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57. 미친놈이구나
앞으로 달리는 세주의 전신에 푸른빛이 어린다.
그의 손이 허리춤을 훑고.
꽝! 꽝! 꽝!
놈들이 쏜 에너지 탄환이 세주가 있던 자리를 때리며 폭음이 터졌다.
허리춤에서 꺼낸 것, 미용실에서 가져온 가위다.
차락! 푹! 스걱!
차캉차캉!
가장 왼쪽 놈의 목을 긋고, 가운데 놈에 박는다.
그리고 가장 오른쪽 놈의 얼굴을 세로로 쪼갰다.
그 후 허공에 가위질하니, 날이 상해서 더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슉!
그대로 가위를 지휘관 놈에게 던진다.
팅!
놈이 자신의 소총으로 가위를 막는다.
소리가 마치 벽 너머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방음벽을 뚫고 간신히 뚫고 나오는 것 같은 소리지만.
아주 선명하게 귀에 꽂힌다.
마치 스나이퍼 모드에서 집중 상태에 들어간 것 같다.
다음 놈을 향해 발을 떼자마자.
쌔앙!
귀에 이상한 바람 소리가 들리고.
훅.
어느새 놈이 손에 닿을 거리다.
이번에는 식칼이다.
서걱!
목을 벤 칼날이다.
머리가 허공을 날고, 녹색 핏물이 뿜어진다.
탕!
바닥을 박차는 발소리가 탄환과 같다.
일격을 버텨내는 놈이 없다.
초식동물 사이로 떨어진 호랑이다.
사방을 찢어발기며 놈들을 살육한다.
일방적이었다.
가슴에 뜨거운 것이 치고 올라온다.
올라오며 봤던 시신이 떠올랐다.
가지고 온 식칼과 가위를 다 썼다.
하지만 아직 상대는 남았다.
바닥을 박차며 땅에 떨어진 물건을 위로 차올린다.
퉁.
손에 잡힌 것, 스테인리스로 만든 포크다.
그걸 쥐고 다시 내달린다.
지휘관을 향해서였다.
트트트!
뭐라고 지껄이는지 모르겠다만.
이 새끼야, 남의 행성 침공할 때는 그 행성 언어는 배워오는 게 예의 아니냐?
한국 와서 일본말로 길 물어볼 새끼네.
퍽!
노란 선이 세로로 그어진 이마를 향해 포크를 꽂았다.
파지지직.
에너지가 방전되며 놈이 뒤로 쓰러진다.
쿵.
동시에 모드를 풀었다.
“쿨럭!”
기침이 나왔다.
아니,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눈앞이 깜깜해지고.
“웩!”
비릿한 게 가슴을 치고 올라와 입 밖으로 나왔다.
동시에 세주도 무릎을 꿇었다.
‘왜 이렇게 아프냐?’
-당연한 말을 하네. 억지로 열어서 쓴 모드야. 이 정도 반발은 예상해야지.
“후우후우.”
숨을 내쉴 때마다 코를 찌르는 비린내가 역겹다.
눈을 감았다가 떴다.
시야가 회복된다.
세주는 몸을 일으켰다.
가슴은 빠개질 것 같고 몸에 힘은 없지만 금세 괜찮아진다.
프리스트 모드 레어, 레스큐 액트 모드 덕분이다.
자체치유력 향상,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그냥 다쳐도 잘 낫는다 정도지만.
이런 상황에서라면 절대적인 큰 효력을 보여준다.
호흡 몇 번에 전보다 훨씬 몸을 움직이기 편하다.
-주변 적군 없음. 있어도 또 유니크 모드 여는 순간 형이 먼저 죽겠어.
‘걱정하는 거냐?’
-아니, 팩트를 얘기해주는 거야. 또 열면 죽어.
‘겁주지 마.’
무서워서 어디 싸우겠냐?
프로비던스의 말대로 두 번 연속 쓰기에는 몸에 부담이 많이 간다.
