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39화 (39/206)

#  39

39. 못 돌아왔습니다.

정찰은 하루가 미뤄졌다.

인간 대 인간이든.

인간 대 괴물의 싸움이든.

정보는 중요하다.

팔을 잃은 병사는 유진이 응급조치를 취했고.

곧바로 병원에 실려 갔다.

반나절 뒤, 알파 팀장.

고명수가 그를 찾았다.

병원 침상에 누운 그의 얼굴을 본 순간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물을 건 많았다.

“나머지는?”

“전부 죽었습니다.”

멍한 눈으로 허공을 본다.

‘정신이 나갔다.’

괜히 빙빙 돌려 질문 할 필요를 못 느꼈다.

이러다 갑자기 놈들이 다시 공세를 취하면 상황은 전처럼 고착될 거다.

“뭘 본 건가?”

“괴물입니다.”

그가 턱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시선이 천천히 돌아서 고명수에게로 향한다.

“무슨 괴물?”

“하얀 놈입니다.”

이딴 말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있을 턱이 없다.

“공격 형태는? 다른 종류의 레이퍼 인가?”

현재까지 전장에 나타난 외계 괴물의 종류는 셋.

레이퍼, 데몬플라이, 브레인 레이퍼.

그 외 박격 포대 놈들은 모두 레이퍼의 한 종류로 봤다.

하얀 놈이라, 정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닙니다. 놈은 두 발입니다.”

“뭐?”

“두 발이란 말입니다!”

갑자기 그가 소리치며 고명수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그만! 그만! 그만! 그만! 그만!”

미친 사람처럼 비명을 지른다.

그를 본 명수가 뒤로 물러났다.

“잠시만요!”

간호사와 의사가 뛰어들어온다.

“이 이상은 무리에요.”

의사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면회는 끝이었다.

뒤로 물러나 병실을 나서는데.

“악! 선생님!”

간호사가 비명을 질렀다.

고명수가 몸을 돌려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

펜을 목에 박은 생존자가 보인다.

“끅끅.”

피거품을 물며 웃는 얼굴로 그가 말한다.

“너희는 끄르륵. 졌다.”

그리고는 창문으로 몸을 날린다.

와자창!

창문이 깨지고, 퍽 소리가 들렸다.

창가에 다가갈 필요도 없었다.

목에 펜을 박고 5층에서 뛰어내렸다.

즉사였다.

“꺄아아아악!”

간호사의 비명을 뒤로하고 고명수는 병원을 나섰다.

“건진 거 있습니까?”

“암시 같다.”

“…암시 말입니까?”

“죽기 전에, 너희는 졌다고 하고 자살했다.”

몇 번이고 겪었던 일이다.

그들이 1년 넘게 쫓는 놈의 특징 중 하나고.

“그놈이 여기에 있을 수 있습니까?”

“마지막 종적이 어디였지?”

물으면서 떠올랐다.

춘천.

“춘천입니다.”

그 전에는 경기도 안양에서 만났다.

‘북상 중이었어.’

여기로 오고 있었다.

규모 4가 일어나기 전까지 쫓던 놈이다.

전장에 합류가 목적이었을까?

갑자기 든 의문이 불길한 확신으로 다가왔다.

“가자.”

평소보다 더 굳은 얼굴이다.

장광안 또한 마찬가지였다.

*

옆자리가 허전했다.

찾던 물건이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인다.

기억에는 분명 책상 위에 뒀는데.

서랍, 옷장, 씽크대 찬장, 냉장고까지 혹시나 해서 소파 밑에 라이를 비춰도 안 보인다.

누가 장난이라도 친 것 같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할 게 없다.

그런 거다.

없었다.

있어야 할 사람이.

“못 돌아왔습니다.”

다른 중사다.

그가 세주의 옆자리를 보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죽음은 일상이었다.

이들은 목숨을 담보로 싸워온 이들이니까.

이제까지 그렇게 지켜왔다.

나라를, 도시를, 삶을, 사람을.

‘묵념은 미루겠다.’

-지금은 그럴 시간이 아니지.

