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42화 (42/206)

#  42

42. 시발, 고맙다! 새끼들아!

투다다다다다!

소총을 갈겨도 이성을 잃은 레이퍼 놈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확보해!”

장광안이 나섰다.

양쪽 눈이 다른 색이다.

그리고 양손에 든 소총의 방아쇠를 미친 듯이 당긴다.

“수호신을 지켜라!”

“저 개자식을 죽이면 내가 개다!”

어디서 온 힘일까.

명령이 아니었다.

복귀 한 유진의 첫 마디에 모인 이들이었다.

*

“반세주 소위가 남았습니다!”

유진이 오자마자 외쳤다.

“포기다.”

장광안이 그를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준이 그를 노려봤다.

광안은 그의 묻는 말에 답할 말이 궁했다.

노트에 그렸던 그림.

외계 괴물들이었다.

그는 놈들의 특징과 약점을 하나하나 기록했다.

그놈이 뭐냐고 묻는다면 기밀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둘에게 그 대답이 먹힐까?

꿀꺽.

이상하게 긴장이 됐다.

지위도, 실력도 낮은 둘에게서 알 수 없는 압박이 느껴졌다.

“뭘 묻고 싶은지는 잘 알겠….”

“그럼 빠지십시오.”

인준이 말을 뱉는다.

“…뭐?”

“우리 둘은 돌아갑니다.”

“미친 소리 하고 있네. 야, 일병 나부랭이. 흥분해서 저기 가면 뭐가 달라질 줄 알아? 전쟁 중에 동료를 잃은 사람이 너뿐인 줄 아나?”

김후경이다.

그녀가 화가 난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인준은 말을 뱉지 않았다.

그저 장비를 챙겼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한 걸음 더 걸으면 대가리에 구멍을 내주겠다. 말했지? 죽으면 또 죽여버린다고. 지금 네가 하는 짓은 자살이다.”

“지랄.”

철컥.

휘릭.

샷건을 든 김후경이다.

그리고 그녀의 관자놀이에 닿은 총구.

“해보십시오. 저도 합니다.”

정유진이다.

진짜다. 진짜배기들이다.

광안이 유진을 향해 말했다.

“하극상이다. 병사.”

“총구 내리라고 하십시오.”

그 유약해 보이는 유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다.

“김후경.”

광안이 그녀를 불렀다.

그녀도 정말로 쏠 생각은 없었다.

“빌어먹을 새끼들.”

그녀도, 자신 곁에 있는 이들이 죽는 걸 용납할 수 없다.

“가면 죽는다. 그래도 갈 텐가?”

광안이 두 손을 들며 말했다.

말린다고 들을, 이들이 아니다.

김후경이 총구를 내렸다.

“하극상은 없던 일로 해주지.”

어차피 죽을 목숨이다.

냉정해져야 할 때다.

광안은 그렇게 자신들 다독였다.

“가자. 유진아.”

“네. 형님.”

둘이 몸을 돌린다.

“지금, 무슨 말입니까?”

저지선 경계를 서던 병사였다.

계급은 일병.

그의 이름은 최병철이었다.

저번 전장에서 세주가 레이퍼의 다리를 부수며 활약할 때.

속으로 아버지에게 작별인사를 하다 살아난 병사였다.

그래서 직접 수호신 반세주를 찾아가서 고마움을 표했다.

김치용 덕분에 수호신이라는 존재를 알 수 있었다.

그는 그때 반세주를 만나 감사를 표한 걸 영광으로 알았다.

수호신은 영웅이었다.

자신에게나, 다른 이들에게나.

그리고 지금.

“누가 저기 남아있다고 했습니까?”

평소라면 경례 후 말도 못 붙일 이들을 향해서 그가 입을 열었다.

“반세주 소위가 남았습니다.”

“일병 이인준 이하 1명, 그를 구출하러 간다.”

알파 팀은 따라갈 기색이 아니다.

최병철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도우러 안 갑니까?”

알파 팀, 장광안이 고개를 저었다.

“무리다. 이미 시체야.”

하얀 눈만 없다면, 그도 구한다.

아니, 구하는 정도가 아니라 남아서 놈들을 몰살해버렸을 거다.

알파 팀은 그 정도 저력이 있었다.

잠시 멍하니 둘을 바라보다, 인준과 유진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자.

최병철의 동공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젠장.”

그가 욕설을 뱉고 소총을 든다.

스물여덟 발들이 탄창 네 개.

오늘따라 가져오고 싶더니.

“같이 갑니다. 저도.”

최병철이 앞으로 나선다.

“병사?”

광안이 그를 불렀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후후거리며 숨을 몰아쉴 뿐.

긴장? 안 될 리가 없다.

목숨? 소중하지 않을 리 없다.

세주 덕에 살아난 뒤로, 그는 더 죽기 싫었다.

하지만 가야 한다. 가야 했다.

그는 인간이니까.

목숨 빚은 목숨으로 갚는 거니까.

지금 이 상황을 외면할 수 없다.

모른 체하고 돌아선다면,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리라.

“야?”

같이 경계를 서던 병사가 황당해서 그를 부른다.

