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48. 뚫는 건, 드릴만한 공구가 없다
‘사기야.’
-응. 인정. 나도 저런 놈이 나올 줄은 몰랐네.
몇 가지 사실을 정리하니 해야 할 일이 명확해진다.
일단 24시간의 제한.
-그 이후에 등에 꽂힌 보라색 빨대 뽑고 진출한다는 거지.
정답.
‘그리고 놈은 가까이만 가도 사람 따위는 후하고 불어 죽일 기술이 있고.’
-에너지를 아주 잘게 쪼개서 사람의 몸을 급속도로 파괴해. 일종의 독이라고 생각하면 편하지.
‘거기에 하나 더 있잖아.’
-있지. 하얀 방패. 근거리에서 커버링이 씌워진 벼락의 총알을 막는 강도를 지녔고 스캐닝해보니까 어지간한 칼날도 다 막겠더라. 자동으로 공격을 감지, 모든 걸 막아내는 방패야.
완벽하다.
완벽한 사기 캐릭터의 등장이다.
이 세상이 게임이고 신이 그 게임을 만든 창조주라면.
치트며, 에디터를 써서 몽땅 몰아 준 개새끼.
그게 비트레이어, 마상길이다.
인류를 배신한 인간에게 제대로 몰아줬다.
‘타이머 띄워라.’
남은 시간 11시간 28분.
싸움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작전을 위해 싸우던 이들은 퇴각을 준비했다.
하얀 눈 놈들은 세주를 경계해서 골의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데몬플라이 위에서 지켜만 본다.
대신 레이퍼와 브레인 레이퍼 놈들이 이들을 공격했다.
‘사상자 숫자는?’
-형이 거기에 책임을 느낄 필요는 없어.
‘이제는 내 멘탈까지 챙겨주는 거냐?’
-아니, 사실만 말할 뿐이야.
‘말해.’
-사망, 128명. 중상 166명. 경상 588명.
시발, 많이도 죽었다.
-그나마 형이 마지막 합류해서 브레인 레이퍼 숫자가 줄었어.
뒤쪽에 자리 잡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대로 전장에 합류, 벼락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래도 피해는 어쩔 수 없었다.
“후.”
전장에 합류하고 처음 듣는 숫자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나마 앞에서 싸우는 척만 하고 빠져서 이 정도다.
전력 차는 명백했다.
“어이, 수호신 늦었다?”
싸우고 돌아가는 길이다.
“수호신.”
“반세주.”
“대위님.”
그를 부르는 이들.
세주는 걸음을 빨리했다.
부리나케 부대로 돌아왔다.
아직 녹색 체액도 다 닦지 않고 달려오는 치용이 보였다.
“그 새끼 잡으러 언제 갑니까?”
주변에 보는 눈이 많았다.
“들어가.”
막사로 향했다.
씩씩거리는 김치용과 둘을 보고 세주가 입을 열었다.
“안 가.”
“…뭐라고 하는 거요? 형님.”
화르륵.
치용의 눈이 타오른다.
진짜 불꽃을 머금은 것 같다.
“안 간다고.”
“왜?”
터지려는 치용을 두고 인준이 나섰다.
“가면 죽일 수 있어?”
“그래서 안 간다고?”
“응. 안 가.”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저기, 형님?”
유진조차도 어리둥절한 얼굴이다.
“우리는 내일부터 지상에 있는 레이퍼와 브레인 레이퍼 놈들을 죽인다.”
“전 마상길 잡으러 갑니다.”
“가면 개죽음이야.”
“아, 시발. 그렇다고 그냥 놔둘 수 없잖소?”
-어쭈. 저 새끼 욕했다. 형.
“안 간다고 했지. 놔둔다고는 안 했다. 김치용. 직급 때문에 내 말을 듣는 거라면 꺼져라. 너희 둘도 마찬가지다. 믿지 못하면 꺼져라. 그게 아니라면 닥치고 따라와.”
기분이 더럽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러니까, 찡얼대지 말고 닥치고 따르든지.
아니면 꺼져라.
지금 셋을 달래면서 할 시간도 그럴 여력도 없다.
잠깐의 정적이 넷 사이를 흘렀다.
꾸벅!
치용이 고개를 푹 숙인다.
“실수했슴다.”
“저도요.”
“말해. 우리가 뭘 해야 해?”
“말했잖아. 지상 조져. 하얀 눈이 내려오지 않고, 그 개자식이 위에서 구경만 한다면.”
전력 차는 여기서 줄인다. 세주가 직접 가르친 셋이 활약할 거다.
신에게 치트키를 받은 건 그 새끼만은 아니다.
‘브로.’
-준비 완료.
짧은 휴식이었다. 재정비를 하고 1시간도 되지 않아 다시 출전 명령이 떨어졌다.
“어떻게 할 거냐?”
절뚝거리며 고명수가 다가왔다.
“벌써 움직입니까?”
안생이 하얗게 질렸다.
허벅지부터 절단한 부위가 보였다.
“놈에게 다시 가려면 조심해라. 닿는 순간 끝이야.”
기껏 조언해주러 온 고명수를 보며 세주는 자신의 벼락을 챙겼다.
