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43화 (43/206)

#  43

43. NO PAIN, NO GAIN.

“요구하고 싶은 게 있나?”

감대한 소령과 보고서를 작성한 뒤다.

그가 물었다.

그의 지위는 행정 참모다.

몇 안 되는 작전 회의에 참가하는 장교란 소리다.

고로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는 건, 저기 위.

이 부대의 대장, 최고 지휘관의 입김이 들어갔다는 거다.

“몇 가지 있습니다.”

사실은 많다.

“말해. 들어 줄 수 있는 거라면 들어준다.”

좋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하는 법.

뜯어먹을 수 있을 때 뜯어먹는 거다.

*

“여깁니다.”

개인 막사.

12인용 분대 막사에 짐을 옮겼다.

“대위님.”

그리고 진급.

계급장은 하는 김에 군복과 군모에 있는 것까지 싹 갈아줬다.

대위로 고속 진급한 뒤.

“여기에요?”

유진과 인준을 불렀다.

치용은 아직 정신을 잃고 있으니.

일단 둘부터다.

“짐 풀어.”

진급, 개인 막사, 전우조를 모이게 해달라고 했으며.

“황량하네.”

인준이 주변을 보며 말했다.

위치를 외곽으로 잡아달라고 했다.

전선에 가까워,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이다.

2시간에 한 번씩 도는 순찰 코스이기도 했다.

그런 곳에 막사를 지었다.

“여기에 머무는 이유라도 있어요?”

“주변에 사람이 없는 편이 편해.”

세주가 깨어나자마자 찾아온 둘이다.

놈들에게 당하고 싶지 않다.

둘은 그 해답을 세주에게서 찾았다.

반은 정답이다.

그 해답은 세주가 아니라.

-굴려주지. 지옥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프로비던스에게 있었으니까.

*

치용은 꿈을 꿨다.

하필이면, 인생 최악의 순간을.

푹.

옆구리에 파고드는 날붙이의 감촉은 적응할 수 없다.

아프다기보다는 뜨겁다.

“이런 개새끼가.”

“그니까 곱게 좀 가자.”

곱게? 개자식이다.

나고 자란 곳이다. 그리고 둘을 키워 준 부모 같은 존재가 있다.

그런데도.

“넌 사람 새끼도 아냐.”

피도 눈물도 없다.

“그래. 나 사람 새끼 아냐.”

마상길, 개자식.

재개발이 떨어지자마자 사람을 써서 깡그리 쓸어버렸다.

그 와중에 오래된 보육원이 불에 타올랐다.

살아야 했다.

그래서 도망갔다. 군대로.

치용은 무식했고, 그 와중에 약자는 괴롭히지 않는다며 꼴값을 떨었다.

그 대가였다.

눈을 떴다.

“지랄 맞네.”

꽤 오래 누워 있었나 보다.

허리가 뻐근했다.

투두둑.

팔뚝에 꽂힌 링거를 뺐다.

배가 고팠다.

뭔가 먹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침대 바로 옆 테이블 위, 쪽지가 보인다.

깨어나면 찾아와.

익숙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형님.’

군대에서 그런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다.

자신만큼 앞뒤 가리지 않는 남자.

덜컹.

병실 문을 열자 앞을 지키는 병사가 놀랐다.

“일어났나?”

병장이다.

“반세주 소위 어디 있습니까?”

“수호신?”

병장이 자기도 모르게 그의 위치를 말해줬다.

비밀도 아니었다.

그의 기행은 대부분 부대원이 알았다.

치용은 밖을 향해 걸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래도 걸었다.

병장이 그런 치용을 빤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보내도 되나?’

일어나면 놔두라는 명령은 받았다.

‘모르겠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게 끝이다.

그는 곧바로 움직였다.

보고만 하면 끝, 오히려 오늘 근무 시간이 짧아진 셈이다.

*

보글보글.

알싸한 향이 맡아진다.

곳곳에 세워진 전등의 불빛이 희미하게 비추는 곳이다.

세 명의 남자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맛있겠는데요.”

“내가 라면은 좀 끓여.”

터벅터벅 그쪽으로 향했다.

“어?”

맞은편에 앉은 유진이 그를 알아봤다.

