

-여의도랑 같아, 별다른 건 없어.

세주가 프로비던스를 바라봤다.

‘너 저거 다섯 개 다 먹으면 막 레벨 업 하고 그러는 거 아니냐?’

-휴. 형. 제발. 내가 무슨 게임 캐릭터야? 새로운 시스템과 기술을 배운 것과 유사한 거야. 저건 이전 것과 같은 것들이니, 나에게 하등 도움이 안 돼.

안 되면 안 되는 거지, 말이 많다.

“그럼.”

싸움은 끝이다.

“모두 뒤로 돌아.”

착자자작.

여기저기서 끌어 모아 만든 짜깁기 부대인데, 무슨 손발이 이렇게 잘 맞는지.

방금까지 한 마음으로 화망을 구성한 이들이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모두 수고했다. 복귀.”

“…복귀 말입니까?”

너구리를 닮은 최한필 중위다.

“그럼? 여기서 살게? 배고파. 집에 가자.”

“진짜 갑니까?”

남주호 상사다.

이 자식들이, 상관 명령을 똥꼬로 듣는다.

“두 번 말하게 할래? 복귀!”

으르렁대자.

“네!”

그제야 기합이 들어간 모습이다.

그렇게 들어간 지 26시간.

급조된 6개 부대는 침공한 전력, 흰둥이 1400여 마리를 사살.

지휘관급 흰둥이 100여 마리를 사살했다.

*

알파, 베타, 발해 팀은 포기를 떠올려야 했다.

‘더 들어가는 건 무리다.’

길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사이키커가 없다면 불가능했다.

한 명을 밖에 놔두고 텔레파시로 서로 의식을 연결.

그 가느다란 끈을 통해 돌아온다.

그렇게 몇 번의 전투 끝에 살린 숫자가 1000명 안팎이다.

이렇게 큰 도시에서 고작 1000명.

외곽만 간신히 훑었다는 말이다.

막 연기 밖으로 나오며 욕설을 뱉는다.

“빌어먹을.”

눈이 단춧구멍만큼 작은 남자, 장광안이다.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대도시다.

그런데 그들이 구한 숫자는 너무 미약했다.

물론 제 발로 도망 나온 사람도 있다.

평일 낮이라서 거주하는 인구도 평소보단 적었겠지만.

“젠장.”

짜증이 치솟는다.

폭격까지 감행했다.

어쩔 수 없었다.

흰둥이 놈들이 연기 너머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놈들을 밖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전면은 어찌어찌 막아도 외곽으로 나가면 끝장이다.

연기 중심이 아니라, 최대한 사람이 없는 곳을 향해 공습이 떨어졌다.

그래도 결과는 처참하다.

“겨우 연기 따위에.”

저 블라인드 스모그만 없었다면, 양상은 변했으리라.

그때 뒤에서 그를 위로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낙심하진 마.”

베타 팀의 박태희다.

비무장지대에서 세주에게 베타 팀에 오길 권유했던 그녀다.

“소식 못 들었어?”

“무슨 소식 말입니까?”

“수호신 왔대.”

“반세주 말입니까?”

“응.”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장광안이 씁쓸하게 웃었다.

고작 혼자의 힘으로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적은 군대다.

아무리 그가 잘 싸우고, 일당백의 저격수라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저기, 전방 쪽 기자들 몰린 거 못 봤지? 생존자가 무지막지하게 쏟아진단다.”

“…네?”

“안에서 전부 구하고 있어.”

“혼자서 말입니까?”

“나온 생존자의 말을 듣자니, 안에서 부대 지휘한다고 하더라.”

“무슨 부대를 지휘한다는 겁니까?”

현재 군과 민간을 통합해서 최강이라 할 수 있는 전력은 전부 이곳에 있다.

“일반 특전사 들이라고 하던데.”

알파 팀은 D를 두 번 이상 복용한 최고의 부대다.

베타도 마찬가지.

거기에 이번에 전면에 드러난 발해는 어떤가?

사회 최고위층이 합심해서 만들어서 얄밉기 그지없지만.

실력만큼은 월등하다.

그런데 그 세 부대가 못한 걸, 일반 특전사를 데려가서 해?

“어딥니까?”

피로를 잊고 앞으로 달렸다.

정말이었다.

어떤 기자가 나오는 병사에게 마이크를 들이미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냥 쏘라고 해서 쏘고, 걸으라고 해서 걸었습니다.”

