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50. 질서는 없되 마음은 남았다
전장에서 싸움이 한창일 때, 골의 위에서 한 인간이 일어났다.
보랏빛 거대 괴물은 자아가 없는지, 아무것도 못 하고 둥둥 떠 있었다.
그는 본래 비트레이어가 있던 자리, 이제는 구멍 난 곳으로 향했다.
‘모든 건 움직이기 위해 동력이란 게 필요한 법이다.’
두근.
골의 위에 서자 명확하게 느껴지는 박동이다.
폭음 속에서도 선명하게 두꺼운 군홧발을 넘어 느껴진다.
‘어떻게 움직인 거냐?’
파드드득.
그의 눈에 꿈틀거리는 보랏빛 혈관이 보였다.
망원경으로 골을 관찰해 비트레이어를 봤었다.
그리고 놈이 등에 혈관을 꽂고 있었던 것도.
혈관을 따라 안을 살폈다.
구멍 안쪽,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두근.
박동에 맞춰 흔들리는 빛이다.
“염병할, 거기냐?”
다리 한쪽이 잘린 채로 혈관을 부여잡았다.
꾸드드득.
거꾸로 기어들어 갈 판이다.
등에 짊어지고 온 물건을 더 칭칭 동여맸다.
검은색 상자 위로 전선 몇 개가 연결된 모양새다.
그 위로 번호판이 보였다.
김택동은 단단히 묶인 걸 확인하고 밑으로 내려갔다.
*
‘못난 놈.’
-아까는 감사하다며?
그건 그때고.
병원에서 내려와 지친 몸을 이끌고 전장으로 내달렸다.
비트레이어 놈이 없어도 전에 없는 규모의 습격이다.
비릿한 내음이 코를 찔렀다.
아까 토한 피가 앞섶에 말라붙었다.
그래도 달렸다.
아직 싸우고 있는 아군을 위해서.
그리고.
‘꼭 가까이 가야 에너지 수급이 되는 거냐?’
-너무 멀어. 여기는.
또 다른 이유는 에너지 수급 때문이다.
보스 몬스터를 잡고, 루팅을 안 한 격이다.
“후.”
숨을 몰아쉬며 달리니 어느새 저격탑이다.
“어? 수호신?”
상병 나부랭이다.
“반세주 대위님이겠지?”
농담을 건네고 탑 위로 오른다.
장난이 아니다.
팔이 후들거린다.
덜컥.
하마터면 벼락을 놓칠 뻔했다.
“…대위님?”
“너, 나 좀 올려주라.”
보니까 저격병이다.
“네!”
그가 세주를 받치듯이 올라갔다.
아머가 무겁게 느껴진다.
그래도 총은 쏠 수 있다.
“후아.”
상병이 세주를 내려놓고 숨을 몰아쉰다.
“됐어.”
자세를 잡고 총을 쥔다.
“힘내십시오!”
뒤에서 상병이 주먹을 불끈 쥔다.
그 힘 방금 열나게 내고 왔다.
그래서 저기 비트레이어 박살 내고 왔고.
-에너지 수급 완료 126만.
휘이익.
휘파람이 절로 나올 수치다.
‘산산조각이 나도 꽤 나오네?’
-골의 에너지를 대부분 받아먹은 놈이었으니까. 그 혈관의 역할이 뭐였겠어?
그럼 골은 이제 속 빈 강정이란 소린가?
겉을 감싸는 배리어가 깨지고 외갑을 감싼 배리어만 남은 놈이다.
에너지가 남지 않은 놈이라고 해도 놓칠 생각은 없다.
철컥.
노리쇠를 당기고 다시 스코프를 바라본다.
일단은.
하얀 눈부터다.
전신이 찢기고 아프다.
무리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다.
‘스위쳐 돌려.’
노블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공급원이 밑에 새까맣게 깔렸다.
눈에 커버링을 하자, 하얀 화살표가 허공을 나는 게 보였다.
비트레이어가 죽고 배리어가 사라지자 이제 활동을 시작하는 놈들이다.
화살표가 머리에 박힌 병사 하나가 외친다.
“으어어어! 내 손이 제멋대로!”
투다다다!
비트레이어만 잡으면 끝나는 싸움이 아니다.
전쟁이란 마물은 한 놈만 죽으면 끝이 아니다.
끼릭.
-어쩔 수 없지. 무리해. 허락한다.
누가 네 허락 따위 받는대?
꽝!
벼락이 불을 뿜었다.
*
많이도 죽었다.
정말 많은 사람이 죽었다.
“쿨럭.”
세주는 피를 토하며 밑을 봤다.
“이겼다!”
싸움이 끝나가는 소리다.
알파 팀 100명이 투입돼 브레인 레이퍼 놈들을 잡았다.
