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52. 난 다시 온다
아무도 세주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말을 건 왕점이도 눈을 깜빡이고는 가만히 있었다.
“안 들리지?”
“들리긴 합니다.”
-캬, 건방이 하늘을 뚫는구나. 이 영화 재밌다. 여기 팝콘 없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얘들 계급 뭐냐?”
“프로젝트가 끝나면 바로 소위 임관입니다.”
장교다.
누군 이등병에서 시작했는데.
“일단 좀 맞고 시작할까?”
“네?”
아직 군대 물도 덜 들었다.
어디서 네? 이 지랄이니?
훙.
풀 업, 전신에 푸른빛이 번쩍인다.
“첫 번째 레슨.”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앞으로 내달린다.
그리고 왕점이의 앞에서 멈추고.
“개기지 마라.”
퍽! 꽝!
거, 유리 튼튼하네.
날아간 왕점이가 강화 유리에 등을 부딪치고 앞으로 쓰러진다.
그리고 정신을 잃는다.
“자, 다음 개길 사람?”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엎드려.”
생긋 웃으며 입을 열자.
모두 바닥에 손을 댄다.
“아, 미안. 말을 잘못했네. 대가리 박아.”
파바바바박.
머리를 땅에 박는 속도가 신속하다.
이제야 좀 마음에 든다.
“야, 대위.”
“대위 김철수!”
“응. 철수야. 쟤 의무실.”
“네!”
부리나케 달려간다.
땅에 머리를 박은 이들 사이를 걸으며 세주가 입을 열었다.
“방금 보여준 기술은 커버링이라고 한다. 그중 풀 업이라는 단계다.”
“네.”
“안 들린다. 오늘 밥도 안 먹고 왔나! 앙!”
“넷!”
유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오늘은 첫 날 첫 훈련이니, 간단한 체력테스트를 해보자.”
다시 본래의 자리로 온 세주가 몸을 빙글 돌렸다.
“후아.”
머리를 박고 있는 생도 중 하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뭘 모르네. 이 형이 얼마나 변태 사이코인지.
응. 아냐.
지극히 평범한 체력 테스트다. 정신력 테스트도 겸하면 더 좋고.
“대가리 박고 오래 버틴 놈이 1등이다.”
힐끗.
위를 바라보자 위가 높게 트인 훈련장 위 벽면이 보인다.
유리로 된 그 너머에 몇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
*
“저 자식이 반세주야?”
사령관이 묻자, 부관이 곧바로 세주의 이력을 읊는다.
“영웅이네.”
대단한 놈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혼자서 전장에서 해 먹을 건 다 해 먹었다.
“흥미로운 사람입니다.”
나호필까지도 보러 왔다.
“넌 안 바쁘냐?”
“사령관님보다는 한가할 겁니다.”
“그래. 이 자식아. 한가해서 좋겠다.”
나호필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유리 너머를 바라봤다.
전신에 푸른빛이 어른거린 순간, 단숨에 생도 하나를 벽으로 날려버린다.
‘저놈들 말 하나는 잘 듣겠네.’
일부러 꼴통들만 모은 참이다.
반세주란 자의 그릇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저 밑에서 머리를 박은 골칫덩이들을 보니, 나호필은 솔직히 통쾌했다.
‘재밌겠어.’
흥미로운 눈으로 세주를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든다.
둘이 눈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정말, 재밌는 사람이네요.”
“그러냐?”
사령관이 픽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나호필은 천재지만, 또라이다.
그리고 저 밑에 있는 놈도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
훈련 생도는 여러 등급으로 나눠놨고, 왕점이 반은 F급이었다.
본래 등급은 C급까지 있는데 폐급 생도만 모아놨다고 해서 F반이라고 불렸다.
“인연이 깊네. 깊어.”
그놈의 폐급.
평생을 따라다닐 작정인가보다.
대가리만 박던 F반이 사라지고 다음 생도들을 만났다.
눈빛부터가 다르다.
“구리 컵님에 대하여 경례!”
착착 맞는 손발이다.
제식훈련까지 완벽한 놈들이었다.
거기에 정좌로 앉아서 세주를 바라본다.
-가르칠 맛, 나겠다.
“노블 에너지 다룰 수 있는 놈?”
전부 다 손을 든다.
커버링과 노블 패스를 흐르는 에너지에 관해 설명하고.
시연하자.
한두 명이 금세 따라 한다.
재능이 있다.
신이 난 세주도 계속 가르쳤다.
풀 업까지는 당장 무리라고 해도, 단순히 몸 어디 부위에 에너지를 씌우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
“잘 부탁한다.”
다리 잃은 고명수다.
“여기서 뭐 합니까?”
“알파 팀 신입들 인솔 왔다.”
“알파도 여기서 훈련받습니까?”
