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58화 (58/206)

#  58

58. 부자父子

“대형은 송곳. 속도는 병정개미.”

바닥에 내려선 세주의 말에 둘이 세주의 왼쪽과 오른쪽 뒤로 붙었다.

삼각형을 유지하며 셋이 앞으로 달리듯 걸었다.

발걸음 소리가 울렸지만.

천천히 사방을 살피는 건 포기다.

“꺄아아아악!”

“끄아아악!”

“좌, 전방.”

철컥.

벼락을 들어 앞을 보지만.

‘너 노냐?’

연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무조건 근접전을 할 수도 없다.

-놀긴 누가 놀아? 바쁘게 일하는 건 안 보여?

보이겠냐?

-연기가 스캐닝 모드를 막아. 아주 특이한 구조야. 파악하는 데 하루는 족히 걸려.

쓸모없는 기계, 꼭 필요한 순간에는 제 몫을 못 한다.

‘부족한 놈! 모자란 놈! 쓸모없는 놈! 모터 고장 난 세탁기 같은 놈!’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비난하시네.

“퍼트려.”

프로비던스를 외면하고 읊조리자.

뒤에서 대답대신 노블 에너지를 퍼트린다.

세주도 마찬가지다.

한 방 당한 수법에 대비도 없이 왔을까?

노블 에너지가 셋을 중심으로 동심원처럼 퍼진다.

“던져.”

사아악.

그와 함께 동작감지기를 던지고 귀에 무전기를 찬다.

지금 셋이 던진 건 소리로 상대를 감지하는 도구다.

삐이이이이익.

음파를 퍼트려 가로막는 곳이 있으면, 그쪽을 향해 신호음을 울린다.

삐비빅.

물론 훈련 없이 쓸 엄두도 못 내는 거고.

왼쪽 귀에 들리는 소리를 따라 셋이 달렸다.

“적군 셋.”

“민간인 둘.”

가시거리는 약 1m 내외다.

“치용.”

“갑니다.”

뒤에서 치용이 달려 나왔다.

등에 커다란 칼을 매달고 있다.

넓고 두꺼운 칼날이다.

그걸 매달고도 치용은 빨랐다.

전신에 푸른빛을 두르고 단숨에 적군을 향해 달린다.

‘일반병 셋.’

이미 경험한 사실로, 놈들에게 지휘관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아무 무늬도 없는 이 흰둥이들은 능력도, 신체 능력도 볼품없다는 것도.

앞으로 치달리던 치용이 갑자기 사라졌다.

아니, 갑자기 몸을 숙여 태클하듯 달렸다.

안개 너머로 훅 사라지는 치용이다.

그 사이 세주가 벼락을 들었다.

안개 너머다.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치용이 사라진 방향을 가늠하고.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스파이럴, 아니 커버링 탄환도 아니다.

꽝!

무식하기 짝이 없는 폭음이다.

벼락이라 이름 붙여 준 총의 총성이다.

퍽!

폭음과 동시에 안개 너머에서 들리는 소음.

-배리어 파괴, 가슴부터 목 위까지 소멸. 적 1기 제거.

렌즈의 푸른빛을 있는 힘껏 뿜어 적을 확인한 프로비던스의 말이다.

‘약해.’

배리어도 볼품없고, 힘도 없다.

가진 거라고는 에너지를 탄환으로 쓰는 총뿐이다.

레이퍼보다 5배는 까다롭지만.

무력으로만 따지자면 레이퍼가 더 위협적이다.

-대신 놈들은 머리를 써. 거기에 인간 사회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기도 하고.

놈들이 곧바로 여기저기 무차별 습격을 한 것만으로도 그건 알겠다.

“한 놈!”

치용이 앞에서 외쳤다.

승.

칼이 뽑히는 소리와 함께.

서걱.

섬뜩한 칼질 소리가 들린다.

“꺄아아아악!”

자지러지는 비명이 그 틈에 터졌다.

“민간인 확보해.”

유진이 앞으로 달렸다.