우울해할 시간도 아니다.

우두둑.

꽉 쥔 주먹 사이로 핏줄기가 비친다.

아주 잠시 겨우 5분.

세주는 조용히 제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천막 밖으로 나섰을 때, 평소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뭐 알아낸 거 없습니까?”

장광안이 보였다.

세주가 묻자.

“없다.”

그가 고개를 젓는다.

없다고?

기껏 하루를 늦췄는데.

“그럼 언제 다시 갑니까?”

후, 설마.

“정찰 포기한 겁니까?”

말을 잇자.

“아니.”

고명수다.

그가 훌쩍 다가왔다.

“포기 안 한다.”

그렇다면 세주도 합류할 것이다.

첫 번째 정찰조가 당했다.

그렇다고 대규모 군이 움직일 수도 없다.

정보가 없다.

아무것도 없이 저 많은 이를 사지로 몰 순 없다.

그렇다면 정찰조의 조건이 나온다.

‘브레인 레이퍼에 당하지 않으면서 각개 전투력이 뛰어난 이들.’

자기 목숨 정도는 챙겨서 돌아와 보고를 할 수 있을 이들.

“알파조와 기타 반세주 소위 전우조, 지금부터 2시간 이후 정찰조로 출발한다.”

전군에서 그 브레인 레이퍼에 저항하는 군사는 1% 미만이다.

원거리, 저격으로 적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저격수.

브레인 레이퍼가 아예 접근할 수 없게 만든다.

세주는 아주 특별하고 강력한 자원이었다.

그 자신도 원했지만, 군의 입장에서도 그의 자원을 거절할 수 없었다.

지금 필요한 건, 하나.

정보였다.

2시간 뒤.

다시 이전의 장소로 모인 그들이다.

치용은 정글도를 허리에 매고, 샷 건을 들었다.

탄창을 늘리고 화력을 개조한 거로.

근거리에서라면 3중 갑각을 날려버리는 무기다.

철컥.

“빨리빨리 갑시다.”

그가 총을 대충 등 뒤에 차며 말했다.

유진은 인젝션 건을 가져왔다.

권총 모양으로 허리춤에 차고, 탄창 개조 소총을 가져왔다.

인준이 압권이었다.

“화력은 내가 책임져주마.”

k-12 기관 소총에 유탄발사기를 달았다.

“안 무겁나?”

장광안이 묻자.

“문제없습니다.”

인준이 총을 훌쩍 들어 어깨에 걸친다.

-능숙해졌네.

프로비던스가 스캐닝을 하며 말한다.

‘커버링이구나.’

에너지를 다루는 것에 능숙해진 거다.

그러니 근력이 월등해지고.

저런 짓도 가능하다.

그리고 세주는.

“그걸 가져갈 거지?”

자신의 배럿을 가져왔다.

벼락이란 별칭을 얻은.

“애인보다 소중합니다.”

애인이 없으니, 맞는 말이다.

광안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새로운 얼굴이 보였다.

“얘들 뭡니까?”

귀 위로 바짝 깎아 올린 머리칼과 두꺼운 팔뚝.

그나마 윗머리가 길어서 다행이다.

나올 데가 나와서 다행이고.

불룩한 가슴이 보인다.

머리칼과 가슴, 그 두 개만이 그녀를 여자로 보이게 했다.

불곰이랑 싸워도 이길 것 같은 여자였다.

등에 긴 손잡이를 가진 도끼를 매고 있는데.

이건 뭐, 잡히면 그냥 뼈마디가 똑하고 부러질 것 같다.

김치용과 비견되는 몸집의 여자라는 거다.

“무슨 여자가….”

치용이 한 마디 뱉는 순간.

“너 한마디만 더 해라.”

-살벌하네.

세주가 치용을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놔두면 분명 개 긴다.

이건 예감이 아니라, 확신이다.

치용이 콧김을 삼키는 게 보였다.

“작전 시 내 지위는 대위다. 불만 있으면 진급하던지, 아니면 입 다물고 따라와라. 나랑 같이 작전하면 딱 세 가지만 조심하면 된다.”