철컥.
어깨에 멘 채 몸을 일으킨다.
“안 갑니다.”
당연히 세주가 다시 갈 줄 알았었다.
고명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어떤 알파팀도 놈을 죽일 순 없다.”
경험한 사실로 그도 아는 거다.
놈은 현재 인간이 죽일 수 없는 존재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려와 전장에서 수호신이라 불리는 놈뿐이었다.
항상 기대 이상의 힘을 보이는 이였다.
그런데.
“안 간다고?”
“안 갑니다.”
말과 함께 세주가 전장을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
24시간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고명수에게 적에 대해 들었다.
그 시간 이후에 놈이 전장에 출현한다는 추측은 당연했다.
“기다릴 시간은 없다.”
총지휘관, 강대총은 전군 출정을 다시 명했다.
되든 안 되든 여기서 싸워야 했다.
군인은 죽을 때 죽더라도.
지키는 자들이다.
그리고 지금은 싸울 때였다.
군이 다시 출전하는 걸 지켜본 세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휘관이 머리는 쓸 줄 아네.’
멍청이들만 있는 군대였다면 이대로 지켜보자는 말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행이지.
맞는 말이다.
철컥.
평소의 전면 저격탑이 아니다.
최후방에 있는 저격탑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스코프와 거리를 가늠한다.
‘에너스 스위쳐 효율은?’
-한 번도 안 써봤지? 일단 1,000 변환해줄게.
어깨를 타고, 에너지가 넘어와 노블 패스에 안착한다.
거부반응 하나 없이 부드럽다.
그리고 그 양을 느낀 세주가 말했다.
‘진짜, 개미 똥만큼도 안 주네.’
효율성이 극악이다.
하얀 눈이 있는 곳을 슬쩍 본다.
저놈들을 잡으면 딱 좋은데.
에너지 덩어리들.
그런데 내려오지 않는다.
배리어에 숨어서 구경만 하는 놈들.
-어쩔 수 없지.
‘그래. 질보다 양으로 간다.’
그 대신이다.
밑에 수두룩 빽빽 깔린 레이퍼 놈들이 있다.
남은 시간, 8시간 10분.
군이 움직이고 전장에 나서는 데만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시작하자.’
일단은 에너지 축적부터.
꽝!
군과 군이 만나기도 전이었다.
벼락이 전장에 내리쳤다.
*
“수호신이다!”
꽝!
자신 앞에 폭음이 터지는 데도 꿈쩍도 하지 않고 환호를 지른다.
그게 반세주가 이 전장에서 끼치는 힘이다.
“시작했네.”
치용이다.
저 멀리 푸른빛이 번쩍이고 레이퍼 무리가 일부가 부서지는 걸 본 뒤다.
“가자.”
인준이 나섰다.
세주에게 오늘 이들이 들은 말은 하나다.
“후, 그럼. 가죠.”
“가자. 다 죽여 버리러.”
최대한 많이, 놈들의 씨를 말려 버려라.
각 전장에서 싸움이 시작되고.
세주는 가진 탄과 노블 에너지를 아끼지 않고 썼다.
꽝!
그 결과, 한순간 레이퍼 놈들을 밀어낸다.
곳곳에서 활약하는 알파 팀 인원과 치용 들도 있다.
잠시의 틈.
세주의 총구가 위로 들렸다.
스코프를 조절한다.
-알지?
‘알아.’
이건 실험이다.
적에게 너무 경각심을 일게 해서는 안 된다.
위이잉.
노블 에너지를 돌린다.
커버링 기술 중 처음 배운 게 ‘전이’.
그리고 2단계 기술인 ‘양도’.
전이는 그저 노블 에너지를 실처럼 탄환에 감싸게 하는 게 한계다.
하지만 양도는 거기에 주문을 추가할 수 있었다.
‘돌아라.’
탄환의 앞쪽에 에너지를 모은다.
뭉친 에너지를 뾰족하게 만들고, 회전을 입력한다.
콰드드드드.
총열이 떨렸다.
쏘기도 전인데, 미친 듯이 총열이 흔들린다.
‘풀 업.’
에너지를 끌어올려 그 진동을 힘으로 누른다.
그리고 조준.
-지금.
발사.
꽝!
단순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드릴은 본래 무언가를 뚫는데, 특화된 공구다.
커버링 2단계 양도로 만든, 오리지널 기술이다.
스파이럴.
드릴처럼 회전하는 탄환이다.
배리어를 향해 푸른빛이 날고.
그대로 부딪힌다.
꽝!
콰드드득!
-뚫었어.
배리어를 뚫고 날아가는 총탄이다.
노린 건 당연하게도 비트레이어, 마상길이다.
팅!
배리어를 뚫고 힘이 빠진 탄환이 놈이 가진 하얀 방패에 막혔다.
-반응한다.
프로비던스도 놈이 가진 방패의 기능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가령.
‘어느 정도 거리에서 온 공격에 반응하는가?’
놈의 방패는 ‘접근한 공격’에 반응하는 게 아니다.
-공격이 시작된 지점을 파악, 그걸 예상해서 미리 움직이는 거야.
