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31화 (31/206)

#  31

31. 흐응, 아흥, 히응.

원 스타, 준장이 직접 찾아오고.

훈장까지 받았다.

사상 초유의 진급도 이뤄졌으며.

포상금으로 1억이 주어졌다.

굴릴 만큼 굴리지만, 목숨 걸고 싸운 만큼, 보상은 확실하게 해주겠다.

이게 군대의 스탠스였다.

“하사님은 이제부터 24인용 막사에서 머무르면 됩니다.”

배치를 담당한 사병이 따라와 군장과 더플백을 날라줬다.

-계급이 깡패지.

‘당연한 말을.’

부사관부터는 24인용 막사를 썼다.

“어이.”

한 달의 전투가 끝난 뒤, 논공행상을 마치고 막 짐을 옮긴 순간이었다.

“피이일승.”

이등병이나 경례에 힘을 주는 법.

세주가 느슨한 태도를 보이며 경례를 했다.

“빠지는 속도가 진급하는 것만큼이나 빠르네.”

악마 소위였다.

“제가 본래 성격이 좀 급한 편입니다.”

“자대 복귀 신청할 수 있다. 돌아가겠나?”

진급했을 때 들었다.

이곳에 남고 싶다면 남아도 된다고.

본래 이곳은 전부 파견으로 이뤄지는 전장이다.

최전선이며, 가장 치열한 전장이었고.

미친놈이 아니면 한 번 파견 후 돌아가는 게 정상이지만.

“남겠습니다.”

1초의 고민도 필요 없었다.

“그럴 것 같더라. 나도 남는다. 친하게 지내자. 반하사?”

-방금 반했다고 한 것 같은데?

‘로봇 주제에 청각에 이상이 있다고 할 셈이냐?’

-아니, 정말 그렇게 들렸는데.

“네. 김택동 소위님.”

거리감을 느끼라고 이름 석 자를 곱씹어 발음해 줬다.

“그래. 간다.”

가세요. 제발.

상급자에 대한 예우로 뒤로 돌아서는 그에게 경례를 붙였다.

가운뎃손가락만 들어서.

“축하드립니다.”

세주만 진급한 건 아니었다.

유진과 인준도 당당히 일병으로 진급.

치용은.

“야, 상급자를 보면 경례를 붙이는 거다. 대머리.”

“…죽여 버린다.”

상병이 됐다.

전장의 선두에서 죽고 싶어 환장하게 날뛴 게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하극상이냐? 안 되겠네. 이 대머리.”

“후. 그냥 여기서 죽자.”

인준의 인내심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 형님.”

유진이 급히 그를 막는다.

“왜 이러십니까. 보는 눈도 많습니다.”

세주의 막사 앞에서 벌이는 촌극이다.

주변 부사관들의 시선이 몰렸다.

“그리고 치용이 형님, 그만하십시오. 여기서 소란을 피우면 세주 형님께 누를 끼치는 겁니다.”

“아, 죄송합니다. 형님.”

치용이 허리를 반으로 접었다.

그게 더 눈에 띄겠다.

역시 유진을 뽑은 건 잘한 일이다.

-마지막 전우조 하나는 정말 잘 뽑았다. 조율의 황태자네.

‘내가 바로 선택의 반세주다.’

-판단의 반세주라며?

‘그게 그거지.’

“남을 겁니까?”

세주가 인준을 보며 말했다.

“말 편하게 해. 어차피 우리끼리 있을 때야 상관없잖아.”

“칫.”

치용이 대놓고 싫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도 인준을 놀리고 싶었을까.

“형님 말씀이라면.”

“수호신이라니 엄청 유명해지셨습니다.”

유진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인준이 치용을 보며 이를 갈았다.

“배포를 키워라. 근육만 가득한 멧돼지 새끼야.”

“닥쳐, 마상길 같은 놈.”

프로비던스의 에너지 드립만큼이나 치용이 자주 말하는 욕이다.

“남을 거지?”

인준이 물었다.

끄덕.

“그럼 저도 남습니다.”

인준과 유진도 남기로 했다.

이곳에 막사로 쓰는 건물은 없었다.

후방 뒤편에 병원 건물 두 채.

전방 막사 주변에 샤워시설을 구비한 조립식 건물이 다섯 채.

그리고 간간이 PX 건물과 보급소까지.

나머지는 전부 천막생활이었다.

불편하지는 않았다.

세주는 깨끗하게 씻고 늦은 오후부터 침대에 누웠다.

“수호신?”

같은 천막을 쓰는 이가 물었다.

“반세주야.”

이름을 말해주고 눈을 감았다.

남은 피로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논공행상과 국장까지, 전투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해치운 일정이다.

-쉬어 둬.

프로비던스가 자장가를 틀어주고.

“난 중사야 이 새끼야.”

말을 걸었던 이가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어쩌란 거냐.

세주는 금세 잠에 빠졌다.

-웨이크 업.

부스스스.

감았던 눈을 떴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몸이 가벼웠다.

‘역시 4시간 수면은 너무 고된 일정이지.’

