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60. 우리 집에 왜 왔니
“넌 천재다.”
50대 중반의 교관이다.
외계인 침공 전에도 염동력자라고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리는 정도.
우스웠다.
발해의 이무영.
43세의 나이로 군 지원.
주식 투자 실패로 한강에 가느니 군에 투신하는 걸 택했다.
그게 그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행운이란 사치였다.
신은 장난을 좋아했다.
항상 피해자 역할을 하던 이무영은 수혜자가 된 지금에 만족했다.
맨 처음 훈련소에서 차출되었을 때는 오줌을 지릴 만큼 무서웠다.
지금은?
“미친 새끼.”
뭘 믿고 덤비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은 발해의 최고 엘리트.
교관은 툭하면 말했다.
“군대? 찌질이들만 가는 곳이다. 너희는 최고의 환경에서 최상의 훈련을 받고 있다. 믿어라. 너희가 최고다.”
그중에서도 단연코 낭중지추, 튀어나온 송곳이었다.
발해 3대장 중 하나.
발해 기동팀 대장.
국내 최고의 염동력자.
왼쪽 눈을 가린 안대를 풀었다.
‘멈춰라.’
보이지 않는 힘이 상대의 주먹을 잡아끈다.
실이 칭칭 감겨 놈의 몸을 감싼다.
꼼짝도 못 하게 한 뒤, 뺨이라도 때리며 설교나 해줄 셈이다.
“멍청한 놈, 발해의 이무… 꿱!”
뻑!
“뭐라는 거야?”
말하다 말고 얻어맞아서 혀를 깨문 그가 앞을 바라본다.
“너, 너!”
“뭐?”
염동력의 실을 다시 푼다.
묶었다 싶은 순간이다.
빡!
허벅지에 로우킥이 꽂힌다.
“악!”
아프다. 그냥 아픈 게 아니다.
정말 송곳 수십 개로 찌른 것 같다.
“우우우욱!”
절뚝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최고라는 말에 취해.
그 어떤 험난한 훈련도 소화해왔다.
그게 발해의 이무영! 국내 최고의 염동력자다!
“으아아아아아!”
기합을 내지르며 염력을 일으킨다.
전보다 배는 두꺼운 실.
자신에게만 보이는 털실이 세주의 몸을 칭칭 감는다.
“귀찮게 하네.”
화륵.
그리고 상대의 몸에 푸른 불꽃이 터지고.
퍽!
이번에는 배를 맞았다.
복근에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모았지만.
“우웨웨웨엑!”
아침에 먹은 것들이 그대로 넘어온다.
‘내가 최고라며?’
발해는 한국에 전무후무한 최고의 무력 집단이 된다며?
교관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금세 잊혀졌다.
어느새 날아온 주먹과 발에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
상대가 안대를 벗는 순간.
-사륜안이다.
프로비던스가 미친 드립을 쳤다.
안대를 벗은 그의 눈은 흰자위만 보였다.
검은 동공이 없는 눈동자가 세주를 본 순간.
염력이 몸을 칭칭 감는다.
끈적한 젤리가 몸에 붙는 것 같다.
놈이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보듯 세주를 본다.
그리고.
빡!
젤리에 갇혔다고 움직이지 못할 사람은 없다.
그냥 조금 불편할 뿐.
“너, 너!”
혀를 깨물어 피를 흘리며 잘도 말한다.
“뭐?”
로우킥 한 방.
다시 펀치, 킥.
중간에 염동력이 몸을 휘감지만.
조금 더 불편해질 뿐이다.
인준이 보였던 기예가 세주의 몸에서 터진다.
번 업.
전신에 푸른 불길이 타오른다.
-아니, 뭘 이렇게까지 해?
‘불편해.’
타오르는 노블 에너지가 염동력의 간섭을 차단하고.
주먹과 발을 신나게 휘두른다.
미친 기계새끼가 세주의 머릿속에 장단을 맞춘 음악을 튼다.
덕분에 아주 신명 나게 두드려 팼다.
꿈틀.
대장이 당하는 걸 본 발해 대원 셋이 몸을 날리려는 순간이다.
터덕.
그 앞을 막는 곰 같은 인간이다.
“내가 쏠 것 같냐? 안 쏠 것 같냐?”
김치용이 씩 웃으며 대사를 읊는다.
샷 건 총구를 앞으로 향한 그를 보고 발해 대원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아군끼리 이럴 필요는….”
말하며 염동력을 일으키자.
치용의 눈에 어느새 푸른빛이 번뜩인다.
“안 쏴!”
총구를 내리고 앞으로 성큼 다가오더니 손을 뻗는다.
그리고 말하던 이의 멱살을 잡는다.
“컥!”
“어디 어쭙잖은 짓 해봐라. 목을 꺾어버릴 테니까.”
입가를 올리고 웃으며 말하는 치용이다.
그리고 치용과 반대편.
유진이 빙긋 웃는다.
