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46화 (46/206)

#  46

46. 작전명 등 뒤의 비수

지휘관이라면 당연히 선택해야 할 순간이 오는 법이다.

더구나 이런 상황이라면.

“24시간 이내에 올 수 있는 병력 다 끌어모아.”

죽든 살든, 싸울 순간이었다.

별 네 개를 단 대장, 최고 지휘관 강대총은 24시간을 허투루 쓸 생각이 없었다.

“우리가 먼저 친다.”

레이퍼가 달려들지 않음에도 그렇게 인간이 먼저 놈들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었다.

*

전차가 앞을 채우며 달린다.

일정 거리에 다다르자.

“발사.”

꽈과과과과광!

포탄이 전면을 수놓는다.

퍼버버버버벙!

피해를 입는 범위가 명확했다.

골의 배리어 바깥쪽.

놈들은 덤비지 않고, 뒤쪽으로 물러났다.

“좋아!”

전차를 몰던 이가 외쳤다.

덤비지 않는다면, 폭격을 행할 수 있는 인간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위에는 전투기 밑에는 전차.

폭격으로 압도하리라.

꽝! 꽝!

사방에서 포탄이 날았다.

보병은 출전하지도 않았다.

맥없이 목숨을 날릴 일도 없을뿐더러.

이런 전선에 나설 이도 드물다.

배리어를 폭격이 때린다.

육각형 패널이 공격당할 때마다 허공에 반투명한 모습을 보였다.

지휘관은 단순하게 생각했다.

어떤 방어막도 내구도가 있는 법이라고.

아무리 단단한 벽도 언젠가 무너지는 법이라고!

그래서 무차별적인 폭격을 퍼부었고.

그 결과.

“신이시여.”

배리어는 여전했고, 금조차 가지 않았다.

아니, 미약한 흔들림도 없다.

[도전이냐?]

그리고 1차 폭격이 끝나고 들리는 목소리.

[죽으러 와줬으면, 답해줘야지]

끼에에에엑!

놈의 말이 끝남과 동시다.

레이퍼가 몰려왔다.

“물러나!”

끼에에엑!

1차 전투.

사상자 48명.

부상자 125명.

레이퍼는 어느 정도 쫓다가 물러났다.

강대총 대장은 여기서 한 가지 꼼수를 써야 했다.

정면 돌파도 좋지만.

현재 부대 내에 막강한 전력이 있었다.

거기에 적군에는 명백히 지휘관으로 보이는 놈이 있었고.

“어떤가?”

고명수가 망원경에서 눈을 뗐다.

“저놈만 잡으면 이 전쟁이 끝날 거라고 봅니까?”

“그게 아니라도 가치가 있다고 본다.”

멈춘 레이퍼 부대.

그리고 거대한 괴물, 그사이에 나타난 인간의 언어를 쓰는 작은 괴물.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사건이 연속으로 일어나니 오히려 무뎌진다.

하얀 눈 한 놈도 못 잡아서 끙끙대던 그들이다.

그런데 그런 놈들이 오십 마리.

그것도 데몬 플라이 위에 타고 있다.

한 번씩 거대한 괴물 주위를 오가는 게 보일 때면 소름이 돋았다.

고명수는 알았다.

이 전쟁은 졌다.

지금 강대총이 하는 건, 발악이었다.

죽기 전에 한 방이라도 먹이는.

마지막 발악.

그걸 알면서도 고명수는 동의했다.

“반세주, 수호신을 붙여주십시오.”

“좋다.”

강대총이 허락이 떨어졌고.

고명수는 곧바로 팀을 꾸렸다.

*

작전명 ‘등 뒤의 비수’.

대장에 고명수.

그리고 알파팀 인원 다섯이 붙었다.

김후경과 장광안이 아닌 새로운 이들이었다.

“잘 부탁한다.”

모두 적당히 예의가 있었고, 실력도 있었다.

긴 칼을 든 이가 둘이었고.

묵직한 쇠 봉을 든 이가 셋이었다.

“아무래도 접근전이 승산이 있다고 본다. 미사일까지 먹히지 않는 놈이니까.”

모두의 앞에서 고명수가 입을 연다.