그 와중에 치용과 인준, 유진이 백 마리나 잡았다는 놀라운 사실을 전했다.
-내가 훈련 시켰어. 저 정도는 당연히 해야지.
프로비던스의 렌즈가 번쩍거렸다.
예상범위, 언제나 그걸 넘어서는 건 한 명뿐이다.
비트레이어 사살, 하얀 눈 50마리 저격.
그 이후 전장에서 보인 활약.
수호신이란 이름이 아깝지 않다.
그리고.
“반세주 개자식!”
저 환호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버렸다.
‘아직 골이 남았어.’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렸다.
아니, 전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정말 한 올의 힘도 남기지 않고 몽땅 쏟아부었다.
하늘을 보자, 골이 둥둥 떠 있는 게 보였다.
슈우우우웅.
그 위로 무섭게 미사일이 날아와 꽂힌다.
꽝!
골이 흔들린다.
-못 죽여.
외갑에 얇은 껍질처럼 싸여있는 막, 내부 배리어를 뚫을 수가 없다.
그 순간이었다.
부우우웅.
골이 위로 올라간다.
‘이런 염병할 새끼가.’
또 도망가서 병력 꾸역꾸역 모아서 쳐들어오는 거라면 정말 사절이다.
‘브로, 남은 에너지.’
꽈과과광!
그 사이 포탄이 날아 골을 맞추지만.
못 죽인다.
저걸 부수려면 한 방이 필요하다.
폭발하는 포탄? 스나이퍼 모드를 다시 발동하는 건 무리다.
-4200만가량 있어.
‘…많네?’
-하얀 눈 50마리, 전부 관통 일격으로 머리만 노려서 죽였잖아.
그랬다.
굳이 폭발까지 쓸 일도 없고, 스파이럴 탄환만 꽂아줬다.
놈의 머리 부분이 어디 있는지도 알며, 구조까지 해부로 인해 알고 있었다.
80만짜리 50마리다.
대략 4000만 에너지란 소리다.
‘모드 다 열어. 흥청망청 해보자.’
일단 도망갈 골 놈을 잡을 게 필요했다.
눈을 감고 잠시 테크룸으로 접속.
“모드 트리.”
그리고 손이 가는 대로 연다.
툭!
첫 번째 연 모드를 보자 프로비던스가 말했다.
-운 좋네.
“행운의 사나이지.”
밝게 빛나는 모드를 뒤로 하고.
다음 모드를 열자.
-사실 이 시스템은 현재 형의 상황을 비춰서 가장 필요한 것을 뱉게 되어 있어.
‘진짜?’
-아니, 그냥 형이 운이 좋네. 억세게.
처음 연 모드를 레어 모드로 업그레이드하고 테크룸에서 나왔다.
골이 천천히 부상하는 게 보인다.
“우리의 첫 골을 기념해보자. 후우.”
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일단 두 번째 연 모드다.
‘모드 온 프리스트.’
나노킷과 비슷한 형태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연 모드 두 개, 전부 일반 에너지를 사용한다.
-완치는 불가능해. 몸이 너무 상했어.
‘빨리 치료나 해.’
거기에 두 번째 모드는 프로비던스에게 적용되는 힘이다.
-에너지 소모 10,000.
작은 찰과상 치료하는 데 소모되는 에너지가 100이다.
그런데 만이라니.
그만큼 몸이 엉망이란 말이다.
스스스스.
푸른빛이 전신을 비춘다.
한겨울에 추위에 길을 헤매다 온탕에 들어간 기분이다.
몸이 풀어지고, 힘이 솟는다.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다.’
잠시 후 빛이 사라진다.
-저거 도망가나 본데?
멈출 거로 생각했던 골이 더 부상한다.
‘알 게 뭐야.’
도망간다고 얌전히 놔줄 리가 없다.
힘이 없을 때 맞았다면, 힘이 생겼을 땐 반격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모드 온 봄버맨.’
몸을 일으키고 벼락 대신 꺼낸 리볼버로 하늘을 겨눴다.
-리볼버 특제 탄환이야. 에너지 4,000 소모해서 만들었어.
좋다. 맞고 많이 아팠으면 좋겠다.
봄버맨 모드는 레어모드로 변해도 이름이 바뀌지 않는다.
일반 모드의 봄버맨은 단순한 폭탄 제조다.
만일 처음 얻은 모드가 에임모드 대신 봄버맨모드가 나왔다면 쌍욕을 했을 거다.
수류탄만도 못한 폭발력을 지닌 폭탄 제조를 어디다 쓰나?
리볼버 탄환보다도 못한걸.
하지만 레어모드의 봄버맨 모드는 달랐다.
-보여?
눈앞에 엷은 막이 씌워진 느낌이 듦과 동시다.