“죽이진 않을 테니, 안심하세요. 살려달라고 외치는 사람 무시하고 가니까. 저런 꼴 당하잖아요.”
인준은 조용히 몸을 추슬렀다.
왼팔은 나았지만, 노블 패스가 엉망이다.
‘아머를 입어도 오버피지컬은 무리.’
어깨 근육을 순간 팽창시키는 아머 전용 기술은 어렵다.
‘화력에 의지해야겠다.’
이대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그런 인준의 곁.
이강호가 조용히 입을 연다.
“인준아. 너 정말 군 생활은 괜찮은 거냐?”
“괜찮습니다.”
“군인 맞지? 깡패 아니지?”
한 놈은 전직 깡패, 한 놈은 전직 호스트바 선수다.
“네. 군인 맞습니다.”
“허허. 저쪽은?”
퍼버버버벅!
신명 난 가락으로 사람 패는 반세주다.
“부대 직속상관, 반세주 중령입니다.”
“그러냐?”
이강호는 말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인간인지 곰인지 구분도 안 가는 놈과 얼굴이 허여멀건 한 연예인 같은 놈.
거기에 사람을 저렇게도 팰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두드리는 남자 하나.
“허허.”
황당함에 탄식이 나왔다.
*
기절한 이무영을 놔두고.
“다음 책임자?”
목에 시퍼렇게 멍이 든 남자다.
“접니다.”
그는 기절한 자신의 대장을 바라봤다.
발해 3대장 중 하나.
염동력자 이무영.
그는 그를 보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개기지 말자.’
“오면서 민간인 봤어?”
손을 터는 세주를 보고 그가 답한다.
“중령님과 만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한 명도 본 적 없습니다.”
“구라치면.”
힐끗. 이무영을 본다.
“정말로 못 봤습니다. 오면서 본 건 적군의 시신과 이미 죽은 이들 뿐이었습니다.”
그가 세주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믿어달라고 용을 쓰네.
“후, 야. 너희가 개인 경호 업체인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사람답게 좀 살자. 응?”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들을 놔두고 돌아서자.
이강호가 보인다.
인준의 아버지란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소.”
편안하게 인사할 시간은 아니다.
“너희, 퇴각로는 확보했지?”
부대장 격인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민간인은 내보내고.
“안 나가는 겁니까?”
이강호가 묻는다.
인준은 다쳤고, 민간인 구출은 어느 정도 했다.
“안 나갑니다.”
세주가 답하고 중얼거렸다.
“그냥은 못 보내지.”
아직 할 일이 남았다.
*
발해 팀은 울며 겨자 먹기로 남은 민간인 전부를 찾아 구출하기로 했다.
나중에 윗선에 따지든 말든, 법보다 가까운 주먹이 바로 옆이다.
그리고 세주 일행은.
연기를 해치고 걸었다.
-완벽하게 연기를 없앨 순 없어도 방향 정도야.
‘그것도 못 하면 재활용 센터에 팔 기계만도 못한 거다.’
-치욕이다. 이런 모욕적인 언사라니.
그들이 향하는 곳.
놈들이 타고 온 우주선이다.
기둥 모양의 우주선이 꽂힌 곳은 여의도 공원.
방향을 잡아주는 프로비던스 덕분이었다.
어느 정도 걷자.
주변을 감싸는 운무가 점점 줄어들더니, 곧 깡그리 사라졌다.
세주가 손대신 주먹을 들었다.
놈들의 우주선은 땅에 박혀 있었고.
그 주변을 지키는 놈들이 보였다.
이마에 노란색 선이 그어진 놈도 보인다.
‘흰둥이 열에 지휘자 하나.’
연기 속을 헤매며 꽤 죽였는데.
아직도 남은 숫자가 많다.
‘왕십리에서 온 놈들보다 규모가 커.’
-그러네.
‘뭐, 할 말은 없냐? 분석 결과라든지?’
-뻔한 거 아냐?
‘그러니까 그 뻔한 결과를 읊으시라고. 일 안 하시냐고요. 폐기물 브로.
-말 좀 조심하지? 진짜 확 손 놓아 버린다?
‘그래. 그래. 형이 심했다. 자, 우리 브로 일할까?’
-뻔하지. 놈들은 이제 머리를 써, 인간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서 가장 윗대가리에게 타격을 주려고 한 거야.
‘그래서?’
-국회의사당. 타깃으로 좋잖아. 국회의원이 다 죽으면 나라가 잘 안 돌아갈 테니까.
외계인도 한국의 사정을 다 파악할 순 없었나 보다.
국회의원이 다 죽으면 나라꼴이 잘 돌아갈 수도 있다.
뭐, 당장 패닉은 어쩔 수 없지만.
“부대원 여러분.”
“왜?”
“네?”
“말씀하십쇼.”
인준, 유진, 치용 순이다.
“현 시간부로 우주선 타격한다. 혹시 쫄리는 사람 있으면 빠져.”
