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63. 쏘라고 해서 쐈다
“그때 상황을 말씀해주십시오!”
기자의 외침에 병사 하나가 몸을 멈췄다.
2차 침공 생존자다.
“쏘라고 해서 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기자의 마이크가 바짝 입 밑으로 다가왔다.
“쏘라고 하면 쏘고 걸으라고 하면 걸었습니다. 어느새 하루가 지났고 침공해 온 적을 모두 물리쳤다고 했습니다.”
“적은! 적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흰색의 갑주를 입은 괴물은 몇 마리나 본 겁니까?”
병사가 기자 쪽을 돌아보고 말했다.
“살아있는 건, 한 마리도 못 봤습니다.”
*
“자, 요령은 간단해. 노블 에너지를 청각에 집중해. 멍청하게 귓바퀴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청력을 높이는 거다. 귀 안쪽, 복잡하게 얽힌 관을 감싼다는 느낌이다.”
걸으면서 세주가 조곤조곤 말한다.
치용과 인준, 유진이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나 제일 먼저 성공하는 건 유진이다.
“이런 느낌이네요. 시끄럽네. 뒤에 병사들.”
“놔둬. 입이라도 털어야 긴장 풀린다.”
그다음은 치용.
백 번 설명해도 못 하는 걸 노블 에너지 ‘양도’로 한 번 그의 몸에 시행해주니 곧바로 한다.
인준도 곧 따라 했다.
시력 대신 청력이다.
애초에 초인 레벨 급의 셋이다.
금세 청력을 활용해 적을 파악하는 것도 해낸다.
“자, 너희는 타격대야. 민간인이 모인 장소에 무차별 사격을 가할 순 없으니까. 놈들을 끌어내는 역할이다.”
“저 뒤 놈들이 실수로 우리 몸에 총알을 박을 것 같은 뎁쇼?”
“박혀도 안 죽고,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말고.”
세주가 말하며 뒤를 향해 손짓하자.
최한필이 다가온다.
“애들 훈련 시간이 어떻게 돼? 화망 구성하는 거 보니까 꽤 한 것 같은데?”
“사격 훈련은 주에 8시간을 했으며 단체 화망을 구성하는 훈련은 주에 22시간을 훈련했습니다.”
개인 훈련보다 단체 훈련을 우선시했다.
훌륭하다.
군인이라면 모름지기 툭 튀어나온 송곳보다는 반듯한 벽돌이 돼야 하는 법이다.
명령한 대로 정확하게 움직이는 특전사 서른 명.
그리고 직접 가르친 부대원 셋.
‘이 정도면.’
충분하다.
“치용, 인준, 유진. 좌 전방 150m 앞. 1층 안경원 안쪽 사람들 숨어있다.”
파인딩 모드를 개방한 맵은 프로비던스의 능력에 의존하는 면이 크다.
그런데 그 프로비던스가 외계인 문물을 씹어 삼켜 업그레이드 됐다.
30시간의 타임 어택이 누워서 떡 먹기가 된 거다.
치지직.
무전이 통하지 않는다.
“대기.”
주먹을 들어 인원을 세운다.
연기 먹는 하마는 총 일곱 개.
그건 퇴각로를 위해 하나씩 뿌려 놨다.
곧 세 명이 돌아왔다.
“열일곱 명 구출했습니다. 부상자는 없습니다.”
“가자.”
다시 이동.
맵을 보며 세주가 입을 연다.
“전방 사수 앞으로.”
앞쪽으로 부대원이 나온다.
그 뒤에서 세주는 안티 배리어 구슬을 던진다.
퐁.
작은 소리와 함께다.
트트트.
놈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문제는 없다.
놈들은 이쪽을 못 본다.
흰둥이 시체 연구가 끝났다.
덕분에 안 사실.
놈들의 시력은 형편없다.
연기는 놈들에게 인위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준다.
연기라는 환경과 배리어라는 방어막이 없어진 순간.
전장의 판도는 넘어갔다.
“사격 실시.”
투다다다다다!
소총이 불을 뿜는다.
