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47. 저 새끼, 저거 사기 아냐?
폭발이 일어나고, 수류탄 파편과 연기 속에서 눈을 빛낸다.
“염병할 새끼가!!!”
흥분한 치용의 뒷덜미를 잡아 던지고.
고명수에게 향한다.
-도망가.
프로비던스가 칼큐레이팅 모드를 돌렸다.
눈앞이 붉다.
아니, 눈앞이 문제가 아니라 주변이 온통 붉은빛이다.
‘뭔데?’
-붉은 원 안에 있으면. 사망률 100%
붉은 원?
뒤로 고개를 돌리자, 붉은색이 아닌 평소와 같은 색을 가진 바깥이 보인다.
“물러나!”
세주의 말에 인준과 치용, 유진이 뒤로 물러난다.
치용이 이를 갈았지만.
“내 말 안 들을 거냐?”
세주의 한 마디에 이성을 찾는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무엇이 저 자식을 저렇게 흥분하게 했는지.
“물러난다!”
“안 돼!”
고명수가 앞에 있다.
알파팀 셋이 앞으로 내달렸다.
자신의 대장을 구하기 위해서다.
놔둘 순 없다.
세주도 반사적으로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붉은빛이 도는 원 안이다.
총알이 날아와도 죽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레이퍼 100마리에게 둘러싸여도 이런 살상범위는 말이 안 된다.
뭐냐? 무슨 짓을 하기에 이런 게 가능하다는 거냐?
붉은빛이 진해진다 싶을 때다.
“너희는 영혼의 존재를 믿나?”
연기 사이로 목소리가 들린다.
좋다. 차라리 개소리를 지껄여라.
그사이 부대원들 데리고 피하면 된다.
-도망가라고 해도 말 안 듣겠지?
사람이 눈앞에서 죽는 걸 구경할 순 없다.
‘응.’
-형은 꼴통이야.
“대장님!”
앞에서 부르짖는 소리가 들린다.
-눈.
눈에 커버링.
푸른빛이 몰린 순간.
펑 하고 흰빛이 앞에서 터졌다.
“도…망가!”
고명수의 외침이 들린다.
그리고.
파스스슥.
달려들던 셋이 바닥으로 무너진다.
회색빛으로 변하더니 그대로 모래처럼 사라진다.
‘벼락.’
흰빛이 몰려온다.
오기 전에 죽인다.
우웅.
에너지를 한껏 모아서 집중하자.
마상길, 그놈이 눈을 돌렸다.
“너구나. 저격수.”
순간 퍼지던 흰빛이 멈췄다.
-불길함을 넘어서 최악의 시나리오네.
“만나서 반갑다 개자식아.”
인사를 건네고 검지를 뒤로 당긴다.
꽝!
벼락이 울린다.
꽝!
두 번.
흰색의 방패가 보인다.
둥근 타원형이다.
“그 정도 에너지로는 어림도 없다.”
근거리에서 벼락을 막아?
막은 정도가 아니다.
흰 방패의 겉면이 보였다.
겨우 그을린 수준이다.
“저 새끼, 저거 사기 아냐?”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자.
“애초에, 지는 싸움을 시작한 거다. 인간들은.”
“형님!”
뒤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세주가 가진 대인살상기 중 가장 강력한 걸 꼽으라면.
커버링 탄환과 벼락이다.
그리고 지금 그게 코앞에서 막혔다.
흰빛이 다시 퍼진다.
이번에는 범위가 넓다.
붉은빛이 진해진다.
알파팀 셋은 이미 죽었다.
꽝! 꽝! 꽝!
세주는 말 없이 벼락의 방아쇠를 세 번 당겼다.
여전히 놈의 방패가 움직인다.
‘스캐닝.’
-하고 있어.
정보다.
이 싸움은 저놈을 죽이기 위한 거고, 이번에는 실패다.
셋이 눈앞에서 죽었다.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아야 한다.
최대한 많은 걸 알아내서 다음에는 죽인다.
-저 방패 공격해오는 모든 걸 감지하는 종류야. 오토 쉴드라고 봐야겠어.
총알로는 무리라는 소리다.
흰빛이 퍼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고명수가 급히 뒤로 달렸다.
수류탄을 까서 던졌지만.
방패는커녕 흰빛에 닿더니 그대로 가루가 돼서 흩어진다.
“도망가 봐라.”
마상길이 웃었다.
악마 소위 웃음이랑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재수가 없다.
꽝!
반사적으로 놈의 얼굴에 총알을 날리자, 방패가 슉하고 날아와 막는다.
“바보구나. 나에게는 통하지….”
꽝!
다시 쏜다.
뒤로 달리면서 계속 얼굴을 겨눈 총구다.
“하하하. 멍청하기가 김치….”
꽝!
말을 할 때마다 폭음에 말문이 막힌다.
“이 새끼가….”
꽝!
-정신적 데미지가 쌓이겠어.
“너 이노오오오….”