“흐흐흐.”
치용이 웃는다.
미친놈.
철컥.
인준이 자신의 기관총을 장전했다.
“쫄리는데, 빠지진 않을게요.”
유진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세주가 앞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저 새끼들 여기 왜 왔을까?”
당연히 셋은 답이 없다.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걸 보며 세주가 다시 입을 연다.
“작전명 ‘우리 집에 왜 왔니?’다. 목표는 적 우주선 괴멸 및 모든 흰둥이 소거다.”
“옛 썰.”
셋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
“어디?”
강대총이 되물었다.
“현재 여의도 지역에 출동했습니다.”
“왜?”
“자신의 부대원이 그곳에 있다고 합니다.”
허허.
강대총이 쓴웃음을 짓는다.
“수호신은 이제 우리 부대의 상징이다. 그런데 마음대로 여의도에 들어가도록 놔둬? 만약 거기서 그가 죽으면 어쩌려고?”
“시정하겠습니다.”
“일산에 낀 블라인드 스모그는?”
“연구팀에서 총력을 기울이지만 당장 가시적인 성과는 없습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강대총이다.
“초인 프로젝트 병력은?”
“이미 1개 소대가 일산에 진입했습니다.”
“통신은?”
“닿지 않습니다.”
일산은 다른 지역과 다르다.
그냥 눈만 막는 연기가 아니다.
모든 정보가 강대총에게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진짜 공격은 일산이라고.
여길 막아야 한다고.
“반세주 부대, 전부 복귀시켜. 거기 발해 팀 들어갔지?”
“네.”
“그쪽 시켜서 통신 넣어.”
“네.”
부관이 부리나케 나갔다가 금세 돌아왔다.
“뭐야?”
“발해 팀이 이미 특수지원대와 만났습니다.”
부관이 잠시 말을 멈춘다.
자신이 들은 얘기를 전하는 것에 머뭇거린다는 건.
정상적인 일이 아니라는 거다.
“괜찮다. 말해.”
“그리고 발해 3대장 중 하나를 묵사발 내놓고 사라졌답니다.”
“…뭐?”
아군끼리 왜 싸워?
강대총은 반세주를 떠올렸다.
그는 강력한 아군이자, 군의 상징이다.
거기에 사람 목숨을 구한 영웅이고.
“왜?”
“민간인을 외면하고 갔다고, 폭력을 가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군에 정식으로 항의하겠다고 합니다.”
항의는 무슨. 시발.
“멋대로 하라고 하고 그래서 반세주 데려오는 건?”
“현재 여의도 내 민간인 구출 중이라고 합니다. 다 안 구하고 가면 반세주 중령이 지구 끝까지 쫓아간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반세주는 어디 갔냐고!”
냉정함을 유지하던 강대총이 외쳤다.
부관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여의도에 침공한 우주선을 격퇴하러 간 것 같다고 합니다. 가기 전에 그냥은 못 보내지. 라고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알파와 베타에 연락 넣어서 전부 일산에 투입해.”
대규모 병력이 움직일 일이 아니다.
이제까지와는 달랐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국지전이다.
TV에서 연신 뉴스가 흘러나온다.
외계인 침공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다는 둥.
군은 어서 성명을 발표하라는 둥.
언론 통제도 끝이다.
‘일산부터 해결한다.’
“대장님!”
부관이 다시 들어온다.
“왜 또!”
“그, 여의도에서 반세주 부대원 모두 일산으로 향한다고 합니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일산 쪽 지휘관에게 연락 넣어!”
다행이다.
직감이 말했다.
일산은 위험하다고.
그런데, 방금까지 여의도에 있었다고 하지 않았나?
강대총이 나가려는 부관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의도는?”
*
시간이 많을까? 적을까?
여기 외에도 침공한 곳은 많을 거다.
규모는 전부 다르고.
그중에는 위험한 곳도 있겠지.
“작전 어떻게 가요?”
유진이 물었고, 세주는 결론을 내리고 답을 했다.
“미친 붉은 개미 속도와 대형으로 간다.”
인준이 보기 드물게 미소를 짓는다.
신났구나.
하긴 이제까지 무기 없이 당하기만 했을 테니.
“시작은 인준이가 해.”
연기가 없어져 가시거리가 확보됐다.
인준이 품에서 수류탄을 꺼냈다.
백린탄이다.
“치용이랑 유진이 왼쪽 측면으로 파고든다.”
“예에에.”
둘이 움직이고.
인준이 백린탄을 놈들 셋이 모인 곳에 던지기 직전.
벼락을 꺼내 겨눈다.
노란 선이 이마에 세로로 그어진 놈이 스코프에 잡힌다.
‘스파이럴.’
쌕!
백린탄이 날고.
세주가 방아쇠를 당겼다.
꽝!
소리를 숨길 필요가 없었다.
미친 붉은 개미.
은폐, 엄폐 없이 가장 빠르게 적을 몰살하는 포메이션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