그러더니 입술을 우둑하고 깨문다.

“시발, 수호신 때문에 목숨 구한 새끼가 너 하나냐?”

그도 소총을 들고 따라나선다.

“염병! 반세주 소위 구할 사람 다 나와!”

목청도 좋다.

그리고.

“뭐?”

갈매기 세 개.

몽정, 아니 노블 패스를 확장한 다음 날.

세주에게 여군을 소개해주겠다던 상사다.

나이는 마흔이 다 되어가지만, 어찌나 잘 싸우는지.

별명이 투견이다.

전차를 조종하던 부사관들.

“우리도 갑니다.”

그들 또한 세주가 누군지 안다.

처음에는 작은 파문이었다.

그 파문이 곧 술렁임이 되고.

파도가 됐다.

“수호신을 구하자!”

수백, 아니 수천의 병력이 단숨에 모인다.

“야, 편제 짤 시간 없다. 앞에 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앞장서!”

누군가 인준과 유진을 향해 말했다.

고작 30분도 되지 않아 생긴 일이다.

인준과 유진이 멈춰 서서 서로를 돌아봤다.

“잘 따라나 와!”

인준이 먼저 외쳤다.

“수호신을 구하러 간다!”

그리고 유진이 신나 외친다.

“출발!”

기적의 일종이었다.

레이퍼의 두려움을 넘어선 병사들이 뭉쳐 만든 기운이 대기를 울렸다.

“김후경, 뒤를 부탁한다.”

그건 누구라도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었다.

장광안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욕먹어도 가야겠다.”

“염병.”

김후경이 욕을 뱉었다.

자신의 품에는 숨을 헐떡이는 고명수가 있다.

나노킷으로 출혈은 막았지만, 병원에는 데려가야 한다.

이 말은.

그녀도 가고 싶단 거다.

가슴에 무언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 여기서 남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난 괜찮다.”

언제 정신을 차린 걸까.

고명수다.

“가서 구해와.”

김후경이 그를 얌전히 한쪽에 눕혔다.

“정말 괜찮습니까?”

“안 죽어. 알아서 병원 가서 침대에 누워 있겠다.”

“그럼.”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김후경이 돌아섰다.

“그 남자, 수호신이라는 놈.”

“왜?”

“뭡니까?”

대군이 움직인다.

누구의 명령도 아니다.

모두 한 마음일 뿐이다.

한 사람을 구하고자 하는.

“나도 몰라. 아, 하나는 알지.”

“그게 뭡니까?”

“개자식이래.”

“네?”

장광안은 웃었다.

그리고 뛰었다.

‘죽지 마라. 반세주.’

그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수호신이자, 지금 이 군의 정신을 지탱하는 지주다.

죽게 둬서는 안 된다.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

혼자서라도 가서 그를 살렸어야 했다.

자신이 죽더라도.

“가자!”

그가 외치는 소리에.

“우오오오! 수호신을!”

“구하자! 오오오!”

병사들이 외친다.

그리고 그들은 그대로 저지선을 넘었다.

*

“형님!”

유진이 앞으로 달렸고, 인준은 말없이 백린탄을 던졌다.

세주의 무릎이 꺾이며 쓰러지는 모습이 보인다.

병사들이 레이퍼를 덮쳤다.

놀라운 용력을 보인 이들이다.

끼에에엑!

레이퍼 무리가 죽어 나간다.

“야! 왼쪽부터 하나씩, 일점사한다!”

수십 명씩 모인 이들이 레이퍼를 제압하는 게 순식간이다.

“구했데?”

“살렸냐?”

“이 개자식 죽은 거 아니지?”

“살렸단다!”

“구했단다!”

“그 개자식 안 죽었단다!”

병사들을 포함 모인 모두의 가슴에 불꽃이 붙었다.

“우오오오오오오!

다시 함성이 울렸다.

“휴.”

유진이 이마에 땀을 닦았다.

인준이 질질질 치용을 끌고 왔다.

“치용이 형도 무사하니, 다행이네요.”

퍽.

“…형?”

“그냥. 짜증 나서.”

인준이 치용의 머리를 걷어차고 하는 말이다.

기절한 치용은 신음조차 흘리지 않는다.

“맞을 만한 놈이지.”

유진이 인준을 말리려다.

자신도 손을 들어 머리를 딱하고 때렸다.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겉만 멀쩡해서 그런 놈한테 당하다니.

화가 난다.

아마 치용이 아니라 둘이었어도 같은 결과였을 거다.

그걸 아니까 화가 난다.

우리가 짐인가?

인준과 유진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기절한 세주를 인준이 업는다.

“둘 다 깨어나면.”

“네.”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 그게 이 형님 새끼한테 무릎을 꿇는 일이라도. 뭐든 다 배운다.”

“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죠.”

유진이 뒷말을 이었다.

“가자.”

*

“하얀 눈이 안 보여.”

전투가 끝난 뒤다.

장광안과 김후경이 주변을 살폈다.

엉망이 된 전장에서 시체 하나를 찾는 일이다.

둘이서 찾기란 요원했다.

“놈이 사냥감을 두고 간 적이 있나? 아니, 애초에 ‘조종’에 걸려서 살았던 놈이 있나?”