폭발 범위와 어디에 맞췄을 때, 얼마나 큰 타격을 줄 수 있는지가 보인다.
칼큐레이팅 모드로 보는 것보다 세밀하고 선명하다.
아니, 아예 곡사로 쏴서 맞출 수도 있겠다.
‘부여, 화염.’
거기에 레어모드부터 쓸 수 있는 봄버맨의 스킬.
성질 부여.
화염, 냉기, 뇌격, 세 가지가 부여 가능한 스킬이다.
그 중 화염 폭탄을 만들고.
두 번째 스킬.
접착.
점토 같은 형태로 변한 폭탄이 철썩하고 리볼버 미사일 탄환에 붙는다.
특대 종합 선물 세트다.
“먹고 제발 좀 뒤져라.”
진짜 쉬고 싶다.
치료를 받아도 힘들고 지친다.
상처를 치료해주는 거지, 체력과 정신력을 채워주는 게 아니다.
땅.
방아쇠를 당겼다.
슈우우우웅!
그사이에도 폭격이 골을 때리지만, 큰 피해는 주지 못했다.
그 사이로 손가락 크기의 미사일이 날아간다.
덕지덕진 붉은 점토를 붙인 미사일이다.
그게 골의 위로 유유히 날아가 떨어졌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 작은 폭격.
하지만 화력과 폭발력은 지금 쏟아지는 어떤 포탄보다 으뜸이었다.
꽝!
찌이이이이잉!
폭음과 동시에 굉음이 대기를 울린다.
위를 올려다보자.
화르르륵!
‘잘 타네.’
구멍이 뻥 뚫린 채, 미친 듯이 타는 골이 보였다.
불길이 점점 번져간다.
그리고 그 위로 포격이 퍼부어진다.
꽈과과광!
골이 터진다.
사방에 보랏빛 살점을 날리고 녹색 체액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박동하던 기관이 멈춰간다.
그래도 부상했다.
-놓치겠어.
칼큐레이팅 모드로 계산한 확률이 보인다.
아무리 폭격을 가해도 놈은 결국 도망간다.
부상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염병.”
다시 총구를 들어 올렸다.
그러다 다리가 풀려 뒤로 철퍼덕 주저앉아 버렸다.
“대위님!”
뒤에서 누군가 뛰어 올라온다.
“응?”
자신을 올려 준 상병이다.
“괜찮으신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고맙다. 와줘서.
“부축해.”
설 힘이 없다면 빌려서라도 해야겠다.
그 순간.
퉁! 투두두둥! 퍼버버벅!
이제까지와는 다른 폭음이 들렸다.
-골 안쪽이야.
그 사이 상병이 다가와 부축해줬지만.
“필요 없겠다.”
하늘에서 골이 추락하고 있었다.
안쪽에 포격이 떨어졌나? 그건 아니다.
혈관이 꿈틀거리며 어떻게든 안쪽으로 포격이 향하는 것은 막았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안에서 터트리는 것.
그리고 지금 저 안에서 폭발이 일어난 거고.
‘누구?’
*
군에 지원한 이유는?
“아무것도 못 하고 죽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그날이 떠오를까? 자원입대한 날의 기억이다.
방금 눈앞에서 터진 폭탄에 사방이 불바다다.
그 앞, 혼자서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구멍에도 폭격이 영향을 미쳤다.
좁아터진 구멍이 이제는 자신이 지나갈 정도로 커졌다.
“난 운이 좋지. 쿨럭.”
기침이 나와 입가를 닦았다.
새빨간 피가 철철 흘렀다.
아물지 않은 다리에서도 피가 흘렀다.
그러면서도 그는 불길을 피했다.
등에 짊어진 게 여기서 터진다면, 죽어서도 억울할 거다.
“개자식들.”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과거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내 목표는 지휘관이다. 넌?”
동기였었다. 꿈도 야무진 놈.
그리고 다음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전장에 서서 시신을 수습하다가 발견한 놈의 얼굴을 보고 말해줬다.
“난 저 개새끼들한테 한 방 먹이는 거다.”
그게 목표다.
아무것도 못 하고 죽고 싶지 않았다.
침공한 이 빌어먹을 자식들 낯짝에 총이든 칼날이든 박아 넣어주고 싶었다.
“알파 팀에서는 널 받아줄 수 없다.”
“이유가 뭡니까?”
“재능.”
더 잘 싸우려고 했다. D를 두 번 복용하고 살아남은 것으로 자신을 증명했지만.
알파 팀은 그를 거부했다.
자신은 지독할 정도로 에너지를 느끼는 것에 무감했다.
목표를 포기할 순 없었다.
주변에 기억하는 얼굴보다 모르는 얼굴이 많아졌다.