“괜찮습니다. 안전해요.”

둘을 다독여 빠져나오고.

“둘!”

그 사이 치용이 외침이 다시 들린다.

파가가각!

이번에 더 거친 소리다.

연기를 뚫고 앞으로 나가자.

한 놈은 목이 잘렸고, 한 놈은 밑에서 위로 가랑이부터 잘린 게 보인다.

“칼날 상해.”

“으럇. 멀쩡합니다. 다음 갑시다.”

뇌가 없는 우리 치용이.

아무 생각 없이 승리를 만끽한다.

“기뻐하긴 일러.”

“싸가지 이 새끼 어디 있는지 찾는 겁니까?”

“찾아야지.”

덜덜 떠는 민간인 둘을 데리고 셋이 가까운 건물로 향했다.

-건물 안에 생체 반응 없지만. 이 연기 때문에 확신 못 함.

쓸모없는 기계 새끼가 부정확한 정보를 전한다.

“건물 소거해. 아래서부터 위로 훑어.”

기계가 못하면 일일이 사람이 고생하는 수밖에.

“넵.”

유진과 치용을 위로 올려 보내고.

덜덜 떠는 여자 둘을 봤다.

뭐라고 중얼거리는 게 보였다.

“이제 괜, 괜찮죠?”

떨면서 말한다.

찢어지고 피가 묻은 옷이지만, 꽤 고급스럽게 보인다.

“괜찮습니다.”

대강 답하고 밖을 바라봤다.

여전히 답답하다.

보이지 않으니, 벼락을 함부로 내갈길 수도 없다.

퉁! 꽝!

그사이에도 폭음이 들린다.

여의도 한복판이다.

이 위로 미사일을 떨굴 순 없다.

‘아니, 이 지역을 포기하고 소거한다면.’

가능하지만.

국회의사당에 증권가에.

포기하지 않을 이유는 많다.

거기에 포기한다 해도 바로는 아니다.

시간은 있어.

그 사이 민간인을 구하고 인준도 구하면 된다.

“이상 없습니다.”

위에서 내려오며 유진과 치용이 말한다.

“이곳에 계시면 곧 다른 사람들이 올 겁니다.”

“저희만 두고 간다고요?”

꺄아아악!

타이밍 좋게 들리는 비명이다.

“네. 두고 갑니다.”

그럼 둘을 지키고 밖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을 두고 보랴?

최소한의 안전은 이미 확보한 상태다.

거기에 PBB(Private Barrier Ball)도 두 개 줬다.

개당 30분, 최소 1시간은 버틸 수 있다.

“가자.”

세주는 망설임 없이 연기 속으로 몸을 던졌다.

물론 그 뒤를 따르는 둘도 마찬가지였다.

*

인준은 달리다 말고 멈췄다.

아니, 멈춰야 했다.

“웁.”

허리춤에 붙들린 아버지가 헛구역질을 한다.

길가에 우두커니 선 테이크아웃 커피점이 보였다.

작은, 반 평정도 되는 노점이다.

그걸 끼고 앉았다.

뒤를 돌아봤지만, 가시거리가 형편없다.

‘보이는 게 없어.’

“무슨 일이냐?”

숨을 가다듬고 아버지가 물었다.

볼에 묻은 피를 닦으며.

“침공입니다.”

대답하고 주변을 살폈다.

주변이 너무 트였다.

최소한 몸을 숨길 곳이 필요했다.

“그럼 아군이 올 때까지 버티면 되는 거냐?”

말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굳은 표정의 아버지가 보인다.

“살아남는 쪽으로 움직일 겁니다.”

아버지가 무릎에 손을 대고 일어났다.

“그럼 어서 가자. 끙.”

아버지가 신음을 흘린다.

올해로 쉰여덟.

뛰는 것도, 붙들려 실린 채 움직이는 것도 편할 리 없다.

‘휴식은 필수야.’

잠시라도 숨을 돌리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움직입니다.”

아버지가 등 뒤로 바짝 따라붙는다.

‘안전하게.’