저 연기 속에서 교전한다고?

“살아 있는 적은 한 명도 못 봤습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광안이 혀를 내둘렀다.

그의 앞쪽 군 관계자한테 발해 팀 사람이 다가서는 게 보였다.

“그 반세주란 사람 나오면 좀 보자고 전해주쇼.”

발해 팀원 중 하나였다.

타격대장이라고 했던가?

“나 발해의 지고학이요.”

“무슨 용무로 말입니까?”

“우리 대장 중 하나가 살벌하게 깨졌다고 들어서.”

누가 깨져?

광안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뭐라도 해라.’

간절히 바랐다.

꿈이라도 좋으니, 희소식을 안고 그가 돌아오길 정말 간절히 바랐다.

*

척척 걸어서 연기 밖으로 나서는 병사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할 때.

밖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군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언제까지 통제할 수만은 없는 언론이다.

“공식 입장 발표할 테니, 뒤로 물러나십시오!”

몇몇이 나서서 막지만.

터지는 플래시까지 막을 순 없다.

팡!

카메라에서 터진 불빛 때문에 눈이 부셨다.

“안쪽 상황은 어떻습니까?!”

안쪽 상황?

최한필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들어가.”

대령이다.

이번 일산 침공에 참모진 중 하나였다.

칠흑 같은 밤인데도 사방을 밝힌 조명과 하늘을 나는 전투 헬기 덕에.

주변이 밝았다.

줄줄이 나오는 사람 사이다.

“몸은?”

“괜찮아.”

“좀 쉬어야 하는 거 아니냐?”

인준과 세주의 대화다.

나오는 그들에게 향하는 렌즈와 마이크, 언론의 관심이 꽂힌다.

“안쪽 상황…!”

군인들이 만든 바리케이드를 헤치며 앞으로 마이크를 들이미는 기자다.

그의 입을 틀어막는 우악스런 손길에도 그는 끝까지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적당히 좀 하십시오! 나중에 발표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를 막은 군인이 사납게 외친다.

세주가 눈을 깜빡이다 기자와 눈이 마주쳤다.

“안쪽 상황?”

그의 입이 열린 순간, 모든 기자의 카메라와 마이크가 몰렸다.

“그만, 들어간다.”

참모진 중 하나인 대령이 나섰다.

생존자를 철저하게 기자에게서 격리시키며 데려간다.

“엄청 궁금한가 보네.”

치용이 중얼거렸다.

어차피 여기까지 언론이 온 걸 보면 숨기는 것도 무리다.

무력으로 제압? 쌍팔년도 시절이 아니다.

그러는 순간, 난리가 날 거다.

촛불 시위가 아니라, 화염병 시위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뒤에서 쉬쉬하며 일어나는 일과.

눈앞에서 대놓고 억압하는 건 종류가 완전 다른 일이다.

기자의 바람과 달리 어떤 대답도 없이 그들이 돌아선다.

“제발, 안쪽 상황에 대해 한 마디만 해주십시오!”

아무도 돌아보는 이가 없었다.

척척.

그러다 한 명이 걷다 말고 오른손을 든다.

그리고 엄지를 치켜들고는.

“올 킬.”

그의 목소리는 꽤 컸다.

중령의 지위에 나름 반반한 얼굴의 군인이다.

아니, 지위에 비하면 너무 젊다.

-내가 살짝 증폭했어. 나 잘 했지?

‘오구오구.’

프로비던스를 향해 칭찬의 메시지를 날린다.

기자들의 시선이 모인 건 당연한 일이다.

증폭된 목소리는 모두의 귀에 꽂혔다.

지휘참모를 비롯한 기자들에게까지.

“반세주 중령.”

그들을 재촉하던 대령이 이를 갈며 그를 부른다.

“부르셨습니까?”

태연한 그가 다시 걸었다.

“무슨 짓인가?”

“무슨 일 있었습니까?”

오리발을 내민다.

“안에서 보지.”

기자들이 보고 있다.

그들의 눈을 피해 안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

“뭔 킬?”

“올 킬이라고 한 거 아냐?”

“다 죽였다고?”

“갑자기?”

아직도 연기가 자욱하게 낀 안쪽이다.

기자들이 보는 가운데 연기가 걷히기 시작했다.

“어? 연기 없어진다.”

“블라인드 스모그 사라진다! 전군 대기! 경계!”

“민간인은 뒤로 물러나십시오!”

