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44. 뽀뽀라도 해줄까?
-자, 그럼 우린 할 일 하자.
“기다려.”
진정하자. 진정.
또 이런 꼴 보고 싶지 않으면, 할 일 하는 게 맞다.
프로비던스의 말이 백번 지당하다.
그래도 짜증 나고, 매우매우매우 불쾌했다.
“개자식들이네.”
이걸 만든 놈, 꼭 대가리에 구멍을 내주리라.
-강제로 노블 패스를 주입함으로 인간을 미니 발전소로 만드는 게 이 기술의 핵심. 이걸 토대로 나도 다른 구조물을 만들 수 있지.
우웅.
말과 함께 홀로그램이 뜬다.
에너지 스위처.
-일반 에너지를 노블 에너지로 치환해줘. 어때?
죽인다.
노블 에너지를 늘리면 전투력이 늘어나고.
커버링 기술이 달라진다.
골의 배리어를 뚫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 필요 에너지 수치는.”
-250만. 산출하니까 딱 저 정도 필요하더라.
프로비던스의 잘못이 아님을 안다.
그래도.
“아, 진짜. 250만이 누구 집 개 이름이냐?”
-그 하얀 눈 놈 셋만 잡자.
한 놈 당 시신 손상이 없으면 80만이다.
셋 잡으면 에너지가 충당된다.
“잘도 그런 놈 셋이 죽여 달라고 나타나겠다.”
그럴 일이 있겠냐고.
결론, 당장은 노블 에너지를 늘릴 수 없다.
고로, 매일매일 꾸준히, 열심히 훈련하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역시나 쉬운 일이 없다.
*
“우리가 할 일은 단순해.”
세주가 셋을 앞에 세우고 입을 열었다.
“죽을 때까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거야.”
“그게 전부?”
인준이다. 궁금한 게 참 많은 놈이다.
“근육이 파괴되고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에너지를 컨트롤 한다. 그게 되면, 전에 그놈에게 당하지 않는다. 더 질문 있나?”
셋의 눈에 불꽃이 뿜어진다.
-의욕 좋고.
“그럼, 뛰어.”
전신에 120kg 무게 추를 단다.
팔과 다리, 허리, 등, 목.
쇳덩이가 매달려 있다.
전신이 근육통에 시달리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근육이 파괴되고 생성되는 과정에 에너지가 깃든다.
그럼 노블 에너지를 컨트롤 하는 기술이 늘어난다.
-그럼 우리 훈련도 시작하자고.
곧바로 테크룸, 그리고 트레이닝 센터로 이동했다.
노블 에너지를 늘리는 건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그 대신이다.
-커버링 기술 2단계야.
세주가 배운 커버링 기술은 하나뿐이다.
풀 업.
전신을 푸른빛을 둘러싸는 것뿐.
당연하게도 이건 기초 중의 기초였다.
컨트롤 능력이 워낙 뛰어나서 다양하게 활용했을 뿐.
‘알지? 나 천재인 거.’
-심하게 재수 없다.
웅.
홀로그램이 나타난다.
-물건에 커버링 에너지를 깃들게 하는 게 ‘전이’야.
풀 업의 기본 원리다.
전신에 힘을 깃들게 하고 결국 무기까지 감싸는 기술이 바로 커버링이니까.
-그리고 지금 배울 건 ‘양도’야.
동시에 프로비던스가 푸른 공을 던졌다.
그리고.
푸른빛이 어린 공이 공중을 떠서 움직인다.
그냥 날아가는 게 아니라, 선회한다.
“어떻게 하는 거냐?”
신기했다.
-에너지를 ‘양도’할 때, 이렇게 되라고 미리 입력하는 거야. 단순한 프로그래밍과 비슷한 원리지.
“엄청 어렵게 들린다.”
-응. 엄청 어려워. 아주 많이 굴려서 가르쳐 줄게. 걱정 마.
배우기가 싫어졌다.
그렇다고 게을러질 생각은 없지만.
*
보름.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습격은 없었다.
이대로 전쟁이 끝난 게 아니냐는 말이 오갔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골이 도로 내려왔어.
세주는 훈련을 쉬지 않았다.
덩달아, 그의 전우조 셋도 미친 듯이 굴렀다.
쌔애애액!
인준이 주먹만 한 돌을 던지고.
“후!”
숨을 내뿜으며 치용이 주먹을 앞으로 뻗는다.
퍽!
허공에서 돌덩이가 쪼개져 흩어진다.
“이제 좀 괜찮네.”
커버링 에너지 컨트롤 능력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거기에.
쭈우웅!
셋 다 풀 업도 성공했다.
“가르칠 건 다 가르친 것 같은데.”
이제부터는 이들도 세주와 같은 문제에 봉착한다.
노블 에너지.
그걸 늘릴 방법은 딱히 없었다.
매일매일 열심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에너지를 소모하고 채우고.
단순한 훈련의 반복뿐이다.
끼이이이이.
기묘한 소리가 귓가에 파고든다.
세주의 고개가 돌아갔다.