그래도 결과를 보자니, 왜 유니크 모드인지 알겠다.
겨우 식칼과 가위, 포크 따위로 만든 결과다.
적군 25마리 격살.
부엌칼과 미용실 가위라니.
그건 지금 무기 축에도 못 낀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총기도 그리고 특별하게 제조한 무기도 없이.
혼자서 25마리의 외계 군대를 제압했다.
“저희 살았나요?”
200명 중 하나다.
“네. 전부 무사합니다.”
“아.”
한 여자가 뒤로 다리가 풀렸는지 주저앉았다.
칭찬한다.
오줌을 쌌다 해도 그러려니 했을 상황이다.
“이게 뭔가요?”
50대 중년인이다.
그가 묻지만, 답해줄 말이 궁했다.
“외계인 침공입니다.”
“왜요?”
10대 소년의 물음이다.
왜라니.
‘나도 궁금하다.’
말을 아꼈다.
아는 게 없었다. 침공하니까 싸운다.
나중에 놈들 중, 대장이 와서 덤비면.
반 죽여 놓고 물어볼 작정이다.
이 개자식아, 왜 하필 여길 쳐들어와서 지랄이냐고.
“몰라.”
세주가 말하자.
“왜 몰라요?”
호기심 더럽게 많은 자식이다.
-거참, 말 안 듣게 생긴 놈이네.
옳은 말이다.
좋게 말하면 개구쟁이, 나쁘게 말하면 문제아처럼 생겼다.
-어릴 땐 형이 딱 저랬겠지?
‘얌마, 비교할 걸 비교해. 난 학교 다닐 때 킹카였어. 새끼야.’
-풉.
차라리 욕을 하면 좋겠다.
이 미친 기계 새끼가 비웃을 때마다 이성이 끊어질 것 같다.
“동수야?”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던 여자다.
“동수야! 동수야! 혹시 동수 못 봤어요?”
누굴까.
평일 낮이라 영화관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할 수 있는 한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그 외에 부서진 외벽 바깥으로 뛰어내린 사람도 있었고.
자력으로 탈출한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죽은 이들도 있다.
전부를 구할 순 없다.
-형은 슈퍼맨이 아냐.
안다. 아는데.
왜 이렇게 짜증이 날까.
“아저씨. 동수 못 봤어요?”
그녀가 물었다.
친구일까? 연인일까? 아니면 가족?
차마 누구인지 물을 수 없었다.
꽝!
뒤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훅하고 폭음과 불길이 치솟았다.
가스 폭발이었다.
용케 아직까지 버텼다.
쿠르르.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무너지겠어.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동수는요?”
-사실대로 말해주면 더 상처받을 것 같은데.
알아. 그래서 입이 열리지 않는다.
“…대피하세요. 위험합니다.”
꽝!
다시 일어나는 폭발.
“아악! 도망갑시다! 빨리요!”
“으아아앙!”
아이의 울음소리와 도주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자는 후들거리는 다리 덕에 땅을 손으로 짚었다.
몸을 떨면서도 용케 몸을 일으킨다.
휘청거리는 그녀를 부축하고 입을 열었다.
“동수가 누굽니까?”
“동생요. 보면 꼭 구해주세요.”
“…그러겠습니다.”
밖으로 그녀를 내보냈다.
정말 왜 이렇게 짜증이 날까.
-형, 말했잖아.
안다고 이 개 같은 기계 새끼야.
‘난 슈퍼맨이 아니다.’
하지만 슈퍼맨이 되고 싶다.
어릴 때 했던 그 철없던 생각이 머리를 흔들었다.
뒤늦게 온 군대가 상황을 정리했다.
나라에서 연구팀을 파견 해, 침공한 우주선으로 향했다.
마치 동그란 기둥처럼 생긴 걸 회수해가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이들이 보인다.
평소라면 사람으로 붐볐던 번화가에 펜스가 생겨 사람들 출입을 통제했다.