모두 그녀를 주목했다.

“첫째, 여자로 시작되는 문장은 쓰지 마라. 죽는다.”

“둘째,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몸에 손대지 않는다. 한번 해봐라. 나도 궁금하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셋째, 뒤지지 마라. 깝치다가 나서서 죽지 마라. 또 죽여 버린다.”

-형, 어때? 이 시대가 바라는 여성상이다. 강하고, 리더쉽있고, 죽여도 안 죽을 것 같고. 사랑한다고 지금 당장 고백해.

“김후경 대위다.”

‘그래, 건강미가 넘치네. 나중에 할게. 지금 하면 조심할 게 하나 더 늘어날 것 같다. 프러포즈하면 죽인다가 생길 것 같거든.’

“반세주 소위입니다.”

“네가 그 수호신?”

“그렇게도 부릅니다.”

-오, 관심 있나 보다.

“잘 부탁한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난 그들을 향해.

쿠르르르르릉.

육중한 소음이 반겼다.

“죽이네.”

치용이 중얼거렸다.

“저거 타고 가는 겁니까?”

유진이 묻는다.

탱크다.

작은 집 한 채가 통째로 굴러가는 느낌이다.

정찰이라며.

“전부 탈 순 없어서.”

쿠르르르르릉.

한 대가 아니구나.

총 일곱 대다.

모두 앞에 선 탱크다.

“미리 말하지만 레이퍼 부대를 만나면 탱크는 무적이 아니다. 적절한 시기에 나오지 않으면 고립될 수 있다.”

고명수가 말하고 육중한 전차에 몸을 실었다.

“타십시오.”

안에는 목숨을 걸고 운전할 이를 비롯해 2명이 더 있었다.

정찰이라고 하지만, 조용조용 적만 살피고 올 의향은 없다는 거다.

세주도 하나를 골라 올랐다.

그리고 자신의 배럿을 위에 얹었다.

전차포 위에 고정한 후, 360도를 돌릴 수 있게 했다.

“위에 있을 겁니까?”

상사다. 다른 둘은 중사였고.

40대 초반은 되어 보인다.

“그럴 거다.”

예전 부사관과 장교의 관계는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는 계급이 모든 걸 말하는 시대였다.

쿠르르릉.

곧 전차가 앞으로 움직인다.

작은 의자가 위로 솟아 있어 거기에 궁둥이를 붙였다.

그리고 세주는 배럿에 턱을 기댔다.

‘파인딩, 스캐닝 모두 풀가동해. 주변에 접근하는 놈들 바로 잡는다.’

-승인 완료. 시간당 에너지 소모 50 발생.

‘해.’

위이잉.

프로비던스가 어깨 위에서 빙글 돌아서 하늘 위로 렌즈를 올린다.

그리고 빛을 쏘아낸다.

반구 형태로 넓게 쏘아지는 빛이다.

전차는 느렸다.

-아무것도 없네.

긴장하고 떠나왔지만, 걸리는 것도 보이는 것도 없었다.

쿠르르릉.

턱을 괴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일이었다.

무전기를 들었다.

개인 채널과 단체 채널 둘 다 있었다.

장광안의 채널을 찾아서 입을 열었다.

“여기는 브라이트 아이즈. 알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버.”

“오드아이 통신. 관심 있나? D를 먹으면 된다. 오버.”

기밀도 아니었나 보다. 그가 손쉽게 답했다.

“이미 먹었습니다. 오버.”

사실은 빼냈지만, 대외적으로는 먹었다.

“두 번 이상 먹으면 된다. 오버.”

아.

D를 먹으면 인간의 한계를 넘는다.

그리고 한 번 더 정해진 선, 한계라는 선을 부순다.

-알파 되려다 죽는 놈들이 부지기수겠다.

그게 코드명 알파였다.

“그럼, 알파 팀은 무슨 일을 합니까? 오버.”

치지직.

잡음이 흐르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다.

“코드명 알파는 속해있지 않은 이들에게 정보를 누설할 수 없다. 오버.”

“그럼 묻는 말에 대답만 해주십시오. 오버.”