외곽, 전선에 가까운 곳에 천막을 친 그들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곳은 레이퍼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이다.
놈들의 발걸음을 허락하지 않은 곳.
그런데.
“저거.”
하얀 눈.
그놈과 비슷한, 아니 흡사하다.
분명 같은 힘을 쓰는 놈들이다.
그놈들 셋이 눈에 보였다.
‘꿈은 아니겠지?’
-설마.
“형님.”
치용이 다가왔다.
그리고 인준과 유진도.
무기는?
인벤토리에 로켓 리볼버와 데저트 이글이 있지만.
총성이 들리면 사람이 몰린다.
그리고 일반 병사는 놈들에게 조종당한다.
도우러 온 아군이 세주와 일행을 역으로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는 거다.
“웃어라.”
몸이 굳은 셋을 향해 세주가 말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다.
그리고 현재 이들의 잇몸은 강철이었다.
치용이 자신의 정글도를 들었다.
하얀 눈은 배리어가 있다.
세주를 제외하고는 접근전이 필수다.
인준은 망치였다.
유진은 군용 대검.
“크흐흐흐.”
치용이 이를 드러내며 웃음소리를 낸다.
-저건, 안 당해도 미친놈 같네.
동감.
세 마리의 하얀 눈이다.
-잘도 죽여 달라고 세 놈이 나타났네.
‘응.’
잘도 나타나겠냐고 타박했었는데.
나타났다.
에너지 덩어리들이.
“눈!”
세주가 외쳤다.
동시에 넷의 눈에 푸른 불꽃이 머문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에 날아오는 화살표가 보인다.
“부서라!”
양손에 커버링 에너지를 모은다.
그리고 달리며 날아오는 화살표를 전부 쳐낸다.
소음은 없었다.
하얀 화살표가 허공에서 바스러질 뿐.
하얀 눈은 치명적인 위험을 간직한 놈이다.
저 화살표 하나는 사람을 꼭두각시로 만든다.
이곳에 만약 다른 병사들이 모인 곳이었다면, 지옥이 되었을 거다.
-형을 노리고 온 걸까?
그렇다면 적, 놈들에게도 지휘관이 있다는 소리일까?
그런데 자신을 노린다고?
세주에게 놈들은 에너지 덩어리다.
위협도 위기도 없었다.
고로, 지휘관이 있다면 놈은 최악의 멍청이다.
“당하면 내가 죽인다!”
치용이 외치며 신나게 정글도를 휘두른다.
그 뒤, 인준과 유진이 붙는다.
“당한 놈이 말이 많다.”
훈련의 결과가 나온다.
당할 걱정은 없다.
하얀 눈이란 것들은 장애물을 이용할 줄 알고, 레이퍼를 이용해 바리케이드도 쌓을 줄 안다.
그동안 저놈들을 잡는 훈련을 안 했을까?
미지의 규모 5에 대해서는 수없이 고민했다.
개인 시뮬레이션 모드를 수백 번 돌렸다.
보름 동안, 세주는 부지런했다.
그 결과였다.
‘모드 온 오버페이스.’
쭝!
몸이 바람을 타고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나타난 곳은.
하얀 눈 한 놈의 바로 옆이다.
‘모드 온 밀리 모드.’
동시에 모드 변경.
밀리 모드는 단순했다.
노블 에너지 출력 증폭.
딱 한 가지 기능만 있었다.
우우우웅!
전신에 커버링 에너지가 용솟음친다.
왼 수도가 윗부분을 뚫고 오른 주먹이 복부 부위를 꿰뚫는다.
콰직! 콰직!
푸른빛을 머금은 두 손이 놈들을 헤집는다.
놈들이 죽는 건 금방이었다.
유일한 공격무기가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
놈들은 그냥 먹이일 뿐이었다.
그리고 세주는 그걸 아그작아그작 몽땅 씹어 먹었다.
-에너지 268만.
수확한 에너지 수치를 듣는 순간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세 마리를 단숨에 해치운 뒤다.
“한 마리는 제 거였습니다.”
치용이 눈을 흘겼다.
곰 같은 덩치로 저런 짓을 하니.
“야, 하지 마. 미친 새끼가. 제 얼굴을 생각하고 표정을 지어야 할 거 아냐.”
인준이 모두의 기분을 대신해줬다.
*
250만 에너지를 쏟아서 에너지 스위처를 오픈했다.
‘또 안 오려나?’
-형 같으면 오겠어?
그렇지. 상대가 머리가 있는 놈이라면 이렇게 당하고 올 순 없다.
안 온다.
그럼.
‘내가 갈까?’
-혼자 가지 말고, 제대로 팀 꾸려서 가자.
기왕 타격을 줄 거면 제대로.
안 그래도 훈련을 거듭해서 일반 병사 이상이 된 셋이 있다.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가보자.’
“전장 나갈 때 쓰는 개인 화기 다 가져와.”
-아머도 가져오라고 해.
세주도 자신의 무기를 정리했다.
벼락과 리볼버, 아머.
“무슨 일입니까?”
김치용도 자신 앞에 아머를 비롯한 무기를 내려둔다.