“형.”

그가 활짝 웃었다.

그리고 대머리다.

“먹을 복은 있는 놈이구나. 민폐 덩어리.”

“일어났어?”

마지막.

자신을 부른 사람이다.

“저 빼고 먹깁니까? 형님?”

환자복에 후들거리는 다리.

그래도 웃는다.

*

네임드.

‘하얀 눈’ 같이 특별한 놈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놈들은 전장이 아닌, 도시에도 나타난다.

“용케 지금까지 안 걸렸네.”

-그게 알파 팀의 목적이라잖아.

기밀이라고 겁나 재더니, 정보를 다 건네줬다.

하긴 안 건네줬으면.

-깽판 쳐야지.

아주 작살을 낼 작정이었다.

기밀이라고 정보를 감춰? 덕분에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도?

그렇게 정보를 건네면서도.

한 마디 사족이 붙긴 했다.

알파 팀에 와라.

지겹지도 않은지, 얼굴만 보면 러브콜이다.

문제가 있는 군인 잡아 오기.

도시 내에 나타나는 네임드 쫓기.

필요시 전장에 참여하기.

바쁜 몸들이다.

가장 특이한 건, 알파의 소속이었다.

군 정부와 대기업의 합작품이라는 것.

D도 나노킷도 기본적으로 외계 괴물을 연구해서 얻은 것들이다.

정부는 영리했다.

혼자서 다 해 먹지 않았다.

나눠주고, 다시 나눠 받았다.

기업의 연구와 그들의 인력이 치안 유지에 힘을 쓴다.

‘이렇게 머리 쓰는 놈 얼굴 진짜 궁금하네.’

정말로 비상하다.

사람을 쓰는 것도, 이런 아슬아슬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도.

“형님.”

치용이 불렀다.

“준비는?”

“다 했습니다.”

몸에 묵직한 쇳덩이를 단 셋이다.

“그럼 출발.”

셋은 단련하길 원했고, 프로비던스는 그들을 위해 기꺼이 프로그램을 짰다.

불세출의 오버테크놀로지가 짠, 프로그램치고는 너무 조악했지만.

-다 계산하고 정리해서 만든 거야. 나 못 믿어?

양팔과 다리에 쇳덩이를 안고 달리는 셋이 보였다.

쌍팔년도에도 저런 훈련은 안 했을 것 같다.

‘너 같으면 믿겠냐?’

저 꼴을 보고도.

의자에 앉아 등을 기대고 테크룸으로 들어갔다.

하얀 눈의 시체 연구 중 (12%)

선명하게 보이는 문구다.

그리고 남은 에너지, 백만이 넘었다.

“에너지 플랜트 열 수 있지?”

-물론.

위이잉.

프로비던스가 허공을 날아 눈앞에 섰다.

에너지 플랜트는 두 종류다.

이번에 하얀 눈이란 놈을 잡으며 세주는 나름 세 가지 종류의 에너지를 정의했다.

첫 번째, 일반 에너지.

자신한테 빌붙은 기계 새끼가 처먹는 에너지다.

수치상으로 표현되며, 외계 괴물을 잡아서 모으는 게 효율적이다.

두 번째, 생체 에너지. 커버링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노블 패스의 이름을 따 노블 에너지라고 불렀다.

마지막으로 사이킥 에너지.

브레인 레이퍼와 하얀 눈 놈에게 있던 거다.

노블이 육체적 에너지라면 이건 정신적 에너지다.

-그리고 형한테는 없는 거지.

그렇기에 에너지 플랜트는 두 종류를 쓸 수 있었다.

일반과 노블.

-일반은 백만, 노블은 백이십만.

이십 만, 모을 수 있다.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직감이 말했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그렇다면 준비해야 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다른 방도로 에너지 쓸 수 있냐?”

-당연한 말을.

“아니, 백만짜리 열 거 있냐고.”

-있어.

“뭔데?”

-모드 진화. 일반 모드가 아니라 레어 모드를 열 수 있어.

“지금까지 모드가 전부 일반이었냐?”

-몰랐어?

미친 기계 새끼가 알려주지 않았으니, 당연히 몰랐다.

-하지만 추천하진 않아.

“왜?”

