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62화 (62/206)

#  62

62. 그래, 이래야 프로비던스지

프로비던스를 맨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믿지 못하는 세주 덕에 그는 훈련병 한 명이 D의 부작용으로 죽을 걸 알려주고 이틀을 잠들었다.

놀라운 일이었고, 충격적인 일들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지금처럼 난감하지는 않았다.

‘브로?’

렌즈 빛이 서로 맞붙더니 줄다리기하듯 밀고 당기기를 반복했다.

그러기를 5분여.

“안 갑니까?”

치용의 물음에.

“잠시만, 생각할 게 있다.”

시간을 끌었다.

팟.

렌즈의 빛이 꺼졌다.

셋의 눈에야 아까랑 달라진 게 없겠지만.

“파지직 거리는 거, 이제 안 들리지 않냐?”

“아, 형도 들렸어요? 저도 어디서 고장 난 TV 소리 같은 게 들리던데.”

…날카로운 놈들. 은연중에 느끼긴 하나 보다.

그때까지도 프로비던스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공중에 우두커니 멈춰 있을 뿐이다.

‘브로?’

여러 번 그를 불렀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처음과는 다르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솔직히 말하자면 프로비던스 없는 반세주는 이제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문제가 생겼나?

그럴 가능성은 적었다.

애초에 정말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컸다면.

허락을 구하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았을 거다.

자신 있었으니까.

놈의 시스템에 접속한 거다.

‘이 새끼가.’

설마 농땡이 피우나?

렌즈에서 빛이 사라진 프로비던스의 모습이 낯설었다.

팟.

순간 렌즈에서 빛이 나온다.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쉴 뻔했다.

스아아아.

반짝.

-나가자. 여기 금방 무너질 거야.

‘응?’

-무너진다고. 나가자고.

드드드드드.

그 순간 기둥이 덜덜 떨린다.

“나가자.”

세주가 말하고 셋을 향해 돌아섰다.

“문이 안 열려.”

인준이 벽에 다가가 말했다.

금세라도 기둥이 무너질 것 같다.

모래성 안에라도 들어온 것 같다.

위에서 부스스하고 가루가 머리 위로 떨어진다.

-당겼으니까 밀어야지.

치용이 알아낸 수법이다.

다가가 문에 손가락을 박고 밀자.

훅하고 벽이 사라진다.

바깥의 풍경이 보였다.

“가자!”

넷이 곧 빠져나오자.

부스스스스.

쿠그그그긍.

기둥의 흔들림이 멈춘다.

1분, 2분, 3분.

시간이 흘러도 기둥은 그 자리에 그대로다.

‘…무너진다며?’

-응. 언젠가는.

이 새끼가 깨어나자마자 장난을 치네.

‘얻은 건 없냐? 혹시 저 기둥을 우리가 다시 탄다거나?’

그럼 역으로 놈의 집에 놀러 가서 폭탄을 예쁘게 포장해서 던져줘야지.

-불가. 중심이 되는 에너지와 시스템을 전부 내가 훔쳤어. 저건 이제 그냥 쇳덩이야.

뭐지? 뭘까?

말하는 프로비던스에게 여유가 넘친다.

스무 살 그 시절, 혼자서 여자친구와 1박 2일 여행하고 돌아온 친구에게서 나던 어른의 냄새다.

팟.

렌즈의 빛을 깜빡인 프로비던스다.

-이제 통신 될 텐데? 일산 지역 꽤 위험할 거야. 바로 출발하지?

‘그건 어떻게 알고?’

-말했잖아. 놈의 시스템을 훔쳤다고. 거기엔 저 자식에게 내장된 기억도 포함이야.

스윽.

프로비던스의 동체가 유진을 향하자마자.

치지지직.

무전이 울린다.

“통신보안 코드명 밀키.”

유진이 통신을 받는다.

들을 필요도 없다.

지원요청이었다.

당장 일산으로 달려오란다.

왕십리, 여의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규모의 습격이라는 소식과 함께다.

“가자.”

세주와 일행이 달린다. 바깥으로 나가니.

투다다다.