“해 봐라. 오버.”

이런 순간이다.

오늘 살지, 죽을지 모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들은 미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알 수 없는 변화에 가장 선두, 척후가 된 이들이다.

“전장이 아니라 도시에도 외계인의 흔적이 있습니까? 오버.”

“있다. 오버.”

“그럼 그게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종류입니까? 오버.”

치지지직.

한동안 무전이 들려오지 않았다.

단순한 문제였다.

알파 팀은 강력하다.

그들의 주 무대가 이 전장이 아니라면.

다른 곳에 문제가 있다는 거다.

그렇다고 다른 전장이 있을까?

몇 가지 가정을 세우고 추론해보면 답이 나온다.

사복.

군 지위는 작전 시에만 동원.

소수 정예.

인간 사이에서 활동하는 괴물이 있을 수 있다.

지금 세주가 한 질문의 요지였다.

“그렇다. 오버.”

“후.”

무전기를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골만 잡으면 끝인 줄 알았더니.

그렇게 쉽게는 안 되려나 보다.

치지직.

“알파 팀에 들어와라. 오버.”

말 없는 세주에게 광안이 제안했다.

“일단 오늘 살아남으면 그때 고민해보겠습니다. 오버.”

“기밀은 어떤 이유로도 유출될 수 없지만, 기왕지사 이렇게 된 마당, 하나만 말해주겠다. 상대 중에 괴물이 있다. 오버.”

-괴물? 이제까지 상대한 건 뭐 다람쥐였나?

프로비던스가 비아냥거린다.

맞는 말이었다.

“무슨 괴물입니까? 오버?”

“하얀 눈이라는 놈이다. 조심해라. 오버.”

-눈은 본래 하얗지.

‘농담할 때냐?’

눈Snow이 아니라 눈Eye이다.

-정보가 너무 소박해. 뭘 조심하라는 거야?

레이퍼 놈들은 인간의 항문에 혀를 쑤신다.

브레인 레이퍼는 뇌를 흔들고 조정한다.

데몬 플라이는 악마가 낳은 나비다.

이름을 지을 때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보면 안 되는 종류.’

메두사, 신화 속 괴물이 떠오른다.

물론 고민한다고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전방 레이퍼 부대 출현.

퉁.

세주가 발로 밑을 찼다.

“뭡니까?”

파인딩 모드로 활성화된 지도를 보고.

특유의 감각을 더 해서.

“포신 왼쪽으로.”

전차의 포신을 움직이는 단위도 모르고 방법도 모른다.

“그렇게 말하면….”

밑에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자르고 말했다.

“움직여. 내가 멈추라고 할 때까지.”

끼기기기깅.

전체 채널로 무전기 주파수를 바꾼다.

“멈춰.”

움직이는 포신을 세우고.

입을 열었다.

“코드명 브라이트 아이즈 통신, 좌 전방, 적 출현. 모두 이 포탄에 맞춰 일제 사격 요구.”

“골드베어 통신, 너 까불지 마라.”

김후경이 받아쳤다.

무시하고.

“발사.”

밑을 발로 차며 말했다.

밑에서 곤란한 말을 내뱉기도 전에.

“발사! 죽고 싶지 않으면 쏴!”

윽박질렀다.

꽝!

전차가 뒤로 훅 밀려나며 포탄이 날아간다.

대물 저격 포도 괴물이지만.

이 전차포야말로 인간이 괴물을 상대하기 적합한 무기가 아닌가.

저 멀리.

꽝!

굉음이 울리고, 터진 곳을 중심으로 레이퍼 무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놈들, 미친 듯이 이쪽을 향해 달리는 중이었다.

“콜드밤 통신. 브라이트아이즈 폭격 방향으로 일제히 공격.”

고명수의 목소리다.

진짜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고.

꽝! 꽝!

하나, 둘, 포탄이 적을 향해 날아간다.

그 사이 자신의 배럿, 벼락을 잡은 세주다.

포탄은 범위가 넓은 살상 무기.

그리고 자신은 핀포인트 저격수였다.

‘한 마리도 못 오게 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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