-형 이전에 경험했잖아. 바로 쓰러질 거야.

무슨 경험?

순간, 하얀 눈을 죽였을 때가 떠올랐다.

그거구나.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가진 재능이 잠시 미래를 엿보게 해준 거지. 사실 그날 놈을 놓칠 확률이 90%가 넘었어. 그런데도 형은 잡았지.

“일반 에너지 플랜트 효율은?”

-최초 레벨은 시간 당 100, 하루에 2400을 벌어줘.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때마다 수급하는 양이 늘어나고.

생각보다 괜찮은 수치다.

1년이면 864,000이다.

“열어.”

우웅.

에너지 플랜트를 열려는 프로비던스다.

“야, 뭐하냐?”

-열라며?

“그거 말고.”

-그럼 뭐?

뭐긴, 뭐냐.

“레어 모드.”

남자는 곧 죽어도 직진이다.

깨작깨작 에너지 언제 모으냐.

에너지는 놈들 잡아서 모으는 거다.

-확실한 건, 형은 정상은 아니라는 거야. 어떤 모드 쪽 트리 탈 거야?

세주가 척하고 손가락을 들었다.

곧 프로비던스가 확인하고는.

-승인 완료.

파아아앗.

빛이 사방에 퍼졌다.

“오오.”

전신에 에너지가 요동친다.

그러다 갑자기 빛이 모여 공처럼 변했다.

그리고 날아와 눈을 때렸다.

뻑!

“악!”

정말로 때렸다.

“아파!”

-아프겠지.

“잘못된 거 아니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NO PAIN, NO GAIN.

쓸데없이 발음이 좋다. 기계 새끼.

하루 동안이나 눈을 뜰 수 없었다.

“괜찮은 겁니까?”

김치용이 걱정 어린 말을 던질 정도다.

“그냥 피곤해서 그래.”

대답하고.

“상관 말고 볼일 봐라.”

말을 덧붙이자.

“그 볼 일이 당신, 형님이 있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 안 들어?”

말투만 들어도 누군지 알겠다.

대머리 자식.

맞는 말이다.

셋을 단련시켜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눈이 멀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이 기계 새끼야.’

-남 탓은.

꼬박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거 뭐냐?’

분명 밤이었다.

달이 떠 있는 밤, 그런데 보인다. 너무 잘 보인다.

-레어 모드부터는 평소 능력에도 영향을 끼쳐. 이번에 연 모드의 가장 큰 장점이지. 시력 향상.

시력 향상? 안경을 쓴다거나 라섹 수술 따위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어둠이 장애가 되지 않는다.

어색하긴 하지만 불편하진 않았다. 오히려 몇 번 눈을 깜빡이고 나니 금세 적응이 된다.

“죽이네.”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

혹시 노블 에너지를 비약적으로 늘릴 방법은 없을까?

레어 모드를 발동하고 싶다.

근데 이 모드를 발동하는 건 순수하게 노블 에너지를 소모한다.

일반 에너지 소모라면 레이퍼를 잡아서 충당할 텐데.

노블에너지는 달랐다.

먹는 걸로도 단순한 훈련으로도 느는 속도가 너무 미미하다.

현재 가진 노블 에너지가 부족하다.

그래서 든 생각이었다.

-그니까 에너지 플랜트를 열어야지. 왜 말을 안 들어?

‘잔소리 그만해라. 어떻게 시집 안 간 마흔 먹은 시누이보다 더하냐?’

-그 살벌한 비유는 뭐야?

‘노블 에너지 늘릴 방법 없냐?’

-없다고 하고 싶은데. 가능성 있는 연구가 막 끝났네.

하얀 눈 시신 연구 완료.

홀로그램 문자가 떴다.

-연구 결과를 활용한다면 노블 패스 에너지를 비약적으로 늘릴 수도 있지.

프로비던스가 말을 이었다.

“안 나가요?”

일어나서 막사에 계속 누워 있는 세주를 보고 유진이 물었다.

“하루 더 쉰다.”

그리고 간이침대에 누워 모포를 뒤집어썼다.

“우리 훈련은 언제….”

말하다 말고 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오늘도 셋이 알아서 해야 할 듯했다.

“악!”

