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54. 딱밤 한 대.
“반세주 중령은?”
강대총이다.
최전선 최고 지휘관으로 골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남자.
그가 오랜만에 김해 침공대비 사령부를 찾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반세주 중령과 그 휘하 부대원 전부를 이곳에 남게 하고 싶다.”
“여기에?”
김해, 침공대비 사령부의 최고 지휘관, 최천기다.
욕심 없기로 소문난 최천기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놈이 노블 에너지 컨트롤 조교로 오고 난 뒤, 생긴 일이다. 봐라.”
말하며 건네는 서류다.
강대총이 천천히 한 장, 한 장 넘겼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대단한 놈이야.’
생도들의 수준이 높아졌다.
노블 에너지 컨트롤 뿐 아니라 전체적인 전력이 확연히 늘었다.
거기에 자신의 호위, 마시멜로를 닮은 김동원 중령의 말도 있다.
“반세주 중령은 사이키커의 기술이 안 통합니다.”
“그게 가능해?”
“저도 처음 봤습니다. 손가락으로 보이지도 않는 사이킥 에너지를 싹둑 자릅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은 절대 수긍하지 못할 것이다.
김동원은 그리 확신했다.
“안 돼.”
그리고 그 반세주가 자신의 휘하에 있다.
최천기는 그를 원했다.
강대총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봐. 강대총. 효율성을 고려해라. 이들의 성장 속도를 봐. 그는 가르치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
이곳에 오며 강대총도 소문은 들었다.
‘가르치는 게 아니라 괴롭히는 재능이겠지.’
F반 생도가 아직도 악몽을 꾼단다.
쉬쉬하지도 않고 말한다.
반세주는 악마 새끼다.
그걸 들은 반세주 부대원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그의 휘하 셋도 현재 조교로 이곳에 와 있다.
그들도 입을 모아 말한다.
그 인간은 그러고도 충분히 남는다고.
거기에 그 부대원들도 각각 별명이 붙었다.
까까머리 폭탄마 폭발의 이인준.
“수류탄을 입에 물고 싶으면 계속 그렇게 해라.”
항상 폭발물을 지니고 다니며 생도를 위협한다.
자는 중에 생도가 그를 암살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수준이다.
말보다 빠른 주먹, 폭력의 김치용.
“안 돼? 맞다 보면 돼.”
일단 때린다. 설명도 없다. 패고 본다.
툭하면 50명의 생도가 합심해서 덤비지만.
1:50의 싸움에서 이기는 괴물이다.
생도 사이에서 정부에서 만든 실험체란 소문이 도는 남자다.
툭하면 권총을 뽑고 협박하는 폭언의 정유진.
“대가리에 구멍 낸다. 덤비고 싶으면 덤비던가?”
사람을 쏘고 싶어 안달이 난 미친놈이란다.
일명 삼폭 조교다. 그중 제일은 그들을 거느린 악마 반세주고.
악마와 삼폭, 이게 현재 생도의 가장 핫이슈다.
“푸하하하하.”
전부 들은 강대총은 웃음을 터트렸다.
“웃기나?”
최천기는 하나도 우습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다.
저 악마와 삼폭이란 자식들이 만든 결과물 때문이다.
이전 초인프로젝트 1기와 확연하게 차이 나는 성장세다.
“그들은 누군가를 육성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적재적소에 인원을 배치하는 게 우리 일인 거 알지?”
인사참모도 아니고 최고 지휘관이 직접 나선다.
그만큼 그 넷에게 받은 인상이 강렬하단 소리다.
강대총은 최천기를 바라봤다.
그리고 입을 연다.
“만약, 네가 최전방에서 그들이 싸우는 걸 한 번이라도 봤다면, 절대 지금 같은 말은 하지 않았을 거다.”
동기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지휘관이 된 둘이다.
그 동기를 위해 강대총은 재차 입을 열었다.
“그들이 가장 빛나는 곳은 전장이다. 내 모든 걸 걸고 말할 수 있다.”
실제 골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건, 누구의 덕인가?
하얀 눈을 대비해서 투입하기로 한 초인프로젝트 1기는 늦었다.
알파 팀의 팀장은 다리를 잃었고.
그 절망에서 희망을 준 건, 반세주다.
그리고 승리의 공은 희생한 장병 덕분이다.
강대총은 그래서 모든 훈장을 마다했다.
자신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투는 장교, 부사관, 병사가 했고.
희망은 반세주가 줬다.
강대총은 그저 지시만 내렸다.
“그러므로 천기, 네 청탁은 거절하지.”
*
통신이 들어왔다.
지원 요청이었다.
아니, 겉으로는 지원 요청이지만.
만나자는 말이었다.
-보고 싶으면 직접 올 것이지.
‘그러게.’
장광안과 김후경, 꽤 반가운 이름이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하던 훈련을 멈추고 갈 생각은 없다.
벌써 3개월이 지났다.
해가 길어지고, 뜨거운 계절이 다가왔다.
통신 전문의 마지막이다.
[보여 줄 게 있다. 아니, 꼭 보길 바란다]
“음.”