“전진.”
프로비던스가 에너지를 수거해오면.
‘전부 안티 배리어로.’
연기 먹는 하마는 기본 자재가 있어야 했다.
기본 구조는 동작 감지기에서 다른 매커니즘을 넣은 거다.
하지만 안티 배리어는 다르다.
에너지만 있으면 무한 생성 가능하다.
개당 3,000이라는 낮지 않은 수치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게 문제지만.
-에너지 수급 6,600.
무리마다 노란 선이 그어진 지휘관이 한 둘씩 껴 있다.
흰둥이 250, 노란 선 지휘관 1500.
여전히 에너지는 풍요롭다.
민간인을 구출할 때는 부대원 셋을 보낸다.
청력을 활용한 순간부터 그들은 일당백의 전사다.
소규모 부대도 셋이 처리한다.
일정 숫자 이상은 안티 배리어와 부대원의 사격이다.
“중령님.”
“말해.”
너구리가 다가왔다.
“가지고 온 탄환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탄환 아끼지 말고 쏘라고 했다.
덕분이다.
‘슬슬 만날 때가 됐는데.’
파인딩 모드의 맵은 색을 지정해서 쓴다.
현재 세주와 아군은 검은색.
민간인은 파랑.
적군은 빨강.
그리고 화기를 지닌 인간 무리는 노랑.
맵에 노랑 빛이 보였다.
“전진. 유진, 가서 합류하자고 전해.”
“아군이군요.”
유진이 그대로 연기 속으로 사라진다.
곧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왔다.
다친 이도 보였고,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은 사람도 보였다.
“나노킷으로 치료해줘.”
간단한 응급처치 후다.
이미 유진이 전부 설명한 덕이다.
아무도 현 상황에 묻거나 반항하는 이가 없었다.
사실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으니까.
“부상자 손.”
몇몇이 손을 든다.
나노킷으로는 응급처치만 했다.
“민간인 인솔해서 뒤로 보내. 인준, 길 안내해. 뒤쪽 연기 먹는 하마까지만 가면 알아서 가게끔 설명해주고.”
“네.”
다른 부대원이 보고 있다. 인준이 존댓말을 쓴다.
“흐흐.”
치용이 그걸 보고 웃었다.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주고는 인준이 부상병과 민간인을 데리고 뒤로 돌아선다.
“자, 남은 탄환 챙기고, 돌아가고 싶은 사람 지금 저 무리 따라가도 된다.”
“안 돌아가면 뭘 하는 겁니까?”
머리에 붕대를 감고서도 부상자 손들라고 하니까 버틴 놈이다.
“관등성명.”
“상사 남주호입니다.”
입술이 툭 튀어나오고 피부가 하얗다.
거기에 군복을 입고 있으니, 청둥오리가 생각난다.
잡생각을 지우고.
“우리의 목표는 하나다.”
새로 합류한 이들을 보며 세주가 말을 이었다.
“적군의 궤멸이다.”
따라올 사람만 따라와라.
세주는 몇 번이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전진이다.
그들은 자기도 모르게 세주의 뒤를 따랐다.
‘지금 뭘 한다고?’
남주호 상사도 걸음을 옮겼다.
눈앞에서 부하 둘과 상관을 잃었다.
복수, 하고 싶다.
하지만 힘에 부치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런데 지금 뭐라고?
궤멸?
그게 가능해?
*
부대가 하는 일은 단순했다.
걷다가 총을 쏘라고 하면 쐈다.
그 이상한 중령 곁에는 항상 셋이 붙어 있었다.
한 명이 사라지면 아군이 늘었고.
셋 모두가 사라지면 민간인이 늘었다.
부상자가 나타나면 민간인을 인솔하게 했다.
그들이 돌아가면 다시 똑같은 짓의 반복이다.
“우전방. 너구리 부대만.”
어느새 부대도 나눴다.
너구리 부대.
청둥오리 부대.
정면 부대.
후방 부대.
우측 부대.
좌측 부대.
총 여섯 개로 나눈 부대 운용이다.