“일부 인원은 회사 자체 훈련도 하지만, 군 시설의 훈련 코스가 우월하다는데 이견은 없다.”
“아아.”
그리고 만난 알파 신입들.
적당히 풀어진 자세지만, 모두 독기가 있다.
“용병으로 전쟁을 경험한 놈들이 대부분이다. 쓸 만할 거다.”
쓸 만한 정도가 아니다.
방금 만난 A급 훈련생도가 모범생이라면.
이놈들은 사나운 들개 같은 놈들이다.
“말은 잘 들을 거다. 수호신에 대해서 알고 있으니까.”
고명수의 말과 같았다.
“영광입니다.”
대표 중 하나가 고개를 숙인다.
그들의 눈에 선망의 눈빛이 보였다.
그래서, 말을 엄청 잘 들었다.
*
훈련을 끝내고 쉰 뒤, 다음 날 아침.
“대가리 박아.”
“으윽.”
신음을 흘리며 다시 머리를 박는다.
F급을 만났다.
“하나 묻고 싶습니다!”
왕점이다.
“물어.”
“왜 머리 박는 겁니까!”
덤비지도 않았고, 만난 지 1초 만에 나온 소리다.
궁금할 수 있다.
그렇다고 대답해 줄 의무는 없지만.
“내 목표는 하나다. 너희들이 날 미워했으면 좋겠다. 아주 죽도록, 죽이고 싶을 정도로! 꿈에서도 날 죽일 정도로!”
“…네?”
“이 새끼. 빠져가지고. 얘 덕분이다. 머리 박고 훈련장 왕복한다. 선착순 셋.”
“크윽!”
“장왕 너 이 새끼.”
그 와중에 잘도 서로를 비난하는구나.
“흐흐흐흐. 신나지? 말할 짬도 있고? 재밌지? 막 웃음이 나오지?”
“아닙니다!”
“목소리 안 들린다.”
“아닙니다!”
“왕복 10회. 몇 회?”
“10회!”
“출발.”
머리를 박고 낑낑거리며 앞으로 걷는다.
저러다 정말 대머리 되겠다.
딱 1회 반환점, 즉 세주가 있는 곳으로 왔을 때다.
“니들 정말 멍청하냐? 기본적으로 염동력 쓸 수 있다며? 안 써?”
알아서 하라고 놔두면 정말 몸만 가지고 할 작정이다.
“네?”
“아, 이 새끼들. 진짜. 대가리 쓰라고. 목 위에 붙은 건 장식이냐? 그 머리, 다리 대신 땅에 붙어 있게 해줄까?”
“아, 아닙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였다.
염력을 이용해 머리를 간신히 띄운다.
“후아아아아.”
사이킥 에너지를 소모하는 게 꽤 정신적 피로를 불러일으키나 보다.
애들이 다 죽어 나간다.
눈 밑이 금세 까매졌다.
일주일 내내 밤을 새고 방금 PC방에서 나와 햇살을 보는 폐인 꼴이다.
기본 체력은 있는지 다리 후들거리는 놈이 없는 게 다행이다.
“뛰어.”
그 앞에서 세주가 빙그레 웃었다.
또 머뭇거린다.
“대가리 박을래?”
뛰기 시작했다.
그리 크지 않은 훈련장 벽에 붙어서 뛴다.
“죽을 때까지 뛴다. 쓰러지는 새끼 있으면 나랑 대련하는 거다. 인정?”
“알겠습니다!”
훈련 시간 내내 대가리 박고 머리를 허공에 띄우고 바닥을 박박 기고.
일어나면 죽어라고 뛴다.
“뛰면서 들어. 신체 에너지를 활용하면 지치지 않는다. 고작 여기 몇 바퀴 도는 거로 쓰러지는 새끼가 나오면 안 된다는 거다.”
“넷!”
“노블 패스에서 에너지 뽑아내. 써. 그럼 돼.”
다른 훈련은 고작 2시간 내에 끝나는 데.
F급은 매번 5시간 이상 훈련장을 차지했다.
결국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다음날부터는 야외로 자리를 옮겼다.
방식은 같았다.
대가리 박고, 기고, 뛰고.
-아주 미친 듯이 굴리는구나.
‘굴러야지.’
*
“악마 새끼.”
“으으으으으.”
F반 훈련생도들은 자면서도 꿈을 꿨다.
그리고 눈을 뜨고 나서.
“시발, 꿈이라고 해줘.”
다시 반세주를 만나는 현실을 외면했다.
“야, 늦으면 뒤진다. 가자.”
장왕, 왕점이란 별명을 가진 이가 먼저 일어났다.
맨 처음 맞은 놈이다.
한 대 맞고 며칠을 피똥을 쌌다.
그는 맞은 값을 톡톡히 했다.
“늦는 새끼 뒤진다!”
그들이 숙소를 빠져나와 뛴다.
투다다닥!