“대위 박강식입니다.”
수습을 위해 파견 온 그가 세주를 찾았다.
“빨리도 온다.”
“최대한 채비를 갖춰서 왔습니다. 외계인 침공 맞습니까?”
“그럼 손오공이 여의봉이라도 던진 것 같냐?”
대위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다행입니다.”
‘지금 저 새끼가 뭐라고 했는지 내가 똑바로 들은 거 맞지?’
-쳐. 내가 허락한다.
훅, 손을 들어 놈의 멱살을 잡고 말했다.
“방금 동생을 잃은 여자를 찾아가 똑같이 말해라. 저 여자가 네 머리에 총알을 박아도 말리지 않을 거다.”
“욱.”
대위의 발이 땅에 들렸다.
“터진 주둥이라고 뱉으면 다 말인 줄 아냐?”
손을 놨다.
“쿨럭, 쿨럭.”
한참을 기침을 뱉는다. 몸을 돌리는 데 대위가 급하게 말했다.
“쿨럭, 중령님. 다른 뜻이 아니었습니다. 일산은 반파됐고, 서울 중구, 여의도에도 침공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지금 전부 지옥도가 됐습니다.”
‘지랄 맞네.’
딱 여기만 침공해 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중령님 부대에서 무기를 회수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바로 작전 지역에 들어 가주셔야 합니다.”
“내 부대원은?”
“한 명은 여의도에 갇혀 있습니다.”
“누구?”
“이인준 중위입니다.”
그 새끼는 왜 또 거기 있어.
“A급 장병으로 특공 팀 짜와. 오늘 내로 다 정리한다.”
투다다다다.
그 사이 헬기가 날아오는 게 보였다.
“중령님 무깁니다. 헬기로 최대한 빨리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거 하나는 잘했네.
벼락과 기타 등등 무기를 잔뜩 실은 헬기다.
그 안에.
“형님. 들으셨습니까?”
“인준이 형이….”
“알아.”
치용과 유진이 타 있다.
“데리러 가자.”
죽지 말고 버텨라.
속으로 작게 읊조렸다.
겨우 이따위에 죽지 마라.
동생을 잃은 여자가 오버랩 됐다.
세주는 정말 상실감이 싫었다.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걸, 묻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잊고 싶은 기억이다. 하지만 절대 잊혀 지지 않는 기억이었다.
*
꽝!
재수가 없는 걸까.
막 아버지가 있는 로펌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다.
긴 기둥 같은 게 여의도 공원에 바닥을 향해 날아와 꽂히는 게 보였다.
“지랄 맞네.”
한 달의 휴가 중이었다.
이십 일 넘게 아버지와 눈 한 번 마주치지 않다가.
인사를 하러 온 참이고.
녹색 잔디가 있는 곳에 꽂힌 거대한 기둥에서 짙은 연기가 나왔다.
그건 곧 주변을 덮었다.
아버지 사무실이 있는 빌딩까지 덮는 것도 금방이었다.
‘젠장할.’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겠다.
침공이었다.
연기가 사방을 감쌌다.
“이쪽으로 모입니다!”
인준이 외쳤다.
‘가까운 쉘터가 어디지?’
기억을 더듬었다.
사람들을 불러 모으며 전화기를 들었다.
“코드명 노이즈. 외계인 침공, 위치 여의도 공원 일대. 기묘한 연기가 시야를 가린다. 빠른 지원 요청 바란다.”
연기가 점점 퍼져 나와 주변을 뒤덮는다.
달리면서 사람들을 모아서 쉘터로 이동했다.
연기가 살아있는 것처럼 건물과 문틈을 넘나들었다.
“저쪽이 쉘터입니다. 직진 합니다.”
“누구요?”
그 사이 누군가 다가와 묻는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오랫동안 듣지 않았다고 해도 잊을 리 없다.
그도 같은 심정으로 다가온 것 같았다.