무시하기에는 호기심이 고개를 치켜든다.
장광안, 그가 부른 일이다. 이유가 있을 거다.
“가보자.”
프로비던스도 어떤 놈들이 쳐들어올지 알 수 없다.
어떤 정보 없이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 없다.
프로비던스는 기계 새끼지, 신이 아니니까.
세주는 곧 채비하고 부대를 나섰다.
“모시고 오라고 해서 대기 했습니다.”
까만 가죽 재킷을 입은 남자다.
선글라스를 벗으며 그가 세주에게 경례를 한다.
“알파?”
“네. 알파 팀 소속 나기주라고 합니다.”
잘 생겼다.
키도 훤칠하고 배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선도 굵고 좋다.
‘나보다 조금 낫네.’
인정할 건 인정하는 남자니까.
-조금?
아무 말 없이 딱 두 글자로 되묻는 기계 새끼가 몹시 얄미웠다.
‘어, 조금.’
-허허. 참. 이거. 맷돌 가는데 쓰는….
유아인 성대모사를 들으며 세주가 입을 열었다.
“가자.”
“네.”
검은 지프차였다.
군용이 아니지만, 군부대 내를 활보하는 걸 보니 이미 합의된 부분인 것 같았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투다다다다.
소음이 귀를 때렸다.
헬기가 둘을 기다렸다.
말없이 헬기에 오르자, 나기주가 묻는다.
“당신이 그 수호신입니까?”
헤드셋을 톡해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기주였다.
“그 수호신은 무슨 수호신이냐?”
“고명수 대장님께 들었습니다.”
세주와 나기주의 눈이 마주쳤다.
-도발하네.
그와 함께 사이킥 에너지로 만든 얇고 가는 실이 다가온다.
싹둑.
은밀하지만 보인다.
손가락으로 잘라내고.
“장난치면 뒤진다.”
“…명심하겠습니다.”
머리를 뒤로 젖혀 기댔다.
입을 열지 않아도 알았다.
나기주는 세주와 겨루고 싶어 했다.
둘 중 누가 위인지, 어느 쪽이 강한지 시험해보고 싶어 한다.
‘아, 졸라 귀찮네. 저 새끼 어쩌지?’
-무시해.
힘자랑하고 싶으면 외계인한테 하지.
왜 자신을 붙잡고 이 지랄인가 말인가.
‘치용이 데려올걸.’
그럼 편했을 거다.
지금 당장은 누구랑 겨루기 곤란한 상태다.
“야.”
“네.”
“너 나 보지 말고 창밖 봐. 경치 좋다.”
투다다다.
헬기가 위로 솟으며 주변에 안개가 꼈다.
새벽에 출발한 그들이다.
동이 터오고 있지만, 아직 주변에 안개가 자욱했다.
창밖에 보이는 게 없었다.
“이 풍경이 좋습니까?”
“좋잖아. 자욱하니 아무것도 안 보여서 생각하기 좋고. 엉?”
“그렇습니까?”
말하면서도 세주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딱 보면 보이잖아. 고집이 반세주 급이야.
‘그건 무슨 비유냐?’
-말해 줘?
아니 됐다.
고집이 적당히 센 편이구나.
투다다다.
헬기가 도착한 곳.
경기도 가평이다.
내려서자.
“왔나?”
장광안이 반겼다.
세주가 만면에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어디서 반말이야? 이 새끼야.”
이제 자신이 중령, 그리고 저 새끼가 중위다.
상황 역전이다.
“어이, 어이. 진정해.”
웃는 낯으로 다가오며 그가 입을 열었다.
“우린 민간단체야. 군 작전에 들어가지 않으면 군인이 아니라고.”
“편한 데로 사네.”
“국가와 기업 양쪽에 발을 딛고 사는 자의 특혜지. 알파로 와. 내 위로 넣어줄게.”
“엿이나 쳐드시지.”
웃으며 말하는 둘이다.
그래도 한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둘이다.
끈끈함이 배어있다.
“보여줄 게 있다.”
그리고 광안이 세주를 이끌었다.
가면서 그가 입을 연다.
“기주가 시비 안 걸어?”
“걸던데.”
“적당히 상대 좀 해줘.”
“누군데?”
“현재 알파 팀 에이스. 콧대가 너무 높아. 혼자서 외계인 무리쯤 몰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철부지지.”
-그럴 만하네. 사이킥 에너지가 이제까지 봐온 누구보다 우월해.
프로비던스가 스캔을 이미 끝낸 상태다.
“곤란해.”
“왜?”
세주가 질 거라고는 조금도 상상하지 않는 얼굴이다.
전장에서 펼친 활약을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기대해주는 건 고맙긴 한데.’
실제로 질 것 같아서 이러는 게 아니다.
“죽어.”
“응?”
“나랑 싸우면 죽는다고.”
미안한데, 지금 힘 조절이 안 된다.
죽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로 몸을 혹사하며 훈련에 임했다.
그리고 아직 크랭크 조정이 끝나지 않았다.