꽝!
“시끄러워 죽겠네. 치용아. 저 새끼는 원래 저리 말이 많냐?”
“퉤. 네. 원래부터 그랬습죠. 아주 입만 산 개새낍니다.”
붉은빛 원을 거의 빠져나갈 때쯤.
마상길 놈이 입을 다물었다.
놈은 더 다가오지 않았다.
-뒤에 꽂힌 호스, 골과 떨어질 수 없는 거야.
세주가 먼저 나오고, 고명수가 나오던 찰나.
번쩍!
빛이 주변을 휩쓸었다.
그리고.
“으억.”
비명을 지르며 고명수가 앞으로 구른다.
“유진, 대장 확보.”
“네.”
유진이 달려와 나노킷 빛을 뿌리며 그를 둘러업는다.
“치용, 인준 퇴로 열어.”
“그냥 갑니까?”
“응. 튄다. 저 새끼. 사기야. 저 빛에 닿으면 그냥 즉사다.”
가지고 논거다.
억지로 고명수의 다리 하나만을 노리고 빛을 뿌렸다.
그 이전에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다.
시발, 변태 새끼.
씌익.
그 와중에 놈이 웃는 얼굴이 보인다.
꽝!
벼락이 불을 뿜었다.
꽝!
방패에 막혔지만.
“웃는 얼굴이 내가 아는 누구보다 재수 없는 놈은 네가 처음이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너 꼭 죽인다.”
세주도 말하고 뒤로 몸을 돌렸다.
방패가 밑으로 내려가며.
“다시 여기까지 올 수 있을 것….”
꽝! 꽝!
방패가 다시 그의 주둥이를 틀어막았다.
“입 냄새나 자식아. 닥치고 있어.”
그리고 냅다 튀었다.
혼자 남은 마상길이 부들부들 떨었다.
“이런 개자식이!”
그냥 죽일 걸 그랬다. 농락하려다가 역으로 당한 기분이다.
으득으득.
주먹이 절로 쥐어지고, 머리 위로 열기가 올라온다.
말 잘하는 놈은 많이 봤지만.
이렇게 열 받게 하는 재주가 용한 놈은 처음이다.
“으아아아아아!”
고함을 지르지만, 이미 적들은 물러난 뒤였다.
한 마디도 받아쳐 주지 못했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래도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프로비던스의 추측이 맞았다.
골 없이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저 새끼들. 잡아 죽여.”
정신으로 연결된 하얀 눈에게 말하자.
레이퍼 부대 한 무리가 그들의 퇴로를 막는다.
“잡으면 죽이지 말고 데려와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몽땅 씹어 먹어 주리라.
아니, 죽기 전까지 놈의 코에 입을 대고 온종일 떠들어 주리라.
*
“아따. 고놈들! 살벌하게 오는구나!”
치용이 앞으로 내달린다.
그 앞.
끼에에에엑!
레이퍼 무리가 달려들었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이 다섯을 죽이기 위해 무지막지하게 달려든다.
끼에에엑!
철컥.
세주가 준 아머는 훌륭하다.
꽝!
무지막지한 샷건의 반동을 잡아주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
뒤로 밀리는 몸이 덜컥하고 멈췄다.
퍽!
앞에서 내달리던 레이퍼 한 마리의 반신이 박살 난다.
일격필살이다.
대신 장탄 수가 열여섯 발이 한계고.
탄창은 열두 개뿐이다.
꽝! 꽝!
아낌없이 방아쇠를 당기고.
오른손으로 허벅지 부근을 쓰다듬었다.
그냥 튼튼하기만 한 아머가 아니었다.
“얍, 파워업.”
꽈드득.
중얼거린 것과 같이 아머가 근육에 밀착되며 한 몸처럼 움직인다.
거기에 흐르는 커버링 기술을 응용.
풀 업이다.
아머 사이사이 푸른빛이 연기처럼 흘러나온다.
스릉.
정글도를 뽑는 치용이다.
“놀아보자. 개새끼들아.”
왼손에 샷건 오른손에 정글도.
일기당천, 늘어난 힘으로 바닥을 박찬다.
꽝!
바닥이 움푹 패였다.
인준은 놈들을 마주치자마자 파워업을 사용했다.
치용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그가 전신에 힘을 보조하는 방식이라면.
그는 달랐다.
꾸구국.
아머의 양어깨가 부풀어 오른다.
동시에 노블 에너지를 컨트롤한다.
오버 피지컬.
인준의 오리지널 기술이다.
툭.
양손에 백린탄 하나씩.
그리고 부푼 어깨로 힘껏 던진다.
쌔애애액!
가까이 있는 적은 알 바 아니다.
그건 치용과 유진이 알아서 하는 거고.
저 뒤, 뭉쳐서 오는 놈들.
그게 인준의 몫이다.
펑! 펑!
하늘에서 백린탄이 터진다.
허공에서 터진 흰 연기가 밑으로 흐르자.