“대한민국 육군 소속, 중위 이인준입니다.”
그 앞에서 딱딱한 자기소개를 한다.
“…내 아들 이인준이기도 하고?”
아버지였다.
“쉘터로 가십시오.”
“난 괜찮다.”
안 괜찮습니다.
인준은 인상을 쓰다가 고개를 저었다.
고집쟁이다.
아버지는 인준과 같이 외쳤다.
“이쪽이오! 쉘터가 있으니, 뜁시다!”
넘어지면서도 사람들이 움직였다.
연기가 주변을 가려, 가시거리가 점점 줄었다.
트트트. 데데데.
이상한 소리와 녹색 빛이 연기 너머로 보였다.
“엎드려!”
반사적으로 외쳤다.
“응?”
도망가던 일부 인원이 고개를 뒤로 돌렸고.
동시에 그곳에 꽝하고 폭음이 터졌다.
거리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고개를 숙인 인준의 볼에 무언가 툭하고 부딪쳤다.
누군가의 손가락이었다.
우우우웅.
다시 녹색 빛이 있는 곳에 기묘한 진동음이 울렸다.
‘빌어먹을.’
아버지가 안 보였다.
“여기다.”
뒤였다.
“꼭 붙어요.”
가진 무기가 없다.
“후.”
호흡을 뱉으며 적의 위치를 파악했다.
녹색 불빛이 다섯 개다.
‘하나당 한 마리라고 하면 다섯.’
거기에 투사체 무기를 지니고 있다.
우웅.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풀 업으로 전신에 커버링.
아버지의 허리를 안고 뛰었다.
꽝!
그곳에 폭음이 터졌다.
트트트. 레레레레레.
듣기 싫은 소음이 그 뒤를 따라왔다.
‘일단 도주.’
도망이 현재로서는 최선이었다.
“꽉 잡으세요.”
“오냐.”
떨리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인준은 뛰기 시작했다.
도망가야 했다.
트트트트트트.
그 뒤로 다시 이상한 소리가 따라온다.
앞을 살필 겨를도 없었다.
바닥을 박차고 앞으로 뛰었다.
*
연기가 자욱하다.
여의도 공원과 주변 일대를 덮었다.
마치 구름이 지상으로 내려와 그대로 땅을 감싼 것 같았다.
투다다다다!
헬기 위에서 그걸 보던 세주다.
“기다릴 시간 없겠다.”
“동감입니다요.”
“준비 완료했어요.”
치용과 유진이다.
“무슨 말씀입니까?”
옆에서 황당한 얼굴로 대위가 되물었다.
“분대 병력, 연기 밖에서 천천히 진입시켜.”
“중령님이 지휘하기로 한 병력….”
대위가 말을 끝내기도 전이다.
헤드셋을 던진 세주다.
대위가 헤드셋을 들었다.
뭐 하자는 걸까?
투다다다다!
헬기 소음에 목소리가 닿을 리 없지만.
“중령님!”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반사적으로 땅에 떨어진 헤드셋을 줍고 앞으로 내밀었을 때.
세주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부웅.
그는 이미 헬기 밑으로 줄 하나에 의지에 떨어지고 있었다.
레펠도 아니고 다이빙 수준이다.
‘미친놈이구나.’
전장의 수호신이라는 별명을 그도 들었다.
그리고 그놈은 미친놈이었다.
퉁!
헬기에 연결된 줄이 팽팽히 당겨지는 거로 봐서 죽지는 않았다.
당기자.
일단 올리고 다시 얘기하자.
대위가 입을 열려 할 때였다.
“그럼.”
치용과 유진이다.
둘 다 헤드셋을 벗고, 그 줄을 따라 쭉쭉 내려간다.
역레펠 자세에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이다.
“고도 유지.”
대위는 어쩔 수 없이 조종사에게 제자리에 있을 걸 명했다.
일단 저 미친놈들이 끈에 매달려 있으니, 어떤 짓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