-그걸 택한 건 형이야. 난 추천하지 않았어.

프로비던스는 연구실과 기술실을 우선 연 뒤.

대규모 스캐닝 시스템을 발동하자고 했다.

세주는 그 모든 걸 거절했다.

목적을 잃은 배는 돌아갈 곳이 없어진다.

진짜 슈퍼맨은 아니지만,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구해야 할 것 아닌가.

세주의 최우선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하잖아.’

야밤에 막사 밖으로 나가자 간간이 불침번이 보였다.

암구호도 묻지 않으며 야간 경계병도 많이 세우지 않는다.

레이퍼와의 싸움은 정해진 시간에 이뤄지며.

야습도 전략도, 전술도 없다.

덕분에 쉴 때 쉬고 싸울 때 대차게 싸우는 게 전부였다.

“후아.”

밤공기가 싸늘해지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전 전투의 열기가 가신 곳에는 형용할 수 없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전장이었던 곳이다.

세주는 담 위에 올라서서 그걸 내려다봤다.

“거기! 누구냐?”

그 밑 야간 경계병이 다가왔다.

“반세주 하사다.”

라이트가 얼굴을 비췄다.

“뭐하십니까?”

황당한 얼굴로 세주를 쳐다보는 경계병의 얼굴이 보였다.

하늘 위에 마침 달이 동그랗게 떠 있다.

“달밤의 체조.”

“…네. 그럼.”

-세상에 이런 미친놈이? 라는 얼굴인데.

‘말 안 해도 안다.’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어쩔 수 없다.

경계병이 사라지고 나서 담을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이 정도 거리면 되지?”

-충분해.

“그럼, 시작해.”

-에너지 20,000 소모. 승인 완료. 대규모 스캐닝 실시.

어깨 위에 얹어져 있던 프로비던스가 위로 날았다.

날개를 펴고 렌즈에 빛을 모은다.

그러고는.

웅!

강렬한 푸른빛을 앞으로 뿜었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퍼지는 빛이 사방을 아울렀다.

“…이런 건 여자랑 봐야 하는데.”

마치 별자리 한가운데 와 있는 것 같다.

사방을 수놓은 수많은 푸른빛 반딧불들.

번쩍하며 점멸하며 움직인다.

후우우웅.

그러던 것들이 갑자기 전부 머리 위를 향해 날아갔다.

슈슈슈슈슈슉!

-이런 염병. 미친 시발.

오버테크놀로지 로봇이 아니라 욕쟁이 할머니 같다.

‘언어 순화.’

-안 보여?

어느새 어깨로 내려온 프로비던스다.

‘뭐가?’

고개를 위로 들어서 뭘 보려고 해도 보랏빛 나는 하늘뿐이다.

잠깐.

“왜 하늘이….”

보라색이냐?

-염병할, 우리가 잡아야 할 놈이야.

넘어질 정도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제야 끝이 보인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도시 하나가 머리 위에 떠 있는 것 같다.

거기에.

두근.

박동이 느껴진다.

느껴지는 정도가 아니라 저 박동에 전신이 짓눌리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고래를 마주한 그런 기분이었다.

‘살아 있어?’

-생명체야.

‘저게 우리가 잡아야 할 놈이라고?’

저격총으로 반백 년을 쏴도 안 죽을 것 같다.

아니, 상처나 입을까?

-저놈이야. 우리가 죽여야 할 목표.

‘구라 치지 말고.’

차라리 거짓이었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현실 회피 노노.

언어 순화하란 말도 안 나왔다.

*

막사로 돌아온 세주는 곧바로 테크룸으로 들어갔다.

-전체 조감도 보여줄게.

도시 크기라고 느껴졌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잘해야 야구장 정도.

“하하하하.”

-실성은 금물이야.

“저기에서 레이퍼가 나오는 거구나?”

-응.

“그럼 저걸 죽이려면?”

그래. 방법만 알면.

-현재 화력으로는 모기가 피를 빨아서 곰을 죽이는 격이지.

“이럴 땐 희망을 줘야 하는 거 아니냐?”

-현실을 직시해야지?

“그럼 여기서 good game이라고 치고 이승에서 로그아웃해야 되는 각이냐?”

-언어 순화하자며?

미안하다. 잠시 이성을 놓았다.

“잠깐만.”

세주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지금까지 싸워온 레이퍼 놈들을 뿜어내는 공중요새.

야구장만 하며.

“근데 왜 아무도 저걸 모르냐?”

번쩍 갑자기 고개를 들고 세주가 물었다.

“은신 시스템이 걸려 있어. 나랑 같아.”

“아.”

다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10초 뒤.

“좋아.”

정신을 차렸다.

일단 남은 에너지로 연구실과 기술실을 오픈했다.

-연구실 개발 완료까지 24시간 소요.

-기술실 개발 완료까지 48시간 소요.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할 수 있는 단순한 로봇 덕분에 소요시간이 두 배다.

그 뒤 할 수 있는 일이야 뻔했다.

“초인프로젝트 세컨드 가자.”

