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30. 8900명
편제가 없는 부대였다.
이곳에 거주하는 병사는 전부 행정병뿐이었다.
‘왜 편제가 이따위야?’
-편제를 나누면 바로 옆 사람이 죽는 걸 알아버리잖아.
실제 전장에서 싸우며 죽는 걸 보는 것과, 옆자리가 비어버리는 건 다른 문제다.
애초에 편제가 없어도 싸우는 데 지장은 없었다.
무작정 몰려오는 적을 향해, 병과 별로 나눠서 싸운다.
그게 전부였다.
‘에너지 확인.’
눈앞에 홀로그램 문자가 뜬다.
하루 만에 모은 에너지가 5,568이다.
미사일에 죽어서 산산조각이 나면 추출이 되지 않고.
죽은 지 30분 이후에는 에너지 추출량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거기에 프로비던스가 동시에 추출할 수 있는 숫자가 10개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이후에 가장 필요한 기능을 고민해 볼 시간이야.
‘그 전에 저놈들을 보내는 놈들부터 알아야지.’
-조사해볼까?
‘당연한 말을 왜 묻냐? 해.’
-에너지 20,000 소모해서 대규모 스캐닝한다?
‘얼마?’
-20,000 되겠습니다.
‘이만 안녕하고 싶은 숫자네.’
-그래서 해 말아?
‘일단 기다려.’
나흘은 모아야 할 에너지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흘이면.
“하루에 사망자만 백이 넘어간다. 나노킷으로 치료하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악마 소위가 한 말이 귓가에 맴돈다.
하루에 백 명.
말이 백 명이지, 생목숨 백 개가 사라진다.
‘당장 이 싸움에 도움이 될 만 한 건?’
-연구실, 기술실 등. 뭐든 전부야.
그래. 우선순위의 차이일 뿐이다.
50명이 기거하는 천막 악.
세주는 자신에게 배정된 간이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밖으로 나가 무기 보관소에서 저격 소총을 찾고 나섰다.
“저격병?”
배치를 담당하는 상병이 물었다.
“이병 반세주. 네. 맞습니다.”
“A-7.”
“네.”
하루 만에 이곳에 구조는 대강 익혔다.
어려울 것도 없었다.
단순한 일자에 알파벳으로 구역을 나누고.
뒤의 숫자는 탑의 번호였다.
저격탑이라고 부르는 곳.
모든 저격 사수가 동그랗게 난 창문 위에서 밑을 향해 사격하는 곳이었다.
“기본 소총이야?”
개조도 전혀 이뤄지지 않은 종류다.
“네. 그렇습니다.”
“그게 효과나 있겠어? 여기 전투 참여하면 보상 좀 나오니까 무기부터 바꿔.”
“참고하겠습니다.”
그리고 탑으로 향했다.
위로 솟은 네모난 건물에 앞에 뻥뻥 구멍이 뚫린 구조물.
탑이라 부르는 곳이었다.
저격수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지는 않았다.
한 사로에 하나씩.
철컥, 철컥.
거치대를 세우고 총구를 밑으로 향하게 조정한다.
스코프의 영점까지 조정한 뒤, 바닥에 엎드렸다.
탕! 탕!
그 사이에도 총성이 울렸고, 저 밑에서는 죽고 죽이는 싸움이 한참이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고.
‘브로, 내가 죽인 것부터 에너지 추출 우선하고.’
-걱정 말고. 잘 쏘기나 하시지. 하긴 총 하나는 기가 막히게 쏘시는 분이니.
그래, 총 하나는 기가 막히게 쏜다.
‘모드 온 에임.’
붉은 점이 나타나고, 스코프에 눈을 갖다 댔다.
처음 보이는 건 막 저지선으로 뛰어드는 놈이다.
대물 저격총도 아니고 거리도 있어서 일격에 죽일 순 없다.
할 수 있는 건.
탕! 퍽!
스코프 너머로 놈의 다리가 날아간다.
죽어가는 아군을 살리는 거다.
-왼쪽 20도.
프로비던스가 위험한 아군 위치를 족족 알려준다.
‘전부를 살릴 순 없어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은 한다.