“타겟의 타입은 브레인 레이퍼 형태. 말을 할 줄 아는 신형이며, 네임드 이름은 ‘비트레이어’다.”

이름 하나는 잘 지었다.

이곳에 합류하기 반나절 전.

치용에게 마상길이란 놈에 대해 듣고 온 참이다.

“그냥 개새낍니다.”

“어떤?”

“형님 등, 친구 등에 아낌없이 칼을 꽂고, 돈이면 다하는, 그런 개새끼.”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도 치용이 말한 건 저게 전부였다.

“그 둘은 빠진 겁니까?”

인준이 어울리지 않는 질문을 던졌다.

“장광안과 김후경은 다른 작전 수행 중이다.”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모르지만 고명수가 대답했고.

인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은 단순하다. 최대한 적의 눈을 피해 뒤로 돌아, 비트레이어를 죽인다.”

될까?

일단 놈의 위치가 안 좋다.

골의 위에 왕좌를 만들어서 앉아 있다.

그곳까지 올라가는 것도 문제일뿐더러.

거기까지 가는 길에 막는 무수히 많은 장애물.

“근접거리에서는 둘이 시선을 끈다. 나머지 인원이 위로 오를 거고. 우리가 출발하면 아군이 앞쪽에서 놈들과 전투를 시작한다.”

또 희생이 발생할 거다. 하지만 작전으로서는 훌륭하다.

성동격서다.

앞에서 시선을 끌고 뒤를 친다.

세주의 전우조 총 넷.

그리고 알파 팀 여섯.

열 명으로 이뤄진 팀이다.

‘승산 있다고 봐?’

-형은?

‘배리어 안쪽으로만 간다면.’

한 방만 먹일 수 있다면.

에너지를 담은 칼날 한 방이면 된다.

그럼 승산이 있다.

아니, 시도할 가치가 있다.

브레인 레이퍼도 하얀 눈도, 배리어가 있었다.

그리고 놈들은 둘 다 에너지가 담긴 냉병기에 약했다.

-당연한 논리지. 그래서 더 불안하고.

‘야, 넌 내 멘탈을 잡아줘야지. 네가 불안하면 어떻게 하냐?’

-아, 불안한데 어쩌라고.

‘미친 기계 새끼.’

넷이 입은 아머를 보고 알파 중 하나가 다가왔다.

“중위 박기수입니다.”

싹싹하게 다가오는 것도 그렇고 사교성이 좋은 인상이다.

그는 유진과 말을 나누며 금세 친해졌다.

“그 아머는 누가 만든 거야?”

그가 유진을 붙들고 입을 연다.

넷만 다른 아머를 입고 있다.

형태가 비슷한 네 개의 아머.

누구라도 한 사람의 손을 거친 물건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게 사람이 아니라 기계 놈이 만든 거라는 것만 다를 뿐.

같은 공정을 거친 건 맞다.

“으음.”

유진이 대답을 피했다.

곤란한 질문이다.

“중위.”

“네.”

세주의 직급은 대위다.

-단춧구멍하고 웅녀, 형 보기 싫어서 빠진 거 아냐?

‘설마.’

그러겠나 싶다.

“이 아머를 만든 사람은 익명을 쓴다. 우리도 찾을 수 없고.”

“아, 그렇습니까?”

꽤 부러운 눈치다.

알파 팀도 남들과 다른 고가의 아머를 입지만.

한눈에 세주와 일행이 입은 아머의 가치를 알아챘다.

눈썰미가 좋은 녀석이다.

“만든 이의 이름은 이디엇.”

“…이디엇 말입니까?”

“IDIOT. 이디엇 맞다.”

“특이한 이름입니다.”

“본인이 그 이름만을 고집하니, 어쩔 수 없지.”

-죽을래?

‘응? 왜?’

-이디엇?

‘아 들었어? 신경 쓰지 마. 그냥 하는 말이야.’

프로비던스의 지랄을 한 귀로 흘리니.

어느새 레이퍼 무리가 보이는 곳이다.

그리고 맞은 편 아군의 병력이 모여 있다.

“둘만으로 시선을 끌 수 있습니까?”

잘못하면 그냥 먹이를 던져주는 꼴이다.

“둘이면 충분해.”