이미 헬기가 대기 중이다.

“어디 소속입니까?”

“25사, 반세주다.”

군복의 마크를 본 누군가 넷을 안내했다.

헬기에 타고 그대로 날아오른다.

‘브로.’

-말해.

‘그래서 얻은 게 뭐냐?

-일일이 설명하자면 길어.

이 자식이.

성격까지 변한 걸까? 전에 알던 프로비던스가 아닌.

진지하고 진중하고 상식적인, 그런 로봇으로?

‘또라이야.’

-이 와중에 무슨 헛소리야?

‘머저리야.’

-후. 형. 진지해질 시간이야.

투다다다.

헬기가 공중으로 떠오른다.

일산까지는 금방일 것이다.

‘미친 변태 또라이 로봇.’

-그만해. 지금 이럴 시간 아니라니까? 테크룸으로 가는 게 어때?

무슨 소리를 해도 이제 이전에 알던 프로비던스는 없다.

순간 울컥한 감정이 들어 마지막 한 마디를 건넸다.

‘치용보다 못한 놈.’

부르르르.

프로비던스의 동체가 떨린다.

-이 빌어먹을 새끼! 형이라고 취급해줬잖아! 자꾸 그 오랑우탄의 뇌만도 못한 놈하고 비교할래? 앙? 내가 엉? 테크룸으로 오라고 했지? 앙?

홀로그램 영상이 소년의 형상을 만들어 세주의 멱살을 잡는다.

흐뭇했다.

그래. 이래야 프로비던스지.

치용을 보고 눈을 찡긋해줬다.

“에?”

그런 세주를 보고 치용이 웃는다.

자식, 다 네 덕이다.

그리고 테크룸으로 향하기 직전이다.

그 사이 개별 통신을 들은 유진이다.

어쩌다 보니 유진이 통신병 역할을 겸하고 있다.

“일산에 폭격 떨어졌답니다.”

“무슨 폭격? 놈들이?”

세주가 묻자.

“아뇨. 아군입니다.”

“…그 안에 사람 없어?”

그럴 리가. 한 도시다.

이렇게 단시간에, 도시 내 인원 전부를 빼내는 건 불가능하다.

“아뇨. 구출을 위해 부대를 파견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 와중에 폭격이라고?

민간인을 포기한다는 거다.

도시 하나를 포기해서라도 적을 궤멸하겠다는 것.

그만큼 적의 병력이 위험하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일단 일산으로.”

말과 함께 눈을 감는다.

그리고 프로비던스를 불렀다.

‘테크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한다.

이제까지 그래왔고, 지금도 다를 건 없었다.

*

투다다다다.

헬기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도 프로펠러 소리가 들린다.

하늘을 보니 전투 헬기가 하늘을 덮었다.

매캐한 화약 냄새와 주변에 빽빽하게 포진한 포대들도 보인다.

“저쪽인 것 같은데요.”

유진이 앞장섰다.

오기 전, 세주에게 선택권이 주어졌다.

부대를 지휘해서 진입하겠느냐?

아니면 폭격 이후에 적군과의 싸움을 대비해 남겠는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지휘할 소대네요.”

현재 안으로 진입 한 부대 중 돌아온 부대는 셋.

발해, 알파, 베타 팀의 일부다.

돌아온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안은 연기로 만들어 진, 미로 같다고 보면 됩니다. 사이키커 없이 진입을 허락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도 세주는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도시 전체를 뒤엎는 연기다.

안쪽은 현재 지옥이나 다름없을 것이고.

“필승!”

부대원 앞에 선 남자.

호리호리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체구다.

몸에 군살은 없는데 독특하게 볼이 포동포동 한 편이다.

아니, 얼굴이 마치 타짜의 그를 닮았다.

-너구리.

그래. 너구리.

평소와 똑같은 상태로 돌아온 프로비던스를 보니 기껍기 짝이 없다.

“최한필 중위입니다.”

“소대장?”

“네. 현재 특수기동대로 명명된 부대 지휘를 명받았습니다.”

“이 시간 이후로 내 밑으로 들어온다.”