참 많이도 죽었다.
그때부터 웃었다.
재능이 없다고 생각되면 지독할 정도로 괴롭혔다.
차라리 돌아가라. 여기서 죽지 말고.
싸우지 말고 후방에서 적당히 버텨.
싸우다 죽지 말고.
괴롭히고 또 괴롭혔다.
어느새 별명이 악마가 됐다.
반세주.
이상한 놈이다. 분명 재능도 힘도 아무것도 없었던 녀석인데.
지금은 그를 떠올리면, 부러웠다.
알파팀이 직접 데리러 온 것도, 수호신이 되어 싸우는 것도.
영웅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으나, 그가 전장에서 한 일을 보고서야 택동은 알았다.
자신이 진짜 되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
꿈도 야무진 건 자신이었다.
‘영웅이라니.’
“큭큭큭.”
웃음이 흘러나온다.
그럴수록 복부의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그래도 그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 일을 한다고 자신이 영웅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동안 죽은 친구와 전우에게 한마디는 할 수 있다.
“내가 니들 몫까지 한 방 먹이고 간다.”
두근.
가까이서 보니 보랏빛 보석 같은 물건이다.
“뒈져라. 개자식아.”
반세주가 보고 재수 없다고 부르짖던 미소와 함께다.
그는 등에 짊어진 물건을 보석에 던졌다.
고농축 폭약이었다.
*
골이 추락한다.
세주는 주저앉은 채로 밑을 봤다.
놈이 추락하며 꽝 하는 굉음이 울렸다.
즐비한 레이퍼 놈들의 시체, 브레인 레이퍼의 시체.
떨어진 데몬 플라이, 하얀 눈의 사체.
녹색과 붉은색이 섞인 전장이다.
그 안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곧 함성으로 변했다.
“와아아아아아아!”
함성이 대기를 찢는다.
“반세주 개자식!”
이제는 익숙한 환호다.
부축한 상병이 밑을 보다 몸을 부르르 떨다가 외친다.
“반세주 개자식!”
바로 옆에 있다. 이 새끼야.
“죄송합니다. 대위님.”
“됐다. 나으면 보자.”
“네!”
그래도 좋단다.
좋다. 모두가 좋을 것이다.
그래야 했다.
이겼으니까.
와아아아아아!
함성이 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저격탑 위에 선 채다.
심장이 부르르 떨렸다.
“후우.”
숨을 한 번 내쉬고.
“우리가 이겼다!”
외친다.
우리가 이겼다.
하늘 끝까지 이 사실을 알린다.
개 같은 외계인과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
쏴아아아아.
비가 내렸다.
병실에 있어야 한다는 말을 뿌리치고 나온 참이다.
“벌써 퇴원입니까?”
치용이 우산을 들고 다가왔다.
두두두둑. 두두두둑.
비가 박자를 타며 우산을 때린다.
“아니. 이거만 참여하고 돌아갈 거다.”
지휘관이 누군지 몰라도, 마음에 든다.
논공행상보다 먼저, 아니 그 무엇보다 먼저 죽은 이를 위한 추모식을 한다.
죽은 사람은 많았다.
다친 사람도 많았다.
그 숫자에 굳이 연연하지 않았다.
끝난 싸움이다.
이미 지나간 일에 화를 내고, 슬퍼할 순 없다.
“소위 김택동은 특진, 소령에 임명하며….”
마지막 영웅의 이름이 들렸다.
“들었지?”
인준이었다.
왼팔이 잘릴 뻔했다고 들었다.
거기에 붕대를 칭칭 동여매고 그도 왔다.
택동이 골에 올라간 것을 본 인준이다.
물론 그 외에도 본 사람은 많았다.
골에 폭탄을 안고 들어간 미친놈.
“정상이 아냐.”
“덕분에 죽였잖아요.”
절뚝거리며 목발을 짚은 유진이다.
남은 팔로 우산을 든 인준이 그의 옆에 선다.
그래. 덕분이다.
하늘의 폭격도, 미사일 다발도, 프로비던스의 도움을 받은 반세주도 못한 짓을 했다.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모두 경례.”
착!
의장대와 많은 이들이 손을 반듯이 펴 눈썹 끝에 댄다.
비 오는 날, 전장이 끝난 지 일주일 만에 이뤄진 합동 추모식이었다.
굳이 오와 열을 갖추며 죽은 이들을 보내진 않았다.
누군가는 진흙에 앉아 오열했고.
누군가는 소리를 질렀다.
또 누군가는 그저 고개를 숙였다.
아무렇게나 서서, 앉아서, 엎드려 이뤄진 추모식이다.
질서는 없되 마음은 남았다.
추모, 죽은 사람을 그리는 일.
그것에 충실한 행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