네 부대는 각자 이름에 걸린 방향을 맡고 너구리와 청둥오리 부대는 그들을 지원하거나.
별도로 지시를 내렸다.
이들을 이끄는 중령은 간간이 구슬을 던지고 입만 열었다.
어떤 방식으로 부대 이름을 정한 건지는 모르지만, 놀라운 용병술이었다.
“정면 부대 장전.”
착착 몸에 밴 자세로 앞을 향하는 총구들.
“쏴.”
타다다다다당!
그렇게 한차례 화망을 형성하고.
연기를 뚫고 지나치면.
흰둥이 놈들의 시체가 있다.
“잘했다.”
그걸 보면 중령이 칭찬한다.
보이지도 않는 연기 너머, 귀신같이 적들을 파악한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훈련 시간 같다.
적과의 교전이 교전 같지 않다.
끊임없이 걸었고, 총을 쐈다.
‘일산이 이렇게 넓었나?’
‘우리 이미 일산 빠져나온 거 아냐?’
‘뱅뱅 도는 걸까?’
걷는 부대원들이 의문을 느낄 무렵이다.
세주가 모두를 멈춰 세운 뒤.
돌아가는 부상자에게 뭐라고 속닥였다.
그러자 부상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갔다.
“뭐라고 했어?”
가까이에 있던 후방부대원 중 하나다.
“폭격 중지하래. 이대로 쓸어버리고 나간다고.”
“뭘 쓸어?”
총을 많이 쏘긴 쐈다.
하지만 흰둥이 놈들은 시체 외에는 본 적도 없다.
그리고 계속 걷기만 했고.
그런데 뭘 한다고?
*
‘살고 싶다.’
군에 끌려와서 복무 3년.
‘시발.’
욕이 나온다.
소총을 들려고 움직이려다 비명을 지를 뻔했다.
왼손으로 입을 막았다.
오른팔이 부러졌다.
깜빡했다.
끅끅거리며 눈물을 참는다.
척척.
놈들의 걸음 소리다.
왼손으로 소총을 쥐어 보지만.
맞출 자신은 없었다.
수류탄이라도 남아 있으면 좋겠지만.
남는 것도 없다.
죽는 일밖에 없는 건가?
희망 따윈 없나?
애초에 이 연기에 들어온 게 잘못이다.
여긴 지옥이다.
어디선가 흰빛이 번쩍이면 아군이 터졌다.
총에 관통당한 것도 아니요, 수류탄이 터진 것도 아니다.
그냥 터진다.
펑하고 육편이 사방으로 흩날린다.
그걸 보고 맨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건 반은 미친놈이다.
‘아까 그 여자 괜찮을까?’
민간인을 봤었다.
아군과 떨어지고 나서다.
미친 듯이 달리는 여자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나섰다.
도망가라 외치고, 흰둥이 놈의 시선을 끌었다.
무릎이 까진 게 보였었다.
나이는 이십 대 초반 정도.
우습게도 이 상황에서 그 여자, 예쁘다고 생각했다.
죽기 전에 보면 한 번 더 보고 싶다.
잡생각이 들었다.
척척.
걸음 소리가 가까워진다.
그래. 차라리 이제 죽여라.
총을 쏘는 것도 포기다.
흰둥이 놈의 얼굴이다.
녹색 빛이 보인다.
놈도 그를 발견했고, 그도 흰둥이를 발견했다.
흰둥이 놈이 소총을 든다.
그리고 그를 겨눈다.
긴장이 되진 않았다.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지도 않았다.
그냥 죽는구나.
그런 생각뿐이었다.
우웅.
놈이 총구에 에너지를 모은다.
트트트트.
개새끼가 뭐라고 지껄인다.
알아들을 순 없다.
막 소총에 흰빛이 커질 때다.
붕.
놈의 위로 푸른빛이 번쩍였다.
레레!
놈이 몸을 비틀어 피했다.
누군지 몰라도 기가 막힌 기습인데 아쉽다.
“어디가.”
아쉬울 일은 없었다.
큰 칼을 든 남자였다.
슈걱!