“네! 바로 들어갑니까?”

상기된 얼굴이다.

놈들과의 싸움을 기대하고 있는 걸까?

그를 외면하고 입을 연다.

“시간이 많지 않다. 간단히 브리핑하고 출발하겠다.”

서른 명의 부대원, 얼굴이 각양각색이다.

긴장한 이, 흥분한 이, 무표정한 놈까지.

“30시간 이후 다음 폭격이 떨어진다.”

“폭격 말입니까?”

최한필이 놀라서 물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자고?

“비무장지대 출신 없나?”

세주의 물음에.

“없습니다.”

최한필이 답한다.

어떻게 할까? 수호신이라는 이름 좀 써먹으려고 해도 아는 얼굴들이 아니라는 거다.

“살고 싶은 사람 일어나라.”

일어나는 사람이 없다.

“저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제군들의 목숨을 보장해줄 수 없다. 일어나서 뒤로 돌아설 자. 가라. 잡지 않는다. 탈영이 아니라 부상으로 제외해 주겠다.”

“말도 안 됩니다!”

최한필이 나섰다.

“중위.”

“네.”

“한 번만 내 말을 끊으면 저 곰 같은 새끼가 중위 목을 비틀 거야.”

“안녕.”

뒤에서 치용이 인사를 건넨다.

너구리가 침을 삼키고 물러났다.

“그래도 빠질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제 부대원은 전부 일륩니다.”

자신이 손수 훈련시킨 부대원인가?

자신감이 대단했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일어나는 이 하나 없다.

대신 한 명이 입을 연다.

“도망은 안 갑니다.”

“좋은 자세다.”

세주가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럼, 전군 전진.”

30시간 폭격을 앞두고 부대가 앞으로 나선다.

“30시간이면 충분하지.”

세주가 걸으며 중얼거린다.

그걸 들은 최한필이 뒤를 따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브리핑이라고 하고 작전 설명이 하나도 없다.

뭘 어쩌라는 거냐? 제대로 된 설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주는 답이 없었고.

대신 얼굴이 하얀 중위 하나가 옆에 붙는다.

“30시간 뒤 폭격이 떨어지면 저 안에 살아남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많지는 않을 겁니다.”

폭탄이 떨어지고 화염이 넘실거릴 거다.

전쟁을 경험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럼 그 전에 들어온 적을 다 죽이면?”

그게 안 돼서 폭격을 하는 거다.

연기 안쪽 놈들을 다 죽일 수 있으면 뭐 하러 사람을 희생해가며 폭격을 하겠는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유진이 앞으로 훅 치고 나간다.

어느새 세주는 연기 안으로 사라진 뒤다.

그를 따라 흰 얼굴의 중위도 사라지고.

뒤에서 누군가 어깨에 팔을 두른다.

곰 같은 덩치의 남자다.

“생각 같은 거 하지 마.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돼.”

그리고 훅 안으로 사라진다.

‘이 인원으로 적군을 몰살해?’

부대원 반세주 일행 포함 34명이다.

설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오만이냐.

사라진 치용을 보며.

생각을 접었다.

자원해서 진입하기로 했다.

죽든지 살든지.

최한필은 군인으로서 책무를 다하기로 했다.

슥.

연기 사이로 몸을 던진 그다.

그 뒤, 부대원들이 하나둘 연기 안으로 진입한다.

마지막에 발을 디디는 부대원 하나가 옆을 보고 중얼거렸다.

“우리 다 뒤지는 거 아니냐?”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아, 시발 오줌마려 뒤지겠네.”

동기가 그를 타박한다.

“너 비무장지대에 친구 있다고 하지 않았냐?”

“응. 그 새끼 편지로 뻥 겁나 치던데.”

“무슨 뻥?”

“무슨 수호신이 있다고 지랄 염병을 하더만.”

“그 자식 약 한 거 아냐? 왜 하늘에서 토르라고 떨어져서 망치 휘두른다고 하지?”

“약은 무슨, 그럴 새끼는 아닌데.”

토르라고 하니까 떠오르긴 했다.