고명수가 답했다.

칼을 든 두 명의 알파 팀이 남았다.

로켓 런쳐를 들고 온 둘이다.

“우리는 배후로 간다.”

고명수와 다른 일행이 뱅 둘러가는 동안이다.

꽈과광!

멀리서 폭음이 들렸다.

1차 시선 끌기는 대규모 전투다.

골의 배리어 안으로 들어와서 전자기기가 먹통이 된 상태.

수신호가 보이는 위치도 아니다.

모든 작전은 정해진 시각에 이뤄졌다.

고명수가 시계를 확인한다.

전자시계를 먹통으로 만드는 놈 덕분에, 바늘로 가는 시계다.

그것도 오토매틱 시계를 가져왔다.

작전 중에 고가의 시계를 가져와야 하다니, 아이러니다.

폭음이 아련하게 들려올 정도로 멀리 돌아서 뛴다.

펑!

“지금.”

근거리에서 폭음이 들린다. 시선을 끌기 위해 남은 둘의 작품이리라.

곧바로 골의 뒤쪽으로 달렸다.

퉁.

중간에 무언가 앞을 막는다.

-배리어야.

반투명한 육각 패널이다.

부딪힌 부분부터 스르르 보였다가 사라진다.

고명수가 허리춤에 손을 댔다.

짧은 군용 나이프다.

푹!

배리어에 그대로 꽂고.

커거거거거걱!

밑으로 당긴다.

-꽤 하네. 커버링 기술 점수 3점 준다.

프로비던스는 세주 외, 다른 이들이 쓰는 것도 커버링 기술의 일종으로 봤다.

물론 그 효율이나 방식은 어설프고 비효율적이라고 했지만.

“후웁!”

고명수가 호흡을 들이마시고 단숨에 나이프를 그었다.

카가가각!

한 10cm 찢었다.

이렇게 구경하다 날 새겠다.

“비키십시오. 치용.”

고명수게 말하며 세주가 나선다.

뒤에서 치용이 자신의 정글도를 건넨다.

착.

그립감이 좋다.

그대로 위에서 밑으로 긋는다.

순간적인 커버링 운용으로 푸른빛이 번쩍였다.

쩍!

슝! 슝!

크게 세 번 긋자 삼각형의 구멍이 생긴다.

세주의 눈에 배리어가 수복되는 모습이 보였다.

-자가 수복 능력이야.

“들어갑니다.”

주저할 시간은 없었다.

“보면 볼수록 놀랍게 하는 사람이다. 넌.”

고명수가 감탄을 터트린다.

차가운 얼굴로 하는 말이지만, 정말 놀랐다는 게 느껴진다.

“놀랄 시간은 없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그가 앞으로 나갔다.

골의 바로 밑이다.

놈의 배리어는 두 겹이다.

그게 아니라면 진즉에 이곳까지 잠입해서 다 부숴 버렸을 거다.

하나는 겉으로 감싸는 넓은 배리어.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놀라운 기술이야.

프로비던스의 렌즈 빛이 사방을 훑는다.

골의 외갑이다.

달걀의 속껍질 같은 얇은 막이 놈의 몸을 감싸고 있다.

이건, 현재 세주도 가르지 못하는 경도다.

“목표 위치 파악.”

위쪽.

작전은 단순하다.

반쯤은 목숨을 버리고 온 이들이다.

촉수를 잡고 위로 기어오른다.

그리고 바로 놈에게 향한다.

‘자, 가보자.’

촉수를 잡아채고 올라서려는 순간.

눈앞에 스스슥 하고 몇 놈이 튀어나온다.

-호위 병력이다.

‘계산기 돌려.’

칼큐레이팅 모드가 열린다.

앞쪽에 홀로그램 문자가 눈을 어지럽힌다.

나타난 건 셋.

흰 화살표가 눈앞을 가로막았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화살표다.

뭉쳐서 마치 벽처럼 앞을 막는 것처럼 보였다.

-전보다 힘이 강한 놈들이야.

지잉.

가장 선두에 선 세주다.

아군을 등지고 손을 앞으로 내민다.

데저트 이글이 손에 들어온다.

연사로 바꾸고.

곧바로 당긴다.

타다다다다다당!