테크룸에 들어가자마자였다.

흰색의 물체가 눈 앞을 가렸다.

“야, 이 기계 새끼야! 놀랐잖아.”

하얀 눈의 시신이었다.

-이미 죽었는데 놀라기는.

“그건 왜?”

시신을 왜 가져 오냐? 그냥 설명만 하면 될걸.

-좀 충격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무슨 충격? 내가 호러 영화를 봐도 코웃음 치는 남자다.”

-허세는.

“진짜야. 브로. 연구 결과나 브리핑해 봐.”

또 뻔히 못 알아듣는 단어나 잔뜩 나올 것이다.

생명공학, 화학, 갖가지 과학 이론과 논리가 나오는 순간.

세주는 딱 한 마디만 할 작정이었다.

오케이. 다 알았으니까, 노블 에너지 늘리는 법이나 내놔.

그런데.

“야. 너 뭐하냐?”

-직접 보는 게 나을 거야.

죽이고 용케 챙겨 온 하얀 눈의 사체를 향해 레이저를 쏜다.

찌이이이잉!

레이저가 놈의 갑각을 가른다.

까가가각.

빛이 뭉쳐서 레이저 커터처럼 갑각을 쩍쩍 가른다.

가운데 큰 갑각에 긴 세로금을 만든 뒤다.

프로비던스의 밑면에서 집게가 튀어나왔다.

맥가이버 저리가라다.

“뭐하냐?”

-기다려 봐.

집게가 갑각을 잡고 벌려 뜯는다.

뚜두두둑.

후두둑.

바닥에 핏물이 튀었다.

그리고 그 피는 녹색이 아니었다.

눈을 들어 앞을 보자, 붉은색 고깃덩이가 보인다.

혈관이 드러난 핏덩이다.

오장육부가 있고.

다리가 있다.

“혹시나 해서 물으마.”

-맞아.

프로비던스가 묻기도 전에 답했다.

“이거 사람이냐?”

-인간이었지.

눈코는 적출당했다.

귀도 없다.

팔도 잘렸다.

그래도 생전에 사람이었다는 건 알겠다.

구역질이 올라오진 않았다.

레이퍼 놈들 덕에 비위도 강해졌다.

“브리핑해봐.”

프로비던스는 평소의 어려운 얘기는 쏙 빼고 한 줄로 정리했다.

-놈들이 인간을 이용해서 괴물을 만들어.

그럼 브레인 레이퍼나 다른 놈들도 인간이 베이스라는 건가?

“레이퍼 놈들도?”

-추측이지만, 높은 확률로 네임드라 부르는 놈들에게만 통용되는 일이라고 봐.

그나마 다행인가.

-방식은 단순해. 노블 에너지 강제 주입. 사이킥 에너지 강제 개방. 이미 이성은 잃은 채고, 몇 가지 명령만 따르는 꼭두각시가 되는 구조야.

골에게 위협을 가하는 공격을 했고, 하얀 눈이란 놈이 함정을 팠다.

그렇다는 건.

골이 놈을 조종한다는 걸까?

확신은 없다.

이 정도 기술력을 가진 곳은 어딜까?

눈으로 본 그들의 생산 기술은 부화장뿐이다.

이런 오버테크놀로지 기술을 보일 만한 곳.

유일하게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곳.

-골, 그 안에서 만들어진다고 추측해. 사람을 납치하고 개조해서 내보낸다. 이 구조겠지.

듣는 순간 소름이 돋는다.

레이퍼, 데몬 플라이, 브레인 레이퍼의 습격도 위협적이었다.

그런데, 인간을 납치해서 저런 병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건.

“규모 4 이상의 습격도 가능하다는 말이냐?”

-가능성을 묻는 거라면 90% 이상이야.

외계인을 해부하고 기술을 훔쳐 D를 만들고, 나노킷 등을 만들었다.

에너지를 활용하는 법을 배웠고, 그걸로 놈들과 싸웠다.

그리고 놈들은.

인간을 재료로 괴물을 만든다.

“이런 개 같은 경우를 봤나.”

눈앞에 피부가 벗겨진 이전의 인간이었던 것이 보인다.

진심을 담아, 욕설을 내뱉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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