문제는 나기주가 어설프게 싸울 줄 안다는 거다.
그냥 애송이면 문제가 아닌데.
에이스란 이름을 들을 정도는 된다는 거다.
그럼 죽을 수도 있다.
힘 조절 잘못해서 죽일지도 모른다.
“에이스라며? 죽어도 돼? 아니면 팔다리 하나쯤 날아가도 돼?”
“아니, 안 돼. 싸우지 마. 절대.”
광안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단속하겠다.”
그래. 그래라. 자꾸 건드려서 이마에 딱밤이라도 한 방 먹이고 싶거든.
*
“음.”
광안이 데려간 곳, 산등성이다.
그가 보여준 건 시신이다.
사지 멀쩡한 상처 하나 없는 시신.
“뭐라고 생각하나?”
광안이 묻는다.
-놀라운 데.
“글쎄다. 어디서 찾았어?”
세주가 묻자.
“골과의 격전 중에 후경과 내가 빠진 건 알지? 알파 팀 연구실을 침입한 놈들 때문이었다. 이놈들이었지.”
인간과 닮았지만.
-인간이 아냐.
눈으로 봐도 알겠다.
팔과 다리가 기계촉수 같은 걸로 연결되어 있다.
전신이 흰색이며, 머리는 바이크 헬멧처럼 생겼다.
동그란 머리, 얼굴에는 눈, 코, 입 대신 유리막이 막고 있다.
“놈들?”
“전부 오십 마리였다.”
“저 안은.”
세주의 손가락이 놈의 얼굴을 가리켰다.
콰득.
광안이 서슴없이 놈의 유리막을 뜯었다.
안은 빛나는 두 개의 전구가 반짝였고.
기계촉수가 가득했다.
아니, 그건 일종의 전선 같았다.
스파크가 튀지도 않지만.
그 안에서 에너지가 느껴졌다.
-에너지로 기동하는 형태야. 하지만 정말 놀라워. 이건 인간의 세포를 복제해서 만든 것처럼 보여. 하지만 하얀 눈과는 완전히 달라. 인간의 DNA는 조금도 들어가지 않았어. 완벽한 창조야.
프로비던스가 놈의 조직 일부를 뜯어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이제 와서 나한테 보여주는 이유는?”
“이제 와서라니, 우리도 발견한 게 이놈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증발했어.”
그리고 굳이 군에 지원 요청으로 반세주를 불렀다.
“난 왜?”
“왜겠냐? 알파 팀 와라.”
여전하구나.
여자였으면 스토커로 신고했어. 아니, 남자도 신고해도 되나?
“당신이 정말 그렇게 강합니까?”
뒤에서 불쑥 들리는 말소리다.
새끼야. 데겠다.
나기주의 눈에서 불이 나올 것 같다.
“응.”
세주가 고개를 끄덕여주고 앞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광안이 고개를 젓는 게 보였다.
그래 좀 말리라니까.
저거 저러다 죽어.
“증명해보십시오.”
윙! 삐이이이이.
갑자기 이명이 들리고 눈앞이 휙 돌아간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어지럽다.
-오호, 당했네.
훌륭한 기술이다.
귀 안쪽. 세반고리관, 전정기관에 충격을 받았다.
평행감각이 무너진다.
언제?
-염력이야. 안 보이는 진동파를 만들어서 귀에 던졌어.
그랬구나.
안 그래도 힘 조절 안 되는데.
눈을 감았다.
어지러운 시야가 없어지니 한결 편하다.
감각 일부를 끊고, 한 가지에만 집중했다.
‘이 새끼, 들어오기만 해 봐라.’
-모드 온 인파이터.
밀리모드의 레어 형태다.
스킬은 두 개.
하나는 ‘중갑’.
노블 에너지가 피부 바깥에 자리를 잡아 갑옷처럼 몸을 감싼다.
두 번째는 ‘육감’.
피부에서 30cm.
그 이내에 들어오는 모든 공격을 감지한다.
앞쪽 이마다.
정직하게 정면으로 달려들다니.
번쩍.
눈을 뜨고 손을 뻗었다.
왼손등으로 뻗는 상대의 주먹을 쳐낸다.
딱!
쳐낸 손을 앞으로 뻗어 멱살을 쥔다.
“컥!”
뚜두둑!
가죽 재킷의 앞섬이 아귀힘을 견디지 못하고 뜯어진다.
세주의 오른손이 번개처럼 움직인다.
엄지 안쪽을 중지 중간에 댄다.
그리고 탄력을 이용해 손가락을 튕긴다.
“좀 자라.”
딱!
딱밤이다.
“꺽.”
이마 한 방에 고개가 앞뒤로 세차게 흔들리고.
그리고 거품을 물고 눈을 뒤집어 까더니 기절해버린다.
손을 놓으니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진다.
“죽인 거 아니지?”
“안 죽였어.”
-확실해?
‘몰라. 최대한 힘 뺀 거야.’
이마에 핏방울 맺혀 떨어지는 게 보였다.
‘설마.’
딱밤 한 방에 죽었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