끼에에엑!
레이퍼 무리 한가운데에 폭격이 떨어진 것처럼 놈들을 태운다.
개량 된 수류탄이다.
미친 듯이 쉼 없이, 던졌다.
전처럼 몇 개만 들고 온 게 아니다.
가져올 수 있을 만큼 가득 가져왔다.
“다 뒈져라.”
죽이고 또 죽인다.
그게 이 전장에서 그들이 할 일이다.
단순하고 명쾌해서 편하다.
반면에 한 명은 바빴다.
둘 보다 배는 바빴다.
“아이고.”
푹!
인젝션 건.
권총 형태였던 걸 서브머신 건 형태로 바꿔줬다.
‘이디엇 이란 놈 대단한데.’
세주가 직접 한 건 아니다.
그의 비밀이 궁금하긴 하지만 캐낼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 이디엇 이란 자에게 감사 인사는 하고 싶을 정도다.
이전에는 약이 든 주사기를 꽂아서 쏘는 형태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과 비교해서 조잡하다.
비교하자니 그건 어릴 때 만든 고무줄 나무총 수준이다.
지금은 달랐다.
퓨뷰뷰ㅤㅂㅠㄱ!
연사와 점사, 단발 사격까지 자유롭다.
빈 캡슐 형태의 탄환이다.
장전하면 자동으로 제조한 약이 흘러간다.
그 약도 업그레이드됐다.
푹!
꽂히지 마자 레이퍼 놈이 회색빛이 된다.
끼에에엑!
유진이 주로 노리는 건, 치용의 뒤와 인준의 곁이다.
어쩌다 보니 그들의 포지션이 이렇게 굳었다.
치용은 근거리에서 싸우고 인준은 원거리를 노린다.
그리고 유진은 둘을 지킨다.
철컥.
탄창을 간다.
카트리지 형식의 탄창에 잉크처럼 찰랑거리는 액체다.
“으으으.”
등에 둘러업고 끈으로 묶어둔 고명수다.
운신이 자유롭지 못하니.
간간이 빈틈이 생긴다.
콰직!
그 틈 한 마리가 치용의 등을 노리고 칼날 다리를 뻗는다.
하지만 아머를 뚫지 못했다.
한 번은 괜찮지만, 중첩되면 위험했다.
“헹! 또 해 봐라!”
놈의 머리가 정글도에 반으로 갈라진다.
‘피해가 누적되면 안 돼.’
어쩔 수 없다.
둘과 마찬가지로 유진도 나름 노블 에너지 컨트롤에 신경 썼다.
세주만큼이나 민감한 그이기에.
‘센스 업.’
아머를 이용한 버프, 둘과는 달랐다.
훅.
감각이 확장된다.
기묘한 경험이다.
주변 사물이 예민한 그의 감각에 잡힌다.
푹! 푹!
그 뒤부터는 더 빠르고 간결한 사격이다.
유진과 인준을 지키면 된다.
그러면 돌파는 무리 없다.
점점 포위망이 옅어져 갔다.
-나설 일도 없겠다.
프로비던스의 말이 맞다.
셋이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해 먹는다.
‘이 새끼들이.’
너무 잘 가르쳐 놨다.
고명수가 숨을 헐떡인다. 당장 죽을 것 같진 않다.
잘 싸우는 셋을 보며 벼락을 든다.
꽝!
이곳에 나타난 유일한 하얀 눈.
머리 위에 데몬플라이에 타고 있다.
놈을 노린 탄환이다.
하지만.
이 교묘한 새끼.
쩡!
배리어를 경계로 그 바깥이다.
골의 배리어가 뚫리지 않는다.
“강행 돌파하자.”
고명수라는 짐이 있음에도.
넷의 화력은 막강했다.
하얀 눈을 무시하고 셋 사이에 끼어든 세주가 벼락 대신 로켓 리볼버를 꺼냈다.
땅. 슈우웅.
꽈앙!
파괴력이 일품이다.
백린탄이 떨어지지 않은 먼 거리.
폭발이 일어났다.
“쳇.”
그런 세주를 보고 인준이 혀를 찼다.
뭐 인마.
“빠져나간다.”
셋은 그대로 적군의 포위를 돌파했다.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자 놈들은 쫓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부대 안으로 오자마자.
“고명수 대장 병원에 넣어둬.”
“어디 가십니까?”
다시 몸을 돌린 세주다.
지쳐서 숨을 헐떡이는 셋이다.
“아직 싸우는 중이잖아.”
눈길을 끌기 위해 붙은 전투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브로, 에너지 한 번 제대로 모아보자.’
-오케이.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것도 많이. 아주 많이.
그래야.
‘저 개자식을 잡아 죽이지.’
일정거리 이상 다가갈 수 없다.
그렇다고 저격도 불가능하다.
움직이는 방패는 근거리 벼락의 총알까지 막아낸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간다.”
말과 함께 세주가 다시 땅을 박찼다.
전장을 향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