창문에서 아예 뛰어내리는 놈도 있다.
떨어지며 염력을 사용.
몸이 허공에서 둥실 뜬다.
낙하속도를 늦추고 바닥을 구른다.
타닥!
깔끔한 착지다.
막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A반 훈련생도가 그들을 봤다.
“기합이 빡 들어갔네.”
“반세주 중령님이 F반 죽인다고 하더라.”
“왜?”
그들에게는 한없이 자애롭고 친절한 교관이다.
이제까지 만난 교관 중 친절로 으뜸이다!
화도 내지 않는다.
나중에 교관 평가라도 있으면 별 다섯 개를 찍어주고 싶다.
그런데 F반은 전혀 아니었다.
“들리는 말로는 F반 성적이 너무 저조해서 장교 임관이 아니라 일반 사병으로 내려간다고 하더라. 그래서 일부러 더 몰아친다고.”
“그렇구나.”
그런 루머가 훈련장 전체를 떠돌아다녔다.
*
일주일간 훈련을 마치고 세주가 F반 생도 앞에 섰다.
“끝났다.”
그들의 얼굴에 환희와 감동과 희열이 보인다.
그리고 그걸 본 세주는 정말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예전에 훈련소에 있을 때, 악마 소위라는 새끼가 있었어.”
그들을 바라보는 훈련병들의 생각은 한결같았다.
‘너보다 더한 악마가 있다고?’
‘악마는 너다!’
‘물러나라. 이 악마야!’
“폐급이라고 놀리면서 엄청 괴롭히더라고.”
말없이 세주를 바라보는 이들을 보며 입을 연다.
“추임새가 없다?”
눈치 빠른 장왕, 왕점이 입을 연다.
번개 같은 빠르기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그 와중에 초롱초롱한 눈빛도 추가다.
“내가 성격이 유한 편인데. 계속 그렇게 사람을 몰아세우니까….”
-애들 표정 봐라.
표정 관리 실패한 이들이 ‘성격이 유한 편인데’부터 불쾌한 얼굴을 감추지 못한다.
“저기 너, 너, 뛰어.”
막 훈련이 끝난 참이지만.
반사적으로 둘이 일어나 다시 달렸다.
꿀꺽.
누군가 침을 삼키고 세주를 주목하는 눈빛에 힘이 생긴다.
난 이 이야기가 궁금하고, 당신의 말에 토를 달지 않는 착실한 훈련생도입니다.
라는 눈빛이었다.
“자, 어디까지 했지?”
“성격이 유한 편이신데 사람을 몰아세우니까 까지 하셨습니다.”
“그래. 그러다보니까 오기가 생겨서 내가 좀 열심히 했어. 폐급 소리가 듣고 싶지 않기도 하고.”
“네!”
“헉! 헉!”
그사이 훈련 시 목표점으로 세워 둔 저 멀리 있는 깃발을 찍고 둘이 돌아왔다.
“앉아.”
“네!”
“…길게 얘기해서 뭐하겠냐? 결론만 말할게.”
괜히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떠오른다.
“훈련 게을리 하지 마라. 그동안 놀았는지 아니면 내가 말한 훈련량을 소화했는지는 보면 안다.”
“네!”
-적당히 하고 빨리 꺼지라는 눈빛이네.
다들 바라고 있다.
반세주와 헤어지기를.
“난.”
말하고 잠시 텀을 뒀다.
모두의 시선을 느끼며 빙그레 웃는다.
“다시 온다.”
그리고 말을 전하자. F반에 절망이 드리운다.
“3주 뒤에 보자. 도망가지 마라.”
사형선고였다.
세주가 훌쩍 사라지고 난 뒤.
“시발, 나 그냥 병사 할래.”
누가 울먹였다.
뛰다가 토하고, 사이킥 에너지를 너무 사용해 코피가 터지는 건 예삿일이었다.
옆에 졸졸 따라다니면서 갈구며 괴롭히는 건, 악마보다 더했다.
“훈련하자.”
장왕이다.
“엉?”
“병사가 된다고 해도 쫓아올 것 같아. 도망가지 마라. 못 들었어?”
꿀꺽.
“야, 훈련하자. 열심히 하자.”
“그래. 하자.”
그 뒤 3주, A반과 알파 팀은 귀신같이 변한 F반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약 먹었대?”
“아니, 그냥 죽고 싶지 않다던데.”
지나가던 A반 생도 둘의 대화였다.
3주 뒤.
다시 세주를 만나기 전까지.
그들은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사이킥 에너지를 쓰고.
뛰었다.
다시 사병으로 가고 싶지 않아 발악한다는 루머가 떠돌았다.
하지만 F반 훈련생도들은 루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겨울이 지나며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
“나 왔다.”
반세주가 돌아왔다.
그리고 F반 50명은 한 명의 낙오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