화살표 전부를 제거할 순 없다.

앞을 막은 것들만 쳐낸다.

어차피 숙주가 죽으면 이건 무소용.

‘모드 온 오버페이스.’

탕!

바닥을 박차고 나간 세주의 몸이 탄환이 된다.

주변 사물이 흐려지며 스쳐 간다.

몇 개의 화살표가 몸에 닿는다.

‘풀 업.’

하얀 눈을 대비해서는 하나의 훈련이면 충분했다.

풀 업 상태로 오버페이스를 쓰는 것.

노블 에너지 소모를 꽤 소모하지만.

치컹!

오른 팔꿈치에서 긴 칼날이 튀어나온다.

스걱! 스걱!

그대로 두 놈을 가르고.

한 놈에게 바짝 다가간다.

‘송곳.’

파캉!

오른 주먹 앞, 송곳이 튀어나온다.

이 아머는 공방을 겸비한 전천후 장비다.

펑!

그대로 지른 주먹에 놈의 머리 부분이 터졌다.

이미 해부해봤기에 어디 부위에 뭐가 있을지 다 안다.

쿵! 쿵! 쿵!

세 마리가 바닥에 쓰러지고.

모드를 끈 세주가 호흡을 뱉는다.

노블 에너지가 몸 안에서 산화하며 입 밖으로 푸른 연기를 남긴다.

눈앞에서 사라지는 푸른 연기를 보며.

“시간 많습니까?”

아군을 재촉했다.

이 순간에도 저 먼 곳에서 불빛이 번쩍이고 폭음이 들려온다.

아군과 레이퍼가 교전 중이었다.

촉수를 잡고 세주가 올라선다.

그 모습을 본 고명수는 심장이 짜릿했다.

‘이길지도 모른다.’

승산이 없는 싸움?

아니다.

알파 팀에서도 볼 수 없었던 엄청난 이레귤러다.

반세주라면.

“올라간다.”

이 싸움 승패, 아직 모른다.

적어도 저 신형 비트레이어를 잡으면 상황이 바뀔지도 모른다.

희생이 있다 해도 이길 수 있다면, 희망은 있다.

여덟이 그대로 땅을 박차고 촉수를 잡고 기어오른다.

타다다닥.

레펠 정도는 우습게 해내는 이들이다.

촉수는 미끄러웠지만, 크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골의 위로 올라섰다.

물컹한 살처럼 느껴지지만, 탄력과 경도가 느껴진다.

위를 밟고 다니는 것에 아무런 불편도 없었다.

곳곳에 혹이 튀어나와 있어서 시야를 가렸다.

-아무것도 없어.

파인딩 모드로 쓴 맵에는 지휘관으로 보이는 놈만 보랏빛으로 빛났다.

세주는 그쪽을 향해 발을 움직였다.

“내가 앞장서지.”

고명수가 나섰다.

그도 감이 왔는지, 아니면 공간지각능력이 뛰어나 놈이 있는 곳을 파악했는지.

그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움직인다.

맵 위, 빛이 움직였다.

정확히 이들이 있는 쪽으로.

“목표 이동, 아군 방향으로 접근.”

세주가 말했다.

드르르륵!

무언가 끌리는 소리가 들리고.

골의 위에서 결국 놈을 만났다.

“여기까지 왔어?”

그가 놀란 얼굴로 묻는다.

마치 인간과 같은 표정과 몸짓이다.

등 뒤에는 보라색의 호스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혈관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마상길?”

치용이 물었다.

“어, 김치용? 너 왜 여기 있냐?”

-인간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

‘그 말은 인간으로서 놈들과 한패가 됐다는 건가?’

“이야, 안 어울린다. 군복.”

“이 개자식.”

치용이 웃었다.

동시에 앞으로 내달린다.

-안 돼!

제일 먼저 감지한 건 프로비던스였다.

동시에 세주도 앞으로 뛰었다.

‘모드 온 오버페이스.’

사물이 뒤로 밀려난다.

고명수가 수류탄을 쥐고 안전핀을 뽑는 모습이 보인다.

턱.

간신히 치용의 뒷덜미를 잡은 세주가 뒤로 내달렸다.

꽝!

그사이 폭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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