그게 그대로 흰둥이 놈을 벤다.
쩍하고 쪼개진 놈을 일별하고 그가 다가왔다.
곰인가 사람인가.
키가 3m는 돼 보인다.
아니, 그건 앉아 있어서 올려다봐서 그렇다.
심리적인 위축이 그를 그렇게 보이게 했다.
“안 죽었지?”
“네?”
“너 죽었냐고.”
죽은 사람이 대답을 어떻게 하냐?
“살았습니다.”
“일어나 무기 챙기고 따라 와. 여기 새끼들은 뭐 이렇게 뿔뿔이 흩어져 있냐. 귀찮게.”
곰 인간이 툴툴댔다.
그리고 몇 번 몸을 날래게 움직이더니.
“살았냐?”
저 질문을 던지고.
사람을 모았다.
부대원이었다.
“야, 박하사!”
“시발, 살아있었냐?”
동기도 만났다.
부대 중앙에 갑자기 떨어진 놈들의 포탄 때문이다.
그 덕분에 산개했고.
다 죽은 줄 알았다.
“저 사람은?”
둘이 눈을 마주치고 묻는다.
그리고 둘 다 모르는 사람임을 눈으로 확인했다.
“중위던데?”
“나라에서 만든 비밀병기 같은 건가?”
“그러든 말든. 난 오늘부터 저 중위님 존경한다.”
생명의 은인이다.
“엄청 시크하더라.”
모인 인원 일곱.
그가 귀를 쫑긋하더니.
“가자.”
움직인다.
“중위님 감사합니다.”
뒤에서 누군가 그에게 말하자.
“하지 마. 낯 간지러.”
그가 답한다.
꽤 멋있다.
박하사도 그들의 동료도 그가 꽤 멋져 보였다.
“야, 떨어지지 마라. 또 찾으러 가기 귀찮다.”
다리를 다쳐서 절뚝거리는 이를 보더니 뒷덜미를 들고 간다.
그렇게 한곳으로 향하자.
아군이 잔뜩 모여 있었다.
“여기,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박하사가 물었다.
“몰라. 인마.”
치용은 정말 몰랐다.
생각하기도 귀찮았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세주가 시키는 일만 했을 뿐이다.
“야, 유진아. 일로 와. 여기 일곱 명.”
그가 누군가를 불렀다.
얼굴이 매끈한 남자다.
옆에 서 있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잘 생겼다.
“일곱? 많았네요?”
군인치고는 선이 너무 곱다.
“다 흩어져 있더라.”
“부상자는 민간인 데리고 복귀한다.”
“…어디로 복귀를 합니까?”
아는 것 하나 없는 그들이다.
“전부 다쳤네. 일곱 명 다 복귀해야겠다. 어디긴, 바깥이지.”
인솔하는 얼굴 하얀 장교를 따라 걸었다.
앞쪽으로 가서 몇 가지 사실을 묻고서야 이들이 지원 병력임을 알았다.
그렇게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뒤에서 여자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아저씨.”
올해 스물여섯의 박하사다.
아저씨라니, 아직 한참이다.
“맞죠?”
“…그럴 겁니다.”
자기도 모르게 말을 뱉는다.
무릎으로 눈을 돌렸다.
반쯤 찢어진 청바지 무릎이 다 까졌다.
심하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죽기 전에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스물여섯입니다. 아저씨 아니고.”
“노안이네요.”
말하고 여자가 웃는다.
도망가라고 미친 듯이 외쳤었다.
잘 도망쳤구나.
다행이다.
“우리 살았다는데 이제 집에 갈 수 있는 걸까요?”
울었던 흔적은 있지만, 지금은 당당한 얼굴이다.
강단이 좋구나.
“그렇답니다.”
박하사도 아는 게 없었다.
그 여자가 다가왔다.
“고맙습니다. 정말요. 고마워요.”
여자가 그를 안았다.
“제 할 일이었습니다.”
그는 군인이다.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일이 의무였다.
이 여자를 구하기 위해 나선 걸 후회하지 않아 다행이다.
박하사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