전에 왔던 놈은 암시에 걸렸다.

하얀 눈 놈의 능력은 딱 둘이었다.

조종과 암시.

조종에 당하면 하얀 눈이 되어, 미친놈처럼 날뛰고.

암시에 당하면 놈이 원하는 일을 하는 꼭두각시가 된다.

놈에게 당한 지휘관만 백이 넘는다.

아내에게 죽은 이.

자식에게 죽은 이.

부하에게 죽고, 친구에게 죽는다.

가장 믿는 이가 비수를 든 암살자가 된다.

“처음입니다.”

둘 다 처음 듣는 일이다.

“예전에 대장이 이런 말을 했었다. 조종하는 놈을 죽이면 그때 조종당하던 이는 본래대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김치용은 살았다. 둘은 그걸 확인했다.

유일하게 조종당하고 산 사람이다.

김후경이 입을 열었다.

“그럼 하얀 눈이 죽었단 말입니까?”

죽였다면.

인준의 등에 업혀 가던 이가 떠오른다.

수호신 반세주.

“항상 기대 이상을 보여준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광안이 중얼거리다 말했다.

“돌아간다.”

놈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오늘 전장의 승리자는 인간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하얀 눈의 정보를 알려줬을 걸 그랬나 싶다.”

“기밀입니다.”

“알아.”

“만일 새어나간다면 걷잡을 수 없을 겁니다. 기밀은 이유가 있기에 기밀인 겁니다.”

“그래. 맞는 말인데.”

반세주가 깨어나면 이 일을 따지지 않을까?

그런 걱정이 들었다.

*

‘날 구하러 뭐가 와?’

-대규모 병력이.

유진의 목소리를 들은 기억은 있다.

‘그러니까 정찰을 나갔는데 내가 기절했다. 그런데 갑자기 날 구하러 대규모 병력이 왔다?’

-정확해.

‘믿으라고 하는 소리냐?’

-그럼?

‘이 기계 새끼가 형을 또 얕보네. 내가 속을 것 같지?’

-…하, 시발.

‘야, 너 방금 욕했지?’

-안 했어. 난 표준어만 구사하는 로봇이야.

‘하여간 내가 속을 거라고 믿었다면 오산이지. 유진이 구한 거지?’

-예, 그냥 멋대로 생각하세요.

아직도 졸렸다.

‘나중에 유진한테 물어볼 거다.’

그리고 잠이 들었고.

일어났다.

몸 상태가 괜찮아졌고.

링거를 뽑고, 퇴원 절차를 밟았다.

“오오오!”

그리고 병원 앞에 자신을 반기는 이들을 봤다.

남녀를 떠나 모인 이들이다.

여군 중 하나가 외치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

“꺄아아악! 오빠!”

아이돌도 아닌데 대중에게 오빠 소리를 듣다니.

“무사해서 다행이다.”

감대한 소령이었다.

그가 세주를 기다렸다.

“다들 자네의 퇴원을 기다렸네. 무사하다고 해도 요지부동이더군.”

억지로 제재하지도 않았다.

군은 일부러 영웅을 만들기도 한다.

그렇기에.

영웅의 탄생을 반긴다.

반세주는 그에 합당한 존재였다.

“얘기 좀 하지.”

우오오오오오!

함성 사이로 감대한이 손짓했다.

‘진짜였나?’

-믿음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신뢰라는 두 글자를 잃은 이에게 내 무슨 말을 할까. 통재로다.

‘얌마. 그래도 그렇지. 무슨.’

찡하니 발끝에서부터 무언가 올라왔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가슴이 벅차오른다.

눈가에 습기가 찰 것 같다.

“후웁.”

이 사람들 앞에서 꼴사납게 울 순 없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지.”

소령을 뒤로하고 대중 앞에 섰다.

무슨 말을 해야 이들에게 자신의 무사함을 알릴 수 있을까?

무슨 말을 해야 이들에게 보답할 수 있을까?

-심장이 없는 나지만, 가슴이 울리는 것 같아.

프로비던스조차, 이 많은 이들 앞에서 감히 장난치지 못했다.

병원 앞을 가득 메운, 병사들 사이로.

세주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시발, 고맙다! 새끼들아!”

-응?

그리고 돌아섰다.

“가시죠.”

감대한 소령이 황당한 얼굴로 세주를 바라봤다.

“지금 뭐라고 한 건가?”

“고맙다고 한 겁니다.”

“저기 소위보다 높은 계급을 가진 이들이 연병장에 줄을 세우면 두 바퀴 반도 넘을 거다.”

“아, 뭐 그런 것 같고 그러십니까? 저도 저보다 계급 낮은 이들이 반세주 개자식 떼창 하는 걸 들었는데.”

황당한 얼굴을 한 소령을 뒤로하고 걷자.

-이런 또라이.

‘뭐?’

-개자식이라고 했다고 지금 복수한 거잖아.

‘아냐.’

-아니긴! 뒤끝이 있는 건 알았지만, 사람이 이렇게 치사하냐?

‘아, 아니라고.’

세주는 끝끝내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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