“무슨 벼락 어쩌고저쩌고 하긴 하더라.”

“그 수호신 이름은 뭐래?”

“구세주라고 하던데?”

“아주 이름도 딱이네.”

둘은 말을 나누며 연기로 들어갔다.

말이라도 하니, 긴장감이 좀 덜 한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멈춰야 했다.

눈앞에 아까 부대를 맡은 중령이 보인다.

“나와.”

“네? 네!”

둘이 옆으로 비켜서자.

그들 뒤로 묵직한 주먹만 한 구슬을 던진다.

파슷.

구슬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쪼개진다.

그리고 그 안으로 주변 연기가 빨려 들어간다.

“어? 어?”

“놀랐냐?”

중령이 그 둘을 보고 피식 웃는다.

연기가 사라지자 시야가 트인다.

그 앞으로 부대원들이 앞으로 걷는 게 보인다.

“네. 놀랐습니다.”

한 명이 말하자 중령이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나도, 이거 쓸 만하네.”

그리고 돌아선다.

성큼성큼 걷는 그의 뒤를 따르는 둘이다.

중간 중간 그가 아까와 같은 구슬을 던지는 게 보였다.

“앞으로.”

소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놀란 둘이 조금 뒤처졌다.

부리나케 걸었다.

간간이 땅에 떨어진 구슬이 사방에서 연기를 빨아들인다.

헨젤과 그레텔이 땅에 떨어트렸던 과자 같이 걸어가는 동선에 떨어진 구슬이다.

“멍 때리지 말고 걸어!”

다시 소대장의 목소리다.

“네!”

둘이 앞으로 나갔다.

“야, 그 음. 아니다.”

“뭐?”

동기가 머뭇거리다 다시 입을 연다.

“혹시 구세주가 아니라, 반세주 아냐?”

“저 중령님?”

둘 다 군복에 박힌 그의 이름을 봤다.

반세주.

그가 비무장지대 출신인지 아닌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실전을 꽤 겪은 둘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죽을 것 같지 않았다.

앞으로 나가는 지휘자, 중령의 등이 이상하게 커 보였다.

긴장감이 풀어진 건 아니었다.

그냥 그럴 것 같았다.

저 중령과 함께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

‘잘했어.’

칭찬이 절로 나왔다.

프로비던스가 소년의 형상을 그린 후 코를 높이 든다.

그래. 콧대가 높아질 만하다.

‘그래. 잘했다니까, 연기 먹는 하마는 성공적이다.’

-무슨 하마?

‘이름 잘 지었지?’

-말을 말자.

여기서 따져봤자 절대 고집을 굽히지 않을 세주다.

‘다음.’

프로비던스에게 말하고 주먹을 든다.

그리고 왼손을 앞으로 편다.

“전군 대기.”

왼손 위로 프로비던스가 렌즈의 빛을 뿌린다.

인벤토리에서 꺼낸 건 작은 구슬이다.

겨우 눈깔사탕만한 크기다.

뒤에서 착착하고 부대원이 멈춘다.

“뭡니까요?”

치용이 다가왔다.

“기다려.”

세주가 쥔 구슬을 들고 연기 너머를 본다.

-스캐닝 완료. 맵에 업데이트한다.

맵에 놈들의 위치가 보인다.

프로비던스는 지금 당장 쓸 만한 것 세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 첫 번째.

연기 먹는 하마다.

효과는 보다시피 최고다.

주변 연기를 흡수해서 시야를 밝힌다.

현재 만든 건 딱 일곱 개.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두 번째.

연기 사이를 꿰뚫어보는 파인딩 모드, 맵 업데이트.

그리고 세 번째.

손에 든 구슬이다.

일명 안티 배리어. 배리어를 무력화시키는 기술이다.

“우측 전방.”

말과 함께 구슬을 던진다.

파삭.

구슬이 터지며 주변에 일정한 에너지 파장을 보낸다.

부대원 서른 명이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손가락 방향, 조준.”

최한필이 모두의 위치를 잡아준 뒤,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다.

“사격 실시.”

타다다다당! 곧 총성이 대기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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