-에너지 30,000필요. 에너지 치환해서 노블 패스 확장하는 작업이 주를 이룸.

지금의 프로비던스는 설명 모드다.

“말이 많아. 그냥 하라면 하지.”

-오케이 접수 완료 3초 이후 바로 시행합니다.

그래도 목숨 걸고 하는 건데, 3초 이후는.

“잠깐만.”

잠시 멈추고 다시 호흡을 고른다.

초인프로젝트 세컨드는 노블 패스 확장이다.

실수하면 빵하고 풍선처럼 몸이 터진다.

“좋아. 시작해.”

곧 테크룸에서 나와 다시 막사에서 눈을 뜬다.

-최대 소요시간 68시간, 초인프로젝트 승인 완료, 에너지 투입 시행.

꿀렁.

프로비던스가 있는 어깨를 통해 젤리 같은 덩어리가 넘어온다.

노블 패스를 억지로 확장하는 작업이다.

여기에서 필요한 건.

‘에너지 컨트롤.’

커버링을 배우며 익혔던 그 감각이다.

꿀렁꿀렁.

에너지가 거센 파도처럼 몰려온다.

부르르르르르.

중간, 중간 세주의 몸이 떨렸다.

“잠꼬대 한 번 지랄 맞네.”

옆 침대에 있던 중사가 눈을 흘겼다.

“몽정이냐?”

부르르 몸을 떠는 꼴을 보고 투덜거리고 그가 돌아누웠다.

-예상은 했지만, 왠지 약 오르는데.

프로비던스의 툴툴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막사 사이로 빛이 스며들어왔다.

동이 트고 있었다.

“하아아아.”

한숨을 쭉 뱉으니, 푸른 연기가 허공에 흩어진다.

기묘한 쾌감이 전신을 아울렀다.

-그동안 형을 무능한 머저리에 늦장이나 부리는 또라이라고 생각했던 걸 조금은 반성해.

‘뭐 이 새끼야?’

“으음.”

쾌감에 신음을 흘리면서도 프로비던스의 말은 똑똑히 들렸다.

-초인프로젝트 세컨드 완료. 소요시간 2시간 22분 38초. 완벽한 에너지 컨트롤이었어.

사격만큼이나 특출 난 재능이다.

무형의 힘을 컨트롤 하는 능력.

즉, 에너지 컨트롤 능력, 세주는 여기에서도 확실히 재능을 보였다.

쾌감이 가시지 않았다.

노블 패스를 확장하는 건, 꽉 막혀 있던 속이 뚫리는 것보다 백배는 시원했다.

전신에 찬 쾌감을 느끼며 몸을 일으키자.

“좋은 꿈 꿨냐?”

옆에서 갈매기 두 개를 단 이가 물었다.

꼴딱 밤을 새웠지만, 노블 패스를 확장한 덕에 싱그러운 얼굴이다.

“별다른 꿈은 안 꿨습니다.”

“팬티 빨고 나와 자식아.”

그렇게 말하고 중사가 나갔다.

‘…뭐라는 거냐?’

-흐응, 아흥, 히응.

‘뭐 하냐 너?’

-형이 밤새 노블 패스를 확장하며 낸 소리.

‘염병, 내가 그걸 입 밖으로 냈다고?’

-응. 적어도 이 천막 안에 있는 사람은 다 들었을걸?

막사 밖으로 나가자.

“한 다리 건너면 여군 막사다. 소개해 주리?”

모르는 얼굴이었다.

갈매기 세 개, 상사가 그를 보고 아는 척을 해온다.

“아닙니다.”

굳은 얼굴로 거절했다.

“수호신 하사님! 제 여동생 끝내주는 미인입니다!”

지나가는 사병이다.

‘얼차려 감이다. 넌.’

얼굴을 똑똑히 기억해 뒀다.

논공행상에 떡하니 최고의 병사로 뽑힌 덕분에.

세주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리고 어제 막사에 같이 잔 놈들은 얼마나 입이 싼지.

벌써 몽정의 수호신이란 별명이 오간다.

아, 시발 아니라고.

-놔둬. 형이 극구 부인할수록 소문은 더 퍼지는 법이야.

‘넌 안 말리고 뭐 했냐?’

-왜 말려? 지금 같은 좋은 구경을 할 게 뻔한데.

‘아, 기, 계새끼.’

오랜만에 프로비던스의 정체성을 확인해주고 세주는 저 먼 곳을 바라봤다.

프로비던스가 은신을 스캔해준 덕분이다.

이제는 확연하게 눈에 보였다.

동쪽에서부터 올라오는 태양에 빛을 반사하는 보랏빛 괴물.

거대한 놈이 비무장지대 위에 둥둥 떠 있다.

마치 큰 구름 같아 보였고, 그 밑으로 촉수 같은 것이 몇 개 흘러내려 와 있었다.

‘이름을 안 지었네.’

-골.

‘골?’

-우리의 목표니까.

어울리는 이름이다.

‘언제 이름까지 생각했냐?’

-형이 신음을 흘리는 새벽에.

아, 진짜 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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