샷 건, 정글도.
다음은 인준.
K-3 기관총에 유탄발사기를 붙인 총기와 머리가 주먹만 한 망치다.
유진은 인젝션건 뿐이다.
세주가 무기랑 아머를 둘러봤다.
‘죄다 가져가서 업그레이드해.’
프로비던스가 렌즈에 빛을 뿜어서 총기와 아머를 가져간다.
“…뭐여? 형님? 마술까지 하는 거요?”
눈앞에서 사라지는 자신들의 물건이다.
놀랄 법도 했다.
“아니.”
이제는 프로비던스에 대해 밝힐 때다.
갑자기 무기가 업그레이드됐다.
거기에 프로비던스를 통해 이들의 부작용도 치료할 계획이다.
더는 숨길 수 없다.
“할….”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궁금하지도 않잖아요.”
유진이었다.
“그냥 형님은 우리랑 다른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편하다.”
그리고 치용이다..
유진은 그럴 수 있다.
이해한다.
치용? 애초에 신경도 안 썼다.
사실 인준을 위해서였다.
분명 물고 늘어질 테고, 궁금해 할 테니까.
그런데 그 인준이.
“우린 그냥 잘 싸우면 돼. 죽지 않으면 되고.”
이렇게 말해버리니.
-굳이 말할 필요 없으면 놔둬.
‘그건 그런데.’
이 세 명.
왜 이렇게 믿는 거냐?
여기서 처음 본 사람인데.
“난 안 죽어. 대머리 너나 몸조심해라.”
“…죽여 버린다.”
“그만둬요.”
특이한 놈들이다.
말리는 유진도 정상은 아니다.
어쩌다 주변에 이런 이들만 모였는지.
-끼리끼리 뭉치는 법이지.
‘너도 마찬가지다. 이 싸가지 없는 기계 새끼야.’
당최 주변에 정상이 없다.
*
나흘 뒤.
탕! 꽈당!
자신의 샷 건을 당기고, 치용이 뒤로 넘어졌다.
반발력이 전보다 다섯 배는 늘어난 것 같다.
꿍하고 뒤통수를 기둥에 박았다
“졸았냐?”
바로 옆자리 병장이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총을 쏘는데 뒤로 날아가냐.
“거, 아닙니다.”
치용이 일어났다.
설명할 재주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저 세주에게 받은 총을 볼 뿐이다.
앞쪽 노린 타이어를 보자.
윗부분이 찢겨있다.
반발력 덕분에 못 맞췄다.
맞췄으면 타이어가 갈가리 찢겼을 거다.
인준과 유진도 마찬가지였다.
바뀐 무기에 적응하기 바빴다.
그리고 세주도.
“무겁네.”
변한 아머를 입어보고 있었다.
온통 검은색이다.
윤기가 나는 빛깔이지만.
-하얀 눈 갑각의 재료를 활용해서 재구성했어. 경도도 놈들보다 훌륭하지.
‘아아.’
입어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묵직함, 단단함.
이전 아머는 여기에 비교하자면 종잇장이었다.
거기에 왼 팔뚝 부분 위 자잘한 흡착판 같은 게 있다.
‘이건 뭐야?’
-오늘의 하이라이트지.
프로비던스가 벼락을 꺼낸다.
눈앞에 홀로그램이 나타난다.
벼락의 위치가 보인다.
벼락을 들어서 왼팔 바깥 부분에 댄다.
철커덕.
벼락의 탄창 부분부터, 방아쇠까지 뚝 하고 접혀 일자 모양이 된다.
그리고 그대로 팔뚝 위, 아머에 부착.
아머 위와 총기 밑, 작은 톱니가 나와 서로 맞잡으며, 아귀가 맞아 맞물린다.
그리고 왼손 장갑, 검지 앞쪽에 불룩하고 방아쇠가 생겼다.
기본적으로 노블 에너지를 받아서 움직이는 구조의 아머다.
아머가 총기의 반동을 받아준다.
움직이는 저격 포대다.
이거라면.
서서 쏴가 아니라 달리면서 쏠 수 있다.
-맞출 자신은 있지?
‘나한테 얘기 한 거냐?’
물론이다.
에임 모드와 그 이후 레어 모드를 연 지금.
세주는 자신 있었다.
비포장도로 길을 달리는 차 위에서도 나는 새를 맞춰 떨어뜨릴 수 있었다.
위잉. 철컥.
아머를 입고 그대로 몸을 움직여 본다.
쿠앙!
땅을 박차니, 허공에 훨훨 난다.
“뭐야?”
누군가 하늘에 뜬 세주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손을 흔들어주고 바닥을 향해 떨어진다.
노블 에너지를 끌어올리자.
아머에 스며든다.
후우우욱!
앞쪽에서 증기가 나오며 낙하 속도를 늦춘다.
콩.
가볍게 땅에 내려선 세주가 감탄했다.
에너지가 꽤 들었갔다.
아머 업그레이드에만 3만.
하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아머도, 왼팔의 벼락도
마음에 들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뽀뽀라도 해줄까?’
-…절대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