사이가 좋다고 할 수 없는 부자지간이지만.

‘일단 아버지부터.’

커버링이 있으니까 자신은 버틸 수 있다.

움직이다가 레스토랑 간판을 발견했다.

문이 반쯤 부서져 있었다.

“여기로.”

안으로 들어가니 안쪽에 연기가 드문드문 들어와 구름처럼 허공에 기묘한 모양을 만들었다.

“잠깐 휴식 취하겠습니다.”

딱딱한 아들의 말에 아버지가 한쪽에 자리를 잡는다.

바bar로 보이는 곳 뒤다.

등을 기대고 앉은 인준의 아버지다.

인준은 밖을 살피다가 고개를 저었다.

‘보이는 게 없어.’

정찰도 관측도 다 불가능하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거냐?”

아버지가 물었다.

“일단 대기합니다.”

“대기한다면 무슨 수가 있는 거냐? 차라리 움직이는 게….”

“다쳤습니까?”

자세히 살피지 않았다.

여기까지 올 때도 인준을 따라올 만큼 빨리 걸은 아버지다.

지금 보니 바지 무릎이 크게 찢어져 있고 피가 보인다.

“괜찮다.”

‘연기에 독성은 없겠지?’

감염되는 종류는 아니길 바랐다.

“제가 안 괜찮습니다.”

찌이익.

옷을 찢어 길게 잡고 다리를 칭칭 감았다.

“걱정해주는 거냐?”

“당연한 일입니다.”

세주가 봤다면.

‘프로비던스보다 더 기계 같은 인간들일세.’

라고 혀를 찰 만큼 무덤덤한 둘이다.

아아악!

붕대를 다 맬 때쯤 비명이 둘의 귀를 파고들었다.

‘나갈 수 없다.’

지금 나가면 인준도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아버지는?

“후.”

잠시 흠칫하고 놀라더니, 아버지는 그대로 머리를 뒤로 기댔다.

꽤 오랜만에 본 얼굴이다.

1년이 넘었다.

머릿속에 남은 아버지보다 훨씬 늙었다.

자신이 농담을 즐겼다면.

우리 아버지는 어디가고 주름살 늘은 아저씨가 왔냐고 말을 건네겠지만.

애초에 아버지도 자신도 살면서 농담을 한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다.

잠시 폭음과 비명을 배경삼아 시간을 보냈다.

‘아군 지원을 기대해야 하나?’

아니면 연기 밖으로 나가야 할까?

어느새 비명과 폭음도 서서히 멎어갔다.

“군 생활은 할 만한 거냐?”

“…네?”

잠시 대답이 늦었다.

“군 생활 괜찮으냐고 물었다.”

아까는 자신이 알던 아버지는 어디 갔냐고 농담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묻고 싶었다.

혹시 외계인이 변한 거 아니냐고.

“왜 답이 없는 거냐?”

“괜찮습니다.”

“더 자세하게 얘기해 봐라.”

‘제 군 생활을요? 아니면 제가 떠난 이유를요?’

어린 나이에 교수가 된 인준은 아버지의 꼭두각시였다.

아버지가 원하는 일만 했고, 그가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았다.

공부하라기에 공부를 하고.

착실히 살아가라기에 그리 했다.

그리고 한 여자를 만났고.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반항했다.

“안 됩니까?”

“안 된다.”

“정말 안 됩니까?”

“정말 안 된다.”

두 번 물었고, 같은 답을 두 번 들었다.

집을 나왔다.

나이가 서른이 넘었지만, 그건 출가가 아닌 가출이었다.

아버지의 지시 없이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인준은 자신의 말투가 아버지와 똑 닮았다는 걸 깨달았고.

아버지가 죽어도 허락하지 않는 여자와 살았다.

아버지는 인준을 포기하지 않았다.

음악을 한다고 집을 나간 큰 형.

미국에서 그림을 그리는 작은 형.

그는 아버지의 세 번째 아들이었으나, 아버지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돌아와라. 이 정도면 충분해.”

고작 6개월.