탕! 탕! 탕!
저격병 교대는 6시간에 한 번씩이다.
그 날 세주는 450발의 탄환을 쐈다.
“야, 너 미쳤어? 허공에다 막 쏘는 거 아냐?”
“탄환도 제가 사는 거 아닙니까?”
기본 배급 탄환 이후에는 철저하게 구매를 요한다.
하루 6시간 참전으로 버는 돈이면 충분할 정도라 상관없지만.
“그래도 그렇지. 적당히 써. 내 돈은 아니지만 아깝다.”
자대에 있는 돈벌레란 별명과는 정반대의 장교다.
보급소에서 나와 세주는 막사로 향했다.
그리고 4시간을 자고 일어난 뒤.
배치를 담당한 상병을 찾았다.
“다시 나갈 수 있습니다.”
“신입이라고 너무 무리하지는 마.”
“괜찮습니다.”
아직은 쌩쌩하다.
“그럼. B-6.”
다시 탑으로 향한 세주는 사로 하나로 향했다.
땅거미가 지는 시점이었다.
사로가 가득 차서 곧 끝나는 사로 뒤에서 대기해야 했다.
“교대지?”
먼저 사로를 차지했던 병사가 일어났다.
“미치겠군. 맞춰도 죽는 놈이 있어야지.”
그가 툴툴대며 장비를 챙겨 나갔다.
다시 자리를 잡은 세주가 사격을 시작했다.
-바이오리듬 좋고. 오늘의 운세라도 읊어줄까?
‘필요 없어.’
“후우.”
호흡을 조절하고.
4시간 자는 거로 생체 에너지는 회복했다.
‘모드 온 에임.’
다시 붉은 점이 떠오른다.
탕!
6시간에 520발.
이 전보다 배는 많은 탄환 수였다.
레이퍼 침공은 약 한 달 단위로 일어났다.
한 달 싸우고, 한 달 휴전.
그리고 싸움이 시작되고 보름쯤 지났을 때.
막사에서 치용을 만났다.
4시간 자고 6시간 나간다.
아는 얼굴을 봐도 자고 있거나 마주칠 기회가 적었다.
“그거 형님입니까?”
“뭐가?”
“요새 전방에서 싸우는 척후병들 사이로 수호신이 있다고 합디다.”
“수호신?”
“위기의 순간에 누군가 레이퍼의 다리를 날려버린다고.”
“아아.”
맞다고 고개를 끄덕여주고 자리에 누웠다.
지금의 라이프 사이클은 세주에게도 강행군이었다.
곧 눈을 감고 잠들어버렸다.
“역시 내 형님.”
치용이 세주의 모포를 덮어주고 나갔다.
그도 쉬지 않고 싸우는 중이었다.
그동안 죽을 뻔한 적이 다섯 번.
모두 세주 덕에 살았다.
커버링이 아니었다면.
‘이미 난 시체안치소에 얌전히 누워 있거나 놈들에게 똥꼬 따였겠지.’
*
“끅!”
레이퍼가 휘두른 망치 같은 다리에 얻어맞은 최병철은 죽음을 직감했다.
숨이 턱하고 막혔다.
‘제길.’
너무 나섰다.
갑자기 양옆이 허전했다.
가끔 저지선을 뒤로 물리기도 하고 앞으로 나가기도 했다.
그런데 뒤로 물리는 타이밍에 혼자 튀어나가 버렸다.
자신이 전역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버지가 떠올랐다.
어릴 때 어머니를 잃고 둘이 산 세월만 십 년이 넘는다.
‘아버지.’
남자라서, 낯부끄러워, 사랑한단 말 한 번 못 해봤다.
“이런 시발!”
뒤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익숙했다.
이십일 전쯤 신입으로 온 놈이다.
‘김치용.’
무섭게 잘 싸우는 놈이었다.
죽을 것 같으면서도 꿋꿋이 사는 운 좋은 놈.
‘난 운이 없었나 보다.’
이미 늦었다.
끼에엑!
칼날 같은 다리가 위에서 내리꽂힌다.
‘먼저 갑니다.’
아버지에게 작별인사를 한순간이다.