겁을 집어먹은 몇이 뒤로 물러난다.

연기가 걷힌 곳.

적군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대기해도 별일이 없자, 기자들이 다시 앞으로 몰린다.

전투 헬기가 아직 허공을 날고 있다.

함부로 촬영용 드론도, 언론사의 헬기도 띄울 수 없는 게 안타깝다.

마지막 놈들의 기둥을 건드린 프로비던스다.

그게 블라인드 스모그를 전부 없앴다.

폭격과 놈들의 침공에.

크게 앓은 일산의 모습이 여과 없이 보였다.

“어? 사람이다!”

외곽 근처에서 숨어 있던 이들이다.

주춤하다가 그들이 살았다고 외치며 뛰어온다.

세주가 전부를 구할 순 없었다.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하다.

일일이 도보로 이동 중인 그들이었다.

그렇다고 지원 병력을 불러서 연기 속을 헤매고 다니라고 할 수도 없고.

방법은 간단했다.

다 죽이고, 연기를 없앤다.

그리고 현재가 그 결과다.

“저 안쪽!”

기자들이 고배율 카메라를 들이댄다.

살아남은 사람이 문제가 아니다.

흰둥이, 즉 적군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

처음 일직선으로 돌파하고 일산 도시 전체를 돈 세주가 한 짓들.

그게 도시 내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군이 대단하고 통제하려 해도.

“몰래 들어가자.”

저 큰 도시에 전부 봉쇄령을 내릴 순 없었다.

올 킬.

두 글자가 준 의미는 곧 TV에 나왔다.

*

“저거 세주 아냐?”

쉘터에서 TV를 보던 반세주의 아버지다.

배를 하나 예쁘게 깎아 가져 오던 어머니가 그 말에 아버지의 옆으로 온다.

아버지가 그 배를 한 조각 들어 입에 물었다.

“세주요?”

“아닌가?”

몸에 무슨 검은 갑옷 같은 걸 입고 있고, 카메라에 잡힌 얼굴은 흐릿하다.

그가 TV 안에서 입을 연다.

“올 킬.”

“아니겠지?”

“아니겠죠.”

침공에 인류는 당황했다.

피해도 있었다.

하지만 이겼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이겼습니다.”

아나운서는 흥분된 목소리로 소식을 전할 만했다.

죽은 이들을 위한 묵념보다, 승리의 기쁨이 먼저였다.

“일산 도시는 외계인의 침공이 있었습니다. 만 40시간, 시민들은 전부 공포에 질린 채 그 도시에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기자가 브라운관을 가득 채운다.

곧 마이크를 옆으로 밀자.

자막이 나온다.

생존자.

저 지옥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그냥 총소리가 들렸어요. 그리고  곰 같이 덩치가 큰 사람이 왔어요.”

“그가 뭐라고 하던가요?”

“나오라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했어요.”

“모른다고요?”

“네. 그를 따라가니 군인들이 보였고, 다친 군인들과 같이 걷다 보니, 바깥이었어요.”

“혹시 더 들은 건 없습니까?”

“아, 너구리하고 청둥오리요.”

“그게 무슨 뜻인가요?”

“잘 모르겠어요. 그냥 누군가 너구리, 청둥오리 하며 지시를 내렸어요. 그 사람 이름이….”

카메라가 다시 옆으로 돌았다.

다시 기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올 킬을 말한 그 군인은 현재 기밀 사항으로 군과 정부는 그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그의 계급입니다. 나올 당시 주변에서 들리는 말로 미루어 중령의 계급으로 알려졌습니다.”

침을 삼킨 기자가 다시 말을 잇는다.

“생존자들의 증언을 미루어 그는 ‘반’ 씨를 가졌다고 합니다. 외계인 침공에 모두가 힘을 쓰지 못할 때, 안으로 진입해 적을 제압한 ‘반’ 씨의 중령, 이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사람들이 부르짖는 영웅일까요?”

툭.

입에 문 배가 떨어졌다.

“아니겠지?”

반 씨가 흔하지는 않다.

자기 아들도 중령이다.

반 씨의 중령이다.

“아니긴요. 아들내미가 목숨 걸고 싸우고 있다는 소리네요.”

어쩐지 돈을 너무 잘 벌더라.

자신의 아들이 영웅이 되었다는 소식에도.

둘은 걱정이 먼저였다.

목숨 걸고 싸운다는 의미는, 언제든 죽을 수도 있단 뜻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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