잡혀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 발로 돌아갔다.

인준은 현실을 봐버렸다.

결국,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도 알았다.

아버지의 그늘 없이 사는 세상은 생각보다 무서웠다.

자신이 할 줄 아는 일이 펜대 굴리는 것뿐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고.

여자가 버는 돈으로 사는 기둥서방이었다.

집을 나설 때였다.

“전 괜찮아요.”

여자가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

아버지가 돈을 쥐어 줬지만, 거절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일어난 사고.

아니, 필연적인 사고이던가?

그 여자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걸 업으로 삼았고.

다친 사람을 치료하는 직업을 가졌다.

간호 봉사를 나간 길이었다고 들었다.

죽었다. 그 여자가.

자신이 배신했던 여자가.

꿋꿋이 살아오던 그녀였지만 사고 한 번에 목숨을 잃었다.

아무도 모르게 군에 지원했고.

그대로 집을 다시 나왔다.

이번에는 가출이 아니었다.

다시는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외계인 놈들과 싸우다 죽거나, 아니.

확실히 죽을 생각이었다.

그는 겁이 나지 않았다.

싸우다 죽고 싶었다.

그녀를 위해.

“날 원망하는 거냐?”

아버지의 물음에 자책감이 묻어나왔다.

감정표현이 적은 부자이자, 누구보다 닮은 둘이기에 인준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잘못인가?

아니다.

그게 아니다.

그런데 왜 아버지는 자신의 앞에서 용서를 구하려 하시는가.

“차라리 이 아비를 원망해라. 네 잘못은 조금도 없다. 다 내 탓이다. 내가 너희 둘을 보고 놔둘 수 없었다. 그래. 인준아. 내 아들아.”

가슴에서 뜨거운 게 치솟았다.

그게 왜 아버지 잘못입니까?

냉정한 머리는 알고 있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는 운이 없었다.

그리고 잘못은 다 자신이 했다.

돌아가지 않을 수 있었지만.

돌아갔다.

자신이 잡고 매달렸으나, 그녀를 버렸다.

그리고 그 자책감을 못 이겨 부모 가슴에 못을 박았다.

말없이 군에 지원하고 그대로 집에서 사라졌다.

후일 어머니가 펑펑 울며 찾아왔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말했다.

“인준아. 아버지가, 아버지가 많이 힘들어하신다.”

누가? 그 아버지가?

강철심장 이강호가?

판사를 지나서 거대 로펌의 수장까지.

그게 아버지의 별명이었다.

“다 이 아비의 잘못이다. 용서해라.”

왜 아버지가 잘못을 비십니까?

“아니….”

입을 열려는 순간.

꽝!

폭음이 터졌다.

아버지를 감쌌다.

커버링 풀 업으로 몸에 푸른빛을 두르고.

뒤를 힐끔 봤다.

벽을 박살내며 흰 아머를 입은 놈들 다섯이었다.

“아버지!”

그를 안고 일어났다.

재수가 없었다.

그때도 지금도.

벽이 부서지며 튕긴 돌조각이 아버지 허벅지에 박혔다.

“가라. 도망 가!”

아버지가 외쳤다.

“가만히 계세요.”

그의 앞을 가로 막는다.

“아버지.”

후우 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사실 아버지의 잘못은 없다.

안다.

다 자신이 한 일이다.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인준이는 뭐하고 싶니?”

“선생님요.”

어릴 때 아버지와 나눈 대화다.

꼭두각시라니.

자신의 꿈이자 소원이 그거였다.

선생, 교수.

그 이후 아버지가 호되게 자신을 내몬 것에 아버지의 기대가 없다 할 수 없지만.

‘그 또한 내 선택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녀를 떠날 때 만약 자신이 더 고집을 부렸다면.

아버지가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형 둘도 고집을 부려 떠났으니까.

‘잡생각은 나중에.’

지금은.

‘싸우자.’

포기하면 죽는다.

삶의 의지가 솟구친다.

동시에 인준의 몸에 노블 에너지가 불꽃처럼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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