퍽!
시끄러운 총성에도 다리가 날아가는 소리만큼은 명확하게 들렸다.
“쿨럭!”
그제야 기침을 뱉으며 숨을 돌렸다.
바닥에 구른 그를 향해 두 번째 칼날 다리가 날아온다.
하지만.
퍽!
다시 다리가 중간부터 부서졌다.
‘뭐야?’
자신도 소문은 들었다.
수호신.
저격병이라는 말도 들었고.
그가 온 뒤로 사망자가 줄었다는 말도 들었다.
뜬소문이라고 생각했다.
윗대가리들이 사기를 올리기 위해 쓰는 방법의 하나라고.
“염병! 살아있냐?!”
뒤에서 김치용이 그를 잡아서 뒤로 훅 끌었다.
‘이 새끼가.’
자신은 일병, 치용은 이병이다.
그런데 반말 찍찍이다.
여기서는 부대도 상관없이 무조건 계급 우선이다.
하지만 그런 걸 나무랄 겨를은 없었다.
“수호신이냐?”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수호신은 무슨, 우리 형님이다.”
“뭐?”
“내가 형님으로 모신 사람이 한 거라고. 정신 차리고 빠져. 여기 나노킷 가져와!”
그가 우렁차게 외치자 의무병 하나가 날듯이 달려왔다.
곧 붉은 빛이 쏘아져 그의 전신을 감싼다.
맞은 부위가 욱신거리다 금세 가라앉았다.
‘수호신이라는 놈이 정말 있었다고?’
그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뱅뱅 돌았다.
*
‘모드 온 에임. 트레이싱.’
급한 마음에 스킬까지 썼다.
척후로 보이는 병사하나가 맞아서 나가떨어지는 장면을 본 직후다.
‘노리는 건 병사 앞 반경 1m.'
그 안에 들어오는 건 무엇이든 포착해 붉은 점이 움직인다.
세주가 의도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적을 포착한다.
완벽한 에임핵이었다.
“후.”
-목표물 안전 확보 완료.
프로비던스의 말에 숨을 돌렸다.
가끔 있었다.
뭐에 취했는지 무작정 돌격하는 미친놈들이.
-죽고 싶어 안달 난 놈을 살리네.
‘닥쳐라, 좀. 나 같아도 저런 상황이면 가끔 이성을 잃을 것 같구만.
-걱정하지 마. 내가 형을 그렇게 둘 것 같아? 간간이 미치도록 갈궈서 제정신 유지하게 할 거야.
욕할 기운도 없다.
세주는 다시 스코프에 눈을 댔다.
‘에너지라도 펑펑 얻을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효율이 좋지 않다.
첫째, 거리가 너무 멀어서 프로비던스의 추출 효율이 떨어진다.
둘째, 에임 모드의 스킬이 문제였다.
벌써 열이틀 전.
세주는 필요한 걸 고민하지 않았다.
‘에임 모드 스킬 열어.’
-오케이.
그래서 나온 스킬이 트레이싱.
에임핵의 끝장 판이다.
자동으로 붉은 점이 적을 포착하고.
세주가 할 일을 하나만 남게 만든다.
방아쇠를 당기는 것.
그뿐.
그러면 총알이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게 붉은 점을 맞춘다.
심력 소비도 없고, 집중력도 필요치 않다.
다만, 필요한 것이 있으니, 에너지다.
스킬 가동 시 1,000.
그리고 유지하는 시간, 분당 200이다.
‘에너지 잡아먹는 괴물이고만.’
-하지만 확실하잖아.
그건 맞다. 가성비는 안 좋아도 기능만큼은 월등하다.
‘왜 미리 말 안 했냐?’
-했으면 안 하려고 했어?
‘아니.’
알았어도 했을 것이다.
방금과 같은 경우, 완벽하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힘이니까.
-그래. 형은 했을 거야. 지금 가장 필요한 것, 눈앞의 사람을 살리기 위해. 뭐든 했을 테니까.
‘넌 아냐?’
-내가 사람이야? 난 인류 멸망을 막는 게 목적이지. 눈앞의 사람을 살리는 게 목적이 아냐.