그러니까 일정 지역 이상에서 자신에게 쏘아지거나 날아오는 공격을 감지하는 종류라는 거지.
그 말인즉슨.
‘더 뒤로 가자.’
거리가 멀어지면 감지가 되지 않는다는 거다.
벼락을 들었다.
그리고 뒤로 뛰었다.
남은 시간 5시간 2분.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그보다 더 뒤로 물러난 세주는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배리어를 뚫고, 놈을 향해 탄환을 쏘는 거다.
거리는 조금씩 늘어났다.
3km, 4km.
그래도 놈의 방패는 반응했다.
-진짜 사기네.
프로비던스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아니, 혀가 없으니까 그냥 렌즈의 빛을 번쩍하고 뿜는다.
결국 물러나다 못해 병원까지 왔다.
불안해하는 의사와 환자들이 보인다.
혼자서 벼락을 들고 온 세주를 보고 누군가 물었다.
“졌나요?”
강슬이다.
“졌으면 좋겠습니까?”
힘 빠지는 질문이다.
“아뇨. 졌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뺨이라도 때려주려고요.”
이 여자가.
“안 졌습니다. 이길 겁니다.”
“다행이네요. 저도 총을 잡고 나서야 하나 했네요.”
강단도 좋으시네.
“아직은 총 대신 주사기를 잡을 시간입니다.”
그리고 단숨에 옥상으로 올라갔다.
“반세주.”
누군가의 목소리가 다시 그를 붙잡는다.
바쁘다. 그만 좀 잡아라.
하고 돌아보니.
“김택동 소위?”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건지.
머리 한쪽, 왼쪽 눈을 가리며 붕대를 칭칭 감고 있다.
오른손에는 손가락이 두 개 밖에 안 남았으며.
왼쪽 다리는 정강이부터 잘렸다.
나노킷이 아무리 대단해도 ‘재생’을 해주지는 않는다.
그는 불구가 됐다.
“전방 상황은?”
이 상황에서도 그는 꿋꿋했다.
“한창 싸우는 중.”
비상구 계단 앞이었다.
세주가 출입문을 열었다.
엘리베이터보다 뛰는 게 빠르다.
괜히 사람들 눈에 띄지도 않고.
“그래, 그렇군.”
그가 뒤에서 중얼거리는 게 보였다.
프로비던스가 렌즈에서 빛을 뿌린다.
-저 악마 소위.
‘왜?’
-왜 반말이야? 대위한테.
‘끝나고 따져.’
지금은 바쁘다.
더는 그를 잡는 사람이 없었다.
병원 옥상을 향해 냅다 달렸다.
시간은 아직 적의 편이었다.
*
덜컹.
비상구 문이 닫힌다.
그걸 보며 김택동은 몸을 돌렸다.
절뚝이는 그는 병원을 나왔다.
붙잡는 사람은 없었다.
화기를 챙기는데 막는 사람이 없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릴 판이라는 거다.
“싸울 겁니까?”
그나마 보급소에 장교가 물었다.
“그럼? 구경하다 그냥 죽길 바랍니까? 난 적어도 지는 편에 서기 위해 싸워온 게 아닙니다.”
김택동은 말하고 나섰다.
‘난 지는 편에 서지 않는다.’
비트레이어에 대한 소문은 이미 군내에 파다했다.
인간이면서 외계인의 편에 선 존재.
‘그게 가능해?’
놈들은 끊임없이 몰아쳐 오는 파도다.
그리고 인간은 댐을 쌓아 물길은 막아도.
해일을 막을 순 없다.
태어나 지금까지, 항상 이기는 삶을 갈구했다.
알파 팀에 들어갈 수 없을 때, 절망을 맛봤다.
그놈들의 콧대를 꺾어 주리라 결심했다.
그래서 반세주를 보고 그의 비밀을 알고 싶었다.
어떤 인간도 저렇게 강할 순 없다.
그게 김택동의 결론이다.
*
팅.
날아오는 총알에 마상길은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이 개새끼가.”
장난질도 정도껏 이다.
배리어를 뚫고 온 총알이 다시 자신의 방패에 막힌다.
팅.
벌써 다섯 발째.
“으으으으.”
본래 참을성이 많지 않았다.
인간일 때도, 그는 기다리는 게 질색이었다.
깨어나자마자 하루를 꼬박 기다려야 하니.
“그래 조금만 기다려라.”
반세주란 놈, 그리고 김치용.
전부 머리뼈까지 씹어 삼켜 주리라.
툭.
그리고 무언가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맞췄다.
왼팔 앞에 떠 있는 방패가 반응하지 않았다.
자신을 개조한 이들은 머릿속에 정보를 심었다.
무기와 방패, 해야 할 일까지.
그리고 이 방패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막는다.
그래도 신경 쓰지 않았다.
부딪친 건 힘이 빠진 탄환이다.
자신의 몸에 피해는커녕, 맞는 느낌조차 희미한 쇳조각일 뿐이다.
그는 어서 시간이 가길 기다릴 뿐이었다.
남은 시간 22분.
마지막 카운트다운이 고작 22분을 남겨둔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