냉정하지만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동의할 순 없지만.
‘그래. 넌 네 할 일이나 잘해라. 난 내 할 일 할란다.’
-난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형을 보필하고 있지. 우측 40도.
탕!
‘오냐.’
나흘 뒤면 이 싸움도 휴전이었다.
낮과 밤, 새벽을 가리지 않고 총을 쏴대니.
보급소에 얼굴을 비추는 시간이 많았다.
“수호신이 너냐?”
“이병 반세주?”
관등성명에 물음표를 붙이다니, 그것도 능력이다.
“아니다.”
보급소 담당 중위가 손을 내저었다.
눈이 퀭하니 피곤에 전 병사를 붙잡고 할 말이 아니었다.
모든 건 전투가 끝난 뒤에 할 일이다.
“수고하십시오.”
그 사이 50발들이 탄창이 들어가고 볼트 액션이 아니라 연사가 가능한 모델로 바꾼 저격총.
그리고 탄약 잔뜩.
세주가 번 돈으로 산 건, 이게 전부였다.
숙소에 돌아와 눈을 붙이고 일어났을 때였다.
“반세주?”
“이병 반세주.”
모르는 얼굴이 그를 찾아왔다.
“무슨 일입니까?”
“김치용 알아?”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김치용, 이인준, 정유진.
죽었거나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이들이다.
“치용이 형님이라고 모신다고?”
그 미친 치용은 어디서 또 세주와의 관계를 정립하는지.
“치용이 저를 그렇게도 부릅니다.”
“그렇다면 수호신도 너겠지?”
“으음?”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
당장 세주 덕에 목숨을 건진 인원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이십 일간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쏜 대가였다.
“맞구나.”
맞은 편 남자가 질린 얼굴을 했다.
“저격총으로 그 거리에서 다리를 맞춰?”
“타고난 재능과 각고의 연습이면 가능합니다.”
-거짓말. 에임 모드 없이는 택도 없지.
‘어른들 말씀하는데 끼어들지 마라.’
“고맙다.”
세주를 정면으로 쳐다보고는 고개를 숙인다.
그는 그 말을 하고 떠났다.
남은 세주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
-그놈인가 보다. 낮에 죽다 살아난 놈.
자신의 손으로 구한 생명.
실제로 세주가 저격탑에 있는 6시간 동안 사망률이 30% 이하로 떨어졌다.
그 사실을 고위 간부들은 알았고, 그 상황을 파악하려는 중에 수호신의 존재도 알았다.
그리고 그게 반세주라는 것도.
결정적인 건, 보급소 담당 중위의 증언이었다.
“한 번에 쓰는 탄약이 기본 700발입니다. 하루 종일 방아쇠만 당겨도 손에 물집이 잡힐 숫자입니다.”
그리고 전장에서 그 숫자만큼 레이퍼는 다리를 잃었다.
나흘, 세주는 아무 방해 없이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몰려오는 레이퍼 무리가 깡그리 사라졌다.
비무장지대는 누군가 하늘에서 녹색 물감을 부은 것처럼 축축한 땅으로 변했다.
그 풍경을 보던 세주가 숨을 길게 내뱉었다.
“후우우우우.”
긴 싸움이었다.
지치기도 지쳤고.
벽에 몸을 기댄 세주는 잠깐 쉰다는 게 금방 잠들어버렸다.
“여긴가?”
그때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군임이 분명해 프로비던스는 굳이 세주를 깨우지 않았다.
“잠든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말했고.
“그럼 기다리지.”
“네?”
“이번 전장의 영웅이다. 이 정도 예우는 당연하다.”
묵직한 목소리가 말하자.
“네.”
누군가 답한다.
-기다려준다니, 뭐. 나도 쉬게 해줘야겠지?
인간의 기준이든, 프로비던스의 기준이든.
세주가 한 일은 영웅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총 26일 출전.
현재 축적 에너지 168,221.
총기 과열로 총열 교체한 숫자 28.
사용한 탄환 42,521발.
그리고.
그가 살린 숫자, 추정 8900명.
이번 전장에서 세주가 올린 전공이었다.